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산문

포플 2 잊혀 순 1a

jhkmsn 2019. 10. 21. 07:06

잊혀지지않는 순간들


1.

 하루는 플라멩코 소리꾼 마리나 에레디아(​Marina Heredia)의 노래가  불현듯 인우의 심안에 그라나다의 알바이신 언덕을 떠오르게한다. 그가 7여년 전 어느 날 해질 무렵그 알바이신 언덕으로 향하던 중 건너 산쪽 아래에서 들려오는 플라멩코 소리꾼의  노래, 그 의미는 알 수 없으나 이어졋다 끊어졋다 그리고 높았다 낮아졌다 하며 흐느끼듯 들리던 그 쉰 목소리를 연상케 한다:

저 노래소리? 무슨 소리가 저리도 애절할까? 비탄의 저 소리, 얼핏 서편제의 진양조 가락이나 ,구음 시나위를 연상케 해.

그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그 쪽 집시의 동굴 마을로 발길을 옮겼던 적이 있었다.

​마리나 에레디아의 소리를 다시 한번 더 듣고싶어,

이번에는 그녀의 솔레아

형식의 소리를 꼭 듣고싶어.

그는 유튜브의 동영상 화면을 한번 더 되돌린다. 마리아 에레디아의 소리가 펼쳐지는 동영상이 물결치며 흐른다.

흑백 화면의 바탕에 움직이는  소리꾼 에레디아의 얼굴, 햐얀 드레스, 긴 팔 , 온 몸의 힘을 목에 집중시켜 소리를 토해낼 때의 얼굴 표정, 그리고 그녀의 소리를 이끄는 기타리스트의 손가락과 기타의 둥근 몸통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기타반주자의 얼굴은 어둠에 묻혀 거의 보이지않는다. 탄식을 유도하는 선율의 하얀 명주실을 토해내는 네댓개의 기타선이 빛 가운데로 나타났다 다시 어둠속으로 뭍히곤 할 뿐이다. 노래 소리와 기타반주는 그렇게 빛과 그림자의 화면에서 번져 나온다. 움직이는 동선은 어둠에 눌려 희미하게 드러나 보인다.

대부분의 전통적인 플라멩코 소리꾼들에게서는 거의 느낄수 없는, 마리나 엘레디아 목소리의 달콤한 음색에 문은 자신도 모르게 홀린다.그녀의 소리는 거치나 달콤하다. 그 소리에 슈베르트 곡의 고운 멜로디 같은 게 담겨 있을리 없음에도 그 거친 소리는 매혹적이다. 고전음악에 귀가 익숙한 인우의 귀에  에레디아의 목소리에는 플라멩코의 음색과 리듬(콤파스)외에 잘 조절된 멜로디가 감지되는 듯하였던 것이다.

​그녀의 목소리의 경우는 플라멩코 특유의 단순한 외침의 흐름과는 좀 다르다. 그 소리는 인문의 귀에는 막연하나마 ​흑인 재즈 가수 마리안 엔더슨의 깊은 울림의 성가나 또는 판소리의 서편제소리에 더 가깝게 여겨진다. 그 소리의 애절함이 세련된 기교로 표현되는 판소리의,이른바, 서편제 특유의 음색을 떠올리게 한다.

​무엇보다 마리나 에레디아의 소리엔 그 무엇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그 마약성의 음색과 리듬이.... 미루어 짐작컨대, 저 소리라면, 삶의 뼈저림이나 절절한 외로움과 절망을 맛본 자의 귀와 마음을 홀리기에 충분하다. 저 소리라면 ,어느 누구와도 함게 나눌 수 없는 개인적인 슬픔을, 때로는 불행한 이웃에 대한 한없는 연민으로 잠 못드는 모든 이의 마음속으로 파고들 것이다.

