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산문

플라멩코이야기 2-23

jhkmsn 2014. 8. 3. 13:00

                 회상의 숲길

                     ​3.

인문은 그 편백숲이 아래쪽의 낙엽수 숲보다 더 좋다.

그 숲은 햇빛이 잘 스며들지않아 한낮의 밝음과는 관계없이

침침하여  더욱 고요하고, 발에 닿는 흙의 촉감은 폭신하다.

그래서 그는 이 숲길에 들어서면  한적한 마을의, 비어있는

고택의 텅 빈 청마루에 올라 앉는 느낌이다. 그 숲 속에 혼자

들어서면 그런 느낌이다. 약간은 한가하여 자유롭고, 역간은

그 비어있음이 주는 쓸쓸함이 상상의 꿈보다 회상에 더 어울리는

공간이 된다. 그는 이 숲에 들어서면 한동안 나가지 않는다.

그 곳 숲길이 다하여 하늘이 보이면 되 돌아서 걷고, 반대쪽으로

걷다 그 곳의 끝이 밝아지면 다시 발걸음을 되돌리고....

그리하여 회상의 끈은 인문의 머리속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플라멩코의 선구자들인 안달루시아의 집시의

특이한 삶에 오버랩되어 떠오르는 , 해안가 놀이터의 어린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던 자유인 엿장수! 그 엿장수는 동네 소년들의

우상이었다.그가 엿수레를 끌고 나타나면 아이들은 몰입하던

놀이를 중단하고 그 수레 곁으로 우루루 물려 들었다 이내

각자  집으로 달려간다. 엿장수가 원하는 것을 아이들은 잘 안다.

집안을 뒤져 헌책, 녹쓴 옛 동전 , 구리 줄 등을 찾아 달려온다.

그리하여 엿장수 기분에 좌우되는 손길에 따라 ,어떤 아이들은 

입에 가득한 엿으로 행복해지고, 다른 어떤 아이들은 자신들의

손에 든 작은 엿조각에 실망의 표정이 역역하다.

인문은 소년시절 자신이 커 어른이 되면 저 엿장수 아저씨 같은

어른이 되고 싶어 했었던 순간이 잇었다. 인문의 그런 회상은

 불현듯 자신의 내면에 집시들의 전통문화인플라멩코를 좋아할

만한 요인이 있었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하였다. 왜냐하면 자신이

부러워 하였던 그 엿장수의 인상은 ,돌이켜 보면, 안달루시아 집시들,

특히 그들 중 전통적인 플라멩코인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였다.

Apart frm their music, the traditional flamencos are natural actors.

Their preferred life is in the streets and cafe, where they can

see and be seen , admire and feel admired. They enjoy being

nattily dressed​ and they  have an indestructible attitude of being

somebody unique , Armed with these assets, and a glass of

two of aguardiente, they strut like cocks, being at once

expansive , authoritative, friendly, condescending , formal,

dignified, and ,above all, individualistic.

They are not ambitious ,and are capable of being happily 

with only the basic necessitities . The concepts and

developments of progress are incomprehensible to them.

They scorn the rat race and its participants , together with

such obnoxious modern phenomena as demanding traffic

lights, motor-clutterd streets, shining stainless​-steel

cafeteriaa ,and grim, unseeing civilization bustling

to no destination. Inevitably traditional flamenco philosophy

will give ground to progress. Materialism , life insurance

grave sites on installments and pressing demands will take

their toll, and self-confident flamenco faces will cloud

with doubt and insecurity. This is progress as it

affects flamenco.​

 

​그리고 그가 그라나다 체류 중 머물렀던 호스텔의

그 젊은 매니저, 집시들은​,

More interesting are the fringe gypsies, by far the largest group.

These are the people who have been lured ,or driven ,from their

natural life on the open road to a life of squalor in urban slum.

The exceptions to this are the talented- the bullfighter, flamenco

artists, literary people, etc, whom ,if they are willing to work

commercially ,can make money for the essentials. But the others,

the non-talented who can not find work, or who are convinced

that the gypsies are above ordinary work, and should live by their

wits alone, usually far badly on the fringe. Other than work they

have only two alternatives: to go hungry ,or to become con men.

(범죄자).

인문은 소년기의 자신이 좋아한 그 엿장수와 플라멩코의 선구자인

스페인 안달루시아의 집시가 곧통적으로 지닌 특별한 점은

지금 생각해보면 그들은 태생적으로 그 어떤 무엇보다도 자유를

원하였던 것 같다. 그 엿장수가 돈버는 일에는 특별한 관심이

없고 엿가위로 엿판을 두드리며 아이들을 불러모으는 즐거움과

자유로움을 특별히 좋아하엿던 인물이엇음에 틀림없다.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가 지녔던 특별한 점은 그라나다의 집시들의

보편적인 삶에서도 발견되는 특성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미치자 불현듯 그가 언젠젠가부터 플라멩코의 선구자인 집시들에게

마음이 이끌린 것은 소년기의 자신의 그런 성향 탓이 아닌가

하기도 하였다.

It is unthinkable that a gypsy should to take a job that condemned

him to daylong labor in the dark.....More important than money

is the freedom that gives you the choice to work or not, according

to mood or need. yo mando en mi hambre, said El Chocolate:

" I am the master of my own hinger".

This emerges less clearly in a town of long settlement and intergration

such as Jerez, where I count a lawyer, a television producer, and

a business manager among the gypsies I have met. But then it is

also a town where only two of the beggars are gypsy.-and they

are both simple. With this non-work ethic​ goes a tendency not to

plan for the future.(Take no heed for the morrow- they have a

respectable precedent.)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에서 아랍군과 영국군의 사막 행군 중에

연출되는 집시소년의 좀도둑질 장면은 집시들의 삶의 일면을

보여준 것이다. 그 꽁지머리 그라나다 청년의 말에 의하면,

집시들은 의식주 해결을 위해 좀도둑질을 태연히 행한다는 데,

그 변명이 아주 특별하다: 그들의 좀도둑질은 부자 이웃이 천국에 갈 수

있도록 돕기 위한 선행이라는 것이다. 부자들이 가진 부는

그들의 천국행을 어렵게하는 장애물(  돈이나 귀한 물건들)이므로

그 짐을 덜어주어야 한다는 게 그들 집시들의 좀도둑질 습관이라는

희한한 변명이었다.

 

인문의 회상은 급기야 그 엿장수의 유랑자적 삶과 그 꽁지머리 청년이

들려준 집시의 삶. 그리고 그 청년 자신의의 견유학파적 사고는

서로 별개의 것이 아니지 않는가 하는 생각에까지 이르게 되엇다. 

견유학파(犬儒學派)라고 하면, 고대 그리스 철학의 한 학파로.

이들은 자연과 일치된 자연스러운 삶을 추구하며,소박한 삶을

지향하였다. 권력과 같은 세속적인 것으로부터의 자유를 추구하고

스스로를 세계 시민으로 여였다. 키니코스라는 말은 '개와 같은

생활(kynicos bios)'에서 유래한 듯한데, 가진 것 없이 초라하게

살아가는 삶을 의미한다. 사회적인 관습이나  이론적 학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으며, 이들의 사상은 이후 스토아학파

등에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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