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산문

플라멩코 바일라오라b4-3

jhkmsn 2019. 8. 13. 16:26

3.

지난 20연간 플라멩코의 소리와 춤 그리고 기타 선율이 인우의 미의식 속에 깊숙히 들어 온 이래  산문작가로서의 그는 자신의 글작품에는 플라멩코에 대한 사색을  깊고 넓게 표현해 왔었다. 그가 그렇게 된 데에는 엘레나의 플라멩코 춤이 그 시작점이었는데 바로 그녀가 언젠가부터  그  춤의 세계를 버리고 새로운 삶의 길을 찾아 나서고 있음을 알게 된 인우를  가슴 아프게 하였다. 그에게는 그것은 자그의 꿈의 하나가 허물어 지는 허망함을 맛보게 하였다. 그렇게 시간이 흐를 즈음 인우의 이메일 박스에 엘레나로부터  특별한 메일이 하나 들어와 있는 게 아닌가!.

2019,5월 0일 ,

Dear 인우,

이번 주 나는 오랜동안 거리를 두었던 이곳 플라멩코 공동체에 다시 가입할 생각입니다. 이 곳 플라멩코 그룹의 일원인, 나의 옛 제자였던 미추이가 타 지역으로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공연을 ​가질 예정입니다. 오늘 밤 그녀의 집에서 열릴 플라멩코 후에르가와 이번 일요일 그녀의 고별 공연에 참여할 것입니다.

지난 지난 11년간이나 이들과 교류를 나누지 않았습니다. 내게는 그 동안 마음의 상처가 너무 심하고 또 직면할 수 밖에 없는 회상이 너무 많아 ,두렵기도 합니다.

오늘 밤의 플라멩코 후에르가에, 그리고 이번 일요일의 공연에 인우가 멀리서라도 신뢰로 뒷바침해주리라 믿으며 자신감있게 나설 것입니다.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엘레나 마론너

2019년 5월 0일

더어 엘레나!

올레!!

매우 기쁜 소식이네여

엘레나는 잘 할 수 있읍니다.

엘레나는 내게는 항상 매혹적인 플라멩코 예술가였습니다.

자신있게 나서기를!

엘레나가 플라멩코 신발을 다시 신었다는 소식에 불현듯 스페인의 댄서 Juana Macarrona가 떠오르는군요. 마카로나가 플라멩코 댄서로서 최고의 경지에 올랐을 때의 나이가 60이었잖아요. 게다가 과체중으로 말입니다. 플라멩코의 경우, 발레댄서들이 신발을 벗는 나이에 춤을 잘 출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경이로운 사례를 그녀는 보여주었습니다. 놀랍게도, 90의 나이에도 댄서로서 마드리드의 로잘레스 타불로에서 당당히 춤을 추었다니!

엘레나가 다시 춤추기 시작했다는 말이 그녀를 상기시켜 주고싶었습니다. 과거의 댄서라는 의식은 발레의 경우라면 모르겠으나 플라멩코에는 해당되지않습니다. 아마도 60에 이른 나이의 마카로나가 관객을 매혹시켰다면 그 춤은 어쩌면 영적 충만감의 표현이었기에 그러했을 것입니다.

기회가 닿으면, 다시 시작하는 엘레나의 춤을 꼭 보고 싶습니다.

아 , 그리고 이번에 엘레나가 참여했다는 그 플라멩코 후레르가는

어떤 특별한 모임인가요?

아브라죠스

인우.

ps:미추이에게 안부를!

5월 0일,2019

디어 인우!

예스!! 그녀 앞에 당당히 설 댄서은 앞으로도 없을 것입니다. 그녀는 전설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나이가 많아질수록 더욱 동료에 대한 밸심은 더욱 깊어졌으며

인기를 누리며 잘 나가는 젊은 댄서를 질투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녀는 댄서로서 드물게 높은 인격의 소유자였습니다.

플라멩코는 단순한 음악이나 춤이 아닙니다.

플라멩코는 삶의 한 방편이고, 삶의 한가지 철학입니다.

오늘 인우에게서 마카로나의 이야기를 들으니 부끄럽기도 합니다.

동료들중 나를 비판하는 아이겐 화를 참지못하고, 내게 까칠하게 구는 댄서에게

따져들기 일쑤이고.... 그게 지난 날의 나였으니까요.

건강히 지내시기를!

고마운 마음을 전하며

엘레나

5월 0일, 2019

엘레나!

오래전 나는 처음 엘레나 춤의 그 우아한 아름다움에, 그 거부할 수 없는 생동감 넘치는 유혹에

홀렸습니다. 그리고 5년여 시간이 지난 무대의 그 내면의 깊은 슬픔의 표현에 감동했었습니다.

앞으로 엘레나의 3번째 춤은 어떠할까 상상해 봅니다. 이제 50의 나이에 들어서는 엘레나의 무대는 어떤 춤을 표현할까 ? 삶의 어떤 철학을 구현한 춤이 될까? 그런 상상을 혼자 해 봅니다.

love and Abrazos

인우

5월, 2019년

디어 인우!

