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훈 저자의 글 요약을 중심으로:
단토는 1964년 앤디 워홀의 <브릴로 상자> 전시회를 접한 후, 예술의 종말에 이르게 되는 일련의 이론적 효과들을 제시한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가장 충격적인 것은 적어도 시각예술에 관한 한, 시각예술을 성립시켜주는 토대인 시각의 무능력, 혹은 무의미함을 그가 주장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단토는 예술의 종말을 주장하기 위해 미적인 것의 죽음이라고 하는 예기치 않은 큰 대가를 치르고 있다.
과거에는 미술작품은 언제나 미술작품으로 확인가능하다는 암묵적인 신념이 있었다. 사실 일부 예술철학자들마저 이직도 이런 생각을 품고 있다. 그러나 현대미술은 왜 그것이 예술작품이 되는지를 설명해야 하는 새로운 철학적 물음을 제기한다. 왜냐하면 현대미술을 미술로 만들어 주는 데 시각적인 요소가 관여하는 바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눈이 만나는 것은, <브릴로 상자>의 상업미술로서의 가치와 이익에 관해서는 설명해주는 바가 있을지 모르나, 그것의 순수미술로서의 위상은 우리 눈이 만나는 것과 하등의 관계가 없다. 그리고 눈만 갖고서는 예술과 한갓된 실제 사물 사이의 차이가 밝혀지지 않는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이제는 더 이상 실례를 들어가면서 미술의 의미를 가르칠 수는 없게 되었다는 것이며, 외관에 관한 한, 그 어떤 것도 예술작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술작품이 무엇인지 알고자 한다면, 감각경험으로부터 사유로 전환해야 한다. 간단히 말해, 철학으로 향해야 한다. <브릴로 상자>나 개념미술의 경우에서처럼, 어떤 것이 시각미술작품이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는, 혹은 촉각적인 대상일 필요조차 없다는 점에서, 현대미술은 감각경험에서 사유로 이행하였다.
사유로 이행했다는 말은, 외관에 관한 한, 그 어떤 것도 미술작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술 자체가 거의 사유가, 따라서 철학이 되었기 때문이다. 현대미술의 경우, 어떤 것을 예술작품으로 인식하는 데, 나아가 어떤 것을 훌륭한 예술작품으로 인식하는 데 미학이 기여하는 바가 거의 없다는 것은 미학과 예술작품 사이의 긴밀했던 관계가 18세기 중엽 이후 형성된 것으로, 논리적 필연성이라기보다는 역사적 우연성이라는 것을 여지없이 밝혀주고 있다. 미술이 철학적으로 성숙해짐에 따라 시각성은 미가 한때 그렇게 되었던 것처럼 미술의 본질과는 거의 관련없는 것으로 떨어져 나가게 된다.
미술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심지어 바라다볼 수 있는 대상이어야 할 필요도 없게 된 것이다. 그리고 화랑에 작품들이 놓여있다면 그것은 그 어떤 것으로도 보일 수 있다. 18세기에 절정에 도달한 미학적 고찰은 예술의 종말 이후의 미술, 즉 1960년대 후반 이후의 미술에게는 제대로 적용될 수 없다.
예술의 시대 이전과 이후에도 예술이 있었고 있다는 사실은 미술과 미학 사이의 관계가 미술의 본질의 일부를 이루고 있는 게 아니라 단지 역사적 우연의 문제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미술사와 미술이론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어떤 것들(예컨대 <브릴로 상자>나 개념미술)을 예술로 볼 수 없으며, 따라서 이것들을 예술로 보기 위해 우리가 의존해야 하는 것은 분명하게 눈으로 볼 수 있는 어떤 것이라기보다는 그것들의 역사와 이론이다.
이것이 말하는 바는 무엇인가? 예술의 종말 이후의 미술에게도 예술의 지위가 주어질 수 있다면, 그리고 미학이 하나의 이론으로서 미술을 제대로 다룰 수 있는 이론적 자격을 갖추려면, 미학에 대한 대대적인 이론적 수리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미학의 거부라고 하는 이러한 일견 필연적으로 보이기도 하는 이론적 결과가 과연 단토의 예술철학, 혹은 철학적 미술사의 정신에 부합하는 것일까?
단토는 세 가지 워홀 효과를 거두기 위해 미학의 죽음이라고 하는 너무 큰 대가를 치르는 것은 아닐까? 우선, 그가 무수한 사고실험을 통해 소환해내는 식별불가능한 쌍들과 이 식별불가능성에 의거해서 풀어내는 예술정의가 실제로는 이미 그것들이 식별불가능하다는, 즉 지각적으로 동일하다는 지각적 사실에 의존하고 있다.
결국 그는 미적인 것의 중요성을 부정하기 위해서라도 미적인 것에 먼저 기대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지각적으로 식별불가능한 쌍이라고 하는 것이 처음부터 성립될 수 없을 것이고, 미적인 것으로부터 의미와 해석으로의 전환 역시 불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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