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플라멩코를 처음 만나기전, 인우는 한번은 혼자 한반도의
세해안을 따라 완행 버스로 돌아다닌 적이 있었다. 그의 소년기에 늘 곁에 있었던
집 떠난 바둑이 같은 그 바다가 심안에 아롱거려, 막연히 그 바다가 아주 멀지않는,
이를테면, 마음 먹고 찾아나서면 큰 바다에 들어서기전의 그 바다를
만날 수 있으리는 몽상에 이끌려 길을 나섰던 것이다. 그래서
며칠간을 해안길을 따라 물빛이 보이는 곳마다 머물곤하면서 동해,
남해, 서해안으로 나들이를 했었다. 남해안을 시작으로 세 해안을
완행버스로서 밤에는 여관에 머물며 그렇게 자유롭게 돌아다녔었다.
인우의 회상에 의하면, 동해안쪽의 비포장 해안길을
내닫는 버스의 흔들림이 창밖으로 스치는 짙푸른 물빛에 시각적인
변화를 주엇다. 감청색의 파도는 거칠었고,차체 흔들림이 주는 졸음
중에 순간적으로 감은 눈 앞에 소년기의 그 바다가 나타나 아른거렸다.
눈을 떠보면 눈 앞에 펼쳐지는 물빛은 그에게는 낯설고 거친 바다 빛
이었다.
남해는 섬이 인문의 회상의 중심에 있었다. 욕지 섬의 높은 곳에서
시선을 먼 남쪽 바다로 두고있을 때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노래
'카루소'가 들리는 듯 했다.그리고 거제섬의 한 해안에서는 한 밤
바닷가쪽에서 이태리 가곡 '먼 산타루치아'를 들었던 기억도 남아
있다.' ...물위에 덮힌 하얀 안개속에 나포리는 잠잔다.....'건너쪽
해안의 누군가가 부르는 그 노래는 만조의 밤바다와 감미롭게
어울렸었다. 그 이후로 그 두 가곡 '카루소'와 ' 먼 산타루치아'는
인문에게는 곧 만조의 남해로 상징되었다.
서해라고 하면, 인문에게는 처음으로 밟아 본 만리포의 그 모랫벌
이다. 쓸물때 모랫벌에 선명한 물결 자극이 인상적이었다.물이 빠진
바닥에 물결 형태가 그대로 남겨져 있었다. '그것은 순간이며
영원이었다. 들물로 지워지고 다음 쓸물로 다시 새겨지는 그
물결형태는 모랫벌에서 그 생성과 소멸을 영원히 반복하며 존재할
일종의 물결화석이었던 것이다.' (*필자의 <마술피리> 페이지 45)
서해안의 갯가는 소년기에 사라진 그 바다의 찰진 갯벌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 곳의 바닥은 단단한 모랫벌이었다 이른 아침 승용차 한대가 그
모랫벌 위를 요란한 엔진음으로 질주하며 여러 형태의 바뀌 자국을
남겼다. 차바퀴가 남기고 있는 어지러운 선들의 형태가 불현듯
미국의 추상표현주의화가 잭슨 폴록의 '뜨거운 추상'의 그림을
떠올리게 했었다. 물론 그 연상은 나중의 일이었지만.
서해의 느낌은 인우에게는 다름 무엇보다 더 선명한다. 서해의 해안에
다가 설 무렵 그를 맞이한 것은 그 바다의 광활한 텅 빔이었고 그는
그 순간 아!하고 낮은 탄성으로 그 바다를 마주했었다. 그 말이외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었던 것이다. 그 순간은 해질무렵이었고 바다는
야수파 화가 블라멩코의 풍경화 처럼 연한 검붉음의 진해 색채로
물들었던 때 였다.그 순간 그의 청년기 때의 가슴앓이 흔적이 x-레이
필름에 허옇게 남은 왼쪽 가슴 윗부분에 짦고 예리한 통증이 몇 차레
이어졌었다.
소년기의 그 작은 바다는 바둑이를 닮아 잠시도 제 자리에 가만히 머물러 있지 않았다.
