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그녀의 침묵이 계속 이어지는 동안 인우는 그녀를 좀 더 객관적으로, 그러나, 가능한 한, 그녀의 입장에 서서 되돌아보기시작하였다.그의 판단으로는, 심리학적으로 당시의 그녀는 항상성을 잃고 정신적 혼란에 빠져들었다는 것이었다. 그녀가 출연취소를 통보는 메일에 나타난 여러가지 변명성 이유들이 다분히 그녀의 정신적 균형감이 무너진 상태임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 때는 그녀는 남편과도 헤어지게 된 상태에다 그렇게나 간절히 바라던 양녀의 입양이 무산된 상태에 있을 때, 인우가 그녀에게 제시한 출연 조건은 그녀의 자존감은 말할 것도 없고 생활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않는 수준이어서 그녀의 정서적 항상성을 무너지게 하는 격발 작용이 되었을 것이다.
한 개인의 욕구와 가치들을 무력화시키는 외부적 자극이 너무 강하여 이를 견디지 못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면 그는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비정상적인 신체적 변화를 겪게된다는 것이 그것이다.
사람들에 따라 자신의 욕구나 가치가 기대치에 어울릴 정도의 결과로 지켜지면 정서적 균형을 유지하게되지만 그 가치나 욕구가 박탈되거나 무산되면 격심한 정서적 스트레스를 겪게되는 것이다. 외부적 요인은 사람에 따라 이를 견딜 수 있는 정도가 각기 다를 것이며 그 자극에 견디지 못할 정도로 스테레스를 받는 경우는 항상상이 이을 테면 심리적 균형이 무너진다는 의미인 것이다.
아, 내가 너무 감정적이었어.
공연 준비에 올인하느라 그만 무심했다는 건 일종의 핑계야.
엘레나가 약속을 저버려 나를 궁지로 내몰았어. 뭐 이런 감정이 앞섰던 거야.
메일을 보내지도 않고, 게다가 나의 묵묵부답은 결과적으로 그녀의 메일을 받지않겠다는 신호가 되엇을 터이니!
이래 저래 ,그녀가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균형이 무너져 병원신세까지지는 상황이 되었던 것을, 내가 그녀의 입장에서 한번 생각했어야 했는데.지금 그 공연을 잘 끝내고 내년의 공연을 생각하며 그 때에는 그녀를 한번 무대에 올려보자, 뭐 이런 계산으로 그녀에게 메일 보낸 것이 아닌가! 아무리 그렇더라도 둘의 특별한 관계를 생각하면 그건 옳바른 태도가 아니지.
의리 없는 짓이지.
그래서 그는 그녀에게 즉시 간곡한 마음으로 다시 이메일을 보냈다.
2014년 3월 0일
엘레나!
엘레나의 오랜 침묵이 내 탓이라 여겨집니다. 오늘은 엘레나에게 용서를 구해고싶어 메일을 씁니다. 지나고 보니, 엘레나를 추모공연의 중심인물로 초청하면서 엘레나의 입장을 고려하지않고 그저 공연비 줄이는데에만 급급한 채 너무 박한 조건을 제시했던 게 내내 마음에 걸렸습니다. 내가 내 입장만 생각한 채 불쑥 제시한 그 조건에 엘레나는 속으로 당황했으라는 점을 지금에서야 짐작하게 됩니다.
그런 열악한 조건의 출연제안을 받은 이라면 비록 이국적 체험과 예술성 만을 추구하는 자유인이라도 기분이 상했을 것입니다. 하물며 댄서로서의 일과에 매일 매일 바쁜 엘레나로서는 나의 제안을 처음 어떤 심정이었을지를 지금 짐작해봅니다. 나의 속좁음에 참으로 미안한 마음입니다. 세상일에 서툴러 그저 내 입장만 생각했었던 것이지요.
