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산문

플라멩코 바일라오라c1-1

jhkmsn 2019. 8. 23. 06:59

열망과 상처

​1.

​2010, ​​12월 10일

인우에게,

안녕!

올 겨울 들어 모처럼 e메일 보냅니다.

오늘 무척 안타까운 소식 하나 전합니다.

플라멩코 칸타오르 모렌테(Morrente)의 서거 소식입니다.

60대 후반의 나이인데 그렇게 갑작스레 떠나시다니, 마음 아픕니다.

정말 뜻밖의 충격입니다.

그 분은, 내가 알고있는 한, 진정한 소리꾼이었습니다.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안달루시아인이었습니다. 그라나다의 플라멩코 가수로서는 드물게 탁월한 감각과 유연한 사고의 현대의 예술가이었습니다. 그는 전통적인 플라멩코의 소리의 차원을 넘어 힌두음악이나 현대의 록 리듬과도 소통하면서 새로움을 추구하는 플라멩코인들뿐 아니라 현대의 재즈 음악인들에게도 영감을 불러넣은 플라멩코의 영혼이었습니다. 그는 새로운 세계를 향해 마음이 열려있었던 우리 시대의 진정한 자유인이었습니다.

그의 삶은 헛되지않을 것입니다. 그의 소리 솔레아는 자유로운 영혼의 음악인에게 오래도록 남아있을 것입니다.모렌테는 볼 때마다 그 모습은 당당하였고, 그의 소리는 들을 때마다 언제나 새로웠습니다.

한 위대한 플라멩코 소리꾼이 갑작스럽게 우리들 곁에서 사라지니 너무 허전합니다. 더 이상 그를 더 이상 만날 수 없게되다니! 그의 서거 소식은 너무 뜻밖이라 마음이 혼란스럽습니다. 누군가와 이 슬픔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인우께 이렇게 이메일을 보냅니다. 플라멩코를 열렬히 사랑하는 인우와 지금의 이 마음을 나누고 싶습니다.

한동안 나는 바일라오라로서의 자신에 대해 회의감이 생겼습니다. 플라멩코 커뮤니티에서 일어나는 위선적이고 비열한 인간 관계를 더 이상 견딜 수 없었습니다. 무엇을 위해 이를 참아내며 무대에 올라야하는지 깊은 회의감의 나날을 보냈던 것입니다.

춤이 내 삶에 무엇인가?

나는 과연 진정한 바일라오라인가?

춤이 아니면 내 삶은 아무것도 아닌가?

이런 물음이 내 안에서 끊임없이 이어졌습니다. 하여 급기야는 나의 스튜디오를 내게서 춤을 배운 플라멩코 댄서 미추에 Mitse) 부인에게 넘기는 결정을 하였습니다. 스튜디오에서 춤을 배우며 함께 지내던 제자나 동료들과도 급속히 관계를 끊게 되었습니다. 어느듯 플라멩코에서 몸과 마음이 급속히 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여지껏 혼 힘을 쏟으며 지키던 스튜디오에서 도보로 그렇게 멀지않은 블랙베리 동산에도 더 이상 오를 수 없었습니다. 플라멩코 예인들과의 예민한 관계사회에서 겪는 피할 수 없는 내면의 상처가 깊어졌고, 자신감을 마저 잃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바깥세상이 두려워져 그냥 칩거한 채 지내게되었습니다.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고 평정심을 얻고싶어 동양적 수행방법인 참선에 몰입해보기도 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모렌테의 사거소식은 충격이었습니다. 그를 무대에서 다시는 만날 수 없다니! 이건 견딜 수 없는 슬픔이었습니다.나, 내 마음을 마구 뒤흔들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자신도 모르게 내 안에서 다시 춤추고 싶은 열망이 차올랐습니다. 안달루시아의 '깊은 노래', 그 자유로운 영혼의 소리를 춤으로 표현하고싶습니다. 춤으로 그를 회상하고 싶습니다.

이제 그동안 움추려들었던린 마음 훌훌털고 마음의 문을 열고 동료들과도 어울리고 싶습니다. 플라멩코 후에르가(juerga- 전통적인 컴뮤니티의 모임)에도 나가 기타 반주에 맞춰 지난 날의 활기와 콤파스(compas- 플라멩코 리듬)를 되찾아야겠습니다. 이제라도 이 곳 파이오니어 스퀘어 광장으로 나가 고인이 솔레아를 춤추고싶습니다.

