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신
1940년대의 자화상은 미술가로서의 확고한 신념과 자부심의
표현이다. 그 대표적인 자화상은 조각가 문신의 것으로 붓을 들고
이젤 앞에 앉아서 관객과 시선을 마주하는 화가의 이미지.
입을 꽉 다물고 우리를 바라보는 날카로운 눈매에는
미술가는 '비범한 존재'라는 자의식이 담겨있다. 도불 이전
그에게 미술가로서의 불굴의 도전의식이 있었음을 느낄 수
있는 자화상이다. 브랑쿠지의 본질 탐구에 영향을 받은
그의 추상 조각중 은빛의 철제 추상조각은
작가의 형태미 추구에 앞서 그 은빛 추상조각을
마산 앞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추산공원 언덕에
위치시킨 것의 믜미를 이해할 것.
그 은빛 조각상에 담긴 고향의 바다빛을 작가는
상상하며 은제 조각상을 제작했을 것
다음으로 현재호, 윤병석, 남정현의 그림을 주제로
현재호-이성관의 소개로 그를만난 후 의식적으로
창동에 정착하기,
윤병석- 함안 문화센터 관장재직 시기 플라멩코 공연
남정현- 마산 창동 김진숙 건물 5층 화실을 그에게
양보, 마산상고에 그의 1967년 작 추상화 한점 기증한
인연
남정현
*화첩집 참조요
작품: 어느 화가의1967년
추상의 그림에는 대개 두 갈래의 방향이 있습니다.
현실에서 그 출발점을 찾는 추상이 그 하나이고,
이와는 달리, 현실과의 그 어떤 불완전한 관계도
끊어버리는 서정적인 비약을 추구하는 경우도 있고요.
남정현의 이 추상화는 후자의 경우로, 그림의 형태,
리듬, 색채를 오로지 화가 자신의 내부에서 떠오른
영감을 따라 그렸으리라 여깁니다. 문득 황금빛 연이
솟아오르는 높푸른 하늘을 머리속에 그려봅니다.
윤병석
그의 화첩을 펼쳐보며
평소 은빛 장발의 멋스런 외모의 윤병석 화가는 회화의 재료를
창의적으로 선택하였을 뿐 아니라, 그림의 형식을 통해 아름다움을
표현하려고 애쓴 탐구적 예술가였다. 조개껍질을 자신의 모자이크
회화작품의 테세라로 활용한 점은 화가로서의 그런 창의정신을 잘
나타내준다. 비잔틴 미술의 분위기를 띤 모자이크 회화의 대상인물로
기독교적 성자나 성모상 대신 한국의 전통적인 여인상을 등장시킨 점
역시 그러하다.
그에게 그림의 형식은 주제 이상으로 중요하였던 것
같다. 그의 그림들 속에는 인간의 내면에 대한 성찰적 표현 보다
탐미적 형식이 더 현저하게 나타나 있다.주제로서의 인물이나
자연의 대상을 사실성에 충실한 구상으로 그려내기보다 ,자신의 조형적
감각에 순응하여 입체적으로 또는 추상의 형태로 이 대상을 데포르마하는데
주저하지않았다. 이 경향은 자신의 모자이크 회화 작업이후이래 줄곧
이어졌었다.
그의 추상은, 대부분의 추상화 화가들이 그러한 것처럼,현실속의
대상이나 자연이 그 출발점이 되고있지만,어떤 경우에는 현실과의
그 어떤 불완전한 관계도 끊어버리는 서정적인 비약이 캔버스위에
선의 흐름이나 단순한 기하학적 형태 또는 색채로 나타나는 추상의
경우도 있었다. 그의 두 형태의 추상-이성적인 차가운 추상과 감성적인
뜨거운 추상-이 그런 것이다. 요컨대,그는 같은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아니라, 무언가 새로움을 추구하는 도전적인 예술가로 살고싶었던 것
같다.
조개껍질 모자이크 페인팅
윤병석 교수( 전 창원대학교 예술대학 학장)은 주변에서 흔하게 발견되는
조개껍질을 자신의 모자이크 테사라로 활용하여 제작한 shell mosaic painting
으로 국내적으로는 말할 것도 없고,유럽의 비엔나, 미국의 뉴욕, 뉴저지 등
세계 여러 곳에서도 주목을 받은 화가이다. 전통적인 중세의 모자이크 회화라면,
일정한 규격과 두께의 테세라로 제작된 것이 일반적인데 비해,
윤병석의 모자이크 작품은 색깔,크기, 두께가 제각기 다른 자연상태 그대로의
조개껍질이 주 재료로 사용되어있어 작가의 창의적 개성이 두더러지게
나타나 있다. 현재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의 한국영사관에 소장되어있는
작품 Meeting 1(1996년 제작 122x232cm)은 UN Environment Programme의
국제본부로부터 자연친화적 작품으로 선정된 그의 대표적인 shell mosaic
painting 이다.