그 땐 추모공연의 의미를 살리려고 임장료를 무료로 할 계획이었으므로 그저 공연비 절감에만 신경을 썼던 것입니다.나를 통해 알게된 한국의 작은 도시 마산에 대한 엘레나의 사랑과 동경을 내가 너무 잘 알고 있었기에 일레나의 입장은 전혀 고려치 않았던게 결과적으로 엘레나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히게되엇구나 싶어 시간이 흐를수록 내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이제는 그 추모공연에서도 손을 놓았습니다. 불의에 저항하다 숨진 젊은 용사를 낯선 민족의 플라멩코 춤으로 추모하다니 , 그게 어디 될 법인인가 라는 세간의 비판적 시선에 더 이상 당당하게 그리고 설득력을 가지고 맞설 수없어 그 일에서 손을 놓기로 했던 것입니다.지금은 세상 일과 거리를 둔채 그저 자유인으로 오직 글쓰는 일에만 몰두하고있습니다.
아래에 헨델의 노래중 이 아리아의 가사를 보냅니다.
누가 썼는지는 모르겟으나 참 절절한 시입니다.
엘레나의 지난 날의 고통을 멀리서 느끼며
인우
"나를 울게 하소서
내 잔혹한 운명에
그리고 한탄으로
자유를 그리네
슬픔아 부수어라
내 고통의
이 속박을
오직 비탄을 통해서"
Lascia ch'io pianga
mia cruda sorte,
e che sospiri
la libertà.
Il duolo infranga
queste ritorte
de' miei martiri
sol per pietà.
엘레나를 생각하며
마산에서
인우
2014년 4월 0일
디어 엘레나!
만약 엘레나의 지속적인 침묵이 새로운 삶의 길로 향하는 과정을 의미한다면, 그건 참 좋은 일일 것으로 여겨집니다. 혹시라도 침묵이 어떤 단호한 결심의 표현이라면 그건 어저면 정신 건강에 좋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별다른 뜻 없이 1년전 제가 제3차 추모행사의 하나로 대학에서
<판소리와 플라멩코의 표현주의 요소>를 주제로 강연을 다음과 같이 요약해 보냅니다.
회신 하지않으시더라고 그건 좋은 의미일 것이라고 여기겠습니다:
"한국 남도의 판소리와 스페인 집시의 플라멩코는 문화권에 속하는 공연예술들이지만,
그 생성에 있어서나 표현주의적 요소에 있어서 서로 닮은 점이 많다.
둘 다 기록이 아닌 구두 전승예술이었다.판소리가 하층민 광대의 입으로 전해진 소리이듯,
플라멩코 역시 버림받은 집시의 소리와 모ㅁ짓이었다.
판소리가 남도 해안 지역의 떠돌이 소리꾼의 노래였듯이 , 플라멩코 역시 안달루시아 해안 지역의 박해받는 집시종족을 기반으로 하여 계승 발전된 표현예술이었다.
두 예술 다 기교나 미학적 경지를 추구한 것이기 보다 거칠고 원형적인 영혼의 몸짓을 담고있는
표현주의 예술이다. 아름다움의 가면 뒤에 내면을 숨기기를 거부한다. 판소리의 소리가 아름다운 노래가 아니라 거친 목소리의 깊은 노래이듯, 플라멩코의 소리와 몸짓 역시 거칠고 깊은 영혼의 표현이다."
뭔가 이메일에 담아 보낼 것이 없나 궁리하다 이거라도 한번 보내봐야겠다 싶어
오늘 또 별 뜻 없이 이렇게 이메일을 보냅니다.
잘 지내시기를!
마산에서
인우
2015, Dec 20
디어 엘레나!
올해가 끝나가고있습니다.
메리 X-마스!!
나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인우
2015, 12월 21일
Dear 인우,
오!
오늘은 용기를 내어 이렇게 회신 보냅니다.
인우의 메일에 더없이 고마움을 느껴왔습니다.
내게는 한없이 소중한 마음의 양식입니다.
어떻게 내가 아무일 없었던 것처럼 글을 보낼 수 있었겠어요?
세월 참 빠르게 그리고 덧없이 흘렀군요.
이제 내게는 아름다운 것, 활기 넘치는 생명력이 있는 것이라곤 더 이상 남아있지않다는 느낌입니다.
