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읽기

창동인블루5 제3

jhkmsn 2014. 6. 6. 12:42

현재호​

 

현재호의 그림은 1980년대 후반을 전후하여 의미있는 변화를 보여준다.

이 시기를 깃점으로 그의 이른바  '창동의 마술사 시대가 열린다. 그 의미의 이미지?

그 이전의 어느 한 그림을 보면 화가 자신의 모습으로 여겨지는 한 인물이

외진 구석 한 자리에 몸을 웅크린 채 앉아 뭔가에 골몰하는 표정을 짓고있다.

이루어 짐작컨대, 그 땐 화가의 품에서 뭔가 어떤 영감의 알이 부화를 기다리고

있었던 시기가 아니었던가 싶다.

이 이후부터 감은 눈의 얼굴의 윤곽만이 그려지는 인물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더욱이 이 이 형상들은, 어미닭 품안의 병아리들 처럼 보호 받으며 서로

체온을 나누는 듯한 형상들이 그려진다. 그런데 그 감은 눈의 형상들이

그 이후 독립적인 개체로 성장하는 과정을 멈춘 듯해....

 

현재호는 자신의 그림에 대해 말할 줄 모른다.아니, 그 말은 논리적 질서의

굴레에서 아예 벗어난다. 그렇지만 그와 그림에 대해 대화를 나눌 때

그의 비논리적 표현에 거의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상상의

폭을 넓혀준다.

화가의 존재는 그의 말이 아니라 손에 의해 의미를 지니게 되는 탓인가?

회화란 감각에 조형적인 현실을 부여하는 조형언어가 아닌가

 

깊고 깊은 고요

흔들림없는  초연함의 빛

현재호 특유의 더늠,

그 임파스토 색채가,

보는이의 가슴을 후빈다.

 

탁하면서도 맑고,

거칠면서도 부드러운,

초연한 헐벗음의 아름다움.

그 페이소스.

 

 오래도록 가슴에 묻어둔 소중한 이가 

건널 수 없는 강뚝 저편에  나타나

 내게로 손짓하는 것처럼

 그렇게 마음 흔드는 그림들.

 

초현실주의적 이미지

논리성을 외면한 그의 시적 언어들:

 

 어느 여름날 잠시 천지를 흔들어

먹구름과 소나기로 그리고 햇살로 나를 만들어

땅위의 모든 슬픔과 즐거움을 만나게 하였다.....

그리고 어머니는 고기와 함게 나를 팔아버렸다....

나는 또 다른 나를 만들기 위해 안개속으로 사라진다....다시

어머니는 나를 안고있다.

" 고기와 함게 팔아버렸다."

 

 

인간의 세가지 속성- 세속성, 몽상성 그리고 창작성-중

화가가 시인에게는 창작성이 두드러집니다.

끊임없이 뭔가를 창작해가는 행위자입니다.

감상자로서의 청중이나 관객은 몽상적 요소가

두드러집니다. 수동적으로 창작품을 통해

쾌감을 맛보는 자들입니다.

세속인 역시 몽상성과 창작성을 지니고 있으니

세속성을 우선합니다. 현실의 삶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화가들 역시 위의 세가지 요소를 지니면서

세속성에서 탁월한 재능을 보이는 이들이 적지않습니다.

창작성 하나에 몰입하는 이들이 드뭅니다.

​그런 점에서 현재호는 몽상성이 특별히

드러나는 창작자 입니다.

보헤미언니즘이란 세속성에 대한 거부이자

기존제도에 대한 저항,레지스탕스입니다.​

 그런 점에서 현재호는 보헤미언입니다.

 Feeling that he has been cruelly treated by a fate

that was indifferent even to questions of life and death,

he has adopted a posture of resignation...

His effort to oppose the fate which drives him to the end of the cliff 

or his ultimate sense of resignation ,is expressed with exceptional

vividness as a rylicism of pathos in his painting. 

 

그의 조형 언어는 통속적이되 속되지않으며,

일상적이되 피상적이지않다

 

3.?

발표자에게 그림은 비평적 분석의 대상이 아니라

화가의 자유로운 몽상이  구현된 물질적 존재이다.

필자는 음악을 즐기듯, 시를 즐기듯 그렇게 그림을 즐긴다.

그림이나 조각은 물질이면서 정신이고,

형식이면서 동시에 내용임을 맛본다. 

그것들은 개별적이고 국지적이고 독특하지만

동시에 보편적인 증인이기도 하다.

발표자는 미술비평가로서가 아니라 시적 산문작가의

시선으로 지역의 미술을 읽고 있다.

한국미술사의 한 측면으로서의 지역미술을 관찰하고있음이 아니다.

