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산문

포플 1 침묵a 1

jhkmsn 2019. 10. 18. 16:56

침묵


1.

인우는 세번째의 그 추모공연을 끝으로 3년간의 그 공연 일에서 손을 떼고 나서야 비로소 엘레나를 생각할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그 3년이라는 세월이 흐르고 나서야 비로소 그녀를 생각하게 되었는데 그녀를 다시 머리에 떠올리자 그것은 바로 그의 자책으로 이어졌다.엘레나의 그런 돌련한 출연 취소에는 그 무엇보다도 자신 탓이 커다는 생각이 그것이었다.그녀의 출연취소에는 자신의 안일한 과신이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게되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 것이었다.

처음에 그녀의 게런티를 너무 박하게 제시한 점이 자꾸 마음에 걸리는 것이었다. 이에 더하여 그녀의 의견을 들어보지도 않은 채 그녀의 반주자이자 동료였던 기타리스트 마크를 그녀의 마산공연에 동반자로 나서는 게 꼭 필요하다는 판단 아래 그와의 동행을 당연한 것으로 였던 점이 마음에 자꾸 걸리는 것이었다.

플라멩코의 공연에는 기본적으로 세 가지의 요소로 이루어지는데 그것은 소리와 춤 그리고 기타반주이다. 춤의 경우, 기타반주는 거의 필수적이다. 반주없이는 춤의 콤파스가 제대로 살아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댄서와 기타반주자는 무엇보다도 서로의 호흡이 일치되어야 한다. 반주자에 대한 믿음없이는 춤에 몰입할 수는 없는 것이다.

지난 일이지만,그녀의 메일에 나타난 정황으로 보아 그녀는 지난 날 처름 마크를 자신의 반주자로서 더 이상 믿음을 갖고있지않음을 은근히 나타내었음에도 인우는 이를 감지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녀의 마음을 충분히 읽지못했던 것이다.

그녀가 자신의 춤을 마산에 또 한번 와서 선보이고 싶은 열망을 가지고 있음을 인우는 잘 알고 있었던 터라 그녀에게 지불할 공연비의 많고 적음에 둔감한 채, 그녀의 마음을 배려하지 못하지 못한 채 일방적으로 자신의 그런 비현실적인 제안을 강하게 했던 게 무엇보다 큰 잘못이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었다:


지나고 보니 내가 출연료를 너무 박하게 제시했었어.

일본인 댄서 미추이의 공연비도 내가 좀더 적극적으로 제시하며 ,

그녀와의 동행을 반갑게 받아들여야했었는데.

내가 너무 둔감했었어, 엘레나는 마크와 함께 공연하고싶지않았음에 틀림없어.

그 점을 내가 빨리 눈치 챘어야 하는겐데. 내가 너무 둔감했었어,

엘레나의 시생활에 관한 문제는 공연을 끝내고 귀국한 후에

천천히 결정해도 늦지않았을 것이고,

수용하고싶지않은 공연조건에 개인적으로 악화되고있던 가정사까지 겹쳐

이래 저래 견딜 수 없는 좌절감에 빠져들었던 것이 틀림없어.

그런데 마크와는 어찌하여 사이가 별어졌을까.

마크의 기교나 플라멩코 기다리스으로서의 예술성에 신뢰감에 가던데?

그 동안 둘 사이에 무슨 좋지않은 일이 있었던 것인가?

엘레나의 그런 돌발적인 태도 변화에 자신이 그렇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으리라고 자책하기 시작한 인우는 더 나아가 엘레나의 그런 돌련한 행동에는 그 이전부터 보였던 플라멩코 춤에 대한 그녀의 좌절감이 이를 더욱 부채질했으리라는 생각에 이르기도 하였다.

엘레나는 고전 무용인 발레가 몸에 익었던 뉴욕 출신이었으니

안달루시아 집시의 듀엔데를 체감할 수 없었을 터이니

그녀가 선택한 플라멩코 댄서로서의 삶에는 어떤 한계를 가졌던게 아니었을까?

