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인우는 엘레나의 긴 침묵에 그냥 시간만 보낼 수는 없었다. 그는 자신과 그녀 사이의 이런 단절 상태에 마음이 여간 불편하지않았다. 초조감마저 들기에 그녀에게 한번 더 아래의 이메일을 보냈다.
7월15일, 2011
Dear 엘레나.
헬로우, 건강은 어떤지요 좋아져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춤은 계속하고 있으리라 여깁니다만.......
엘레나의 춤을 본 마산 사람은 누구나
엘레나가 마산에 와 춤추는 모습을 보고 싶어합니다.
엘레나의 춤을 사랑하는,
인우
엘레나는 이에 여전히 묵묵 부답이었다. 올 초 그녀가 그 추모공연에 나설 수 없다고 통보하는 그 메일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메일을 보내지 않았다. 인우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그녀의 회신을 기다리다 , '그녀가 회신을 보내지않으려나보다'하며 체념하던 그 순간, 인우의 머리 속에 그녀가 마지막으로 보낸 그 이메일 속의 한토막 글귀가 떠 올랐다. 아래가 그 글이다:
"나는 인우가 믿고있는 그런 엘레나가 못됩니다. 지금은 지난 날의 내가 아닙니다. 나는 슬프고 침울하며 두렵습니다. 양자딸도 그리고 남편도 잃은 나로서는 지금 더 이상 삶을 유지하고 싶지않는 심경입니다. 그리하여 지난 며칠동안 고심 끝에 이런 결정을 내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내가 그 일을 감당할 수 없다고 말입니다. 나는 인우와 한국인들을 앞으로도 항상 사랑할 것입니다. 그리고 용서를 구하고 싶습니다. 인우가 처할 곤경이 얼마나 클지를 잘 아는 나로서는 나로서는 그런 기대는 할 수는 없지만, 그렇지만 용서해달라고 간곡히 빌 뿐입니다. 엘레나로부터"
그녀의 이 말이 지금 새삼스레 떠오르다니!
처음 이 글을 볼 때 변명이 이렇게나 길다니 하며 대충 읽고는 메일을 덮어버렸었지.
그런데 그녀가 실제로 얼마나 괴로웠으면,용서해달라는 말까지 써 보냈을까?
그렇게나 참담한 표현을!
자신으로 인해 인우가 큰 곤욕을 치루게 되리라 여겨져
용서를 빌다니! 마리사가 엘레나의 출연취소의 통보를 알리는 메일에 순간적으로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그저 마산에서 도망이라도 치고 싶은 심정이었어. 내가 고향에서 어쩌다 이렇게 사기꾼으로 전락하고 말다니, 하며 그녀를 원망했었지!
그 통보에 한동안은 딜레마에 빠져 순간적으로 그 행사를 취소하는 방향으로 결정하기 직전 서울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댄서를 섭외하면 어떻게느냐 라는 주변의 권고를 받아들여 즉시 댄서 나디네를 그 추모무대의 중심 인물로 선정하게 되었었지.
운좋게 관객들은 나디네의 플라멩코 춤에 열렬한 박수를 보냈었고, 그녀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그녀가 다음 해도 중심인물로 무대게 서게 되는 것으로 상황은 잘 진정되었던가 아닌가.
아, 이제 엘레나가 그 메일을 끝으로 더 이상 소식을 보내지않을 모양이야. 그녀의 침묵엔 아무래도 내가 짐작할 수 없는뭔가 심리적 요인이 있을거야. 나에 대한 서운함이 진하게 깔려 있음에 틀림없어.
무엇보다 출연 취소를 용서까지 구하는 미안함으로 알리는 그녀의 메일에 여지껏 내가 묵묵부답하고 마음의 문을 닫았던게 아닌가.
지금의 이런 상황은 나로 인해 초래된 것이 분명해.
