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산문

플라멩코 바일라오라c3-3

jhkmsn 2019. 8. 30. 06:35

3.

엘라나를 중심 인물로 삼아 시작하려던 그 첫 공연은  비록 그녀는 참가하지않았지만, 다행스럽게도 교체된 한국인 출연자로 잘 치루어졋었다. 그리고 그 공연은 그 뒤를 이어 연속적으로 2회 더 계속되었고,그 기간 내내 인우는 공연 준비와 씨름하느라 엘레나를 거의 잊어버리다시피했었던 것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참고로, 인우가 몰입했던 그 추모공연의 2회,3회의 과정의 한 부분들을 여기에 소개한다.

그 추모공연의 제 1회 행사에 대해서는, 앞에서 그 진행과정을 보여주었으므로 여기서는 2회와 그리고 3회에 관한 특징적인 부분만 소개할 것이다.

2회에 관해서는 , 그 행사를 위한 기금마련 회화작품전이 있었기에 이 점을 강조하는 의미에서 그 주최 기관인 <3.15의거 기념사업회>의 백한기 회장의 인사말을 통해 여기에 올린다.

3회에 관해서는 <제 3회 3.15의거 김용실.김영준 열사 추모예술제>라는 이름 아래 치루어진 3가지의 기본행사를 여기에 올림으로써 그 추모행사가 3번째에 이르로 좀 더 체계화되었음을 보여주고자 한다. 한가지 변화로,이 추모행사를 처음부터 이끌어 온 인우의 역할은 3회를 끝으로 안타깝게도 더 이상 지속되지 않았다.

A)

타이틀: 제2회 315의거 김용실 김영준열사 추모공연.

제 2회의 추모행사를 위한 기금마련을 위한 회화작품전에서 이 행사의 주최기관으로 나선 315의거 기념사업회의 백한기 회장의 인사말을 소개한다:

"3.15의거 김용실 김영준 열사 추모의 밤 기금마련을 위한 창원상곡회의소 후원 초대작품전에 경남 여성작가 3분을 모셨습니다. 초대된 3인 화가들은 제 1회 추모행사를 적극적으로 후원해주신 김복남, 윤복희, 이정남 님이 그분들입니다.

이 추무행사를 주관해 온 3.15사추회(3.15 의거 김용실 김영준 열사추모행사 추진위원회)는 제 1회 추모공연이 위 세분의 특별한 도움이 있었기에 잘 성사되었던 점을 고마워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기금마련 작품 전시회는 그분들의 그림들로 채워지게 되었습니다.

세분 화가들의 작품전은 마고 21기 김 준형 산문작가의 저서 <창동인블루2>에 이미 소개되어 있습니다.

서양화가 김복남 님의 추상적 흐름의 장미,

윤복희님의 생기 넘치는 사실성의 코스모스,

그리고 이정남 님의 수묵향 진한 대숲이 그 책 속에 올려져 있습니다.

통합 창원상공회의소 초대회장 최충경 님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3.15 기념사업회회장

백 한기

B)

3회 행사에 관하여:

타이틀: 제3회 3.15의거 김용실.김용준 열사 추모예술제.

a) 기금 마련 초대작품전

주제:깊은 풍경

전시기간: 2013년 2월 15일-3월 5일

초대일시: 2013년 2월 15일 (금) 오후 6시

전시장소: 창원상공회의소 1층 챔버 갤러리

b) 추모행사 창동거리 홍보

일시: 2013년 3월 19일(화) 오후 6시-

c) 인문예술 강연 및 시연

주제: 판소리와 플라멩코의 표현주의 요소

발제: 김준형 (창동인블루 저자. 정치학 박사)

질의: 송창우 (시인. 합포만의 아침 작가)

춤 시연: 김영옥 (판소리. 경남대 평생교육원 교수)

이혜정 (플라멩코 바일라오라)

일시: 2013년 , 3월 20일. 오전 11시-12시

장소: 깅남대학교 한마 미래관 1층 시청각실

그 추모행사와 관련하여 인우가 그 공연의 중심 주제를 플라멩코 춤으로 선정한 것에 대해 큰 어려움이 있었음은 앞에서 잠깐 언급한 있었다. 그 점을 여기에 좀더 구체적으로 피력하고 한다.

즉, 플라멩코춤이 스페인의 관광상품이라는데 이 추모공연으로 합당한가 라는 비판이 이 춤의 본질을 와면한 채 지속적으로 이어졌다는 점이 가장 큰 어려움이었다. 플라멩코의 본질적 특성인 애통의 요소를 설득력 있게 강조하기엔 그 춤은 현실적으로 그런 본질과는 달리 선정성이 강한 이국적인 춤으로 더 잘 알려져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플라멩코춤이 에로티시즘적 요소가 강한 점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스페인 집시 문화 필수적인 요소로 작용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점은 그 예술의 표현성의 일부에 속할 뿐 본질은 아닌 것이다.

그런데도 현대에 이르러 점차 그 춤의 선정적 요소가 점차 강해져 세인들에게는 갑싼 눈요기로 전락해지고 있는 현실을 인우 역시 감안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플라멩코라고 하면, 세인들은 거의 모두가 스페인의 정열적인 춤으로 알고 있는 게 현실이었던 것이다..

인우는 공연의 지속성을 위해 불가피하다는 논리적 설득으로 그에 대한 비판을 3년이나 견디어 내었다. 그는 플라멩코 춤은 소규모 출연진(최소 4-5명)으로 무대효과를 높일 수 있는데다, 다른 일반화된 다른 공연장르에 비해, 그 독특한 이국정취로 관객의 호기심을 높일 수 있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주장했었던 것이다.그렇지만 결국엔 그 추모공연을 3회로 끝으로 그 일에서 물러나야만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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