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산문

플라멩코 바일라오라b4-1

jhkmsn 2019. 8. 12. 14:59

4-1


고백

1.

인우의 머리속에 요즘 파이오니어 스퀘어 광장을 중심축으로 한 포트란드의 도심이 그려진다. 20년 전 이 도시에서 그가 처음 머물렀던 센트랄 프라자 호텔이 이 광장에서 30미터 정도 밖에 되지않는 데에 위치하고있었고, 대리석 건축물로 된 격조있는 중앙도서관이, 그리고 근처에 이르면 커피향이 먼저 발길을 끌어당기는 대형서점인 파월북 스토어가 각각 그 광장으로부터 4 내지 5분 거리에 있었다. 그리고 브로드웨이 건너쪽으로 미술품 갤러리들이 모여있는 펄 구역이, 또 다운 타운의 빌딩에 올라가면 눈에 들어오는, 가로로 흐르는 윌라미트 강이 걸어서 5,6분 거리에 있었다.

한낮의 파이오니어 광장엔 젊은이들의 웃음소리와 햇살로 가득하였고, 어느 주말 스타버그 커피 내음이 번져내오는 서늘한 늦은 저녁의 광장엔 아프리카 음악이 출렁이는데 흑인 댄서의 타오르는 불꽃 몸놀림과 야성적인 드러머의 격렬한 드럼 두드림이 관객의 얼을 뺏는다.

파이오니어 광장의 외곽 한편에 위치한 펄 구역은 예술공예품 갤러리 들이 줄지어 자리잡고 있는 ,이른 바 포틀란드 예술촌이다. 이 곳 갤러리에 전시 판매되는 상품들은 거의 중국 일본 그리고 아프리카 지역의 고 미술품이나 공예품들이었다.

인우가 낯선 플라멩코 춤과 소리를 처음으로 보고 들은 곳이 바로 이 펄 공원이었다. 그는 이 지역 공원에서 펼쳐진 8월 예술축제에 우연히 나와 야외 무대에서 펼쳐지는 플라멩코 공연을 보게되었고, 그 공연단에 대한 첫 인상이 지워지지 않아 플라멩코를 다시 만나고 싶어 일부러 이 도시로 다시 찾아 와 우연히 엘레나를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지난 날 그녀의 '아이레'플라멩코 공연을 이틀을 앞둔 날의 저녁 혼자 파이오니어 광장에 나와 돌계단에 기대어 않았다. 초가을의 한낮 진한 햇빛아래 벌거숭이 윗몸을 뽐내던 젊은이들도, 감자칩을 손에 든 어린이들 뒤를 따라 다니던 비둘기도 모두 떠나버린 텅빈 원형의 광장에 이른 고요가 찾아와 넓게 깔려 들었다. 해의 끝자락이 사라진 뒤의 그 고요가 , 붉은 벽돌 바닥의 광장의 그 텅빔이 지난 한달 여 동안 마음 들떠 있었던 인우에게 유난히 가슴찌르는 것이었다.이틀만 지나면 그가 그렇게나 가슴 조이며 기다려온 엘레나 공연단의 '플라멩코의 밤' 무대에서 그녀가 '아침이슬'을 춤 출 것이고 그 역시 그 무대에 올라 그 노래를 우리말로 노래부르며 관객들에게 그 의미를 소개해 줄 것이다. 한달 이상이나 그 무대를 상상하며 그 순간을 기다려온 인우에게 잿빛 하늘을 이고있는 광장의 그 텅빔은 그러하였다.

