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산문

창블 6.재료=키스 하링

jhkmsn 2017. 7. 8. 10:24

키스하링은 미국 펜실바니아주 1958년 5월 4일 출생으로, 피츠버그 예술공예센터(Pittsburgh Arts and Crafts Center)에서 정식 미술 교육을 받았다. 1978년 뉴욕으로 떠나기 전, 피츠버그 예술 공예센터 전시에 선보인 작품에서 이미 선을 위주로 한 양식적 특징이 드러날 만큼 하링은 일찍부터 자신의 독자적 개성을 갖고 있었다.
그는 어린이의 그림처럼 진솔하고 이해하기 쉬운 미술이 가장 훌륭한 미술이라는 확신을 키워가고 있었다.

이러한 신념은 기존의 아카데미 양식을 탈피하고 깊은 수준의 감정과 표현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어린이처럼모델링과 원근법을 무시한 폴 클레(Paul Klee) 영향을 받았다. 뉴욕에서 하링은 시각예술학교      (School of Visual Arts, 약칭 SVA)를 다니며 좀더 대중적 성향의 작품을 제작했다.

     이 같은 대중주의는 당시의 추세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로버트 스미슨(Robert Smithson)이나 마      이클 하이저(Michael Heizer)의 야심적 작품이 제작된 장소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어 오직 사진이나      실제 작품의 잔해만이 기존의 화랑이나 미술관에 전시될 수 있었던 데서도 엿볼 수 있듯이, 당시 가장      활력있는 미술 활동은 화랑이나 미술관 이외의 공간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특히 젊은 미술가들 사이에는 이스트 빌리지(East Village)나 사우스 브롱스(South Bronx)에서 작업      하는 것이 직접적이고 지역 사회에 많은 영향을 미칠수 있다는 믿음이 팽배해 있었다.
     이런 의미에서 시내 담벼락이나 지하철 객차 등에 독특한 글이나 그림을 스프레이로 큼지막하게 그리      던 낙서화가들의 활동은 당대 뉴욕 문화계의 흐름을 대변한 현상으로 볼 수 있다.

     낙서문화가 보급되면서 매주 모임을 갖는 낙서협회까지 결성되었고, 때로는 낙서화가들이 이스트 빌      리지 미술가들과 공동으로 전시를 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예가 1980년 41가의 한 버려진 5층 건물에 하링을 함한 1백여 명의 미술가들이 외벽은 낙서      로, 내부 벽과 공간은 주제별로 각자의 창작 의욕을 불태운 <타임 스퀘어 쇼(Time Square Show)>      다. <빌리지 보이스(Village Voice)>지의 자유 기고가인 리처드 골드스타인(Richard Goldstein)은 이      것을 80년대의 가장 급진적인 전시회라고 주장하면서 그 양식적 특징에 대해서 '시각적 펑크'라는 표      현을 사용했다. 하링이 이러한 다운타운 문화에 참여하기 시작한 것은 1979년부터였다. 그의 초기 거      리 작업은 SVA에 다니던 친구들과 함께 길거리의 담벼락에 종이를 붙이거나 색칠을 한 뒤 사진을 찍      는 것과 신문의 표제를 잘라 임의로 결합시켜 엉뚱한 포스터(예를 들어<레이건,용감한 경찰에의해 피      살>)를 만드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하링은 케니 샤프(Kenny Sch-arf), 장 미셀 바스키아(Jean       Michel Basquiat) 같은 미술가들과 친교를 맺게 되었고, 나아가 미술은 소수의 엘리트만이 아니 모      두를 위한 것이라는 평생의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야 디제이...딴따라라~ 드럼배우고 싶다... 사랑해요..........
       
 

사랑은.........움직이는 거야........  슝=333  바퀴가 달린것은 너무나 신나~!         

 
 

이건 뭘까?                              나에게도 사랑을 줘봐~~



 

 

하링의 독자적 양식이 드러난 80년대 초의 지하철 그림은 바로      이러한 믿음을 배경으로 해서 잉태된 것이다. 다운타운의 거리      와 지하철 외에 이스트 빌리지의 나이트 클럽도 대안적 전시공      간의 일부였다. 본래 나이트 클럽은 즐기기 위한 장소지만 동      시에 비공식적인 예술 활동의 공간이기도 했다.
     클럽에서의 활동은 내부 장식에서부터 조직적인 전시 형태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이루졌다. 대표적인 예가 1980년 하링을      포함한 한 무리의 예술가들이 '클럽57'에서 자신들의 작품과      음악 그리고 검은 조명으로 독특하게 클럽의 분위기를 연출한      '검은빛 파티(Black Light Party)'였다.
     교회 밑 지하실에 자리한 클럽57의 관계자들은 교회 일에 관계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술가들에게 아무런 제재도 가하      지 않았고, 따라서 클럽57은 다양한 실험적 활동의 무대가 되      었다. 클럽57 외에 하링은 펀 하우스(Fun House), 패러다이스      가리지(Paradise Garage), 팔라디움(Palladium)
등의
클럽을 찾아 최신 경향의 음악과 춤을 접하고 그것을 작품에 반영하기도 했다.
      <타임 스퀘어 쇼> 이후 하링은 전환기를 맞게 된다. 하링에게 그 쇼는 자신의 작품을 다른 미술가들의           작품과 비교해 독자적인 자기 양식을 확립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동시에 토니 샤프라지
      (Tony Shafrazi) 화랑에서 개인전을 갖는 기회도 갖게 되었다.1982년에 열린 그 개인전에서
      하링은 스머프,   미키 마우스, 뛰고 뒹굴고 재주넘는 사람들, 광채를 발하는 아이들 등 다양한
      이미지를 선보였다. 이들은 대개 지하철 그림과 관련된 것들이지만, 화랑 내부를 꽉 채운 작품의
      전체적 효과는 고대와 현대, 동양과 서양, 그리고 고급 문화와 대중 문화의 환상적인 결합이라고 할 수 있다.
      고대와 현대의 결합에 대한 관심은 하링이 애독한 엑버트 파스(Exbert Fass)의 <새로운 시학을 향하여        (Towards a New Poetics)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그 책에서 파스는 현대의 미학을 원시와 문명,
       옛것과 새것의 절층적 혼성, 양자역학에서 샤머니즘에 이르기까지 단편적 정보의 집합으로 규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