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산문

포 플 1 열망a

jhkmsn 2019. 10. 15. 06:51

열망과 상처


              ​1.


​2010, ​​12월 10일

인우에게,

안녕!

올 겨울 들어 모처럼 e메일 보냅니다.

오늘 무척 안타까운 소식 하나 전합니다.

플라멩코 칸타오르 모렌테(Morrente)의 서거 소식입니다.

60대 후반의 나이인데 그렇게 갑작스레 떠나시다니, 마음 아픕니다.

정말 뜻밖의 충격입니다.

그 분은, 내가 알고있는 한, 진정한 소리꾼이었습니다.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안달루시아인이었습니다. 그라나다의 플라멩코 가수로서는 드물게 탁월한 감각과 유연한 사고의 현대의 예술가이었습니다. 그는 전통적인 플라멩코의 소리의 차원을 넘어 힌두음악이나 현대의 록 리듬과도 소통하면서 새로움을 추구하는 플라멩코인들뿐 아니라 현대의 재즈 음악인들에게도 영감을 불러넣은 플라멩코의 영혼이었습니다. 그는 새로운 세계를 향해 마음이 열려있었던 우리 시대의 진정한 자유인이었습니다.

그의 삶은 헛되지않을 것입니다. 그의 소리 솔레아는 자유로운 영혼의 음악인에게 오래도록 남아있을 것입니다.모렌테는 볼 때마다 그 모습은 당당하였고, 그의 소리는 들을 때마다 언제나 새로웠습니다.

한 위대한 플라멩코 소리꾼이 갑작스럽게 우리들 곁에서 사라지니 너무 허전합니다. 더 이상 그를 더 이상 만날 수 없게되다니! 그의 서거 소식은 너무 뜻밖이라 마음이 혼란스럽습니다. 누군가와 이 슬픔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인우께 이렇게 이메일을 보냅니다. 플라멩코를 열렬히 사랑하는 인우와 지금의 이 마음을 나누고 싶습니다.

한동안 나는 바일라오라로서의 자신에 대해 회의감이 생겼습니다. 플라멩코 커뮤니티에서 일어나는 위선적이고 비열한 인간 관계를 더 이상 견딜 수 없었습니다. 무엇을 위해 이를 참아내며 무대에 올라야하는지 깊은 회의감의 나날을 보냈던 것입니다.

춤이 내 삶에 무엇인가?

나는 과연 진정한 바일라오라인가?

춤이 아니면 내 삶은 아무것도 아닌가?

이런 물음이 내 안에서 끊임없이 이어졌습니다. 하여 급기야는 나의 스튜디오를 내게서 춤을 배운 플라멩코 댄서 미추에 Mitse) 부인에게 넘기는 결정을 하였습니다. 스튜디오에서 춤을 배우며 함께 지내던 제자나 동료들과도 급속히 관계를 끊게 되었습니다. 어느듯 플라멩코에서 몸과 마음이 급속히 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여지껏 혼 힘을 쏟으며 지키던 스튜디오에서 도보로 그렇게 멀지않은 블랙베리 동산에도 더 이상 오를 수 없었습니다. 플라멩코 예인들과의 예민한 관계사회에서 겪는 피할 수 없는 내면의 상처가 깊어졌고, 자신감을 마저 잃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바깥세상이 두려워져 그냥 칩거한 채 지내게되었습니다.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고 평정심을 얻고싶어 동양적 수행방법인 참선에 몰입해보기도 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충격적인 모렌테의 사거소식을 듣게되었던 것입니다. 그 순간 다시는 그를 무대에서  만날 수 없다니! 내 마음은 마구 흔들렸습니다. 이건 견딜 수 없는 슬픔이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순간적으로 자신도 모르게  다시 춤추고 싶은 열망이 차올랐습니다. 안달루시아의 '깊은 노래', 그 자유로운 영혼의 소리를 춤으로 표현하고싶습니다. 춤으로 그를 추모하고 싶습니다. 당장에라도 파이오니어 공장으로 달려나가 고인의 노래를 상기하며 춤추고 싶습니다.

이제 그동안 움추려들었던 닫혀있었던 마음의 문을 열고 동료들과도 어울리고 싶습니다. 플라멩코 후에르가 (juerga- 전통적인 컴뮤니티의 모임)에도 나가 지난 날의 활기와 콤파스(compas- 플라멩코 리듬)를 되찾아야겠습니다. .

​메리 X-마스!

love

포틀랜드에서,

Helena

​2010, 12월 11일

엘레나!

올해 내내 침묵하던 엘레나가 이렇게 긴 메일을 보내다니! 게다가 다시 춤추고 싶다고 하니, 무엇보다 기쁩니다. 솔직히 내게는 모렌테의 서거소식보다 엘레나가 다시 춤추고 싶다는 열망이 더 큰 소식입니다.

지난 일을 되돌아보는 게 무슨 의미이겠습니까 만, 몇년전 더 이상 춤추지않을 것이라는 엘레나의 결심을 처음 이메일로 알게되었을 때 그 말은 정말 의외였고 놀라웠습니다. 나로서는 플라맹코 댄서가 아닌 엘레나를 상상할 수 없었으니까요.