1997년 뉴욕타임즈는 1월 5일자 일요판에 이 사실과 함께 그가 미국의
뉴저지 주립대학에 초빙교수로 머물며 자신의 조개껍질 모자이크 회화
기법을 학샏들에게 강의하였다고 보도 한 바 있었다. 이에 더하여
한국의 동아일보에서도 2008년 3월 24일에 '미 홀린 모자이크회화의 美'라는
제목아래 그의 조개껍질 작품을 소개하면서 , “조개껍질 모자이크 회화는
원시와 현대, 서양과 동양, 평면과 입체, 구상과 추상이 하나의 틀 속에
형성되는 오케스트라” 라고한 작가 자신의 표현을 덧붙여 보도 한 바도
있었다.
윤병석 화가의 고향, 경남 함안의 함안예술관에 전시된 그의
다른 모자이크 작품 앞에서 필자는 첫 느낌에 중세의 비잔틴 회화인
<성모> 상을 연상한 적이 있었다. 기독교적 분위기가 담긴
그 작품의 단순 명료한 형태감이 그런 연상을 불러 일으켰으리라.
윤화가의 의 부인 김혜경에 의하면 ,마산의 앞바다와 강원도 해안에서
회화재료로 어렵게 모은 그 조개껍질 마다 그녀의 정성스런 손질아래
말리고 닦는 과정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었다고 하였다.
필자의 눈에 비잔틴 미술을 연상케 한 그 모자이크화는 그림속의 인물이
성모나 성스런 존재의 이미지가 아니라 한국의 전통적 여인상이라는 점에서
그의 창의성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형식은 중세의 비잔틴 미술기법이나
그 속에 담긴 주제로서의 대상은 전통적인 한국의 여인상이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 그림은 얼핏 전통적인 것과는 다른 특성의 비잔틴 그림인
<춤추는 소녀>를 연상케 하였다. 칠보에 금으로 새겨진 비잔틴 기법의
이 작품 <춤추는 소녀>는 이제껏 보아온,시간을 초월한 성상들과는 달리,
실제로 살아있는 여성을 모델로 한데다 황금색 배경과 후광이 사라졌고
자연광을 받고있는 것처럼 생동감과 사실성이 돋보이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필자가 윤병석의 그 모자이크 그림에서 그런 비잔틴 미술을 자연스럽게
연상한 데는 아무래도 그가독실한 천주교 신자임 잘 알고 있었기에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그의 모자이크 작품들을 보고있노라면 , 아름다움이란
가시적인 순간의 형상이 아니라 비실재적 본질에 담겨있다는 플라톤적
이데아를 사색케 한다.
추상의 그림들
윤병석의 추상화 '바다풍경' 한 점이 한동안 필자의 서재에
걸려 있었다. 그 그림은 제목과는 거의 무관하게 보이는
비재현적 추상화이다. 삼각형이나 직각, 예각의 사각 또는
색점등 다양한 기하학적 형태의 작은 색 쪼각들이
,전체적으로 연한 바다 빛이 주조를 이루는 가운에,
기품있게 어울린 비재현성의 유화이다. 작은 실내 공간에
어울림직한 이 소품은 액자 뒷면에 화가가 연필로
휘갈겨 쓴 학야의 이름과 화가의 서명이 있어
학야에게 특별히히 소중한 그림이었다.
이 추상화는 비형상적이고 기하학적이다. 선과 선이 만나
이루는 기하학적 형태나 그 색채에 탈회화적 의미나
군더더기가 없다. 실재나 현실을 그림에 옮겨놓을 필요를
느끼지않는다는 회가의 의식이 깔려있다. 다양한 색채와
직선들의 만남이 이루는 기하학적 형태는 생태학적 질서와는
무관하다. 함안 문화센터의 그림 전시장에서 본 그의
'세레나데'라는 제목의 추상화 한 점도 , 학야의 눈에는,
자연의 형상이 아닌, 기하학적 형태의 그림이었다.
