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두개의 숲
2.
문에게는 그 편백숲이 아래쪽의 낙엽수 숲보다 더 좋다.
그 숲은 햇빛이 잘 스며들지않아 한낮의 밝음과는 관계없이
침침하여 더욱 고요하고, 발에 닿는 흙의 촉감은 폭신하다.
그래서 그는 이 숲길에 들어서면 한적한 마을의, 비어있는
고택의 텅 빈 청마루에 올라 앉는 느낌이다. 그 숲 속에 혼자
들어서면 그런 느낌이다. 약간은 한가하여 자유롭고, 약간은
그 비어있음이 주는 쓸쓸함이 회상에 잘 어울리는 공간이 된다.
그는 이 숲에 들어서면 한동안 나가지 않는다. 그 곳 숲길 끝에
이르러 하늘이 보이면 되 돌아서 걷고, 반대쪽으로 걷다 길 끝이
밝아지면 다시 발걸음을 되돌리고....
그리하여 회상의 끈은 인문의 머리속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플라멩코의 선구자들인 안달루시아의 집시의
특이한 삶에 오버랩되어 떠오르는 , 해안가 놀이터의 어린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던 자유인 엿장수! 그 엿장수는 동네 소년들의
우상이었다.그가 엿수레를 끌고 나타나면 아이들은 몰입하던
놀이를 중단하고 그 수레 곁으로 우루루 물려 들었다 이내
각자 집으로 달려간다. 엿장수가 원하는 것을 아이들은 잘 안다.
집안을 뒤져 헌책, 녹쓴 옛 동전 , 구리 줄 등을 찾아 달려온다.
그리하여 엿장수 기분에 좌우되는 손길에 따라 ,어떤 아이들은
입에 가득한 엿으로 행복해지고, 다른 어떤 아이들은 자신들의
손에 든 작은 엿조각에 실망의 표정이 역역하다. 문은 어린
소년시절 자신이 자라 어른이 되면 저 엿장수 아저씨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했었던 순간이 있었다. 그런데. 그 엿장수의
인상은 지금의 싯점의 문에게 신기하게도, 안달루시아의 플라멩코인
집시들의 전통적 삶의 독특한 관행을 떠올리게 한다는 것이다.
그 엿장수는 돈버는 일에는 특별한 관심이 없고, 엿가위로 엿판을
두드리며 아이들을 불러모으는 즐거움과 마음대로 돌아다니는
그 자유로움을 좋아한 인물로 회상되기에 그러하다.
남도 하층민 사당패처럼 그들 플라멩코 무리들 역시 배우기질을
타고난 것처럼 보인다. 그들의 타고난 음악성은 차치하고라도
그들은 거리나 카페에서 호기심과 존경의 대상이 되고 싶어한다.
하였다. 그들의 의상에서도 그런 점이 나타난다. 멋을 내는
옷차림에다 진기한 장신구를 몸에 지닌채 장닭처럼 위세를
부린다. 매우 개인주의적 태도로 위엄을 부리지만, 겸손하기도
하다. 남과는 다른 특별한 존재로 주목받고 싶어하는 듯한
그들의 특이한 모습은 , 밉살스럽기보다는 오히려 친밀감과 호감을
느끼게 한다.
그들에게는 성취하려는 어떤 목표의식이나 야망이 없다.
삶에 꼭 필요한 도구들이나 필수요건만으로 만족하고 행복해한다.
그들은 진보나 발전의 개념에 거부감을 느끼고 경쟁을 경멸한다.
현대적 삶의 여러 현상들은 그들의 마음에 거슬린다.예컨대,
자동차로 번잡한 도시의 거리, 신호등, 번쩍거리는 철제건물
등을 실어한다. 불가피하게도 전통적인 플라멩코의 철학은
발전이나 물질주의가 발붙일 근거를 허용하지 않는다.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에서 아랍군과 영국군의 사막 행군 중에
연출되는 집시소년의 좀도둑질 장면은 집시들의 그러한 삶의 일면을
보여준 것이다. 그 꽁지머리 그라나다 청년의 말에 의하면,
집시들은 의식주 해결을 위해 좀도둑질을 태연히 행한다는 데,
그 변명이 아주 특별하다: 그들의 좀도둑질은 부자 이웃이 천국에 갈 수
있도록 돕기 위한 선행이라는 것이다. 부자들이 가진 부는
그들의 천국행을 어렵게하는 장애물( 돈이나 귀한 물건들)이므로
그 짐을 덜어주어야 한다는 게 그들 집시들의 좀도둑질 습관이라는
희한한 변명이었다.
문의 회상은 급기야 그 엿장수의 유랑자적 삶과 그 꽁지머리 청년이
들려준 집시의 삶. 그리고 그 청년 자신의의 견유학파적 사고는
서로 별개의 것이 아니지 않는가 하는 생각에까지 이르게 되엇다.
견유학파(犬儒學派)라고 하면, 고대 그리스 철학의 한 학파로.
이들은 자연과 일치된 자연스러운 삶을 추구하며,소박한 삶을
지향하였다. 권력과 같은 세속적인 것으로부터 자유롭기를 원했고
스스로를 세계 시민으로 여겼다. 키니코스라는 말은 '개와 같은
생활(kynicos bios)'에서 유래한 듯한데, 가진 것 없이 초라하게
살아가는 삶을 의미한다. 사회적인 관습이나 이론적 학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으며, 이들의 사상은 이후 스토아학파
등에 영향을 주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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