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산문

r창블인5-1-6

jhkmsn 2017. 1. 25. 10:49

                  6.


안달루시아 집시, 보헤미안 예술가, 베르레느, 랭보, 유트릴로, 로테렉,

고흐,푸치니의 오페라, 라보엠,무르제,부르조아 사회, 로마니 족,

히피족,예술지상주의, 미국의 보헤미안, 뉴욕의 그리니치 빌리지,

굿포낫싱, 마리화나, 홈리스



평소 실제의 삶에 아무 도움이 되지않는 것들로 머리속이 바쁜

인문은 그 기타맨의 존재로 머리속이 더 바빠졌다.그 기타맨에 관한

헛 공상으로 인해서 였다.그가 얼핏 스페인의 안달루시아 집시를

닮았다던지,아니,20세기 초 유럽의 술꾼 보헤미안에 더 가까운 사람이

아닐까, 아니야, 창동의 자생적 보헤미언이라는 말이 더 적절할 거라거나,

또는 혹시1950년대를 전후하여 뉴욕의 그리니치 빌리지를 헤맨 젊은

아웃사이더에 더 어울리는 사람임에 틀림없어,라고 말하는 등,

그 기타맨에 관한 여러가지 의미없는 상상들로 많은 시간을 보내기도

하는 사람이었다.그리하여 그를 통해 연상되었던 어휘들, 이를테면,

안달루시아의 집시, 로마니의 지고이너, 보헤미안 또는 미국의

비트 제너레이션 등을 알아보기 위해 도서관까지 찾아가기도

하였던 인물이거니와, 어떤 때는 창동에서 어시장쪽으로 한가히

걸음을 읆기면서도 혼자서 머리속으로 '사이먼과 가펑클'그룹이

공연하는 맨허탄의 센터럴 파크를 떠올리며 그들이 부르는 노래

'침묵의 소리'(the sound of silence)를 따라 입속으로 혼자

이렇게 중얼거리는 실속없는 사람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어둠이여, 나의 오랜 친구여,

나는 너와 다시 이야기 나누고 싶어 왔어요,

왜나하면 

어떤 환상이 내가 잠든 사이 내게로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그 환상은 내 머리속에서 침묵의 소리 안에 남아 있어요.

.........

.........

Hello darkness, my old friend
I've come to talk with you again
Because a vision softly creeping
Left its seeds while I was sleeping
And the vision that was planted in my brain
Still remains

Within the sound of silence
..............

..............


인문은 창동의 몽씨와의 만남을 통해 그가 전부터 호기심을 가졌던

보헤미안이나 스페인의 집시족에 대해 좀 더 깊게 사색하는 시간을

갖게되었고, 그러다보니 보헤미안과 스페인의 집시 사이에 막연하나마

개념적 차이가 있음도 느껴졌었다.

10여년전 그는 스페인의 안달루시아 여행중에 만난 그 곳 집시들의

모임(juerga)에 어울리기도 하고, 한번은 한 집시집의 저녁자리에 초대된

적도 있었다.그 때 그가 받은 첫 느낌은, 그들 집시들은 그들의 전통적인

춤과 음악인 플라멩코에 몸과 마음이 잘 젖어있다는 점이었다.그리고

보편적인 현대인들과는 달라 그들 집시들은 삶의 기본적인 요소만으로 만족할

줄 아는 종족들로 여겨졌다. 그들에게는 진보라거나 발전이라는 개념이 희박하다는

점 등도 몸으로 자연스럽게 느꼈었다. 부연한다면, 그들 집시들은 기질적으로

치열한 사회적 경쟁 자체를 하찮는 것으로 치부하였고, 부산한 도회적 문화 등

현대적 분위기를 싫어하는 종족이었다.

그들에게는 물질적인 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유였다. 그들은 필요에 따라,

기분에 따라 ,일할 것인지 아닌지를 스스로 선택하는 자유를 소중히 여긴다는

것이다. 그들은 독특한 개성의 종족으로, 그가 좀 더 챙겨 본 자료에 의하면,

포도주 잔을 높이 들고 수탉처럼 우쭐대며, 튀는 옷맵시를 뽑낸다점도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그들 안달루시아 집시들은 자신들이 속한 지배계층의

사회적 규범에 생리적으로 잘 적응하지 못하였기에 이로 인해 불가피하게

지난 날 사회적인 박해의 대상이 되었던 것으로 여겨졌었다.

