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엘레나와 인우가 이 이메일들을 주고받은 2010년보다 4년이나 앞선 2006년 어느 겨울. 인우는 포틀랜드를 방문했었다. 그녀와 플라멩코 공연에 대해 의논도 할겸 개인적으로 그녀가 보고싶기도 하여 그 도시로 날라갔었던 것이다. 둘은 2001년부터 그녀는 바일라오라로, 그리고 그는 플라멩코 애호가로 특별한 관계를 이어온 사이였다.
그 즈음 그는 거창의 국제 여름 연극제에 참여하고 있었고 그 연극제 측에서 그에게 플라멩코에 대한 깊은 관심을 보이기에 인우는 이겸 자겸 엘레나를 방문하기로 마음 먹었던 것이다. 인우는 한 여름의 거창국제연극예술제에 참여하여 연극제에 초청되는 외국인 공연팀을 위한 통역일을 거들었던 것이다.
그는 한번은 그 국제 연극제에 플라멩코를 소개한 적이 있었다. 어느 해의 연극제 기간에 맞추어 한 한국인 플라멩코 댄서를 초빙하여 야외 무대에서 플라멩코춤을 선 보였던 것이다. 많은 관객들이 낯선 플라멩코에 강한 호기심을 보이기에 이 점을 마음에 두고 있었던 차에 그는 LA에 가는 길에 겸사 겸사 엘레나가 있는 포틀랜드에도 잠시 들렸던 것이다..
산문작가로 활동을 해 온 인우는 마산에서 지난 2006년에 드물게 운좋게 플라멩코 공연을 기획하여 그녀를 바일라오라로 마산에 초청한 적이 있었고. 그녀로서도 낯선 한국 땅에서의 플라멩코 공연을 더없이 자랑스러워 하며 잊지못하는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었으므로 ,인우는 또 한번 그녀를 한국으로 초청하고싶은 욕심에 거창연극제의 여름 풍경을 묘사해주면서 그 곳에 한번 참여해보면 어떻겠느내고 권유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엇던 것이다.
어쨌든 그 겨울 인우는 그녀가 살고있는 포틀란드에 도착하여 그에게 친숙한 포틀란드 호스텔에 체크인 다음 날 파이오니어 광장 스타벅 카페로 나가 그녀와 둘이 만났다. 몇년만의 반가운 만남이었다. 점심으로는 그 광장 돌계단의 이동식 판매 카터에서 젊은 청년 판매원이 즉석에서 포장해 주는 따뜻한 멕시칸 부릿토로 하였다. 인우는 무엇보다 그 광장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은박지 속의 그 부릿토를 맛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점심을 나눈 후 그녀는 인우와 더불어 그녀의 플라멩코 스튜디오로 가 한가히 앉아 아야기를 나누는 중에 그녀는 한국에서 처음 맛 본 비빔밥을 상기하며, 마산에서 만났던 탱고 강사 미미와 그리고 마신에서의 플라멩코 공연무대에 함께 섰었던 김진숙의 안부를 그에게 묻기도 했었다.
그런데 대화중에 그녀가 자신의 스튜디오를 미추에 부인에게 넘기게 되었다는 말을 했을 때 인우는 그 말에 담긴 의미를 깨닫지못했었다. 이제는 춤이 아닌 다른 삶을 모색하고있다는 뜻이 그 말에 담겨 있었던 것이었다. 전에 이미 그녀는 인우에게 보낸 메일에 플라멩코의 세계와는 동떨어진 일에 관여하고있다는 말을 했었던 것이다. 이를테면, 자신이 부동산회사의 사장을 만났다거나 ,권투선수의 리드미칼한 푸트워크와 플라멩코 바일라오라의 자파테아도의 예리한 콤파스는 사로 닮았다는 점을 권투 잡지에 컬럼으로 기고했었다는 말을 한 적도 있었다. 그래도 그 때만해도 그녀가 춤 이외의 일에도 관심이 많은가 하고 자나가는 말로 여겼을 뿐이었다. 사실 일본이 미추이 부인이 그녀의 스튜디오의 새 주인이 되던 날의 파티에서도 인우는 엘레나에게 앞으로 바일라오라로서의 새로운 계획이 있나보다하고 여겼을 뿐이었다.
실제로 그 날 저녁파티는 그 곳 플라멩코 예인들의 소규모 사적 모임인 후에르가(juerga)였다. 그 모임을 엘레나가 인우가 온다는 날에 일부러 맞추어 정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것은 미추에가 엘레나의 스튜디오의 새 주인이 되는 것을 축하하는 모임이었던 것이다. 이 날은 그 스투디오의 새 주인이 되는 미추에를 중심으로 여러 동료들이 모여 다과와 와인을 나누며 춤과 소리 그리고 기타연주를 펼치기로 하는 그런 모임이었던 것이다. 플라멩코의 열열한 애호가로서 인우는 그 파티에 특별한 손님으로 참석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자라에서 인우는 40대 초로 보이는 일본계 미국인 미추에부인과 록 기타리스트이자 플라멩코 토카오르인 밥(Bob)을 만났었고, 엘레나의 남편 후안(Juan)도 만났었다. 그리고 그 날은 미추에 부인이 정식으로 그 스튜디오의 새 주인이 되는 날이기도 하였다. 그 때만 해도 인우의 눈에는 엘레나는 댄서로서 당당하고 자신 만만했었다.
