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은 무엇으로 쓰는가?
-<창동인블루> 시리즈를 사례로 하여-
김준형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
경북대학원 정치외교학과 졸, 정치학박사
전 경남도민일보 논설위원
<창동인블루>시리즈의 작가
*원고분량이 넘치면 (E) 참고의 글에서 조절하시기를!
A) 글을 시작하면서
오늘의 주제인 ‘글은 무엇으로 쓰는가?’ 라는 <한가지 물음>에
앞서 여기서 의미하는 글은, 위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보편적인
문학적 창작물들, 이를테면, 시, 수필, 소설 등 문예작품을 의미한다는 점을 먼저 밝혀둔다. 본 강연에 들어가기 위해 참고삼차 필자에게는 청소년기 이래 늘 마음에 담겨있었던 매혹적인 이야기 하나를 소개한다.
아래가 그 이야기이다.
‘아래’
옛날에 독일의 슈바르츠발트 숲을 지나는 4명의 여행자에 의해 한 처녀가 태어났습니다.맨 처음 목수의 손에 의해 조각되고, 다음엔 그의 동행자였던 신부의 기도로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또 다른 동행자였던 시인으로부터는 시와 춤을 배웠습니다.
그녀는 그 검은 숲에서 자신을 낳아 준 동행자들을 위해 시를 노래하고 춤을 추었습니다. 그들이 그 검은 숲을 다 지날 즈음 목수를 제외하고는 모두 눈빛이 번들거리는 남자들로 변해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 나무처녀를 두고 서로 다투기 시작했습니다.
숲속길 동행자들인 신부, 시인, 그리고 재단사 그 어느 누구도 그녀를 두고 양보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급기야 그들은 한 마을의 판사 앞에 나서게 되었습니다. 판사는 그 나무처녀가 판사 자신의 소유라는 이상한 판결을 내렸습니다.
그 나무여인의 상아빛 젊음과 빛나는 눈동자는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아닌 판사인 자신이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가진 것 없는 숲길 방랑자들에게 아름다운 그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게 그 이유이었습니다. 어느새 판사까지 탐욕자가 되었던 것이지요.
그렇지만 그녀는 몰래 그들의 굴레에서 벗어나 달아났습니다. 그들은 그녀가 그렇게 사라지는 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 목수를 제외하고는.
B) 글은 무엇으로 쓰는가?
이 물음과 관련하여, 화가인 드가와 시인 말라르메가 주고받은 아래의 일화가 이에 대한 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 둘은 가까운 친구사이였다:
드가- 요즘 내 머리엔 기발한 싯적 아이디어로 가득하나, 이를 소네트(시)로 쓸 수 없어 고통스럽다네.
말라르네- 화가 친구여. 시는 아이디어로 쓰는 게 아니라단어(글자)로 쓰는 것일세.
'시는 단어(words)로 쓴다'고 한 이 시인의 답은 필자에게는 정곡을 찌르는 표현이었다. 시는 물질적인 단어로 구체화되어 눈에 보이거나 음유시인의 시 낭송처럼 소리로 암송되어 구체화되어야 비로소 시가 되는 것이지, 머리 속에 아이디어 상태로 남아있는 한, 아직은 시가 아니라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즉, 인상파 화가 드가의 머릿속에 가득한 기발한 시적 아이디어는 구체적인 창작물이 되기 이전의 비물질적 상태의 것으로 남아 있었을 뿐이었던 것이다.그런데, 그 머리 속에 맴돈다는 그 아이디어(내용물)은 도대체 어떻게 하여 머리 속에서 자라는가, 또는 그 아이디어는 무엇으로부터 생성될 것인가? 이 점에 관해서는 필자의 경우, 청년기에 읽었던 라이나 마리아 릴케의 어느 책에서 그 시인이 어느 ‘젊은 작가지망생’에게 충고한 다음의 글을 그 길잡이로 삼았다:
한 줄의 시를 쓰기 위해서는 많은 도시,
많은 사람,많은 책과 만나야 한다.
그리고 밤하늘에 무수히 반짝이는 별들과 함께 덧없이 사라진 여로의 밤을 회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필자는 무턱대고 탐욕스럽게
글을 읽었고, 여로의 고단함을 이기며 먼 도시를
떠돌았으며, 낯선 사람들을 만났다. 필자의 산문의 글 <깊은
노래>, <플라멩코 이야기>가 글로 구체화
되었던 것은 그 시인이 길잡이였었다. 위의 두 책은 특히 고단한 여로의 밤을
회상하면서 쓴 것이었다.
C) 어떤 글을 쓸 것인가?