이건 내 탓이야. 결과적으로 내 가 그녀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거야. 내가 그녀의 마지막 이메일을 제대로 읽지도 않고는 그녀의 출연취소 통보에 자신이 치루게 될 곤욕만 두려워하며 그녀의 그 절절한 마음이 담긴 메일에 답장을 하지 않은 채 몇달을 외면해버렸으니!
이제사 어떻게 지내는 지 궁금하다는 메일을 아무 일 없는 듯 보내며 회신을 기다린다고 했으니!
그녀를 그렇게나 오래도록 침묵케 해놓고......
엘레나의 입장에 서보니 마음이 무겁기만 해.
그녀의 심리 상태를, 그녀의 개인적인 이런 저런 시정을, 대충은 짐작할 수 있었던 내가 그렇게나 냉정하게 침묵해놓고 이제 와 아무 일 아닌듯 그런 인사말을 담아 보냈으니!
그래도 내 입장으로는 그럴 수 밖에 없지 않는가.
그 공연을 그런대로 성황리에 끝을 맺은 게 얼마나 큰 일인데.
그 상황에 판단을 잘못하여 일을 그르쳣다면 나는 아마 마산에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는 처지로 몰릴뻔 하지 않앗던가. 공연을 잘 치루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그 몇달을 밤낮으로 온 정성을 다 쏟고 있었던 터라 그 당시에는 엘레나의 존재는 그의 머리 속에서 아예 지워ㅕ 있엇던 게 당연한 게 아니엇나. 너무 가슴 아파 하지 마.
그녀의 침묵이 계속 이어지는 동안 인우는 이제 마음의 평정을 되찾아 그녀를 좀 더 객관적으로, 그러나, 가능한 한, 그녀의 입장에 서서 되돌아보기시작하였다. 그는 심리학적으로 당시의 그녀는 항상성을 잃고 정신적 혼란에 빠져들었던 게 틀림없다. 그녀가 출연취소를 통보는 메일에 나타난 여러가지 변명성 이유들이 다분히 그녀의 정신적 균형감이 무너진 상태임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 때는 그녀는 남편과도 헤어지게 된 상태에다 그렇게나 간절히 바라던 양녀의 입양이 무산된 상태에 있을 때, 인우가 그녀에게 제시한 출연 조건은 그녀의 자존감은 말할 것도 없고 생활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않는 수준이어서 그녀의 정서적 항상성을 무너지게 하는 격발 작용이 되었을 것이다.
한 개인의 욕구와 가치들을 무력화시키는 외부적 자극이 강할 때 이를 견디지 못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면 그는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비정상적인 신체적 변화를 겪게된다는 것이 그것이다.
사람들에 따라 자신의 욕구나 가치가 기대치에 어울릴 정도의 결과로 지켜지면 정서적 균형을 유지하게되지만 그 가치나 욕구가 박탈되거나 무산되면 격심한 정서적 스트레스를 겪게되는 것이다. 외부적 요인은 사람에 따라 이를 견딜 수 있는 정도가 각기 다를 것이며 그 자극에 견디지 못할 정도로 스테레스를 받는 경우는 항상상이 이을 테면 심리적 균형이 무너진다는 의미인 것이다.
아, 내가 너무 감정적이었어.
공연 준비에 올인하느라 그만 무심했다는 건 일종의 핑계야.
엘레나가 약속을 저버려 나를 궁지로 내몰았어. 뭐 이런 감정이 앞섰던 거야.
메일을 보내지도 않고, 게다가 나의 묵묵부답은 결과적으로 그녀의 메일을 받지않겠다는 신호가 되엇을 터이니!
이래 저래 ,그녀가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균형이 무너져 병원신세까지지는 상황이 되었던 것을, 내가 그녀의 입장에서 한번 생각했어야 했는데.지금 그 공연을 잘 끝내고 내년의 공연을 생각하며 그 때에는 그녀를 한번 무대에 올려보자, 뭐 이런 계산으로 그녀에게 메일 보낸 것이 아닌가! 아무리 그렇더라도 둘의 특별한 관계를 생각하면 그건 옳바른 태도가 아니지.
의리 없는 짓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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