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갈을 따라가 보라
1.
엘레나의 돌련한 출연취소 통보에 당황하였던 인우는 불가피하게 서울에서 활동 중인 한국인 플라멩코 댄서 한 사람을 다급하게 선정하여 그녀를 무대에 올리기로 결정하였고, 그렇게 하여 진행된 그 추모공연은 기대밖으로 큰 호흥을 받으며 잘 마무리되었다. 인우는 공연 후의 그 뒷일까지 다 끝낸 후에서야 비로소 그 동안 마음 한 모퉁이에 접어두었던 엘레나를 떠올리게되었다. 그렇지만 우선 마리사에게만 이메일로 답신하였다. 공연 마칠 때까지 경황이 없어 회신이 늦어 송구하다는 인사말에 덧붙여 엘레나의 건강을 걱정하는 마음을 담아 보냈다.
0일 4월, 2011
헬로, 마리아!
마리아님의 2월 중순의 이메일에 이렇게 답신이 늦어 미안합니다.
3월 공연 행사에 온 마음을 쏟느라 경황이 없었습니다.너그럽게 봐 주시기를!
마리아님과 이어 엘레나로부터 온 청천벽력같았던 엘레나의 공연불참 통보에 나는 그 순간 마산에서 도망이라도 치고싶은 마음이었습니다. 엘레나의 이미지가 든 홍보물과 공연 행사 프로그램 을 인쇄하려는 순간 그런 이메일을 받았을 때 그 순간은 그러했었습니다. 이제 그 행사는 무사히 마무리되었기에 이렇게 회신할 마음의 여유를 갖게 되어습니다.
마리사의 근황은 어떠신지요. 무대활동은 여전하시구요?
그리고 엘레나는 지금 어떠한지요?
무엇보다 그녀에 가정일에 대해 마음이 아픕니다.
그녀가 과테말라 국적의 한 어린애를 양녀로 입적하는 절차를 밟고 있다는 사실을 내게 알려주었었는데!
후안과도 이혼이라니.엘레나는 남편과 사이가 아주 돈독했었던 같았는데.
스페인 문화와 자신과의 거리를 좁히려 애쓰기도 하고, 후안의 모국어가 스페인어라 더더욱 그를 사랑하는 것 같았는데!
지금 새삼스레 그녀에 대해 마음이 아픕니다.
회신 늦은 것에 대해 송구하다는 말을 다시드립니다.
종종 흥미로운 연락 나눌 수 있기를!
아디오스!
마산에서,
인우
마리사에게 그 메일을 보낸 인우의 머리 속에 무대위에서 춤추는 엘레나를 바라보며 화가 샤갈의 그림들을 떠올렸던 10여년전의 한 순간이 떠올랐다.
" 샤갈을 따라가 보아라. 그러면 그 화가는 너가 가보고싶은 곳 어디에나 인도해줄 것이다."
장 그리니에의 샤갈에 대한 이 한 줄의 짧은 글과 그리고 그 화가의 그림 한점이 머리속으로 그려졌었던 그 순간이 불현듯 다시 회상되엇던 것이다. 초록빛 언덕위의 집의 창밖으로 목을 길게 내면 예쁜 얼굴의 처녀에게로 붉은 당나귀를 타고 날라 온 그 젊은 연인은 공중에 뜬 채로 미소짓는 그녀의 빰에 입술을 대며 행복해하는 그 그림 한 점이 인우의 심안에 무대위의 엘레나와 오버랩되던 지난 날의 그 순간이 ! 물론 그 때의 아련한 회상과 이 싯점에 다시 떠오른 그 회상 사이에는 그 정서의 빛깔이 사뭇 다르다. 몽상적인 꿈의 빛, 이를 테면 푸른 하늘 빛이 전자의 정서이었다면, 지금의 정서는 페이소스의 진한 페이소스 같은 것이었다. 아득히 지난 그 순간의 엘레나에 대한 회상은 이런 것이었다:
기타리스트의 기타 리듬과 무희들의 박수 팔마스에 맞춰 그녀는 천천히 의자에서 일어난다.
검은 눈은 아래로 깔고 긴 두 팔을 일정한 각도로 위로 올리며 온 몸을 콤파스에 맞춘다.
우아하고 힘찬 몸짓에 화답하는 기타 선율의 순간적인 멈춤과 이어짐! 알맞게 넓은 공연장의 무대아래는 극적 분위기에 휩싸인다.
위로 올려진 그녀의 두 팔이 반원형을 그리며 천천히 내려온다. 그리고 손목회신에 이어 그 긴 팔은 이번에는작으로 가슴 위로, 머리위로 각을 이루며 쭉 뻗어오른다.