문예적 창작물을 쓰기 전 필자의 글은 주로 대학과정에서 전공과목이었던 정치학 관련 논문이거나, 신문의 사설, 칼럼 등과 같은 시사성 해설문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던 중 마음 한편에 늘 자리잡고 있었던 문학작품쓰기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여 결국에는 지금처럼 줄곧 문예작품을 창작하기에 이르게 되었다. 그 시작과 더불어 전공이었던 정치평론이나 시사성 해설의 글들과는 결별하였다.
이 과정 중에 필연적으로 필자의
머리 속에는 또 다른 물음이 끊임없이 맴돌았다:
'내게는 어떤 글이 어울릴까?'가 그 물음이었다.
즉, 나는
어떤 글을 잘 쓸 수 있을까 이었다.
필자에게는 글 작업 중에 많은 그런 모색의 혼자 말이 있었다.
어떤 때는 르네샤르의 한 구절의 물음- 왜 저 길이 아니고 이 길인가?- 이 머리속을 맴돌았고, 좀더 절실했던 것으로는 보들레르의 물음- 리듬과 각운이 없으면서도 충분히 음악적이며....상념의 물결침에 걸맞는 시적 산문을 쓸 수 없을까?-이 그런 것이었다.
그리하여 혼자 빈 백지 앞에서 스스로에게
던지는 그런 물음은 끊이지 않았다.
다음의 긴 모색적 중얼거림이 그런 것이다:.
넌 지금 전체적인 구도에 너무 집착하고 있어.
완성된 글의 원경은 나중의 일이야.
눈 앞 한 페이지의 공간,
한 페이지의 백지가 더 중요해.
작업에 몰입하는 순간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대면하고 있는 한 페이지, 한 페이지와 정면으로 씨름하는 일이다.
그 한 페이지의 문장을 단어 하나 하나로 지어나가는 일이다.
완성된 글 숲 전체를 머리속으로 미리 그리는 일은
한가한 산책길에서나 어울린다.
페이지와 씨름할 때는
큰 숲은 머릿속에 두지 말라.
이번에는 왜 이렇게 글 작업을 서둘까?
East of the sun- 그 책을 찾아야 할텐데.
그래야만 시베리아의 숲과 바이칼 호수를 더 잘 살펴볼 수 있을 터인데.
집 서재의 헌책 묶음들 다 뒤져서라도 찾아내야지.
젊은 날 잠 못 이루게 하였던,
러시아인 토스토에프스키,
시베리아의 자작나무 숲,
달아나는 기차,
‘기도의 의미를 알려면 가을의 바이칼 호수 앞에 나서라’.
이런 것들이 나를 러시아로 날아가게 하지 않았던가!
내 가슴에 담긴 기독교적 요소는
신교도적 교리가 아니라,
종교적 믿음이 아니라,
가슴 벅차게 한 유년기의 골목길 새벽 송가나
영혼을 끌어당기는 바하의 첼로 선율 같은 것임을
내 가족들에게 이해시키고 싶은 열망도 얼마간
가슴 한 모퉁이에 숨겨져 있었고...
러시아 여행길에
무엇보다 보고 싶은 것은
모스코바의 봐실리 성당의 황금빛 쿠뽈이 아니라
페테르부르그의 서구적 도회 풍경이 아니라
달아나는 기차가 그 속으로 사라지는 시베리아의 아득한 숲인 것을.
이 글쓰기 여행 후
이제는 젊은 날 ‘수평으로 안정된 두 눈’으로 평원을 내닫고
늙어서는 혼자 숲으로 들어가
자신의 삶이 원래 그 일부였었던 대지로 묵묵히 돌아가는
어느 아메리카 인디안 부족의사나이들처럼,
그렇게
내 삶과 마주할 수 있기를!
D) 글은 어떻게 시작하는가?
이 강연자의 경우, 글은 빈 백지
위에 예상치 못한 한 줄의 문장이 나타나면서 시작된다. 나의 손이 그 마술사이다. 손길 따라 글은 그 백지 위에서 스스로 자라 하나의 문단이 되고, 이어
더 큰 산문이 되고, 급기야는 큰 주제의 틀을 이루는 산문이 된다.
