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인 창원 지역 미술인들에 대한 사색
-창동인블루 5-
1. jhk의 그림읽기
오늘 주제의 대상으로 삼은 지역의 5인예술가는
김영종, 문신, 윤병석, 현재호 남정현입니다.
앞쪽 두분은 이 고장 출신 조각가로 지역성을 벗어난 이들입니다.
이 두 조각가의 경우, 한분은 '포시옹의 손의 예찬' 이전의
예술가인 반면, 후자 문신은 그 '손의 예찬'시대의 장인이다.
전자가 문인화가풍의 추사를 연상케 하는 조각가로 '사유의 존재'라면,
후자는 화업에 대한 자부심 강한 르네상스 화가풍의 장인이다.
앙리 포시옹의 '손의 예찬' 에 합당한 장인이다. 즉, 조각가나 화가에게는
특별한 사유하는 손이 있다는 뜻이다.
전자는 삶이 무엇인가에 대해, 또는 '존재의 아름다움'에 대해
철학적 사색자로서의 예술가였다면 후자는,
예술가로서의 삶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머리로서는 이따금 생각하였으나
그 이루어지는 과정은 전적으로 손에 맡긴 전형적인 르네상스적 장인의
삶을 살았던 인물이다.
전저에게는 손의 기능을 귀하게 여겨지 않은 추사 김정희의 선비적 기질이
연상된 반면, 후자에게는 김홍도 겸제 정선의 현대주의적 삶이
연상된다.
그리고 다른 3분은 이 창동지역에서 살며 그림을 그린 화가들로
필자가 산문작가의 시선으로 그들의 만년을 지켜 본 화가들입니다.
제 나이 70에 이르른 지금 '그림읽기'란 제목아래
여러 화가들, 그림애호가들과 마주하기위해
마음의 호주머니 한 쪽에 접어 넣고 나온 것이
있습니다. 라이나 마리아 릴케의 아래의 '한마디' 글이
그것입니다:
한줄의 글을 쓰기 위해서
많은 도시, 많은 사람, 많은 책과 만나야 한다.
그리고 반짝이는 별들과 함께 덧없이 사라지는
무수한 '여로의 밤'을 회상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자리에 선 지금 숱한 도시들이 눈에 아른거립니다.
이 도시, 저도시에 만난, 잊혀지지 않은 얼굴들이
새삼 떠오릅니다.
만일 천국이 있다면 그곳은 아마 거대한 도서관일꺼야
라고 한 바슐라르의 중얼거림이 떠오릅니다.
예술이란 열렬한 고백이라고 한 루오의 한마디가
떠 오릅니다.
송창우 시인이 우리들에게 처름 소개한 '시와 자작나무'에 담긴
시베리아의 눈 덮힌 자작나무 숲이 떠 오릅니다.
필자는 보들레르가 그랬던 것처럼 대상으로서의 그림을 논하면서
동시에 자신에 대해 많은 것을 들려주고있음을 뒤늦게 발견합니다.
객관적 대상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들려주고 싶어함을!
지금 바하의 선율들이 마음에 흐르고 있음을 느끼며
이 지역에서 자란 탁월한 2인의 조각가를 사색합ㄴ다.
현재호 남정현 윤병석등 제게 인간적으로 친숙했던
지역화가들을 사색합니다.
창동인블루 3부작을 통해 그림을 감상했던
지역화가들, 특히 경남여성작가회원들의 그림을
사색합니다.
그리고 jhk의 '그림읽기'는 그 사색의 대상인 작품평으로서의
글이 아니라 그 대상과는 별개의 독립된 산문작입니다.
그것은 들라크로아의 그림을 글로 표현한 보들레르의
산문이 스스로 독립된 작품이듯이,
세잔느에 대한 릴케의 사색의 글 자체가
하나의 독립된 시적 산문체와 같습니다.
미술품 대상으로부터 독립된 산문체의 글입니다.
스스로 하나의 예술품이기를 하는 마음으로
쓴 글입니다.
읽
2. 화가들 사색
지역예술가들 섭렵중 조각가 김종영과 문신 앞에서 발길을 멈추다.
김종영의 문인화가의 길을 고수한 추사풍의 미의식과
문신의 현대적 사고속의 당당한 자의식.
김종영
*근대와 만난 미술과 도시 페이지 96
김종영(1915- 1982)은 미술작품에 품격이 있어야하고
그 품격은 미술가의 인격에서 나온다는 의식을 가진 작가였다.
그는 동경미술학교 조각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교수를
지냈던 작가였다. 그는 고희동과 마찬가지로 작품 자체를
생업으로 삼기보다 정신을 수양하는 방편으로 삼았다.