엘레나의 춤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나로서는 무엇보다 기쁩니다. 놀랍기도 하구요. 모렌테의 서거가 엘레나에게는 적잖이 충격이었나 봅니다. 모렌테의 소리가 엘레나에게는 어떤 울림을 주었는지 궁금합니다. 그의 어떤 특에서 엘레나가 그렇게 애석해하는지?솔직히, 내 귀는 까라꼴이나 카마론에 비해 모렌테의 소리는 아직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엘레나의 귀를 사로잡은 그의 소리에는 어떤 힘이 숨어있는지 궁금하기도 하구요.

솔레나를 춤추는 엘레나를 상상하면서,

마산에서

인우

12월 12일

엘레나에게

궁금한 점이 더 있습니다. 다시 춤춘다면, 연습공간이 당장 필요하겠네요. 게다가, 그건 혼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춤군이라면 기타와 소리와도 호흡도 맞추어야 할텐데?

새로 시작한 직장인으로 춤을 그냥 여가 선용으로?

마산에서

인우

​12월 13일

디어 인우!

직장에서 하던 일은 계속해야지요.우선은 당분간이라도 지역의 플람멩코 컴뮤니티(공동체)에 다시 참여하고있습니다. 미추에(Mitsue)가 이곳 포틀란드를 떠난다며 고별의 행사로 가질 마지막 쇼를 준비하고 있는 중인데, 오늘 밤 그의 집에서 나눌 후에르가(플람에코 공동체에서 나누는 특별한 행사)에 나도 참여할 것입니다. 그리고 오는 일요일 미추이의 고별 공연 무대에도 오를 예정입니다.

이곳 플라멩코 동료들 긴 시간 거의 만나지 못하였던지라 여간 서먹한 느낌이 아닙니다. 두렵기 까지 합니다. 그동안 개인적으로 내면의 상처와 고통이 있었고 마주해야할 회상이 또한 적지않습니다.

인우!

오늘 밤은 나에 대한 인우의 변함없는 신뢰를 마음에 떠올리며 그들을 만날 것입니다.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엘레나

​12월 14일

Dear Inu,

어제 밤은 경이로운 체험을 하였습니다. 예상치못한 카타르시스를 맛보았습니다. 그런 체험이 내게는 필요했었습니다. 나를 새롭게 하는 최고의 느낌이었습니다. 스페인 출신 루이스가 기타반주로 내가 춤에 집중하도록 유도해주었습니다. 그의 반주는 놀라웠습니다. 그는 내가 여러 동료들 앞에서 모처럼 춤춘다는 게 얼나나 힘드는 일인지 그는 미루어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전에 나의 제자인 스테판의 남편으로, 둘은 지금 미국의 오하이오 주에 거주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미국생활이 아직은 마음에 들지않은 눈치였습니다.

건강히 지내시기를! 미추에에게 인우 안부를 전했습니다.

아브라죠!

엘레나

12월 14일

엘레나!

새롭고 경이로룬 경험이었다니, 참 기쁨니다. 엘레나는 무대에 오르면 눈부신 무희가 된다는 점을 잘 상기하시기를! 내게는 늘 엘레나는 무대우의 매혹적인 바일아로라입니다.

나의 경우, 요즘도 시력은에 괜찮으며 창의적 마음은 여전합니다.

전처럼 매일 매일 조금씩 글을 쓰고 지냅니다.

엘레나의 일요일 춤 무대를 상상하며

아브라죠!

마산에서

Inu



위와 같은 이메일들의 왕래에 4년이나 앞선 2006년 어느 겨울. 인우는 댄서 엘레나를 만나기 위해 미국의 포틀랜드를 방문했었다. 둘은 2001년부터 바일라오라와 열렬한 플라멩코 애호가 서이로 친밀한 관계를 이어온 사이였다.

그 즈음 인우는 거창의 국제 여름 연극제에 참여하고 있었고 그 연극제 측에서 플라멩코에 대한 깊은 호기심을 갖고있기에 그는 이겸 저겸 엘레나를 방문하기로 마음 먹었던 것이다. 그는 한여름의 거창국제연극예술제에 참여하여 연극제에 초청되는 외국인 공연팀을 위한 통역일을 거들고있었는데, 한번은 그 곳 야외무대에  한 한국인 플라멩코 댄서를 초대하여  많은 관객들 앞에서 비교적 낯선 플라멩코 춤을 선보인 적이 잇었던 것이다. 그는  집안 일로 LA에 가는 길에 겸사 겸사 포틀랜드에도  들렸던 것이다..

인우는 지난 2006년에 그가 사는 마산에서 드물게 운좋게 플라멩코 공연을 기획하여 엘레나를 마산에 초청한 적이 있었고. 그녀로서도 낯선 한국 땅에서의 플라멩코 공연을 더없이 자랑스러워 하며 잊지못할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었으므로 ,인우는 그녀에게 한번 거창의 국제 연극제 행사에 플라멩코 댄서로 한번 참여해보면 어떻겠느내고 권유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었던 것이다.