그런데 그 만남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인우는 점차 엘레나가 그 스튜디오를 타인에게 넘긴 것은 자신이 더 이상 춤을 추지않기로 한 것이었음을 뒤 늦게 깨닫기 시작하였다. 그녀가 댄서의 길을 포기하기로 한 게 사실이었음을 좀더 구체적으로 알게되었다. 그러리라고는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었다.
그 때부터 자연스럽게 이런 저런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었다:
그녀의 심경의 변화는 무었때문이었을까? 그런 마음을 전부터 품고 있었던 것인가. 무슨 내적 충격이 있었기에 ? 혹시 보기와는 플라멩코를 두려워했었던 건가?
플라멩코 춤 이외의 다른 어떤 귀한 것도, 심지어 자신의 아이를 갖는 특별한 은총마저도 버렸다고 하던 그녀였었는데?
무슨 일이 있었기에?
열정만으로 살아가기가 현실적으로 힘에 부쳐서?
춤에 대한 열정이 언제 그렇게 시들어졌을까?
어쨋거나 인우에게는 정말 의외였다. 그녀는 이제는 춤을 잊고싶어 대형 마트의 카운터 일자리를 얻어 매일 바쁘게 지난다거나 그리고 부동산 회사의 마케팅 일을 큰 기대감으로 맡아 하게되었다는 말을 그녀가 보낸 이메일을 통해 읽을 때 엘레나가 솔직히 딱하게 여겨졌었다. 그 이후로 엘레나와의 교신도 두절되다시피 하였다. 그녀도 나도 특별히 연락할 일이 더 이상 없었던 것이다.
처음부터 춤이 관심의 전부였던 둘 사이에 춤 이야기가 아니면 무슨 말을 할 수 있었겠는가? 새로운 삶에 적응하느라 애쓴다는 그녀의 글에 속으로 놀라워할 뿐이었다.그러면서 이미 그녀의 마음이 그렇게 정해진 것 같기에 인우로서는 더없이 아쉽고 안타까웠다. 플라멩코 춤에 관한 한, 어느 댄서도 춤의 우아함이나 힘에 있어서 ,인우에게는, 엘레나를 능가하는 바일라오라를 알 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인우는 바일라오라로서의 엘레나를 한결같이 사랑했었다.
스페인 여행 중에 그라나다의 알람브라 궁전쪽 좁은 골목 한 켠에 숨겨져있는듯한 작은 타블로에 사흘밤이나 드나들며 댄서 후아나(Juana)의 춤에 몰입했었다. 좁은 공간에서 펼쳐지는 댄서후아나의 춤은 격렬한 몸뒤틀림이 인상적이었다. 패션 모델만큼이나 늘씬한 몸매를 가진 그녀는 열기 가득한 좁은 공간 탓이었는지 온 몸에 땀이 배어 나올 정도로 열정적이었다.그녀의 자파테아토(발구름) 역시 그 멈춤과 이어짐의 폭발적인 동작에서 일반적으로 힘이 넘치는는 남성 댄서를 능가하는 것이엇다.
그렇지만 우아나는 춤의 기품과 우아함에 있어서는 엘레나를 따르지 못하는구나 하고 혼자 생각했었다. 게다가 바일라오라로서 그녀는 둔부가 빈약하기에 그 점은 플라멩코의 기본적인 요소인 진정한 에로티시즘의 결핍으로 여겨졌었다. 인우는 그녀의 두번째 무대에서 순간적으로 엘레나와 그녀를 비교하기도했었다. 엘레나의 경우 후아나에 비해 잘 발달된 둔부로 인해 상하체의 조화로운 비례가 두드러렸었다. 그리고 후아나의 춤은 폭발적인 힘을 품어내지만 엘레나의 춤은 고전적인 기품이 서려있고 우아하였다. 후아나의 춤 무대 앞에서 인우는 그런 비교의 감상을 즐기기도 햇었다. 스페인 여행 중에 새롭게 눈에 들어 온 그라나다의 댄서 에바 라 예르부에나( Eva La Yerbabuena)를 제외하고는, 그의 눈에는 엘레나의 춤을 능가하는 댄서가 잘 나타나지 않았던 점은 사실이었다.
엘레나와는 포틀란드에서의 그 귀한 만남이후 몇해 동안은 핸 해가 저물 때 쯤 의례적인 안부 나눔이 거의 전부였고 인우의 마음속에서도 그녀는 점차 흐미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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