한 편 '보헤미안'이라는 말이 인문에게 의미깊게 여겨진 것은 아마도

그 말이 예술적 기질의 아웃사이더 예술가를 뜻하기도 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원래, 그 말은 체코의 보헤미아 지방의 거주민을 일컬었으나 ,

점차 처음의 그 종족적 개념을 벗어나, 보편적으로 사회적 아웃사이더의

삶을 살았던 예술가들을 일컫기에 이른 것이었다. 예컨대, 20세기 초에

살았던 프랑스의 랭보와 베를레느 등의 시인들과 ,그리고 모딜리아니 ,

반 고흐, 유트릴로, 로트렉등의 화가들을, 사람들은 보헤미안 예술가라고

불렀다. 보헤미안이라는 말이 호의적으로 세인에게 널리 알려지게 된

데에는 프랑스인 작가 무르제의 소설 '보헤미안의 삶'( La vie de la boheme)과

이를 토대로 한 푸치니의 오페라 '라보엠'이 대중화되면서부터였다고 하였다.

무르제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좀 경박하고 선량한 젊은이들이다.

그리고 그 소설이나 오페라에 등장하는 보헤미안 예술가들의 모습은,

발자크가 말했듯이, '아직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어느 땐가 알려져서

유명하게 될  젊은이들'로 그려져 있다.

그렇지만 사실상의 보헤미안들은, 앞에서 말한 시인이나 화가들에게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사회적으로 소외된 비참한 아웃사이더 예술인들이었다.

폴 베를레느와 렝보는 구호병원에서 객사하였으며, 반 고호의

뚤루즈 로트렉은 한 때 정신 병원에 입원하기도 하는 데, 하여튼 그들

대부분은 카페나 사창가에서 생애를 보냈다. 그들은 사회에 쓸모가 있을 법한

자신의 내적 요소들을 스스로 파괴한 이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마음을 채우고 있는 것이 단지 자신이 불행하다는 의식 뿐만이 아니었다.

그들의 의식 속에는 또한 세상 사람들의 행복이란 것이 천박하고 비속하다는

정서가 깔려 있었다. 그리하여 행복한 이웃들과 어울리고 그들의 삶의 방식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곧 그들 스스로 의미있는 삶을 포기하고 비속하고 천박한

사람들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였으므로 그들로서는 결코 세속적인 행복의 삶을

택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오늘날에는 거의 신화적 존재가 된 그들은 당시에는

스스로 자초한 가난속에서 기성사회의 제도나 관습에 역행하며 비참한 삶을

스스로 선택하여 살다 홀련히 생을 마감하였던 것이다.

원래 '보헤미언'이란 어휘는 프랑스어로 일정한 근거지가 없이

사회적 밑바닥에서 종종 타락한 생활을 일삼던 집시또는 로마니 족을 

뜻하였으나 그 이후부터 그 말의 뜻은 점차적으로,  그렇게 비극적으로 살다

전설이 된 예술지항주의자 예술가들을 뜻하기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은 선상에서, 1950년대의 미국사회의 카페지역,이를 테면

뉴욕의 그리니치 빌리지 ,세레토가 또는 하버드 대학촌에서 카페나

다락방을 은거지로 삼아 모여 지냈던 젊은 비트 음악가들도 있었다.

이들은 술과 마리화나 등을 즐기며 예술활동을 한 자유분방한 히피들로,

이들 또한 세속적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려한 보헤미언들이었다.

1950년대의 이들 미국의 보헤미언들은, 그렇지만 ,원래의 의미대로

정처없이 떠돌며 방랑하는 그런 유랑인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카페나

다락방이 있는 일정한 지역에 은거하면서 밤 늦도록 술이나 마리화나에

젖은 채 철학과 예술을 논하던 꿈 많은 10대 젊은 홈리스나, 늙고 힘없는

부랑인들, 그리고 이름없는 예술가들을 의미하기도 하였다. 그런 점에서

보헤미안은 세속적 굴레 속에서 숨죽이고 살아가는 오늘날의

예술인들에게 선망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의미로 여겨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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