​미추에Mitue는 인우가 여기 포틀란드에 있다면 이 후에르가에 당연히 초대했을거라며 이쉬워했습니다. 이번 그 후에르가 피티는 내게 특별히 귀한 경험이었습니다. 옛 제자들과의 해우에, 그리고 그들의 배려에, 가슴이 뭉클하기도 했구요. 춤을 오래동안 멀리하였던지라, 마음이 가는 대로 몸이 제대로 따라주지않아 여간 힘들지않았습니다. 그렇지만 모처럼 감동적이고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후에르가라면, 플라멩코 예술인들, 이를테면 가수 댄서 그리고 기타연주자들이, 그리고 플라멩코를 열열히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기타반주에 노래하고 춤추면서 동료의식을 나나누는 모임인데요, 이 모임은 종교적 집회의 의례처럼 특별한 의식의 요소를 띠고 있답니다.

일정한 절차를 거쳐 그 모임의 구성원이 되는 이른바 배타적 모임의 단체이이지요.

이 행사에서는 댄서나 가수가 청중을 의식하고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지 않습니다. 청중이 따로 없으니까요지 않습니다.지난 날 스페인의 프랑코 독재체제아래에서는 이 모임이 소외계층의 비밀스런 체제저항 집회로 여겨져 금지되었던 시절에는 이 의식에 투우사, 안달루사아의 작가 또는 예술가도 참여하는 경우도 있었답니다. 투우와 춤은 둘 다 하나의뿌리에서 발생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투우사 출신의 남자댄서들이 드물지 않은 점이나 출신배경이 추우사 집안인 여자댄서들도 있었어요. 안달루시아에서는 이 후에르가모임의 가입자가 되는 데에는 안달루시아 태생이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는가 하면, 정부 공무원은 회원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해요.

여기는 미국의 포틀란드이니 그렇게 배타적일 수는 없습니다. 어쨋거나 오래동안 이들 플라멩코인들과는 교류를 끊고 지내왔던 나로서는 이들과의 새로운 만남에 좀은 긴장이 됩니다.

건강히 지내시기를!

love

엘레나

6월 0일, 2019

엘레나!

내가 그 후에르가에 플라멩코 애호가로 참여 할 수 있었다면!!

이 회신에 '귀천'을 영어로 옮긴 것 보내니 앞으로 엘레나가 춤으로 표현해보시기를!. 그리고 이것을 스페인어로 번역하여 혹시라도 그곳 동료중 칸타오르(남자 가수)로 하여금 솔레아, 또는 시규리어로 부르게 할 수 있으면 어떨까 싶네요

'귀천'( Back to Heaven)

나 하늘로 돌아기리라

새벽 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더불어 손에 손 잡고

나 하늘로 돌아기라

노을 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달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가서 아름다웠노라고 말하리라

이 서정시를, 언젠가 우연히 기회가 생기면,

이슬람의 아라베스크를 연상케 하는 순수 추상성의 플라멩코 춤으로 표현해 보시기를!

아브라죠!

인우로 부터

6월 0일 2019

인우에게

그 때 인우의 마산 315공연 기획때 내가 갔었다면 '귀천'을 한국인들 앞에서 시규리어 깊은 춤으로 표현했을 텐데! 아쉽습니다. 인우의 요청대로 그냥 단순한 마음으로 마산으로 날라가 귀천을 춤추었어야 했는데! 내가 어느 덧 50줄에 들어서는 나이이니, 가슴을 뭉쿨하게 하는 그 시를 표현하는 데 과거보다 더 적합할 수도 있겠다 싶어 그런대로 스스로를 위로하겠습니다..

어쨋거나 고마워요.

내가 현재 파트 타임으로 일하는 이곳 포틀란드 호스텔에서는 한국인 젊은 여행객들도 더러 만나요. 기회잡아 여기 휴게실에서 한번 시도해는 것도 의미있을 것 같군요.


?????

7월 0일, 2019

엘레나에게

가르시아 로르카가 플라멩코 시규리어의 소리를 바흐곡의 흐름으로 비유한 문장을

이 이메일로 보냅니다.

"굽이치는 시규리어의 깊은 울림은 그 시작이 꼭 바흐의 첼로 곡의 흐름과 같다.

의미하는 바는 서로 다르지만,

물결치며 흐르는 바흐의 그 깊은 멜로디는

끝없이 이어지며 둥글게 원을 그린다.

이에 비해 플라멩코의 시규리어 노래의 그 외침의 경우,

그 멜로디는 그네들의 몸과 마음에서 빠져나와

사람의 보편적 희망과 열정을 온통 담아 실은 채

우리의 영혼이 도달할 수 없는

아득히 먼 수평선의 끝 점으로 사라진다,"

그 시인의 예측 불가능의 아름다운 상상력이 담긴 싯적 표현입니다.

오늘은 이 한토막의 글귀가 가슴에 가득 차 다른 무엇을 이에 더 보탤 수 가 없습니다.

.다시 또 연락하겠습니다.

아브라죠스!

인우

.

7월 0일,2019

인우에게!

그 문장은, 소리를 내어 읽어야할 글이내요.

그 문장 자체는 우리들의 상식적인 이해를 거부하고 잇어요.