그가 '무엇을 만드느냐는 것보다 어떻게 만드는야에
열중'하였던 것은 작품의 결과보다 창작의 과정과 태도를
중시하였음을 의미한다. 이는 전통시대 선비화가의 태도와
같은 맥락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김종영은 '누구를 위해서 작품을 제작하느냐고 물었을 때,
진실한 예술가라면 자기 자신을 위해서라고 말할 것이다',
혹은 '겸양과 용기와 미덕을 길러주는 것은 오직 제작의 길뿐'
이라는 언급은 그의 미술가로서의 의식세계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짐작컨대, 그는 추사의 글이나 그림에 매료되었겠지만,
오원 장승업의 그림을 보았을 때 큰 감동을 받았을 것 같지않다.
그는 손으로 작품을 창작하는 예술가로서보다
손재주를 그렇게 탐탁하게 여기지않는 미의 사색가로
여겼을 것 같다.
...자신의 의식세계를 조각작품으로 드러내기에 번거러울 때
간편하게 드로잉으로 남겼던 것ㅇ로 여겨지며,
담채화인 드로잉은 수묵담채화의 분위기를 띤다.
....
김종영이 주로 돌이나 나무같은 단단한 재료를 주로 다루 ㄴ것에서도
ㄱ의 자아인식을 드러낸다. 보른즈 같이 다른 사람(기술자)의
작품을 제작하기보다 돌이나 나무를 직접 깎거나 쪼아 가면서
완성하는 작품을 선호하였는데 , 이는 작품 제작 과정 자체를
중요시 하였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돌이나 나무를 다듬어 가는 것은
자아수련의 방편ㅇ로 , 작품 제작의 목적이 '완성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과정'에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선비가 붓글씨를
쓰거나 사군자를 치면서 자신의 인격을 수양하엿듯이
그는 돌이나 나무를 쪼거니ㅏ 다듬는 과정을 통해서
인격을 수양한 것이다.
흔히 '不刻의 미'라는 표현으로 김종영의 미의식을 언급하는데,
이는 완성에 대한 작가의 무관심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김정희에 이어 김용준이 손재주와 기교에 대해 거부하였듯이,
지나치게 다듬어 완성된 표현은 인위적이고 장인적인 것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그가 추구한 조형세계는
순수예술세계이다. 목적론적인 것을 거부하고 순수한 미술셰계를
지향하였는데, 이 것의 궁극적인 목적은 참선처럼 자신을
다듬는 작업이었다.
그가 추상조각을 제작하엿기 때문에 그를 최초의 '모더니스트'
라고 평하기도 하지만, ...'불가의 미'나 '기교가 치졸하면
할수록 맛이 진진한 것'이라ㅏ는 주장은 기술적으로 다듬는 일에
관한 거부이며, 이는 '단순하고 소박할수록,그리고 내용과 정신은
풍부할수록 좋은 것이라는'문인화가의 주장과 상통한다.
不刻의 미, 손재주의 기교에 대한 거부의식.
지나치게 다듬어 완성된 표현은 인위적이고 장인적인 것이라는 뜻.
자연대상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기보다 간결하게 표현하는 추상양식이
그의 기질에 잘 맞아.
'단순하고 소박할수록, 내용과 정신은 풍부할수록'이라는 문인화가의
기풍.
경상남도 창원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서울의 휘문중학교를 거쳐 동경미술학교에 유학,
조각을 전공하여 1941년에 졸업하고 이어서 연구과도 수료하였다.
1946년에 서울대학교 예술대학에 미술학부가 창설될 때 조소과 교수가 되어
1980년에 정년퇴임할 때까지 근속하였다.
1950년대의 작품들은 여인상·모자상 등을 소재삼은 구상(具象)이면서
표현적인 형상성에 치중된 것이었다. 그러나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는
추상적인 순수조형작업으로 기울다가 그 경향으로 완전히 전신하여,
나무·금속·대리석을 재료로 한 단순하고 명쾌한 형태의 작품조각으로
독자적 내면을 실현시켰다. 그 조형적 특질은 구성적이며 공간적이고,
혹은 유기적인 생명감을 가지는 다양성을 이루었다.
그는 작품 제작에 기교에 대한 지나친 의존을 경계하엿다는 지적에 대해?
일각에서는 그림이나 조각에 기교가 필수적임 주장한다.
수련기간은 길고 어려우며, 결코 끝나지않고....기교는 여전히 충분하지
못합니다. 영감의 내부에 있는 무엇인지 모를 것에 대한 명상과 감수성과
지적인 전환이 필요합니다.
작품에서 작품으로 이어지는 기교와 삶을 통해서 예술가의 성격과
개성이 천천히 나타납니다.
화가, 또는 예술가가 자신이 좋아하는 다른 예술가의 영향에 힘입어
스스로를 발견하는 장소는 다름아닌 작품 속입니다.
예술에서 자연발생적인 세대란 없읍니다.
마티스가 말했던가요? 모든 영향을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하며
중요한 것은 잘 소화시키는 일이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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