​메리 X-마스!

love

포틀랜드에서,

Helena

12월 11일, 2010

엘레나!

올해 내내 침묵하던 엘레나가 이렇게 긴 메일을 보내다니! 게다가 다시 춤추고 싶다고 하니, 무엇보다 기쁩니다. 솔직히 내게는 모렌테의 서거소식보다 엘레나가 다시 춤추고 싶다는 열망이 더 큰 소식입니다.

지난 일을 되돌아보는 게 무슨 의미이겠습니까 만, 몇년전 더 이상 춤추지않을 것이라는 엘레나의 결심을 처음 이메일로 알게되었을 때 그 말은 정말 의외였고 놀라웠습니다. 나로서는 플라맹코 댄서가 아닌 엘레나를 상상할 수 없었으니까요.

엘레나의 춤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나로서는 무엇보다 기쁩니다. 놀랍기도 하구요. 모렌테의 서거가 엘레나에게는 적잖이 충격이었나 봅니다. 모렌테의 소리가 엘레나에게는 어떤 울림을 주었는지 궁금합니다. 그의 어떤 특에서 엘레나가 그렇게 애석해하는지?솔직히, 내 귀는 까라꼴이나 카마론에 비해 모렌테의 소리는 아직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엘레나의 귀를 사로잡은 그의 소리에는 어떤 힘이 숨어있는지 궁금하기도 하구요.

솔레나를 춤추는 엘레나를 상상하면서,

마산에서

인우

12월 12일

엘레나에게

궁금한 점이 더 있습니다. 다시 춤춘다면, 연습공간이 당장 필요하겠네요. 게다가, 그건 혼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춤군이라면 기타와 소리와도 호흡도 맞추어야 할텐데?

새로 시작한 직장인으로 춤을 그냥 여가 선용으로?

마산에서

인우

13일

디어 인우!

직장에서 하던 일은 계속해야지요.우선은 당분간이라도 지역의 플람멩코 컴뮤니티(공동체)에 다시 참여하고있습니다. 미추에(Mitsue)가 이곳 포틀란드를 떠난다며 고별의 행사로 가질 마지막 쇼를 준비하고 있는 중인데, 오늘 밤 그의 집에서 나눌 후에르가(플람에코 공동체에서 나누는 특별한 행사)에 나도 참여할 것입니다. 그리고 오는 일요일 미추이의 고별 공연 무대에도 오를 예정입니다.

이곳 플라멩코 동료들 긴 시간 거의 만나지 못하였던지라 여간 서먹한 느낌이 아닙니다. 두렵기 까지 합니다. 그동안 개인적으로 내면의 상처와 고통이 있었고 마주해야할 회상이 또한 적지않습니다.

인우!

오늘 밤은 나에 대한 인우의 변함없는 신뢰를 마음에 떠올리며 그들을 만날 것입니다.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엘레나

14일

Dear Inu,

어제 밤은 경이로운 체험을 하였습니다. 예상치못한 카타르시스를 맛보았습니다. 그런 체험이 내게는 필요했었습니다. 나를 새롭게 하는 최고의 느낌이었습니다. 스페인 출신 루이스가 기타반주로 내가 춤에 집중하도록 유도해주었습니다. 그의 반주는 놀라웠습니다. 그는 내가 여러 동료들 앞에서 모처럼 춤춘다는 게 얼나나 힘드는 일인지 그는 미루어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전에 나의 제자인 스테판의 남편으로, 둘은 지금 미국의 오하이오 주에 거주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미국생활이 아직은 마음에 들지않은 눈치였습니다.

건강히 지내시기를! 미추에에게 인우 안부를 전했습니다.

아브라죠!

엘레나

14일

엘레나!

새롭고 경이로룬 경험이었다니, 참 기쁨니다. 엘레나는 무대에 오르면 눈부신 무희가 된다는 점을 잘 상기하시기를! 내게는 늘 엘레나는 무대우의 매혹적인 바일아로라입니다.

나의 경우, 요즘도 시력은에 괜찮으며 창의적 마음은 여전합니다.

전처럼 매일 매일 조금씩 글을 쓰고 지냅니다.

엘레나의 일요일 춤 무대를 상상하며

아브라죠!

마산에서

In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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