이침에 넓은 갯벌 너머 멀리 떨어져 있다가도 소년이 자기 또래의 마
을 아이들이 모이는 동네 타작마당에 나가 한바탕 뛰놀다 돌아 온 정오쯤에는
그 바다는 어느 틈에 집 마당의 축대 아래에까지 다가와 그에게 얼굴을
내밀기를 기다리고 잇었다. 한 밤 집마당 앞에서 잔물결을 만들며
놀던 것이 새벽에 일어나 보면 그 바다는 언제 그랬나 싶게
청둥 오리떼 따라 갯벌 저 끝쪽에서 가물거렸고, 어떤 때는 소년의 두
맨발위에까지 올라 잠든 듯 꼼짝도 않고 곁에 머물고 있다가 시간이
지난 어느 때쯤 다시 그 바다는 춤추는 갈매기를 따라 제빠르게
소년 곁을 떠나가기도 하였다.
인우에게 글쓰기란 , 비유적으로 그의 소년기의 바다가 사라진 쪽으로
길을 나서는 행위와 같은 것이었다. 그 바다가 그의 글의 시작점이었다.
이따금씩 갯 소리와 갯냄새를 동반하며 눈앞에 아른거리는
그 바다의 부분 부분들, 이를테면 새벽바다의 변화무쌍한 빛깔,
수면위로 바람을 타고 쏟아지는 빗줄기, 밀물과 쓸물의 속삭임,
먼 갯벌 끝자락의 하얀 물거품 띠등을 다시 만날 수 있다면... 하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그것이 향했음직한 남해, 서해, 그리고 동해의
해안쪽으로 버스길을 따라 나들이를 한 후, 그리고 심지어 그 흐름의
방향과는 무관했을 먼 바다쪽으로까지 혼자 여행길을 나섰다 돌아 온
뒤부터의 일이었다. 그 방법 아니고는 소년기의 그의 삶의 일부였던
그 바다를 귀와 눈으로, 더 가까이는, 냄새로 만날 수 없다는 것을
불현듯 깨닫고부터였었다.
글쓰기는 처음엔 그에게 별로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화가가
야외에서 실제로 마주하는 자연 대상으로서의 풍경을 손이 가는 대로
백지위에 데상하듯, 마음에 익은 그 바다를 백지위에 붙잡아 두는
일이기에 그러하였다. 붙들고 싶은 대상의 윤곽이 단어들의 배열을
통해 의미를 띠며 실체화되는 것이었다. 직선이나 곡선 들이 어울려
대상의 형태를 이루는 것을 뜻하는 단어들, 두 선이 만나 이루는
직각이나 둔각을 의미하는 단어군들, 또는 굵은 선, 가는 선, 원이 되는
선들을 뜻하는 단어들의 배합으로 그 대상이 눈 앞에 점점 윤곽을
드러내었던 것이다.
그 작업은 마치 화가가 마주하는 사물을 점, 선, 명암, 색채 등으로
묘사하는 것과 바를 바 없는 작업이었다. 아마 문이 화가의 손을
가지고 있었다면 단어들의 배열이라는 글쓰기로보다 드로잉으로
직접 그 바다를 백지위에 바로 그려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는
선긋기나 형태에 명암넣기 또는 색채 입히기 등의 작업에 익은 손을
갖지못하였던 것이다. 화가라면 손쉬웠을 그 일보다 단어들을 묶어
내거나 배열하는 일이 그에게는 훨씬 더 자연스러웠기에 그렇게
하였던 것이다.
