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측백숲의 향기
2.
서편제 영화에는 플라멩코의 'juerga'와 '듀엔데'에 해당되는
몰아적 도취의 소리판이 연출되는 장면이 두번 있다. 예상치못한
순간에 일어난 그 두 놀이장면은 자연발생적이다. 무심코 터져
나오는 소리꾼의 소리와 이를 부추기는 고수의 북채 놀림, 그리고
그 뒤를 잇는 그들의 어깨춤! 그들은 어느 덧 자신들의 소리와 리듬에
매몰되면서 내일의 삶 걱정도, 마음의 번뇌도, 그리고 현재의 애통함도
까맣게 잊은 몰아적 도취에 빠져든다.
그 놀이장면의 한번은 떠돌이 소리꾼 가족 3인이 해안가 언덕길
따라 내려오면서 펼치는 감동적인 아리랑 소리 한마당이 그것이고,
다른 하나는 주막에서 의붓 오누이 둘이서 판소리의 소리와 장단에
몰입하며 밤을 새는 일종의 도취적 의식이 그것이다.
남도소리꾼들의 그런 도취적 소리마당처럼 ,스페인 안달라우시아
집시들에게도 juerga라는 가족,친지 등 소규모의 배타적 모임에서
그 무리들이 소리와 춤으로 집단적인 도취에 빠져드는 순간이 있다.
그 몰아적 상태가 이른바 듀엔데로 서편제에서 그 몰아적 도취와
유사한 상태이다.
그런 듀엔데적 감동을 문이 조금이나마 플라멩코 춤의 현장에서
직접 느낀 경우는 아마도 그가 후아나의 춤을 보기 위해 찾아든
그라나다의 폐쇄적인 작은 공연장 다로에서 일 것이다. 그는 그 순간
공연자들 바로 앞에서 기타리스트의 추임새와 소리꾼의 팔마스에
화답하는 춤꾼의 가뿐 숨소리에 빨려들면서 듀엔데에 젖어 든
순간을 회상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 juerga' 파티에 관해서는, 그의 다음 행선지였던 Jerez에서
였다. 헤레즈는 안달루시아 플라멩코의 발생지로서 춤꾼 마리아
베르뮤데스가 살고있는 도시였다. 문이 마리아의 친척 모임에
초대되어 참여한 그 소규모 파티가 곧 그런 순수한 juerga가
아니었나 싶다. 그 때 참여한 남여 노소 중 소리못하고 춤 못추는
이들이 었었고 그 흥겨운 자리에서 손벽장단인 팔마스에 서툰 사람은
초대받은 문 이외 아무도 없었다.
그 juerga 현장에서 마리아의 집시 남편의 가족 중의 한 노인이
지팽이로 장단을 시작하자 시골의 평범한 가정부인 같은 중년 부인이
칸테를 부르고 ,뒤를 이어 시골티 나는 한 남자의 기타 연주를 따라
한 젊은 여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 리듬을 타고 춤추기 시작하였다.
그날 문은 긴 여행의 노독으로 너무 지쳐 더 이상 그자리에
머물 수 없었기에 그 후의 진행과정은 지켜 보지못했다.
문은 그래서 때때로 자신이 몰입하고 싶어한 플라멩코의 juerga와
그로 인한 취기의 분출이 일어나는 듀엔데를 상상으로 느껴볼 뿐이다.
그가 플라멩코의 기본적인 'juerga'와 '듀엔데'를 조금이나마 체험한
것은 솔직히 그 두번의 경우가 전부이다. 대개의 경우는 공연 무대에서나
또는 플라멩코 스튜디오에서 좀은 상업적으로 변질된 플라멩코 춤과 소리
그리고 기타연주의 현장에 참여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었던 것이다.
문은 집시들의 전통적인 플라멩코 의식은, P E Poheren가 자신의
저서 <플라멩코 예술>에서 피력한 아래의 이야기를 통해, 또는
인테넷이나 비데오 등의 영상을 통해 그런 듀엔데의 장면들을
간접적으로 느껴보았을 뿐이다.
juerga 라는 집시들의 소규모 파티는전통적인 방법대로 포도주가
넘치는 저녁상을 차려놓고 자유로운 기분으로 춤추며 노래하는
배터적인 놀이 마당이다. 흥겨운 노래소리가 이어지는 동안
포도주 술통을 하나 둘씩 비워나간다. 이제 무리들의 기분이
거나해지고 몸과 목이 포도주에 젖어 부드러워질 무렵, Diego가
기타를 안고 우울한 시규리어 곡을 천천히 켜기 시작한다.
뒤를 이어 Mariena가 디에고의 연주 리듬에 이끌려 탄식조의
노래를 시작하자 무리들은 침묵으로 그의 노래에 귀를 모은다.
그 노래는 처음엔 아름답게 그리고 점점 비극적인 곡조로 번져
나간다. 이윽고 무리들은 깊은 슬픔의 늪에 잠긴다. 그 순간 La
Fernanda는 부끄러움도 잊고 흐느끼기 시작한다.
이어 기타가 다시 소리를, 이번에는 무겁고 느린 솔레아레스 (
고독)의 색조의 소리를 낸다. Juan Talega가 그 연주에 맞추어
노래를 시작하고, 소리에 담긴 낙담은 깊어가고 간다. 그의
노래는 한없이 길게 ,이미 오래 전에 잊혀진 과거의 방식대로
천천히 흐른다.
갑자기 한 처녀가 그 노래를 따라 맨발로 춤춘다. 처음엔 그자리의
누구도 그 처녀의 춤이 시작되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한다. 이윽고
그 지저분한 마룻바닥 한가운에로 나온 그 처녀는, 뭔가에 홀린
집시들의 적갈색 얼굴들에 둘러싸인 채 자신의 춤을 이어 간다.
그녀의 표정은 고통으로 일그러지나, 몰아적 도취에 완전히
빠져 든 몸동작은 두 손과 손목의 움직임과 더불어 눈부시다.
가수가 다시 그녀의 춤을 뒤를 잇고, 기타연주자는 그 가수를
리듬으로 이끈다. 춤꾼은 이제 그 둘을 향해 움직이며
춤과 몸동작의 순수함으로 그 둘에 화답한다. 이윽고
그 자리는 어떤 절정의 열광의 순간에 이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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