여기 포틀란드에는 지금 겨울 우기가 지독하군요.
우울한 회색 빛 하늘과 쉼없이 이어지는 이 가는 비(드리즐)!
맥시코에라도 훌쩍 떠날 수 있다면!
아무쪼록,
좋은 새해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파리여행을 떠난 친구의 집에 머물며,
Love
엘레나
2015년에는 년말에 이렇게나마 간신히 서로 안부메일을 나누었고 다음 해 8월에 엘레나로부터 소식이 있었다. 그리하여 두 사람 사이에 이따금식 이메일 교류가 이어졌다. ㄱ렇지만 그것들은 평범한 안부의 것들이었다. 쓸쓸한 느낌의 회상의 글들이기도 하였다.
2016, 8월 11일,
Dear 인우,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얼마전 내가 근무하는 회사의 사장에게
인우가 쓴 책 <플라멩코 이야기>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녀는 소희라는 이름을 가진 한국인입니다.
함께 일하기에 참 좋은 분입니다.
지난 번 인우가 이 곳 포틀란드에서 머물렀던 nw 포틀란드 호스텔이
지금은 개조되어 더 근사해졌습니다. 더 확장된 것 같아요.
건강히 지내시기를!
사랑을 담아 보냅니다.
엘레나
2016, 8월 12일,
엘레나!
Bob Dylan의 기타 곡 blowing in the wind의 가사를 보냅니다.
love
인우
2016, 12월 20일,
엘레나!
Merrry X-mas!!
Thinking of you,
인우
2017, 1월 3일,
Dear 인우,
새해 안녕! 행복과 건강을 기원합니다.
Love always,
엘레나
7월 0일, 2019
엘레나에게
가르시아 로르카가 플라멩코 시규리어의 소리를 바흐곡의 흐름으로 비유한 문장을
이 이메일로 보냅니다.
"굽이치는 시규리어의 깊은 울림은 그 시작이 꼭 바흐의 첼로 곡의 흐름과 같다.
의미하는 바는 서로 다르지만,
물결치며 흐르는 바흐의 그 깊은 멜로디는
끝없이 이어지며 둥글게 원을 그린다.
이에 비해 플라멩코의 시규리어 노래의 그 외침의 경우,
그 멜로디는 그네들의 몸과 마음에서 빠져나와
사람의 보편적 희망과 열정을 온통 담아 실은 채
우리의 영혼이 도달할 수 없는
아득히 먼 수평선의 끝 점으로 사라진다,"
그 시인의 예측 불가능의 아름다운 상상력이 담긴 싯적 표현입니다.
오늘은 이 한토막의 글귀가 가슴에 가득 차 다른 무엇을 이에 더 보탤 수 가 없습니다.
.다시 또 연락하겠습니다.
아브라죠스!
인우
.
7월 0일,2019
인우에게!
그 문장은, 소리를 내어 읽어야할 글이내요.
그 문장 자체는 우리들의 상식적인 이해를 거부하고 잇어요.
어쩐지 신비롬기도 하고 허무감이 드네요.
요즘은 인우가 잘 아는 이 곳 파우엘 서점의 카페에서 이따금 책을 읽기도 하고
피이오니어 스퀘어 노천광장의 돌 계단에 앉아 점심시간에
여러 젊은 여행객들 틈에 끼어 앉아
부리토를 먹기도합니다.
오늘은 이곳 이 서점에 앉아 cante lyrics를 모아 이에 대한 해석을 덧붙인 일종의 시집을 읽고있습니다. 그 노래의 가사들은 짧고 싯적이었습니다. 플라멩코를 문학적 시각에서 새롭게 느끼게 되는 기회가 되는 것 같습니다. 내가 무대에서 춤을 출 때에는 지금과는 달리 오로지 춤의 형식, 기교 등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졌었는데.