어쨋거나 단어들이 만들어내는 그 윤곽이 백지위에 실체화되는 게
신기하기도 하여 그 일로 소일하는 게 즐거웠었다. 그렇지만 심안에
나타나 아른거리는 그 바다를 단어들로 실제로 붙들어 나타내는게
만만치 않는 일임을 점점 실감하기 시작하였다. 집 마당에서조차
재빠른 몸몰림과 장난기로 인해 엔간해서는 손에 붙들리지않는
바둑이를 닮았기 때문이었다. 끊임없이 움직이며 코 앞에서 조차
숨었다 나타나기도 하는 그런 변화무쌍한 놀이를 반복하는
그 바다였기에 그러하였다. 더우기 눈앞에 나타나나는 그 바다는
더 이상 자연색을 띠고 있지도 않았다. 조개잡이 아낙네들의 발
아래 작은 밀게들이 왕래하는 그 친숙한 갯벌의 자연색, 빗물 머금은
흐린 날의 하늘, 그리고 아침햇살을 잔물결위로 담뿍 받은 아침나즐의
해수면 등 원래의 그 바다의 자연색이 아니라, 언젠가 서해안 나들이
중 해질 무렵에 바라보았던 노을빛 가득한 만리포 해안처럼 검붉은
색으로 변색되어 눈 앞에 아른거리는 것이었다.
그런 점은 아무래도 인우의 내면적 상태가 더 큰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즉, 시간이 흐를수록 그 사라진 바다를 흐릿한 윤곽대신
좀 더 뚜렷한 상태로 만나고싶은 욕구 때문이었다.
화가의 단순한 데상 수준에 머문, 이를 테면 발이 느린 단어들과
문장들로서는 그건 거의 해결할 수 없는 일이었다. 생동하는 실체로
좀 더 가까이, 즉 소리로, 그리고 냄새로 원래 그대로의 옛 바다에
가까운 상태의 대상으로 만나고 싶다는 그의 욕망이 점점 더 크지고
있었던 탓이다. 그렇지만 그건 유아적이고 비현실적 욕망이었다.
그런 난감함 속에 문은 한동안은 글작업할 때 인상파 화가 모네의
회화수법을 참고하였다. 자연을 감싼 미묘한 대기의 뉘앙스에
따라 변화하는 풍경의 순간적 양상을 묘사한 모네가 생각났던
것이다. 자연스럽게 그의 그림 <인상:해돋이> 떠 올렸다. 그 작품은
제목 그대로 모네가 르아브르의 고향집에서 바라본 해안을
자신이 느낀 그대로 즉흥적인 인상을 그려낸 작품이다. 해가 막
떠오르는 여명의 풍경을 담은 그림이다. 어두운 색을 특별히 사용하지
않고도 어둠을 표현한 것이 특징입니다. 태양빛에 따른 색감의 변화가
그 대상을 자연적 실체의 차원을 넘어 선 시각적 환상이 되게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인우는, 모네가 그랬던 것처럼, 머리속에 아련히 떠올라 순간
순간 변화하는 물체의 이미지를, 지리적인 대상에 대한 윤곽을
자연그대로 묘사하는 대신에 기옥속에 흔들리는 바다 이미지을
기대감으로 또는 시각적 상상으로 붙들어 나갔다. 화가가 물감을
듬뿍 무친 브러시나 나이프로 캔버스에 재빠르게 그려내듯, 문은
자신의 단어와 문장들을 백지 혹은 컴푸터의 화면위에 채워나가는
작업을 통해 자신이 바라는 방법으로 그 대상을 그려나갔다. 그는
그렇게 함으로써 그 실체에 후각적으로 좀 더 가까이 다가 갈 수있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방법에는 예상치 못한 새로운 문제점이 있었다. 좀 더
가까이, 이를테면 촉각적으로 다가서고 싶은 그 바다를 포착하고
싶어하면 할수록 그 대상은 더 멀리서만 마주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이
그것이었다. 모네의 인상주의적인 접근으로는 기대가 충족될 수
없었던 것이다. 그 화가의 즙근방법으로는 마음속의 그 대상이
코 앞에서는 그 윤곽조차 숨겨져 잡히지않고, 멀리서 바라보아야만
비로소 제대로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었다. 인문은 그 바다를,
바둑이 머리를 쓰다듬듯 촉각적으로 느끼고 싶어한 그 간절한 바램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사실이 실망스러웠다.