어쨌든 그 겨울 인우는 그녀가 살고있는 포틀란드에 도착하여 그가 전에 머물었던 포틀란드 국제호스텔에 체크인 다음 날 파이오니어 광장 스타벅 카페에서 그녀와 둘이 만났다. 몇년만의 반가운 만남이었다. 점심으로는 그 광장 돌계단의 이동식 판매 카터에서 젊은 청년 판매원이 즉석에서 포장해 주는 따뜻한 멕시칸 부릿토로 하였다. 인우는 무엇보다 그 광장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은박지 속의 그 부릿토를 맛보고 싶었던 것이다. 

광장에서 점심을 나눈 후 그녀는 인우와 더불어 그녀의 플라멩코 스튜디오로 향하였다. 둘은 거기서 한가히 앉아 아야기를 나누는 중에 그녀는 한국에서 처음 맛 본 비빔밥을 상기하며, 마산에서 만났던 탱고 강사 미미와 그리고 마신에서의 플라멩코 공연무대에 함께 섰었던 김진숙의 안부를 그에게 묻기도 했었다. 

대화중에 그녀가 자신의 스튜디오를 미추에 부인에게 넘기게 되었다는 말을 했을 때 인우는 그 말에 좀은 허전한 느낌이었다. 그녀가 앞으로는 정말 춤이 아닌 다른 삶을 모색하고있구나 싶어서 였다. 전에 이미 그녀는 인우에게 보낸 메일에 플라멩코의 세계와는 동떨어진 일에 관여하고있다는 말을 했었던 것이다. 이를테면, 자신이 부동산회사의 사장을 만났다거나 ,권투선수의 리드미칼한 푸트워크와 플라멩코 바일라오라의 자파테아도의 예리한 콤파스는 사로 닮았다는 점을 권투 잡지에 컬럼으로 기고했었다는 말을 한 적도 있었다. 그래도 그 때만해도 그녀가 춤 이외의 일에도 관심이 많은가 하고 자나가는 말로 여겼을 뿐이었다.

그날 저녁 그 스튜디오에서 엘레나와 새 주인이 된 일본인 댄서 미추에가 함께 펼친 파티는  인우가 온다는 날에 일부러 맞추어 정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것은 미추에가 엘레나의 스튜디오의 새 주인이 되는 것을 축하하는 파티이었던 것이다. 이 날은  새 주인이 되는 미추에를 중심으로 여러 플라멩코 예인들이 와인을 나누며 춤과 소리 그리고 기타연주를 펼치는 이른바 ,후에르가 (juerga)파티였었다. 그 자f리에서 인우는 40대 초로 보이는 일본계 미국인 미추에부인과 록 기타리스트이자 플라멩코 토카오르인 밥(Bob)을 만났었고, 엘레나의 남편 후안(Juan)도 만났었다. 그 때만 해도 인우의 눈에는 엘레나는 댄서로서 당당하고 자신 만만했었다.

그런데 그 만남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인우는 점차 엘레나가 그 스튜디오를 타인에게 넘긴 것은 자신이 더 이상 춤을 추지않기로 한 것이었음을 좀 더 강하게 느끼기 시작하였다. 그러리라고는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었다.

그 때부터 자연스럽게 이런 저런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었다:

그녀의 심경의 변화는 무었때문이었을까? 그런 마음을 전부터 품고 있었던 것인가.

무슨 내적 충격이 있었기에 ?

혹시 보기와는 플라멩코를 두려워했었던 건가?

플라멩코 춤 이외의 다른 어떤 귀한 것도, 심지어 아이를 낳지않기로했다는 그녀였었는데?

무슨 일이 있었기에?

열정만으로 살아가기가 현실적으로 힘에 부쳐서?

춤에 대한 열정이 언제 그렇게 시들어졌을까?

어쨋거나 인우에게는 정말 의외였다. 그녀는 이제는 춤을 잊고싶어 대형 마트의 카운터 일자리를 얻어 매일 바쁘게 지난다거나 그리고 부동산 회사의 마케팅 일을 큰 기대감으로 맡아 하게되었다는 말을 그녀가 보낸 이메일을 통해 읽을 때 엘레나가 솔직히 딱하게 여겨졌었다. 그 이후로 엘레나와의 교신도 두절되다시피 하였다. 그녀도 인우도 특별히 연락할 일이 더 이상 없었던 것이다. 새로운 삶에 적응하느라 애쓴다는 그녀의 글에 속으로 놀라워할 뿐이었다.그러면서 이미 그녀의 마음이 그렇게 정해진 것 같기에 인우로서는 더없이 아쉽고 안타까웠다. 플라멩코 춤에 관한 한, 어느 댄서도 춤의 우아함이나 힘에 있어서 ,인우에게는, 엘레나를 능가하는 바일라오라를 알 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인우는 바일라오라로서의 엘레나를 한결같이 사랑했었다.

어쨋거나 엘레나와는 포틀란드에서의 그 귀한 만남이후 몇해 동안은 의례적인 년말 안부 나눔이 거의 전부였고 인우의 마음속에서도 그녀는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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