듀엔데라는 그들 집시 특유의 초이성적 행태를 체감할 수 있기 전에는 그 춤 자체에 몰입할 수 없다는 그런 두려움 같은 게 그녀의 의식에 처음부터 깔려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녀는 플라멩코의 그런 본질을 뒤늦게 이해하기 시작함으로써 오히려 이로 인해 비집시인으로서 저신의 한계를 극복 할 수 없다는 좌절의식으로?

플라멩코춤에 자진을 잊고 몰입하기에는 그녀는 너무나 이성적 현대인이잖은가!

그녀의 절망에는 처음부터 그런 요인이 그녀의 의식 속에 내재해 있었던게 틀임없어. 그녀는 그 춤을 숙명적으로 받아들이지않았던더야. 플라멩코 춤으로 세상이 알아주는 존재로 성공하고 싶어한 현대인의 사고로 그 춤을 선택했었어. 처음부터 유명한 댄서로 이름을 날리고 싶은 욕망이 그 방향으로 자신이 가진 에너지를 다 집중했었을거야. 그러나 세상은 만만치 않았고, 플라멩코의 본질은 그녀의 욕망과는 조화롭게 어울릴 수 없는 것이었어.

그녀의 뜻과는 달리 세상은 자신을 알아주지 않았고,

자신의 존재는 그저 미미한 수준에 머물고 있었으니.

모르긴해도 그런 심리적 흐름이 있었던게 분명해.

엘레나는 그녀가 플라멩코 댄서가 되기전 발레를 공부했었다잖은가!

플라멩코와 발레는 그 미학적 접근이 본질적으로 다르므로,

데카르트적 사고를 지닌 그녀가 집시족 전통의 비이성적 듀엔데의 세계로 ,

플라멩코 세계의 길로, 들어섰다는 것은 처음부터 그녀에게는 어긋한 선택이었어.

그녀로서는 그건 불행한 선택이었어!


그처럼 인우의 주관적 판단으로는, 바로 그 게런티 문제가 그녀의 심리적 항상성을 무너지게 한 시작점이 되었으리라고 자책했던 것이다.

하여간 인우는 3년간이나 그녀와 그렇게 소통이 끊어진 상태로 무턱대로 그냥 시간만 보낼수는 없었다. 플라멩코 춤을, 더우기 그녀의 춤을 사랑하는 인문 자신과 그녀와 여지껏 나누던 친밀한 관계가 더 이상 이어지지않고있음에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이 상태를 그대로 방치할 수는 없다는 초조감도 들었다. 그럴 즈음 순간적으로 '이 추모공연이 내년에도, 무엇보다 자신의 주도아래, 이어질 것이니 이를 명분 삼아 그녀에게 이메일을 보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인우는 마음 먹은 데로 즉시 그녀에게 아래의 이메일을 보냈다:


7월15일, 2011

Dear 엘레나.

건강은 어떤지요 ?

그리고 춤은 계속하고 있으리라 여깁니다.

엘레나의 춤을 본 마산 사람은 누구나

엘레나를 한번 더 보고 싶어합니다.

엘레나의 춤을 사랑하는,

인우

엘레나는 인우의 이메일에 침묵하였다. 그녀의 긴 침묵에 그는 내심 불안하였다. 초조감마저 들기에 그녀에게 한번 더 아래의 이메일을 보냈다.

​7월 20일, 2011

Dear 엘레나.

이 곳 사람들은

지난 날의 엘레나의 춤을 잊지않고 있습니다.

아브라죠!!