그녀의 시선은 어느 듯 창밖 어딘가 먼 곳으로 향한다. 그 시선은 아마 자신의 영혼이 담긴 내면 깊은 곳으로 향하고 있을런지도 모른다. 그리고 문득 내가 마음에 늘 품어왔던 , 뭔가 허구의 삶을 글로 표현하고 싶은 하나의 열망을 그녀의 춤을 통해 이루어보리라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오르기도 한다.
. 인우는 지난 날 엘레나에게로 향한 출렁이던 분홍빛 정서를 다시 되집어보며 혼자 중얼거렸다:
그 때 내가 엘레나에게 뻐져들고있었음은 무슨 연유로 인한 것인가?
플라멩코로 인한 것인가, 아니면 춤추는 그녀가 매혹적이어서?
그건 틀림없이 둘 다로 인한 것이었으리라.
분명한 점은, 그녀가 눈부신 플라멩코 댄서였기에 그러했을 것이다. 그렇게 젊고 매혹적인 그녀가, 그리고 이국적인 플라멩코춤을 추는 그녀가, 그로서는 더 가까이 다가서기엔 너무나 경이롭고 파악할 수 없는 먼 존재였기에 그러했을 것이다.
2.
원래, 무대란 그 특별한 공간은 그 위의 어떤 극적인 시각적 동적 요인들이 이와 조화를 이루는 어둠속의 소리와 흔들리는 빛으로 아래 관객의 마음을 홀릴 때 그곳은 지상의 것이 아닌 마술의 세계가 된다. 인우가 무대위의 엘레나를 처음 보았을 때 그 때 무대는 그러했었던 것이다. 그리고 포틀란드에서 무대 위의 그녀를 처음 본 이래 몇년이 지난 어느 해에 그녀가 이번에는 마산으로 날라와 펼친 무대도 인우에게 깊은 감동을 안겨주었었다. 그 순간에는 그녀의 춤이야말로 진정한 플라멩코 춤으로 믿어지기까지 했었다. 그녀의 춤무대를 두번째로 보았을 때의 감동을 자신은 이렇게 회상했었다:
그녀의 육체에서 품어내는 시규리어 춤의 기품!
끊임없이 이어집과 순간적인 끊어짐의 역동적인 자파테아토.
관객의 호흡을 멎게하는 무희의 검은 시선.
출렁이는 포카닷 스커트 자락의 눈부신 돌풍의 선회.
그리고 기타반주자인 마크의 손가락이 빚어내는 마법적인 소리의 선과 색채.
인우의 두번째의 감동은 그런 것이었다. 그리고 이 무대에서는 처음에 비해 그 깊이감이 더했었다.
엘레나의 플라멩코를 그렇게 체감한 인우가 혼자 나섰던 스페인 여행이나, 시인 가르시아 로르카의 예술적 삶과의 만남, 또한 데카르트적 개인주의 이전의 비이성적 의식세계에 관한 독서, 무엇보다 플라멩코 예술의 본질, 듀엔데, 집시들의 의식구조 등에 대한 탐구가 인우에게는 끊임없이 이어졌었다. 그는 어느 듯 플라멩코의 열정적인 연구가가 된 것이었다.
그녀를 , 풀라멩코를 춤추는 그녀를 만나지 못했다면 ? 아마도 지금의 인우는 다른 사람일 것이다. 여기에 스페인의 시인 가르시아 로르카의 시- 아그나시아 메이야스를 애도함-을 다시 상기한다. 죽음을 투우경기장에서 맞이하였던 플라멩코 댄서이자 투우사인 아그나시아 메이야스 산체스의 극적인 삶의 마지막 순간을 시인 가르시아 로르카가 아래에 이렇게 애도한 시에 인우는 늘 가슴 벅차 했었다:
...............
................
누구도 당신을 모른다. 지금은,
누구도 그러나 나는
당신에 대해 노래하리라.
다음 세대를 위해 나는 당신의
인품과 우아함을 노래하리라.
당신의 이해력 깊음과 인품의 고결함을,
죽음에 대한 당신의갈망과
그 죽음 언저리의 맛을,
그리고 당신이 지녔던 빼어난 기개와 슬픔을.
이제 그처럼 참되고
그처럼 모험심 가득한
안달루시아인 이 땅에 다시 태어나려면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러야할까.
나는 그의 기품을 가슴 찌르는 말로 노래하리라.
그리고 올리브 숲에 이는
슬픈 산들바람을 기억하리라.
(시 제4편, '사라진 영혼'에서)
' Absent Soul '
The bull does not know you, nor the fig tree,
nor the horses, nor the ants in your own house.
The child and the afternoon do not know you
because you have dead forever.