이어 다음에는, 야수파적인 마티스의 손처럼, 그 대상의 형태를
단순화시키고 색채를 원래의 것에서 벗어나 그 형태에 어울리게
칠해보았다. 일단 마티스의 원무를 떠올렸다.원근법이 사라진 평면화된
화면에 펼쳐진 《원무》는 율동감이 두드러지는 작품이다. 춤추는
다섯 인물이 하나로 어우러져 전체적으로 통일감을 잃지 않으며,
인물들의 위치를 악보의 음표처럼 조금씩 달리 하여 변화를 준
그림으로 춤과 음악이라는 본능적이고 순수한 행위의 아름다움을
준다.
보편적으로, 야수파의 특징으로는 인상주의의 빛에 의한 명암법을
거부하고 원색의 대담한 사용, 단순화한 형태, 자유로운 붓놀림을
통한 주관적 감정을 표현한 점이 그것이다. 마티스의 작품《원무》는
단순히 3가지 원색으로만 되어있다. 하늘을 칠한 파란색, 인물을
칠한 분홍색, 그리고 동산을 칠한 초록색이다. 그렇게 형태도 색깔도
주관적으로 단순화시켰다.
인우는 마티스의 그림들 생각하며 자신의 글을 이어갔었다. 그 바다의
형태도, 색깔도 심상의 것과는 다르지만 그의 눈에는 그것도
괜찮구나 싶었다. 그렇게 그려진 대상이 앞 가까이에서는 그 이미지가
제대로 포착되지않고 멀리서 보아야만 비로소 흐릿한 윤곽으로
나타나던 그 바다가 이번에는 눈 앞에서도 , 또는 뒤로 멀찌감치 떨어져
보아도 선명히 눈에 포착되는 것이었다 . 다만 글로 이루어진 그림의
형태는 , 그리고 그 색깔이 심상의 것과는 객관적으로 현저히 다르다는
점이 문제였다. 자연 그대로와는 다른 색체로, 그리고 본질의 요소로만
남아 단순화된 형태였다. 요컨대, 그 바다는 자연 상태의 그 대상과는
다른 별개의 존재로 나타나는 것이었다.
그는 심상을 눈 앞에 현실화하려면 꼭닮게 그려야한다는 집착을
버려야한다는 마음으로 단어와 단어들을 이어나가게 되었다.
사실주의적 묘사를 넘어 모네, 마티스를 떠올리며 이어가던 글은
그림으로 말할 것 같으면 점점 추상의 기법에 가까운 글이 되어감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하여 결국엔 그 바다는 단어와 문장으로
새롭게 탄생된 회상, 열망의 집중된 표현인 글일 뿐이었던 것이다.
그림이 그림일뿐이듯, 글 역시 글 일뿐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글속의 주제적 대상은 글로 옮겨지기전의
어떤 심상의 것과는 별개의 인위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그림이란
게 실체의 자연 대상과는 별개의 인위적 창조물이듯이....
싯적 산문이란, 말 그대로, 시적 운율의 산문이다. 보들레르의
'파리의 우울'이나 사정주의 시 '신부'의 글 형식을 닮고 싶어,
인무은 자신의 글이 그렇게 불리기를 좋아한다. 기본적으로
어떤 주제적 의미가 담긴 글이어야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글의
형식 자체에도 독자적인 미적 울림이 있어야한다는 것이었다.
글 속에 살아 흐르는 싯적 음악성, 빛과 그림자로 녹아들며
해체된 자연의 형태, 색선의 출렁임 또는 굳어진 색면의 용암!
돌이겨 보면, 사라진 그 바다가 인우의 심안에 아른거리며 자신의 글쓰기를 유도하기까지
많은 시간, 가지 가지 많은 세상일들, 많은 사람의 얼굴, 사색의 발걸음, 페이소스 등이 그 둘 사이에 축적되어있었다. 그리고 그 둘 사이엔 어떤 몽상의 시내꺼지 흐르고 있었다. 때로는 넘쳐 범람하고, 때로는 메말라 바닥이 드러나는 , 때로는 끊어지기도 하며 흐르는 몽상의 개울이!