전에 바다에 대해 글을 쓰고 있을 때였다. 한 작은 바닷가의 들물
소리와 갯벌 냄새의 영감이 머릿속에 떠 오른 한 참 후, 두 손이
그것들에 호기심이 생겼다. 그래서 손은 그 영감에 어울리는
단어들 중 제 맘에 드는 것들을 골라 한 줄의 문장을 엮어 내었다. 그랬더니 그 한 줄의 문장은 스스로 숨쉬기를 배우더니 손 앞에서 길잡이가 되어 글의 길을 열어주었던 경험이 있었다. 그 한 줄은 순탄한 평지에서는 쉴 틈 없이 내닫고 ,험하지 않는 언덕에서는 부드러운 땅위로 새 길을 열어 나아갔다. 이어 바위와 잡목 투성이의 높은 야산에 이르러서는 제 스스로 곡괭이가 되어 앞길을 열어나갔다. 손은 처음에는 그 길잡이 뒤를 따르기가 여간 힘들지 않았다. 손이 그 한 줄의 글 뒤를 열심히 따르다가도 얼마 못가 숨을 헐떡이고 땅에 주저 않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그 길잡이 글은 저만치 앞에서 내 손이 따라오기를 기다려 주기도 했다. 그렇게 하여 하나의 의미있는 문단으로까지 자라게 되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히 남아있다.
손은 머리와 마음에 얽매이지 않는다. 항상 제 길을 간다. 손은 머리와 마음속에서 자라고 있는 잉태된 영감과 직감을 선별적으로 물리적인 단어와 문장으로 육화시킨다. 머리가 아니라, 마음이 아니라, 손 자신에게 익숙한 문장으로 둔갑시킨다. 손끝에서 그렇게 태어난 한 줄의 문장은 백지나 모니터 위에서 유기체처럼 자란다. 한 줄의 문장이 스스로 꿈틀거리며 두 줄, 세 줄로 그리고 일정한 시점까지 스스로 하나의 문단으로 커 나간다.
50의 나이에 이르러 나는 비로소 자신의 창작 산문, ‘구강의 바다’를 펴낼 수 있었다.
논문 형식의 글이나 번역작업의 굴레에서 벗어나 내면의 소리를 처음으로 쓰게
된 것이었다. 오랫동안 마음에 담아 둔 한
작은 바다의 밀물 소리와 갯벌냄새가 사유하는 손의 도움으로 종이에 담긴 글이 된 것이었다.
눈앞에 나타난 그 첫 글은 ‘... 내게는 늘 마음으로 그리는 바다가 있다.’이었다. 그 한 줄은 점점 자라면서 길이 있는 곳에서는 숨 쉴 틈 없이 내달리고, 험하지 않는 언덕은 부드러운 땅을 따라 새로 길을 내어 나아갔다. 그리고 잡목과 바위투성이의 높은 야산에서는 제 스스로 곡괭이가 되어 길을 뚫어내었다. 빠른 속도로 길을 내면서 나아갔다. 내닫는 글줄의 뒤를 내가 따르기가 힘들어 주저앉으면 그 한 줄의 글은 저만치 앞에서 나를 기다려 주었고 마침내 그 길잡이는 높고 험한 재에 이르러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곳에만 이르면 탁 트인 시야로 길 나서기가 용이할 것 같아 숨이 턱에 닿는 것도 무릅쓰고 그 위에 올라섰다. 맑은 공기부터 들이마시고 앞을 내려다보았다. 먼 전망은 정말 새로운 것이었다. 그런데 오히려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험한 산속의 연속이었을 뿐 길이 보이지 않아서였다. 거기서부터는 그 한 줄의 글도 더 이상 안내자가 아니었다
그때 화가 루오가 다음 글의 길을 열어 주었다. 어떻게 하면 내 자신의 마음에 드는 글을 쓸 수 있을까? 내게는 ‘어떤 글이어야 하는가?’라는 부단한 자문에 갇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헤맬 때, 그 화가가 길을 열어 주었다. 그림으로써가 아니라 한 마디의 단어, ‘예술은 열렬한 고백이다.’가 곧 길잡이였다. 나는 그렇게 하여 그 산문을 한 권의 책으로 완성할 수 있었다. <구강의 바다>에 이어 쓴 다음의 책들 중, 특히 「한 여행자의 플라멩코 이야기」는 특히 그렇다. 이 강연자의 첫 산문집인 <구강의 바다>는 그렇게 태어났다. 그 때는 루오가 글의 길잡이이었다. 그는 예술은 '열렬한 고백'이라고 말했다.
E) 참고의 글- <창동인불루5-그림이야기)
오늘의 주제인 <글은 무엇으로 쓰는가?)에는 이 강연사의 글 <창동인불루>의 사례를 중심으로 하였다. 이 글은 필자가 나이 60전후에 시작한 그 첫번째 단행본을 필두로 2017년 지금까지 13여 년간 다섯번째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그 다섯번째인 <창동인블루 5>-그림이야기-의 서문은 아래와 같다.
‘아래 ’
서문
<창동인불루5-그림이야기>는 제목이 말해주듯 필자가 마산의 창동에서 수시로 만나는 지역화가들과 자유롭게 나눈 대화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이른바 개인적인 '그림읽기'이다.