집시의 음악의 이런 싯귀들을 통해 나의 춤을 사색의 냉철한 자세로 되돌아보기도합니다. 플라멩코 춤은 움직임이 적은 몸짓으로도 많은 표현력이 담길 수 있는 게 플라멩코의 깊은 춤임을 뒤늦게나나 깨닫습니다. 시규리어는 기교를 뛰어넘는 춤이어야 하거든요. 그러다보니 그러나다의 유명한 댄서 에바 예르바 부에나의 시규러 춤이 연상되기도 하는군요. 시집에서 시선을 붙드는 한 구절을 인우에게 보냅니다:
달에는 달무리가 져있고,
사랑하는 사람은 죽었다
There's a halo round the moon
My love has died .
이 두줄의 단어속에 담긴 비통함!.
신비스런 감성적 표현입니다
이 노래의 가사를 두고 로르카는 이렇게 감상하고 있네요:
단순하고 진정한 신비,
,깨끗하고 완전한,
그리고 그늘진 숲 또는 방향타 없는 배들도 없는,
살아 있는, 영원한 죽음의 신비!
Simple, genuine mystery, clean and sound,
without gloomy forests or rudderless ships-
the living, eternal mysyery of death!
7월 0일,2019
다어 엘레나!
오늘은 엘레나에게 고백하고싶은 게 하나 있습니다. 내 혼자만 간직해왔던 이 내밀한 것을 털어내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싯점을, 놓치면 그런 기회가 온다 손치더라도, 틀림없이 헛된 일이 되고 말 것입니다.이 시점에 그 꿈이 사라지지않게 할 마지막 기회이기에 그렇습니다.
지금 털어놓을 이 고백은 나의 삶과 꿈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엘레나가 춤을 포기하면 그것은 엘레나의 개인적인 비극 이상의 것입니다. 엘레나, 한 사람의 좌절과 슬픔으로 끝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그것은 엘레나는 이해할 수 없겠지만, 내게도 불행으로 남게 될 것입니.
지난 날 내게는 두개의 삶의 목표를 차례 차례 잃은 억누를 수 없는 슬픔이 있었습니다. 이제 또 하나의 소중한, 곡 지키고싶은 희망의 대상이 사라지고 있는 것 같아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을 느낍니다. 무엇보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지향할 새로운 목표를 찾을 나이를 넘었습니다.지금 나는 노년기에 깊게 접어들고 있음을 엘레나도 잘 알고 있지않습니까?.
엘레나를 만나기 전 정치학 박사로서 학문에 전념하던 나는 그 길을 포기한 적이 있었습니다. 소련의 대통령 고르바초프의 정치적 이념애 대한 연구가 나의 학위논문의 주제였는데 그 연구가 결실을 맺게될 즈음 국가로서의 소년이 사라지고 그 지도자 고르바초프마저 권좌에서 밀려나고 말았습니다. 그로 인해 나의 연구분야가 사라지고 만 셈이었기에 그 길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소련의 지도자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와 '새로운 사고'는 국제정치학도였던 나에게는 경이로운 것이었다.그런 점에서 고르바초프의 실각과 소련은 붕괴는 나의 꿈 마저 사라지게 하였던 것이었습니다. 연구의 대상이 하루밤 사이에 연기처럼 사라진 나에게 학문의 길은 더 이상 무의미해졌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 길을 표표히 내 던졌다.
그 대안으로 수십년간 회화예술 탐구에 몰입해왔습니다. 그러나 지금에 이르러 다시 길을 잃었습니다.오늘 날의 탈 예술적 포스터모든의 시대에 내가 탐구해 온 예술적 목표가 눈 앞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이 길에서도 더 나아갈 목표를 잃게 되었습니다.
아, 엘레나가 댄서로서의 춤을 포기한다는 것은 나로서는 예술적 탐구를 위한 소중한 동행자를 잃게됨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내게는 말로서는 표현할 수 없는가슴아픔입니다.
오늘은 엉뚱한 이야기만 널어놓은 것 같아 좀은 쑥스럽습니다.
다음에 또....
인우
7월0일, 2019
Dearest 인우.
오, 인우! 지금 내가 무슨 말을 해야할찌 알지못합니다.오늘 인우에게 보낼 수 있는 것은
눈물 뿐입니다.
아브라죠스!
엘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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