마리나 에레디아의 노래 소리에 빠져들던 중 인우의 심안에 떠오른 불행한 두 어린 얼굴들! 아득히 지난 날 부모 둘다 차례 차례 차례 세상을 떠나 한순간에 고아가된 두 어린 아이들의 얼굴들이이었다. 긴 세월이 흘러 초로의 나이에 든 그들이 어느 날 하루, 인우의 집을 방문하였던 게 얼마전의 일이었다.그 둘이 집으로 들어설 때, 인우의 상상속의 모습과는 달리 의외의 밝고 안정된 표정이었기에 문은 속으로 더없이 놀랐던 적이 있었던 두 사람이었다.

​성년이 된 그 두 사람의 얼굴들이

어찌 그렇게 맑을 수가 있을까?

삶에 찌든 흔적이 역역한 우리네 얼굴보다

오히려 그 표정들이 더 맑고 선하지않았던가!

소년기의 그 어둡고 두려웠을 삶을

저 둘은 어떻게 저렇게 잘 견디어 냈을까

아버지는 바다속으로 휩쓸려 흔적없이 사라져버렸고,

어머니는 젖먹이 동생을 품에 안은채 영양실조로

세상 떠나고...........그둘의 어머니는 인우의 막내 이모였다.

남자 소리꾼 카마론은  에레디아의 소리와는 좀 달라.

그의 소리는 아우성에 더 가까워. 원시적이기조차 해. 

그의 소리에는 하모니나 멜로디적 음색이

전혀 느겨지지않았으니까.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카마론을

그의 반주자로 무대에서 함께 연주했던  기타리스트 파코 데 루시아는 무대위에서조차

담배를 피우며 아우성을 토해내던 생전의 카마론을 그리워한다고 하였지

예전처럼 어디 낯선 곳으로 여행길 나서는 일이 없는 인우는 요즈음  집 서재에서 스페인 집시의 음악을 만나고 싶어 인테넷을 접속할 때 , 춤보다 오히려 칸테의 거친 소리를 선곡해 듣는다. 이제 그의 마음과 귀는 시각적인 춤 동작보다 그 흐느끼과 애통의 소리에 더 끌리기 탓이다.​ ​플라멩코라면, 세상 사람들은 대개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일련의 색다른 이미지들을 연상한다:소용돌이치는 치마자락, 카스트네트를 치는 거무스름한 얼굴의 여인, 번개같이 빠른 손놀림의 기타연주자, 또는 거친 목소리의 칸테를 부르는 검은 드레스를 입은 여인의 매혹적인 얼굴 등등, 

그렇지만 이런 이미지들은 오늘 날의 관객들을 의식한 장식적 이미지로, 그것은 원래의 본질적 요소와는 거리가 있다. 플라멩코는 원래 스페인의 남부 해안지역인 안달루시아 집시들의 동굴 거주지역, 쇠를 달구는 대장간에서, 산기슭의 허름한 집, 집시들의 선술집 등에서 생겨난 문화적으로 유례없는 극적인 표현 형태를 띠고있다. 도취적 노래와 춤으로 이루어진 이 플라멩코는 대부분의 거주민처럼 글을 배우지않은 어떤 천재에 의해 살아있는 불꽃으로 지켜지며 입에서 입을 통해 새대를 거치며 이어져 온 것이다.

 플라멩코는 원래 칸테(노래)가 그 기본이이었다.리듬을 담아내는 손벽, 노래를 토해내는 거친 목소리, 고통, 질투,욕망의 감정들이 가족이나 친구들 만이 모인 닫힌 공간에서 불꽃을 내며 밤새 타오른다.밀교적 집단의 어떤 의식과 이른바 그들의 후에르가(juerga) 파티가 벌어진 것이다. 그 배타적 후에르가 의식에는  어떤 기획이나 프로그램, 혹은 현대적 개념으로서의 관객도 없다. 그것은  단지 열기 가득한 종교집단의 집회같은 분위기를 ​떠올릴 수 있다.


