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희의 기타 소리는 도수가 높다. 들을 때마다 쉽게 취한다.
글 | 기획장 이상권
다니엘 프리드리히가 제작한 기타로 연주를 하시잖아요. 이 기타는 음향적으로 어떤 특색을 지녔나요?
소리가 영롱하다고 말해야 할까요. 음색이 따뜻하거나 두껍다고 하는 차원을 넘어서 소리에서 색채가 보이는 듯해요.
다니엘 프리드리히에게 받은 기타는 음색이 다양한 편입니까?
기타를 칠 때 손톱 각도에 따라서도 소리의 색깔이 확 달라지곤 해요. 그만큼 연주에 다양한 감정을 실을 수 있어요. 같은 음을 내더라도 줄의 어느 곳을 치는지에 따라서 미묘한 감정의 뉘앙스까지 표현할 수 있거든요.
미세한 차이로 음색이 달라진다면 그만큼 다루기 어렵지는 않은가요?
같은 프레이즈 안에서 통일된 음색을 내고 싶을 때 어려운 점이 있었죠. 손가락 위치가 조금만 달라져도 음색이 확확 변하니까요. 같은 자리에서 같은 터치로 쳐야 음색도 일관되게 나와요. 이런 점을 포함해서 악기에 제대로 적응하기까지 약 1년 정도 걸린 거 같아요.
다니엘 프리드리히는 고령에 접어들고 기타를 거의 만들지 않았습니다. 새로 만든 기타를 받으신 건가요?
새 악기로 받았어요. 이 일이 소문난 덕분에 제가 유럽 기타계에 알려지기도 했죠. 당시에 어딜 가도 ‘정말로 프리드리히한테 받았어?’ ‘내가 이 기타를 쳐봐도 돼?’ 하며 제 악기에 관심을 보였거든요.
다니엘 프리드리히가 명제작자로 알려진 뒤에는 유명 연주자에게만 기타를 만들어줬다고 해요. 예외적으로 제가 학생일 적에 흔쾌히 기타를 만들어 주신 거죠. 말씀하신 대로 그분이 고령에 접어들고 기타 제작을 거의 안 하셨던 상황이라, 제게 만들어주신 기타가 더 화제가 되었죠.
다니엘 프리드리히가 손 모양이나 체형에 맞춰서 제작했나요?
제작자로서 철학과 기타의 이상적인 구조가 있기 때문에 악기 사이즈 자체를 줄이거나 변형하지는 않으셨어요. 다만 제 손이 작다는 점을 고려해서 기타 넥을 짚기 편하게 다듬어 주셨죠.
현재 기타 현은 어떤 제품을 쓰고 계시는가요?
기타에서 2~3번 줄은 먹먹한 소리가 나는 경향이 있어요. 이 점을 고려해서 2-3번에는 소리가 강한 ‘사바레즈(카본)’을 써서 보완하죠. 여기에 맞춰서 1번을 부드러운 특성을 지닌 ‘어거스트 리갈’을 써요. 이렇게 1~3번 줄을 구성하면 음향적으로 균형이 잘 맞거든요.
개인적으로 4~6번은 배음이 풍부한 소리를 선호해요. 웅웅거리는 소리는 잘 내기 위해서 ‘사바레즈(칸티가)’나 ‘어거스틴 블루’를 써요.
공연장에 도착하면 무엇부터 점검하십니까?
공연장에 도착하면 바로 리허설을 시작해요. 조명과 음향 체크를 간단히 하고 보통 10분 만에 마무리하죠. 리허설이 끝나고 대기실에 와서 연습해요.
다른 악기들보다 기타는 조명에서 나오는 열기에도 예민한 부분이 있을 텐데, 리허설에서도 이런 부분을 체크 하시나요?
기타는 조명이 강하면 조율이 어려워지고 불안정해져요. 그래서 무대 위가 너무 뜨겁지 않도록 조정하죠. 리허설 때도 본 공연과 마찬가지로 기타에 조명을 맞춥니다. 이 환경을 익힌 이후에 대기실에 와서 계속 연습해요.
무대에서 리허설을 짧게 하고 대기실에서 연습하는 이유가 있나요?
리허설을 진행할 때면 무대 근처에서 스태프분들이 무언가 준비하시고 계셔서 집중이 어려운 면이 있어요. 그래서 대기실에서 불을 끄고 실제 공연할 때와 마찬가지로 적막한 환경을 만들어요. 무대에서 치는 것처럼 연습하죠.
클래식 기타는 음량이 적은 특성상 공연장에서 마이크를 거칠 때가 많습니다. 마이크를 거치면 음색이 변할 우려가 있는데, 이 부분은 어떻게 대처를 하나요?
기타를 공부하신 분께서 후지츠와 협업해서 발명한 기타 마이크-앰프가 있어요. 이 마이크-앰프는 거의 소리의 왜곡 없이 기타 소리를 크게 만들어줘요. 이 제품을 구매해서 공연장에서 사용해요.