글 속에 허구의 인물들이 현실속의 인물과 함께 어울려 등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글은 겉으로 보기에 소설적 구도를 띠고있다. 그렇지만 등장인물들 마다 외형적으로 누가, 어떻게 생겼는지 등 인물에 대한 세밀한 묘사없이 그저 먼 풍경속의 흐릿한 인물들로만 그려져 있고, 글의 흐름에서도 짜임새 있는 구성이나 치밀한 전개과정과는 거리가 먼 글이기에, 그런 점에서 이 글은 한 묶음의 개인수필에 더 가깝다.
본문은 모두 4장으로 이루어져있으며. 제 1장으로 ' 기타리스트',
제2장으로 '술과 그림', 제 3장으로 '마적수', 그 다음 4장으로
'지난 날의 세화가들' 이 차례로 이어지고있다. . 그리고 각 장과 절마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위해 글의 서두에 주제와 연결되는 의미있는 어휘들(tags)를 한 데 모아 두었다.
이 산문집 시리즈의 첫 단행본인 <창동인블루>가 2004년에 처음
발간되었을 때 그렇게 명명된 데에는 탈고 시점에 필자의 눈에 띈 피카소의 '청색시대'(Blue Period)작품들의 그 우수어린 시적 분위기에 끌렸던 탓이었을 것이다. 이번으로 필자의 다섯 번째 그림이야기이 된 이 <창동인블루5> 역시 피카소의 이 청색시대의 작품 '기타 치는 노인'에 관한 이야기로부터 시작되고 있다.
필자는 이 글작업에서도 미국의 시인 애니 딜라드의 충고를 잊지않았다:
'페이지와 씨름할 때는 큰 숲을 머릿속에 두지마라.
글작업에 몰입하는 순간에 중요한 것은,
대면하고있는 글의 한 페이지, 한 페이지와
정면으로 씨름하는 일이다.
그 한 페이지의 문장의 집을 단어 하나 하나로
짓는 일이다.'
그 시인의 충고에 따라 완성된 글의 숲 전체를 미리 머릿속으로 그리는 것은 필자가 한가히 나서는 산책길에서의 일이었다. 참고로, <창동인블루>1,2,3,4에 대한 개별적인 요지를 차례대로 이 서문에 담았다. <창동인블루>의 이름아래 출간된 글의 흐름을 하나의 큰 틀에서 이어지고있음을 느껴보고 싶어서이다.
그 첫 단행본의 경우, 글의 요지로, 그 때 이렇게 피력했었다:
이 글은 간단하다. '화가들의 손이 경이로웠던 곡마(등장인물)의 그림감상이 글의 근간인 것이다. 그림 보는 게 삶의 큰 즐거움이었던 곡마는 지난 1년간 자신이 좋아하는 지역 화가들의 그림을 보고 느낀 상념이나 개인적 인상을, 자신의 마음에 두었던 수신자에게 안타깝게도 직접 보내지 못한 편지 속에 담고 있다.
2010년에 출간된 <창동인블루2>의 서문에 담긴 한 줄의 글은
이러하다:
근자에 이르러 학야(등장인물)은 창동으로 나들이 한 날은 그렇지 못한
날과는 달리 의미있는 날로 여겨지고있다. 창동골목길 어딘가에서 마음가는
이들과 함께 릴케나 밀란 쿤데라를 들먹이며 술잔이라도 나눈 날은
그렇지 못한 날에 비해 살아있는 하루가 되었다며 마음 뿌듯함으로
귀가 할 수 있었다.
그 2년 뒤에 발표된 <창동인블루3>의 서문의 한 부분은 또
이러하다:
이 글은 일종의 싯적 산문이다. 싯적이지, 단선적인 서술체의 글이 아니다.
'플롯이 아니라 ,개인적인 인상과 연상에 의해 움직이는 에피소드들이다.
주로, 창동 골목길 주변의 그림관련 사색의 개울이다. 창동화가들의
일상이나 그들의 작품에 대한 소곤거림이나 ,이웃화가들 사이의 사적인
속삭임이 담겨있고 , 모럴의 장벽 장벽 건너편 골목의 내밀한 속내도 언뜻
감지될 것이다.
뒤이어 2014년에 출간된 '미인도 화가 김대환'은 곧 <창동인블루>의 네번째 책이다. 세칭 한국화 화가인 창동의 김대환의 작품세계를 비평적 시선으로 담은 산문집으로 책제목을 그렇게 따로 부쳤었다.
*참고문헌으로는
주로 아래의 필자의 글을 참고하였다.
<구강의 바다>, <먼여행과 깊은 노래>, <플라멩코 이야기>, <과거의 우물>
<마술피리>, 그리고 <창동인블루>1,2,3,4,5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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