The shoulder of the stone does not know you
nor the black silk, where you are shuttered.
Your silent memory does not know you
because you have died forever
The autumn will come with small white snails,
misty grapes and clustered hills,
but no one will look into your eyes
because you have died forever.
Because you have died for ever,
like all the dead of the earth,
like all the dead who are forgotten
in a heap of lifeless dogs.
Nobady knows you. No. But I sing of you.
For posterity I sing of your profile and grace.
Of the signal maturity of your understanding.
Of your appetite for death and the taste of its mouth.
Of the sadness of your once valiant gaiety.
It will be a long time, if ever, before there is born
an Andalusian so true, so rich in adventure.
I sing of his elegance with words that groan,
and I remember a sad breeze through the olive trees.
앞에서 잠깐 언급한 것처럼 ,오래전 추운 겨울에 헬레나가 마산으로 날라와 펼친 '플라멩코의 밤'공연 후 그 이듬해 3월 인우는 혼자 스페인 여행길에 나섰던 적이 있었다. 그 겨울 마산에 찬아 온 엘레나의 춤이 준 감동을 그대로 안고 스페인 여행길에 나섰던 것이다.
스페인어에 대해서는 그 철자법 정도만 아는 미숙한 상태인데도 플라멩코에 매혹된 채 목적지를 오로지 그 춤의 고장 안달루시아로 정한 채 마드리드행 비행기에 탑승했었던 것이다. 그리고 마드리도 ,그라나다, 카디스, 헤레스 ,세비아 등 그 지역의 도시들을 한가지 플라멩코를 듣고보고 느끼기 위해 돌아다녔던 것이다. 그리고 도착지 마드리드의 시내 서점에서 구입한 책 한권,'!플라멩코!'(Gwynne 에드워드 편집, Thames & Hudson 출판사 발간)는 여행 내내 옆구리에 끼고 있었다.
영어로는소통이 잘 되지않은 스페인의 방문지에서 유일한 안식처는 도심지의 호스텔이었다. 그 곳에서는 호스텔 관리인이 여행객들과 나누는 언어가 기본적으로 영어였다. 스페인어를 알아들일 수도 읽을 수도 없는 인우로서는 그런 숙박시설이 있었기에 혼자서 그런 여행길에 나설 수 있엇던 것이다. 인우는 스페인 여행중에는 다음 행선지로 떠나기 전 그 곳의 호스텔을 미리 예약해놓은 다음 이동하였을 정도로 그의 여행의 중심지는 호스텔이었다.
그는 이 여행중에 내내 마음에는 엘레나가 동행하고 있었다. 그는 호스텔 프론트에서 체크 인 한 다음에는 베낭을 벗기가 무섭게 미국의 엘레나에게 이메일을 보내고 그녀의 회신에 감격해 하였다는 뜻이다. 그렇게 스페인의 안달루시아 지역에서 근 스무날 가까이 보내며 주고받은 이메일은 인우가 나중 ebook으로 미국에서 발행한 소설 ' FLAMENCO JOURNEY'의 근간을 이루었다.
참고로 '아래'는 그 이메일 들이다:
3월 1일, 2005
To: 호스텔 정보첸터 : info@metropolhostel.com
호스텔 예약에 관한 것입니다.
나는 한국인 작가로서 스페인에 한 달을 머물 예정입니다. 먼저 마드리드에서 3월19일부터 23일까지 (3박 4일) dorm베드가 필요합니다. 나는 현재 암스텔담에서 KL 1707편으로 마드리드로 비행, 3월 19일 오전에 도착 예정입니다 예약안내 부탁합니다. 이메일 회신 기다리며, INU
3월 20일, 2005
Dear 엘레나!
안녕! 엘레나가 내게 말해준 양녀로 입적한 그 과테말라 소녀는 얼마나 귀여운가요?
지금 여기는 마드리드입니다. 한달가량의 안달루시아 여행 길에 나섰습니다.
스페인 문화나 언어에 미숙한 여행자로서 견뎌야 할 불편한 점이 한 두가지가 아니지만, 그 대신 누릴 수 있는 자유로움이 그 보상이 됩니다.
이 곳에서 이튼 날 숙소인 Mad 흐스텔 근처에서 방향감각을 잃고 숙소를 찾지못해 한 참이나 헤매었습니다. 당황스럽기 그지없었습니다.지금은 이 곳 그라나다에서 많은 날을 머물며 다양한 젊은 여행객들 틈에 섞여 지냅니다. 스페인어 발음이 좀 시끄럽지만 자류롭고 행복합니다..
이달 10일쯤에는 버스로 헤레스로 넘어가 마리샤를 만나볼 예정입니다.
엘레나를 생각하며,
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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