일본에서 공연할 때는 제 기타 마이크-앰프를 공연장에 보내지만, 한국까지는 가지고 오기가 어려워요. 정밀 기기인 데다가 운반 도중에 망가질 우려가 있거든요.
손이 작은 편이라 그립이나 포지션 이동이 남다르십니다. 손 크기로 인해서 불리한 점은 있나요?
제 왼손도 유연성이 있어서 줄까지 닿긴 다 닿아요. 다만 손가락이 길면 손 모양을 타원을 유지할 수 있지만, 제 경우에는 손을 쭉 펴서 짚어야 하거든요. 손 모양이 불안정하면 실수가 나올 가능성이 커져요.
반면 오른손에서 유리한 점이 있어요. 현 간격이 정해져 있잖아요. 손이 크고 두꺼우면 다른 줄을 건드릴 위험이 높지만, 저는 한 줄만 정확히 잡기에 유리하거든요.
단점을 극복하기 위한 연습 방법은 있나요?
아무래도 남성 연주자와 비교해서 타고난 근력이나 골격 등에서 쳐지죠. 신체적으로 불리한 점을 보완하기 위해 왼손으로 슬러 연습을 많이 해요. 손가락마다 쓰이는 근육이 다 다른데, 이 부분을 슬러를 통해서 웨이트트레이닝하듯이 집중적으로 관리할 수 있거든요.
단 며칠만 슬러 연습을 놓아도 손가락에서 힘이 빠지는 걸 체감해요.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 비몽사몽 해도 슬러 연습을 빼먹지 않고 해요.
콘서트 연주자로 활동하면서도 주기적으로 연습하시는 편인가요?
요즘은 날마다 연습시간을 딱 정해놓지는 못해요. 공연 스케줄에 따라서 연습 시간이 불규칙하게 나거든요. 연주회가 있는 날은 3시간 정도 연습을 하고요, 특별한 스케줄 없이 집에 있는 날은 온종일 연습하죠
스튜디오와 무대 환경은 다르잖아요. 앨범 녹음하실 때 악기 세팅이나 연주에서 달라지는 부분이 있나요?
앨범 녹음을 할 때는 본의 아니게 연주가 달라져요. 음반 작업을 할 때는 실수 없이 깔끔하게 연주하는 데 중점을 둔다면, 실제 무대에서는 표현에 비중을 두고 연주하죠. 공연장을 찾으시면 앨범보다 더 풍부한 감상을 하실 수 있을 거예요.
다가오는 리사이틀은 새 앨범 [하모니아]를 주제로 삼으셨습니다. 이번 앨범을 간단히 소개해주세요.
흔히 클래식 기타곡하면 ‘로망스’나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과 같은 오래된 작품을 떠올리곤 해요. 그렇지만 우리 시대에도 기타를 위해 쓴 명곡이 있거든요. 새 앨범에서는 20세기 후반부터 지금까지 기타계를 이끌어온 대가의 작품을 알리고 싶었어요. 아사드, 디옹, 요크, 캘러한 등이 쓴 작품을 선별해서 새 앨범에 수록했어요.
새 앨범의 타이틀은 “하모니(Harmony)”의 어원이자, 그리스 신화에서 조화를 관장하는 여신인 “하모니아(Harmonia)”의 이름에서 따왔어요.
새 앨범의 수록곡은 어떻게 구성되었나요?
재즈 기타리스트인 카즈미 와타나베와 ‘황혼’으로 유명한 코타로 오시오가 직접 곡을 써주셨어요. 코타로 오시오는 어쿠스틱 기타리스트지만, 이번 앨범을 위해 자신의 첫 클래식 기타곡을 써주셨죠. 이렇게 뜻깊은 두 곡을 포함해서 우리 시대의 기타곡으로 앨범을 구성했어요. 한번 들으면 마음에 오래 머무는 작품일 거에요.
살아있는 작곡가의 작품에서 수정하고 싶은 부분이 생기면 어떻게 하나요?
그럴 땐 제가 작곡하신 분께 직접 여쭈어봅니다. 대부분 제가 하고 싶은 대로 수정하셔도 좋다고 하세요. 작곡가와 연주자의 감각은 다를 수 있으니까, 또 다른 표현을 하면 본인에게도 도움이 된다고 권장하셨어요.
다른 악기를 위해 쓴 곡을 기타로 편곡해서 칠 때와 처음부터 기타로 연주할 것을 목적으로 쓴 곡은 어떤 차이가 있나요?
작곡가가 기타를 잘 알고 있어야 악기가 지닌 매력을 잘 드러내며 곡을 쓸 수 있어요. 마찬가지로 리스트나 쇼팽의 피아노곡은 기타로 편곡했을 때 그 느낌을 잘 살리기 어렵죠. 이번 앨범에 실린 기타 작품도 다른 악기로 쳤을 때 매력이 반감될 수 있을 거예요.