보들레르처럼가 채색주의자 들라크로아에 대한 감동을 글로 표현했듯이,

시인 릴케가 세잔느에 대한 경외감을 일상의 편지의 글에 나타냈듯이,

시인의 시선으로 지역화가들의 그림 앞에 서 있었다.

시인 릴케는 세잔느의 그림 앞에서

'화가의 푸른 영혼의 불꽃'을 보았습니다.

그의 작품을 통해 캔버스 앞에 앉은 화가의

 대상의 본질을 추구하는 순수한 탐미행위의 구현을

느꼈습니다.

시인 보들레르는 드라클로아의 색채화 앞에서

삶의 비극적 요소가 주는 처연한 아름다움에 전율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 전율감을 자신의 고유한 단어로

시적 산문의 글을 였었습니다.

보들레르는 1946년의 들라클로아의 그림전을 두고

단순히 그의 그림을 해석하고있는 것이 아니라​,

현대미술에 관한 보들레르 자신의​ 낭만주의적 정의를 내리고있다.

즉, 주제의 선택이나 그것의 전확한 진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느끼느냐 하는 그 방법에 있었다.

​필자는 보들레르의 그런 낭만주의적 상상에 공감한다.

이를 테면,필자에게 그림은 비평적 분석의 대상이 아니라

화가의 자유로운 몽상이  구현된 물질적 존재인 것이다.

필자는 음악을 즐기듯, 시를 즐기듯 그렇게 그림을 즐긴다.

그림이나 조각은 물질이면서 정신이고,

형식이면서 동시에 내용임을 맛본다. 

그것들은 개별적이고 국지적이고 독특하지만

동시에 보편적인 증인이기도 하다.

램브란트의 성화는 성서이야기를 먼저 생각하게되니

성화의 화면상의 이미지와 그 밑에 깔린 내용을

읽으려는 도상학적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오늘 우리들 지역작가5인의 경우,

작가의 심리적 요소를 감안하여 그림 앞에서

선 관찰자는  화가의 심리를 탐색하기보다  그림을 매개로

자신의 자유로운 상상력​ 상상력을 펼치게 되는 것이다.

이 발표자의 자세도 그런 것이다.​

​즉, 그림과 관련하여, 먼저 시를 생각합니다.

한편의 시가 흰색의 종이위에 배열된 단어의 묶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라면, 모리스 드니가  주장한 대로,

그림도 역시 우선에는 평범한 표혐에 질서있게

배치된 색면으로 보여지게 된 것이다. 그림이 가지는

일차적인 임무는 설명이 아니라 그 표현력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색채를 통해 사고의 자유로움을

충분히 표현해낼 수 있다.  

 

형태의 정신, 형태의 생명의 큰 틀을 비탕으로?

'예술은 고양된 마음에서 일어나는 도취이자 두려움이다.​

예술의 생성은 사랑의 생성과 마찬가지로 가뭇없이

사라지기 쉽다. 하지만 사라지기 쉬운 그 생성의 과정은

완성된 상태보다 훨씬 더 매혹적이다. 창작행위는

육체에서나 정신에서나 가장 사정적이며, ....우리의

정신적 에너지를 끊임없이 샘솟게 하는 것이다.

 

발표자의 경우 글의 형식을 찾는 쉼없는 긴 여행이었다.

나는 어떤 형태의 글이  내게 어울릴까 하며 스스로에 던지는

물음이 그것이었다.​ 베토벤을 들으며 베르메르 그림의 신비한

눈빛을 보며, 때로는 바흐만의 싯귀를 읽으며

던지는 그 물음!

 

4.내게 화가의 손이 있다면!

 

빛이 색채보다 더 마음을 끌 것이다.렘브란트나 고야의 그림에서처럼.

그리고 중요한 것은 주제가 아니라 주제의 마비임을 깨닫다.

반고호의 그림을 대할 때처럼.

중요한 것은 주제를 관통하는 것, 숨겨진 것임을 깨닫다.

추억, 되찾은 향기, 감각 빛 같은....돌을 따뜻하게 덥히던

햇빛, 골목길의 어떤 외침, 물결에 흔들리는 향기 머금은 바람!

 

회상속의 대상에 대한 추상의 심화과정이

화폭에 담길 듯.

여명의 바다,

마의 산

바둑이

등등

*순수추상과 대상의 추상화 대비할 것

 

추상의 그림에는 대개 두 갈래의 방향이 있습니다.

현실에서 그 출발점을 찾는 추상이 그 하나이고,

이와는 달리, 현실과의 그 어떤 불완전한 관계도

끊어버리는 서정적인 비약을 추구하는 경우도 있고요.

남정현의 이 추상화는 후자의 경우로, 그림의 형태,

리듬, 색채를 오로지 화가 자신의 내부에서 떠오른

영감을 따라 그렸으리라 여깁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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