그것은 모르긴 해도, 공연이 끝나면 이 곳의 현실은 한 여행자에 불과한 인우의 삶과는 무관한 일이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인우는 공연이 끝나는 다음 날 그 도시를 , 그리고 엘레나 곁을 떠나기로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 공연이 막이 내리면, 한달이상이나 그의 삶의 한 가운데에 들어와 있는 엘레나와의 만남도 그녀의 목소리도 과거의 일로 아득해 질 것임이 그 텅빔의 고요가 그의 의식속으로 불러들이는 것이었다. 그는 내일 모레 공연의 막이 내리면 물안개처럼 덧없이 사라질 어떤 환상에 젖어 있었던 것이다 .이 도시에서 여름 한달 동안 마음의 호주머니속에서 소중하게 가꾸어져 왔었던 어떤 환상의 조약돌딜이 손끝에 애틋하게 감지되면서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이 광장 근처의 호스텔인 조이스에 머무는 동안 인우보다 먼저 들어와 지내던 '리'라고 불리는 한 미국인과 자주 어울렸다. 그는 이 사회의 소외자였고 '나의 가족'이란 말은 머리속에서 지워진지 오래된 외톨이였다. 그는 인우와 한 방에 머무는 동안 그에게 훌륭한 영어교사 역할을 했다. 인우가 책을 읽다 만나는 어려운 문장이나 어휘는 곁에 있는 리를 통해 즉시 이해되었을 뿐 아니라, 대화중 인우의 잘못된 표현을 고쳐주고 듣기 어려운 말은 일부러 천천히 발음해주기조차 하였던 것이다.

그는 190센티미터 이상이나 되는 큰 키에 여자보다 더 긴 브론디 색갈의 머리를 뒤로 묶는 헤어스타일을 하고 다녔다. 그는 실내에서나 밖에서 늘 검은 색안경을 끼고 생활했으며 예수를 닮고 싶다며 늘 성경을 탐독했었다. 리는 미국땅은 병들어 더 이상 구제할 수 없는 썩은 나라이므로 자신은 늘 인도로 가는 꿈을 꾸고 있다며, ' 나의 꼬마 형님'(인우는 우리말 형님의 의미를 가르쳐주며 앞으로 자신을 형님이라 부르게하였다.)이 왜 이런 나라에 들어와 살고싶어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하였다. 한번은 자신이 피우던 마리화나를 인우에게 권하면서 그가 젊은 날 감옥에서 얻어맞아 생긴 가슴 통증을 가라앉히려고 그걸 피우게되엇다고 하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아이레 공연날 낮에 인우가 무대에서 소개할 아침이슬에 대한 영문 문장을 교정해주었으며, 저녁에는 공연시작 전에 잔뜩 긴장한 그에게, 마음 편하게 해주는 비법의 약이라며 펩시콜라병을 하나 건내주었다.

'이건 뭐니?'

'보시는 데로 콜라병이 잖아',

이걸 왜?

'무대 앞으로 나서기 전에 미리 마셔 둬. 조금 지나면 속이 후꾼거리며 마음이 편안해 질거야.'

'이게 ?'

'이건 그냥 콜라가 아니야. 영국의 독한 위스키 럼주에 펩시콜라를 약간 섞은 술이야.'

인우가 그날 무대 뒤에서 그 비법의 술을 마신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엘레나는  인우의 마음에 긴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 그렇게 여전히 살아 남아 있지만, 현실적으로 그녀는 아득히 먼 곳에 머물고 있는,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은, 존재일 뿐이었다. 더우기 두 사람의 이메일 교류는 전같지 않게 시간이 흐를수록 점전 줄어들었고, 그 내용도 그저  의례적인 안부에 그치고 있었다..무엇보다 엘레나의 글 내용들이 이제는 댄서로서의 표현의 글이 아니라  현실적 삶의 일상에 관한 것들이 대두분이었다. 플라멩코 춤이라는 말은 그녀의  의식속에서 지워지고 만 것처럼 느껴졌고 그녀의 이메일은 점점 뜸해졌다. 따라서 그녀의 존재는 자연스럽게 인문의 뇌리에서 희미해지고 있었다. 그는 이를 슬퍼하였다. 그녀가 춤을 포기하는 것은 인문이 간직하고있었던 어떤 기대나 희망이  사라짐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렇게나 소중히 가슴에 담겨있는 것들이 이제는

그 소리도 움직임도 정지된 과거의 흔적으로 남게되다니!

아침 햇살에 사라지는 처럼.

춤추는 그녀의 존재가 비록 세상에 널리지지는 않더라도

그녀의 춤은 내게는 참된 플라멩코 예술로 간직될텐데.

댄서로서의 그녀의 꿈이 이제는 흔적만 남기고 사라지는 것인가?

참 덧없는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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