어쩐지 신비롬기도 하고 허무감이 드네요.

요즘은 인우가 잘 아는 이 곳 파우엘 서점의 카페에서 이따금 책을 읽기도 하고

피이오니어 스퀘어 노천광장의 돌 계단에 앉아 점심시간에

여러 젊은 여행객들 틈에 끼어 앉아

부리토를 먹기도합니다.

오늘은 이곳 이 서점에 앉아 cante lyrics를 모아 이에 대한 해석을 덧붙인 일종의 시집을 읽고있습니다. 그 노래의 가사들은 짧고 싯적이었습니다. 플라멩코를 문학적 시각에서 새롭게 느끼게 되는 기회가 되는 것 같습니다. 내가 무대에서 춤을 출 때에는 지금과는 달리 오로지 춤의 형식, 기교 등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졌었는데.

집시의 음악의 이런 싯귀들을 통해 나의 춤을 사색의 냉철한 자세로 되돌아보기도합니다. 플라멩코 춤은 움직임이 적은 몸짓으로도 많은 표현력이 담길 수 있는 게 플라멩코의 깊은 춤임을 뒤늦게나나 깨닫습니다. 시규리어는 기교를 뛰어넘는 춤이어야 하거든요. 그러다보니 그러나다의 유명한 댄서 에바 예르바 부에나의 시규러 춤이 연상되기도 하는군요. 시집에서 시선을 붙드는 한 구절을 인우에게 보냅니다:

달에는 달무리가 져있고,

사랑하는 사람은 죽었다

There's a halo round the moon

My love has died .

이 두줄의 단어속에 담긴 비통함!.

신비스런 감성적 표현입니다

이 노래의 가사를 두고 로르카는 이렇게 감상하고 있네요:

단순하고 진정한 신비,

,깨끗하고 완전한,

그리고 그늘진 숲 또는 방향타 없는 배들도 없는,

살아 있는, 영원한 죽음의 신비!

Simple, genuine mystery, clean and sound,

without gloomy forests or rudderless ships-

the living, eternal mysyery of death!

7월 0일,2019

다어 엘레나!

오늘은 엘레나에게 고백하고싶은 게 하나 있습니다. 내 혼자만 간직해왔던 이 내밀한 것을 털어내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싯점을, 놓치면 그런 기회가 온다 손치더라도, 틀림없이 헛된 일이 되고 말 것입니다.이 시점에 그 꿈이 사라지지않게 할 마지막 기회이기에 그렇습니다.

지금 털어놓을 이 고백은 나의 삶과 꿈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엘레나가 춤을 포기하면 그것은 엘레나의 개인적인 비극 이상의 것입니다. 엘레나, 한 사람의 좌절과 슬픔으로 끝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그것은 엘레나는 이해할 수 없겠지만, 내게도 불행으로 남게 될 것입니.

지난 날 내게는 두개의 삶의 목표를 차례 차례 잃은 억누를 수 없는 슬픔이 있었습니다. 이제 또 하나의 소중한, 곡 지키고싶은 희망의 대상이 사라지고 있는 것 같아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을 느낍니다. 무엇보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지향할 새로운 목표를 찾을 나이를 넘었습니다.지금 나는 노년기에 깊게 접어들고 있음을 엘레나도 잘 알고 있지않습니까?.

엘레나를 만나기 전 정치학 박사로서 학문에 전념하던 나는 그 길을 포기한 적이 있었습니다. 소련의 대통령 고르바초프의 정치적 이념애 대한 연구가 나의 학위논문의 주제였는데 그 연구가 결실을 맺게될 즈음 국가로서의 소년이 사라지고 그 지도자 고르바초프마저 권좌에서 밀려나고 말았습니다. 그로 인해 나의 연구분야가 사라지고 만 셈이었기에 그 길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소련의 지도자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와 '새로운 사고'는 국제정치학도였던 나에게는 경이로운 것이었다.그런 점에서 고르바초프의 실각과 소련은 붕괴는 나의 꿈 마저 사라지게 하였던 것이었습니다. 연구의 대상이 하루밤 사이에 연기처럼 사라진 나에게 학문의 길은 더 이상 무의미해졌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 길을 표표히 내 던졌다.

그 대안으로 수십년간  회화예술 탐구에 몰입해왔습니다. 그러나 지금에 이르러 다시 길을 잃었습니다.오늘 날의 탈 예술적 포스터모든의 시대에 내가 탐구해 온 예술적 목표가 눈 앞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이 길에서도 더 나아갈 목표를 잃게 되었습니다.

아,  엘레나가 댄서로서의 춤을 포기한다는 것은 나로서는 예술적 탐구를 위한 소중한 동행자를 잃게됨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내게는 말로서는 표현할 수 없는가슴아픔입니다.

오늘은 엉뚱한 이야기만 널어놓은 것 같아 좀은 쑥스럽습니다.

다음에 또....

인우

7월0일, 2019

Dearest 인우.

오, 인우! 지금 내가 무슨 말을 해야할찌 알지못합니다.오늘 인우에게 보낼 수 있는 것은 

 눈물 뿐입니다.

아브라죠스!

엘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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