그의 글쓰기는 그러했엇다. 그리고 많은 사람의 글, 여행길 속의 도시, 낯선 얼굴, 노래와 춤이 그의 글의 요소를 이루었다. 아래의 라이나 마리아 릴케의 글을 여행길 나설때마다, 글의 길에 나설 때마다 마음의 베낭에 넣고 다녔던 것같다.
'한줄의 시를 쓰기 위해서는
많은 도시,
많은 책,
많은 사람을 만나야 한다.
그리고 밤하늘의 무수한 별들과 함께
덧없이 사라지는 여로의 밤을 회상할 수 있어야 한다.'
인우는 처음 현실적으로 발이 닿을 수 있는 가까운 해안을 끼고 돌아다녔다.
마치 소년기의 사라진 그 바다를 찾아 헤매였던 것처럼. 그렇게 막연하게
나섰던 그 나들이를 시작점으로 그 후 점점 더 먼 바다쪽으로 나아가
여기 저기를 기웃거렸다. 태평양을 넘어 미국의 동부쪽으로, 거기서 또
대서양을 넘어 런던, 파리로 날라갔었고 심지어 바다와는 거리가 먼 독일의
동.서 베르린으로까지 넘어가 돌아다녔다.
장그레니가, 자신에게 '배고픔을 깨닫게 해준 곳'이라 회상한 그 런던이
인문에게는 그를 매혹시켜 근 2년여 기간동안 번역에 몰두케 한
'카페소사어티cafe society)'를 만난 땅으로 기억된다.누군가의 사색의
한토막-'보헤미언의 마음을 채우고있는 것은 단지 자신이 불행하다는
의식뿐 만 아니라 남들의 세속적 행복이라는 것 또한 비속하고 천박하다는
느낌이다'- 는 그 책 번역기간에 인문이 좋아하게 되었던 말이다. 헤밍웨이의
아래의 글은 그 책 속에 인용된 표현이다.
당신이 쓰는 일에 몰입하면 할수록 더 고독해진다.
시간은 흐르고, 그리운 옛 친구들은 죽거나 당신 곁을 떠난다.
그러나 글을 쓰면서 지난 시절 커페에 함께 있었던 , 지금은
사라진 그리운 얼굴들을 마주한다..... 당신은 글을 써야하고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은 너무 짧다.......
인우가 그렇게 먼 바다쪽으로 까지 나와 배회하게 되던 중
급기야는 처음으로 플라멩코의 소리와 춤을 만나게 되었던 사연은
앞에서 이미 말한 처럼, 처음 그 소리와 춤을 만나게 된 곳은 미국의
서부 지역의 한 노천 플라멩코 공연장이었고, 그 다음엔
그가 찾아 간 플라멩코의 탄생지 스페인의 안달루시아였다.
그는 오로지 그 춤과 소리에 빠져들고싶어셔 였다.
그는 지난 날을 이렇게 회상하였다:
소년기때 나의 놀이친구였던 '마산 앞 바다'가 쓸물때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나이 들면서 그 바다가 보고 싶어 그를 찾아 나서기로 마음 먹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바다가 아직은 수평선 넘어 먼 바다로 나가지는 않았으리라고 생각되더군요.
그렇게 단순한 마음으로 남해를 시작으로, 동해와 서해의 해안길을 따라 돌아다녔습니다. 그 바다를 우리의 해안 가까이에서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아무래도 그는 멀리서 잠시 들린 고래떼들을 뒤따라 호기심아래 수평선 너머 먼 바다로 향한 것이 틀림없구나 하는 판단을 하게되었습니다. 내가 유럽 지역 등 여러 도시들을 기웃거린 것은 그래서 였습니다. 먼 곳의 도시들을 찾아 다니며 그 바다가 있음직한 바다를 수소문 하기위해서였습니다. 그러다 만나게 된 것이 결국엔 플라멩코 였습니다......'
'연작산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포플 후기 초안 (0) | 2019.10.25 |
---|---|
포플 2 거리 1a (0) | 2019.10.23 |
포플 2 잊혀 순 1a (0) | 2019.10.21 |
포플 2부 (0) | 2019.10.19 |
포플1 침묵 2a (0) | 2019.10.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