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메모

200615 F수우섬

jhkmsn 2020. 6. 15. 07:19

햇빛 가득한 날 그 수우섬 앞 바다를 고깃배를 타고 한번 지나가보세요.

눈부시게 반짝이는 그 고요한 바다와 마주하는 그 섬에 나중 언젠가 혹시라도

묻히고싶은 엉뚱한 생각이 들런지도 모르지요. 그 섬의 앞바다를 지나는 뱃사람들마다

눈에 띄는 그 묘소를 두고는 명당자리라고들 했다고 합니다. 그 곳의

해안 풍경이 드물게 아름다워 그렇답니다. 폴 발레리의 시 '바닷가 무덤'의 한 구절이 떠오를 만한 곳이지요.

그 제목 자체에 눈길이 멈추게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구요.

ㅡ"What grace of light, what pure toil goes to form

The manifold diamond of the elusive foam!

What peace I feel begotten at that source!

When sunlight rests upon a profound sea,

Time's air is sparkling, dream is certainty --

Pure artifice both of an eternal Cause."ㅡ

게다가, 그 묘소 앞에 화산암의 기암괴석 덩어리가 버티고 서 있어 웬만한 높이의

거친 파도에도 그 봉분은 지난 반세기 이상이나 끄떡없었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내 때에 이르러 두번의 큰 해일에 그 봉분의 밑부분 반쪽이 그만

훼손돠고 말입다오.

그 묘소가 있는 섬은 마산 인근의 해안에 위치하고 있는데다 그 묘소의 위치는 드물게 아름다운 바다전망을 가진 해안이다. 그가 지난 해 부터 친주산에 잠들고 계신 할머니, 그 곳에서 다시 흙과 먼지의 자연의 일부가 되신 할아버지, 그리고 부모님과 고별의식을 치른 것을 시작으로 그 다음에는 오는 봄 4월에 이 섬의 6대조 할아버지와 그렇게 고별의 의식을 가지고로 하고부터였다.

묘소가 있는 그 해안은 그가 참 좋아하는 곳이었다. 무엇보다 그 해안은 얼마전 까지만 해도 산업오폐수로 오염된 마산 앞바다와는 달리, 수질이 맑고 어류들이 풍부했었다. 지금은 그 수가 급격히 줄어들었지만 그래도 꼬시락이나 도다리 또는 농어새끼들이 풍부하게서식하고 있어, 친척 몇몇과 함께 이 무인도로 건너 올때마다 그는 속으로 낚시도구를 챙겨왰으면 좋았을 걸 했었다.

봄이 오면서 아직은 찬 바다 바람을 얼굴로 느끼면서 인문은 지역 향토사 연구가인 박영주와 묘소일을 맡아 줄 사람과 함께 배로 수우섬을 다녀왔다. 오는 4월이면 그 곳 6대조부 묘소의 개장 작업을 위해 미리 현장을 보여줄 겸 찾았던 것이다.

현재 무인도로 남아있는 이곳의 묘소를 처리하기로 마음을 굳히기까지는 긴 시간이 소요되었다. 10여년전 태풍 메미의 위력아래 두번째로 반파되었을 때, 그 앞선 경우에 그랬던 것처럼, 다시 전면적으로 보수해놓을 마음이었으나 차일피일 미루어오던중 자신이 벌써 깊어진 노년기에 들어서 있음을 자각하면서부터 이 허물어진 묘소를 자신의 나이 더 들기 전에 정리하지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졌고, 그리고 이로 인하여 홀로 심리적으로 갈등을 겪었다. 묘소의 바다쪽 경관이 수려한데 그냥 잘 보존시키는 게 더 낫지않을 하는 마음의 소리도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 묘소 챙기는 일을 자기 일처럼 여길 후대로 이곳 마산에 거주하는 이가 없는 데다, 1년에 한번인 이 시사일에 내려올만한 외지 4촌들이 시사성묘에 참석하는 것 자체를 부담으로 여기고 있으니, 그냥 둘 수도 없고 그 참...... 그러다 자신마저 어느 머잖은 시점에 또한 한줌의 흙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의식이 강하게 들면서 그렇게 정리하는 쪽으로 마음이 더욱 굳어졌고 급기야는 오는 봄 4월의 좋은 날에 그렇게 실행하기로 마음을 정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며칠 전에는 그 섬에 묻힌 6대조부와의 고별의식으로 장손으로서 낭독할 제문을 전래의 격식에서 벗어난 아래의 서한으로 대치할 마음의 준비까지 해 놓았던 그이기도하다.