그의 독백은 다시 이어진다:

엘레나! 오래동안 소식없어 궁금합니다. 내가 포틀란드에서 처음 본 엘레나의 그 이국적인 춤에 홀렸던 때가 벌써 십 사오년 전이군요. 춤이 플라멩코의 전부이었고, 칸테는 그저

있으나마나한 구성요소로 여겼습니다.

​그때 그 엘레나 팀의 플라멩코 무대에서 소리꾼 Rubina가 부르는 노래의 멜로디가 듣기가 여간 거북스럽지않았다고 나중 엘레나에게 귀속말로 중얼거렸던 일이 지금 부끄러움으로 회상됩니다.

그리고 엘레나의 동료 출연자들이 한국 청년들의 노래, '아침이슬'에 강한

호기심으로 반기며 Aire 플라멩코의 밤 공연 프로그램에 올리기로 했다며 내게 알려주었을 때 내 가슴이 얼마나 설레였던지!

그 노래를 혹시 그대의 플라멩코 춤으로 표현될 수는 없을까 싶어 그대에게 소개했을때 , 엘레나는 내가 영문으로 메모해 준 그 노랫말을 보며 한번 불러볼 수 없느냐고 즉석에게 요청했었던적이 있었습니다.

​그 '아침이슬'이 무대에서 당신의 춤으로가 아니라 Rubina의 소리로 불러질 때 속으로 좀은 실망했습니다. 나 뿐만 아니라 그날 관객으로 객석에 앉아있었던 한국 교민들 역시 그러했을 것입니다. 플라멩코 소리꾼의 거친 목소리가 토해내는 그 노래는 우리들의 귀에 익은 아름다운 아침이슬의 노래가 아니었기에 그랬습니다. 무미건조한 다른 노래 인 것처럼 들렷으니까요.

그때만 해도 나 역시 엘레나의 춤이야 말로 플라멩코의 전부인것처럼 여겼었기에 아침이슬이 엘레나의 춤으로서가 아니라 소리꾼의 그 거친 칸테로 불려지는데 사실 실망스러웠었지요.내장을 파고드는 플라멩코 칸테의 참맛을 깨닫지 못하던

시절이었으니까요. 벌써 십 수년 전의 일입니다.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이 있기를! 아디오스,

플라멩코와 투우를 사랑한 스페인의 시인 가르시아 로르카의 기타 사랑은 특별하였다. 그 시인은 기타를 두고 '플라멩코의 영혼'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인우는 지난 날 스페인 여행길에 서점에서 위의 시가 담긴 작은 영문 소책자를 우연히 발견한 그날 그는 그 소책자와 데킬라 한 병을 사들고 숙소로 돌아와 플라멩코의 기타곡과 독주에 흠뻑 취했었다. 그 시인의 아래의 두 시가 불러 일으킨 기타의 신비한 힘에 호기심이 동한 인우는 70세의 나이에 이르러 처음으로 기타를 손으로 만지며 혼자 연주 연습을 해보기 조차 하였다.

'기타'

기타의 울음을 멈추게 할 수는

없으리라.

먼 곳을 그리워하며

기타는 눈물을 흘린다.

무더운 남국의 모래는

힌 동백을 찾고,

과녁을 잃은 채 허공을 떠도는 화살,

아림을 잃어버린 오후,

그리고 나뭇가지 위에서

제일 먼저 죽은 새를 슬퍼하며

기타는 눈물을 흘린다..

아, 기타여!

다섯개의 칼에 의해

성처입은 심장이여!

<*가르시아 로르카의 시 poema de cante jondo(1931)에서>

'가타'

기타의 현 여섯줄

꿈이 흐느끼는 여섯줄의 기타.

길잃은 영혼의 흐느낌이

그 둥근 입을 통해 흘러나오고

기타는 타란툴라 거미처럼

큰 별 하나

거미줄로 엮어낸다

그 검은 나무통 속에

한숨을 가두어둘.

<The six strings

The guitar makes dreams weep.

The sobbing of lost souls

escapes through its round mouth.

And like the taranttula

it spins a large star to trap the sighs

floating in its black wooden water t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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