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별
6월 어느 흐린 날 노인이 두 청년 동행자와 천주산 정상이 올려다 보이는 고개에 올라 맞은 편 가까운 산등성이와 마주하며 앉아 한 참이나 쉰다. 얼마 후 두 젊은 이들은 각자 소지품을 챙기며 노인에게로 시선을 보낸다. 노인은 앉은 채로 그 쪽의 한 그루 떡갈나무를 손으로 가리키며 그 둘에게 말한다,
“김군, 저기가 내가 말한 거길세. 여기서 준비하세.”
“예? 선생님, 저기까지 가지않고요?”.
노인은 자리에 그대로 앉은 채 답한다,
“여기가 떡갈나무와 마주하기 좋아서 그래.”.
김군은 챙겨 온 대금을 꺼내 들고는 평평한 곳에 정좌하며 다른 청년에게 눈짓을 한다. 그 청년은 장구와 북채를 준비하여 그와 마주 앉는다. 노인은 그들에게 다시 말을 건넨다.
“ 저 떡갈나무는 주변의 어린 소나무들보다 키가 커 바람에 많이 시달리는 편이지.”
“예, 그렇잖아도, 큰 가지가 하나 찢겨져 아래로 쳐져 있네요”
노인은 이어 좀 더 가까운 데서 군락을 이루고있는 관목들을 가리키며, “ 저건 진달랠세. 봄이면 꽃이 허드레지게 피어 산을 온통 분홍빛으로 물들이지.”
산 아래 평지에서 이 고개에 이르는 길은 세갈래 이다. 하나는 완만한 만큼 짦은 길이 또 하나이다. 그리고 세번째는 경사가 알맞은 달천계곡 산책로를 따라 오르면 노인들도 쉽에 오를 수 있는 길이다. 햑야는 언젠가부터 이 세번째 길로 여기에 오른다. 그가 이 진달래 밭에 처음 오른 건 십대 소년이었을 때 였고 그 이래 일흔 중반의 노인이 된 지금까지 해마다 이곳으로 올랐다. 이 고개에 올라 서기만 하면 아, 이제 다왔다 하며 평평한 오솔길 따라 그 떡갈나무아래에 이른다. 그러나 이날은 그는 고개에 앉아 그 쪽을 바라보기만 한다. 바로 저기인데도 그는 그냥 앉은 채 그 진달래밭과 떡갈나무와 마주하기만 한다.
그렇게 앉아있던 학야는 옆에 앉은 두 동행자에게 이제 시작해봅시다는 의미의 눈짓을 보내자 한명은 일어나 음료수로 목을 축이고 다른 이는 메고 온 북을 앉고 자리에 앉는다.
두 청년은 노인의 부탁으로 특별히 그를 따라 이곳으로 동행하였다. 한 명은 대금연주자이고 다른 이는 고수이다.
산조의 장단은 판소리 장단과 같다. 기본 장단은 진양조·중모리·자진모리이며, 각 산조마다 중중모리·엇모리·굿거리·단모리·휘모리 등을 삽입하여 전체적으로는 느린 장단에서 빠른 장단으로 몰아가는 형식이다. 각 산조의 첫 악장은 반드시 진양조로 시작한다. 산조의 조도 판소리와 같아서 계면조·평조·우조로 되어 있다. 계면조가 가장 많이 쓰이며, 5음 음계 안에서 조바꿈이 다양하게 이루어진다
실은, 그 떡갈나무아래엔 봄이면 이름없는 산꽃으로 피어나고 겨울이면 적설아래 풀잎으로 눕는 스무살의 새댁이 잠들어 있다. 그가 처음 그 곳에 올랐던 것은 십대 소년이었을 때 였고 그때 이래 일흔 중반에 이른 지금까지 해마다었다. 아버지와 삼촌들 따라 처음 그 곳에 올랐었고, 그때 이래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가 고향에 정착하고부터는, 해마다 그곳에 올랐다. 일흔 중반의 그가 평소와는 달리 이 날은 능선에 일어날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그냥 않아 그 곳을 바라보기만 한다. 진달래밭과 떡갈나무와 마주하기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