'아래'

6대 조부님!

지난 40년을 넘게 초겨울이면 해마다 몇 친척들과 함께 배를 타고 이 수우섬으로 건너 와 6대 조부님 앞에 술잔을 올렸었는데 오늘은 이게 마지막 잔이라 여겨지, 무슨 말을 어떻게 드려야할찌 그저 막막합니다. 이 날을 마지막 잔을 올리는 날로 결정하기 까지는 몇년간의 거듭된 번민과 숙고가 있었습니다. 앞으로는 병조 조부님은, 그리고 이 종손의 어머니 아버지도 지금 머무신 곳은 땅이 아니라 이 종손의 기억속이 될 것입니다. 물론 제가 이 땅에 남아있을 동안, 그래고 희망사항으로, 저 다음 세대의 기억속에 말입니다.

이제 6조부님 또한 앞으로 머물 곳은, 후대들의 발걸음을 덧없이 기다릴 이 땅이 아니라 저희들 손자들의 마음일 것입니다. 이 곳의 바위와 바다바람과 함께 저희들의 기억의 방이 안식처가 될 것입니다. 선대님들을 앞으로 머잖아 발길음이 끊어질 이 무심한 땅에 그대로 남기고 싶지 않아서 입니다.

그런 와중에 이 종손의 손으로 인곡 공원묘원의 병조 조부님을 화장하여 천주산 할머니 묘소 근처의 풀과 나무 잎으로 돌아가게 하였습니다. 가포산의 4대조부님도 그 자리의 풀과 나뭇잎으로 돌아가시게 하였고, 아버지와 어머니도천주산에서 지금은 자연의 일부가 되셨읍니다.

이제 이 종손의 나이가 세월따라 깊어져 지난 날들처럼 선대님들이 계신 곳들을 더 이상 돌볼 수 없는 처지에 이른지라 그렇게 집안의 허물어지고있는 묘소들을 형편이 닿는대로 님들의 이름을 명예롭게 그리고 온존케 해야한다는 일념에 조금씩 정리를 해 오고 있었던 중입니다. 작년에는 완월산의 6대조모님에게는 이미 작별의 인사를 드렸습니다. 조모님의 경우엔 깊은 산속의 그 묘소 자리에서 그대로 고요를 누리며 흙과 풀과 더불어 자연의 일부로 되어가고 계시니 가벼운 마음으로 길 떠나시기를!

오늘은 6대 조부님과 이렇게 마지막 고별의 인사를 올립니다. 지금까지는 술 잔 올리는 성묘로, 때로는 후손으로서 격식을 갖춘 제문을 읽으며 인사를 드렸었는데, 오늘은 이 특별한 날에 그런 관습적인 격식의 말로서는 마지막 고별의 마음을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냥 길 떠나는 선조님에게 손자로서의 고별의 마음을, 그리고 삶의 덧없음에 대한 체감을 개인적인 편지의 글에 담아 와 이렇게 선대님에게 마지막 잔을 올립니다. 앞으로는 이 다 허물어진 묘소가 아니라 이 손자와 ,또 운 좋으면, 다음세대의 손자들의 마음에 들어와 계실 것입니다. 안녕히 가시기를!

2020년 4월 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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