제 1 부
-여행-
서문
스페인의 한 애송시 '어느 사랑의 이야기(Historia de un Amor) 중
마지막 소절인 아래의 이 한 토막 싯귀가 마음에 드는 이라면,
앞으로 이어질 한 여행자의 소곤거림,'플라멩코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기를 권한다.
모든 아름다움과 모든 어두움을 일깨워 준,
세상 그 어디에서도 다시는 있을 수 없는,
어느 사랑의 이야기.
빛으로 나의 삶을 뒤흔들고,
이렇게 다시 그걸 거두어 가버리다니,
아, 삶은 이토록 어둡기만 할까!
나 이제 살 수가 없어,
너의 사랑없이는.
어느 사랑의 이야기....
혀 끝에 닿는 이 시의 쓰디쓰고 달콤한 비통함을 ,플라멩코춤에
홀려 스페인으로 비행한 한 여행자가 들려 줄 깊은 노래와 춤의
이야기를 통해 더 진하게 맛보게 될 것이다.
플라멩코에 관하여 ,스페인의 시인 가르시아 로르카는 ,
"우물보다도, 바다보다도 깊은, 진실로 깊은 , 칸테 혼도는
첫 입맞춤과 첫 흐느낌으로 부터 나온다'고 표현하였다.
이 여행자는 여행길 내내 그 한 마디에, 그리고 비노 블랑코
(백 포도주)에 취하였다.
안달루시아 집시들의 비극적 삶과, 빛과 색채에 대한 그들의
맹목적인 열정과 자유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갈망이 담긴,
플라멩코의 노래와 춤은 이 여행자의 내면의 상처에 대한
치유의 길이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아니 그런 점에서 더더욱,
먼 곳의 어떤 거부할수 없는 손짓이었다.
스페인의 마드리드와 그라나다, 헤레스, 카디스 등 안달루시아의
도시들을 오직 플라멩코 하나에 대한 열망아래 찾아 다니는
이 여행자의 뇌리에 끊임없이 떠오르는 얼굴들- lau, 화가 n,
그녀 등-은 단순히 어떤 특정의 인물로 여겨지지않을 것이다.
그보다는 이 이름들은 낯선땅의 이국적 선율과 율동에, 그리고
플라멩코의 성지 헤레스의 포도주 맛에 어느 순간 상상 만으로
취기를 느낄 독자들의 이웃이 되어 눈 앞에 다가 설 것이다.
그 뿐 아니다. 깊은 밤 그라나다의 어느 호스텔 합숙소에 누운
이 여행자를 잠못 이루게 하는 아래의 여러 상념들 역시 한 개인의
것만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여행을 꿈꾸는 모든 이들에게도 상상의
주마등이 되어 한 밤 잠깐이나마 잠들지 못하게할 것이다:
알람브라의 가파른 성벽의 슬픈 전설, 세크라몬테의 동굴카페에서
펼쳐지는 집시 댄서의 뜨거운 추상의 춤, 이 여행이 끝나면 되돌아
갈 곳의 어느 그늘진 공간에 숨겨진 한 이름없는 화가의 추상화
' 영원의 뜰', 문득 문득 깊은 심이에 아득히 들리는 검은
히말리아 시다 숲의 바람소리, 그리고 바일라오라 Lau의 부드러운
손길의 아브라죠 !
( 언젠가 육신의 허기와 갈증을 달래주던
그래샴 동산의 불렉베리 맛과
향 같은)그런 매우 개인적인 상념들이......
포도주 향이 밤 공기속에 가득한 카디스의 카페 칸탄테에서 이
여행자가 무대위의 매혹적인 플라멩코 춤에 취할 때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어느 자폐성 남자의 선한 시선과 스페인의 그 싯귀-
어느 사랑의 이야기-가 겹쳐지다니! 그 시선은 혹시 카르멘에
대한 '돈 호세'의 치명적인 질투심의 눈빛으로 연상되어서?
모른긴 해도 이런 물음들은 이 여행자의 마음에만 머물지않고
어떤 독자들의 상상속으로도 슬며시 파고들 것이다.
이 글 속 등장 인물들의 덧없는 긴 열정, 소곤거림의 짧은 반짝임,
또는 어떤 거부할 수 없는 손짓 등은, 한 걸음 물러나 생각해보면,
누구에게나 마음 깊숙히 잠재된 먼 동경의 빛과 그늘 같은 것들일
테니까.
이 여행자의 발길을 따라 한 밤 그라나다의 동굴카페에,
혹은 포도주의 도시 헤레스의 집시촌 골목길로 들어서면,
플라멩코의 깊은 노래인 시규리어나 솔레아를 부르는
소리꾼의 아필라 목소리가 , 그 깊고 어두운 절망의 거친 절규의
목소리가 , 판소리 심청가의 부녀 이별가 대목의 비통한 소리가
그런 것처럼, 살풀이춤의 자진모리 장단의 율동이 그러하듯,
우리들의 몸과 마음을 다맃 가즉한 듀엔데의 밤바다 속으로
빠져들게 할 것이다.
플라멩코의 '깊은 노래'는 어딘가 판소리 심청가나 춘향가의
한 대목들을 떠올리게 한다. 소리꾼의 거친 수리성의 '소리'와
그 특유의 표현주의적 창법에서 그러하다. 악보에 담기지 않은
곰삭은 소리에 담긴 그 비통함이 깊어 그러하다. 그리고 플라멩코나
판소리 공연에서 청중은 그냥 자리만 지키는 수동적인 구경꾼이
아니다. 그들은 소리꾼이나 춤꾼들과 교감하며 그 순간 서로
마음이 하나가 되어 호흡을 함께 나눈다. 소리나 춤이 이어지다
끊어지는 짧은 순간의 침묵과 고요에 '올레!' '부라보!' 등의
집단적 탄성의 물결로 화답한다. 기독교의 어떤 열띤 종교집회,
이를 테면, 윤석전 목사의 목쉰 웅변적 운율의 설교 중에 홀 안
여기 저기서 터져나오는 감동의 '할렐루야!'가 그러하듯.
한편, 안달루시아의 깊은 노래와 판소리는 그 귀결점에서 서로
다르다. 심청가나 춘향가가 모진 고난 뒤에 낙천주의적 밝은
화해의 귀결로 그 끝이 우리들의 마음에 밝은 빛을 던져주는
것과는 달리, 예각성의 비극적 분위기가 끝을 모르고 이어지는
'깊은 노래'의 경우, 포도주에 젖은 그 거친 절규는 아득히,
그리고 점점 더 깊은 어둠속으로
사라질 뿐이다.
스페인어를 잘 할 수 있었다면!
색채나 빛의 울림으로 빚어진 그 마성의 거친 소리에 담긴
그 언어적 표현의 의미까지도 알아 들을 수 있다면!
안타깝게도,여행자는 진귀한 보석들이 숨겨진 동굴의 입구 앞에서
동굴 문을 열수 있는 암호를 알지못해 그 주변을 맴돌기만 하는 낯선
나그네일뿐이다. 팔라도 미술관에 이르는 대로변의 노점에 진열된
진귀한 고서 앞에서도.
이 글- 플라멩코 이야기-는 2002년도에 발행된 필자의
산문집- '여행 그리고 깊은 노래'가 언젠가 시작될 것이라고
이미 예고되어있다.'다음 행선지는 스페인의 안달루시아와
지중해가 되었으면' 하는 염원이 그 책의 머리글에 피력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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