인우

엘레나는 여전히 묵묵 부답이었다. 올 초 그녀가 그 추모공연에 나설 수 없다고 통보하는 그 메일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메일을 보내지 않았다. 인우는 '그녀가 회신을 보내지않으려나보다'하며 기대를 접으려던 머리 속에 그녀가 마지막으로 보낸 그 이메일 속의 한토막 글귀가 떠 올랐다. 아래가 그 글이다:

"나는 인우가 믿고있는 그런 엘레나가 못됩니다. 지금은 지난 날의 내가 아닙니다. 나는 슬프고 침울하며 두렵습니다. 양자딸도 그리고 남편도 잃은 나로서는 지금 더 이상 삶을 유지하고 싶지않는 심경입니다. 그리하여 지난 며칠동안 고심 끝에 이런 결정을 내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내가 그 일을 감당할 수 없다고 말입니다. 나는 인우와 한국인들을 앞으로도 항상 사랑할 것입니다. 그리고 용서를 구하고 싶습니다. 인우가 처할 곤경이 얼마나 클지를 잘 아는 나로서는 나로서는 그런 기대는 할 수는 없지만, 그렇지만 용서해달라고 간곡히 빌 뿐입니다. 엘레나로부터"

그녀의 이 말이 지금 새삼스레 떠오르다니!

처음 이 글을 볼 때 변명이 이렇게나 길다니 하며 대충 읽고는 메일을 덮어버렸었지.

그런데 그녀가 실제로 얼마나 괴로웠으면,용서해달라는 말까지 써 보냈을까?

그렇게나 참담한 표현을!

자신으로 인해 인우가 큰 곤욕을 치루게 되리라 여겨져

용서를 빌다니! 마리사가 엘레나의 출연취소의 통보를 알리는 메일에 순간적으로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그저 마산에서 도망이라도 치고 싶은 심정이었어. 내가 고향에서 어쩌다 이렇게 사기꾼으로 전락하고 말다니, 하며 그녀를 원망했었지!

그 통보에 한동안은 딜레마에 빠져 순간적으로 그 행사를 취소하는 방향으로 결정하기 직전 서울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댄서를 섭외하면 어떻게느냐 라는 주변의 권고를 받아들여 즉시 댄서 나디네를 그 추모무대의 중심 인물로 선정하게 되었었지.

운좋게 관객들은 나디네의 플라멩코 춤에 열렬한 박수를 보냈었고, 그녀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그녀가 다음 해도 중심인물로 무대게 서게 되는 것으로 상황은 잘 진정되었던가 아닌가.

아, 이제 엘레나가 그 메일을 끝으로 더 이상 소식을 보내지않을 모양이야. 그녀의 침묵엔 아무래도 내가 짐작할 수 없는뭔가 심리적 요인이 있을거야. 나에 대한 서운함이 진하게 깔려 있음에 틀림없어.

무엇보다 출연 취소를 용서까지 구하는 미안함으로 알리는 그녀의 메일에 여지껏 내가 묵묵부답하고 마음의 문을 닫았던게 아닌가.

지금의 이런 상황은 나로 인해 초래된 것이 분명해.

이건 내 탓이야. 결과적으로 내 가 그녀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거야. 내가 그녀의 마지막 이메일을 제대로 읽지도 않고는 그녀의 출연취소 통보에 자신이 치루게 될 곤욕만 두려워하며 그녀의 그 절절한 마음이 담긴 메일에 답장을 하지 않은 채 몇달을 외면해버렸으니!

이제사 어떻게 지내는 지 궁금하다는 메일을 아무 일 없는 듯 보내며 회신을 기다린다고 했으니!

그녀를 그렇게나 오래도록 침묵케 해놓고......

엘레나의 입장에 서보니 마음이 무겁기만 해.

그녀의 심리 상태를, 그녀의 개인적인 이런 저런 시정을, 대충은 짐작할 수 있었던 내가 그렇게나 냉정하게 침묵해놓고 이제 와 아무 일 아닌듯 그런 인사말을 담아 보냈으니!

그래도 내 입장으로는 그럴 수 밖에 없지 않는가.

그 공연을 그런대로 성황리에 끝을 맺은 게 얼마나 큰 일인데.

그 상황에 판단을 잘못하여 일을 그르쳣다면 나는 아마 마산에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는 처지로 몰릴뻔 하지 않앗던가. 공연을 잘 치루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그 몇달을 밤낮으로 온 정성을 다 쏟고 있었던 터라 그 당시에는 엘레나의 존재는 그의 머리 속에서 아득했었던거지. 너무 가슴 자책하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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