평소에 다른 장르의 기타리스트와 음악적 교류가 있으신가요?
이번 앨범 전까지는 다른 장르의 기타리스트와 음악적인 교류가 없었어요. 다만 제가 그분들 공연을 관람하고 대기실에서 인사를 나누거나, 반대로 그분들이 제 콘서트에 오신 적은 있었죠.
특별히 좋아하는 시대가 있습니까?
바로크부터 현대음악까지 두루 좋아해요. 저한테도 맞고 관객들까지 좋아해 주시는 건 아무래도 낭만주의 작품이에요. 아무래도 이 시대 음악이 노래 위주로 흘러가면서 감정선이 잘 드러나서 객석과 교감하기에도 수월해요.
바로크부터 현대곡까지 레퍼토리가 다양하십니다. 그렇지만 한국에서는 아직 기타 현대곡을 다루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죠?
아무래도 한국에서는 현대 기타곡에서 공감을 얻어내기가 조금 더 어려워요. 현대음악을 너무 딱딱하게 생각하시기도 하고요. 이런 점을 고려해서 프로그램을 균형적으로 구성해요. 친숙한 곡부터 낯설지만, 관객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곡까지 잘 맞추면 관객들께도 전달이 잘 전달해드릴 수 있어요.
기타는 음량 문제로 협주곡에 부적합하다는 의견까지 있어요. 실제로 협주곡을 하실 때가 어려우시죠?
기타 연주에서 협주곡은 특히 더 어려운 점이 있어요. 기타에 마이크-앰프를 좋은 걸 쓰더라도 그게 홀에 어떻게 맞느냐는 다른 문제거든요.
또 앰프 방향상 관객들에겐 기타 소리가 잘 들려도 오케스트라 단원 뒤쪽까지는 전달이 안 될 수도 있어요. 그럴 땐 단원분들은 기타 소리가 아닌 지휘자의 지시에 따라서 연주하게 되죠. 기타, 지휘자, 오케스트라 셋의 소통이 잘 맞아야 해서 더 긴장하고 연주하죠.
기타리스트 삶 외에도 하고 싶은 일이 있나요?
몇 년 전부터 ‘롤라이 플렉스’로 사진을 찍고 있어요. 제가 잠시 살았던 스페인의 알리칸테와 안달루시아 지방을 이 카메라와 함께 돌아다녔어요. 이렇게 사진을 찍었던 순간들이 머릿속에 생생하게 남아있어요.
요즘은 사진 찍기 정말 편하잖아요. 스마트폰을 꺼내 버튼을 누르면 되니까요. 반면 제가 쓰는 롤라이 플렉스는 오래된 수동카메라라서 불편한 점이 많아요. 노출부터 구도까지 조정해서 한 장 한 장 정성껏 담아야만 해요. 이 과정이 음악을 만드는 일과 비슷하게 다가와요. 취미로 사진을 찍으면서도 배우는 것도 많습니다.
혹시 사진 에세이 같은 것도 계획하고 계시나요?
사진 에세이를 내는 것도 꿈꾸긴 하는데, 그렇다고 지금 내겠다고 하면 주제를 넘은 일 같아요. 이 세상에 활동하는 사진작가가 얼마나 많은데요. 그렇지만 음악 활동을 하면서 사진을 활용하는 건 긍정적으로 생각해요.
음악 활동 중에 사진을 활용한 경우가 있었나요?
한번은 음악평론가이자 사진작가인 오야마다 마사시께서 사진전을 결합한 공연을 기획을 해주셨어요. 당시에 공연장 로비에서 제가 스페인에서 찍은 사진을 전시했어요. 공연 1부는 프로젝트로 사진을 틀어가면서 설명하고, 2부에는 거기에 맞춰서 곡을 연주했죠. 청각과 시각을 동시에 활용하니까 관객들이 더 음악을 가까이 받아들일 수 있게, 감정선을 더 증폭시킬 수 있었던 거 같아요.
작곡과 편곡을 더 적극적으로 하실 생각이 있나요?
작곡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이라서 정말 대단한 거 같아요. 저도 시도를 해보긴 했는데 연주와는 다른 재능임을 알게 되었죠.
반면 편곡은 시간이 되면 할 생각은 있어요. 유학 생활 중에는 스카를라티의 여러 곡을 편곡하기도 했었죠. 요즘은 연주 일정으로 편곡할 여유가 잘 생기지 않았는데, 상황이 되면 편곡을 하긴 할 거예요.
올해 국내 활동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앞서 말씀드린 대로 3년 만에 갖는 새 앨범인 [하모니아]를 발매해요. 이를 기념해서 4월 29일 예술의전당 IBK홀에서 리사이틀이 있어요. 이 공연 외에도 대전을 비롯해 각지에서 공연이 열릴 예정이에요. 오는 10월 27일에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세종체임버시리즈’에서 플루티스트 최나경 씨와 한 무대에 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