그의 추상화는 색채는 따스하나, 형태는 사색적이다.
한마디로, 감성이 절제된 지적 작업이다.
통상적으로 우리들이 어떤 회화작품을 볼 때 대개의 경우
그 작품 속에서 무엇인가를 닮았고, 또 눈으로 알아볼 수 있는
형상들을 우선 찾는다. 이를 테면, 풍경화를 앞에 놓고는 하늘이며
바다며 산 등등 우리들의 시선이 익은 자연의 한 모습을 찾아보고
, 초상화 앞에서는 그 모델과의 연관성 없이는 작품 감상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다. 요컨대 회화작품은 무엇인가를 닮아야 한다는 것이
회화 작품을 대하는 일반인의 뿌리 깊은 관념이다.
추상회화를 대할 때 그림에 대한 기성의 관념, 즉 그림이 무엇을
닮고있다는, 그래서 이해가 간다는 관념의 틀을 뇌리에서
걷어내라는 권고를 받는다. 요컨대, 한 회화작품이란 무엇을 닮고 ,
닮지않았고의 문제 이전에 그것이 색채와 선과 형태의 조화로 이루어진,
그것만으로 족한 하나의 전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추상화를 예견한 모리스 드니의 이른바, 한폭의 회화란 군마라던가,
나부라던가 어떤 일화이기 전에 색채로 뒤덮힌 2차원의 평면이라는
말을 기억하자!
만약 내가 그림을 그린다면 어떤 그림이 될까?
모르긴 해도 윤병석의 추상화는 닮지못할 것 같아
그의 추상화는 균형과 절제가 돋보여.
조화가 생명인 고전적인 분위기에 어울려.
색채감은 낭만적이지만
흐트러집없고 엄격한 형태를 지닌 그의 추상성은
아무나 쉽게 흉내낼 수 없어.
내게는 그림의 선이 모호한 박석호의 인상주의적 분위기가
더 어울릴거야.
아니면, 유트릴로의 사실성의 도시풍경도 적합할 것 같고......
그의 생전의 마지막 작품전
2012년 가을 상공회의소 갤러리에서 윤화백의 작품전이
열렸을 때 였다. 전시된 그의 작품들이, 필자의 눈에,
이전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색채감이 두더러지게
매혹적이었다. 윤병석의 그 만년의 작품전에서 발표자가 느낀 것은
그의 현저히 눈에 띄닌 색채감이엇습니다.
지금 머리에 남는 것은 그 날의 작품들의 형체가 아니라
누길을 끄는 미려한 색채감이었습니다. 대개 'dessin(데상)'이라 하면
대상을 포착하는 이른바 자연주의적 자세를 드러낸 것이라면,
'색채'는 정신적인 것으로서 끔꾸게 하며 피안의 세계를 몽상케하는
낭만주의적 성향의 표현이라던데, 아마도 칠순의 후반에 든 그의
깊어진 정신세계가 드러난 작품전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때 전시장에서 발표자는 호기심이 동하여 윤병석 화백과
아래의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이번 작품들은 특별히 좋은 물감으로 그렸나봐요.
그런거지요?
-아니, 평소의 물감을 썼는데.
-아니면, 요즘 야수파 화가들에게 경도되기라도 했던가요...
-아니, 왜 그러시는데?
- 작품들이 전에 비해 원색감이 깊어서 그래요.
마음에 느껴지는 색채가 더없이 밝고 거침없어요.
색채들마다 티없이 신선하고.... 더욱이 윤화백은
기독교인으로서의 삶이나 화가로서의 삶이
굳건한 반석위의 것이었을 터이니.
그래서 그런지 지금의 그림엔 행복감이 절로 붇어나는데요
- 학야의 눈에 그렇게 새롭게 비쳐진다디,듣기 좋은데요.
그렇지만, 노래하는 자가 꼭 행복한 것은 아니지요.
-.......(만년의 삶의 무엇이 작품의 색채를 유려한 빛으로
충만케 하였을까?자신의 암투병을 내색하지않으면서 혼자 이 싯점에
화가로서의 지난 삶 에 대한 회상이 더욱 선명하게 심안위에
되살아났으리라. 그리고 기독교인으로서 지금까지의 반석위의
삶의 구도가 홀연히 흐르는 강물위의 것인 것처럼
덧없게 느껴지기도 한 것인가.)
그리고나서 얼마 후 불현듯 그의 끝말- 노래하는 자가 꼭
행복한 것은 아니지요-이 떠올라 혹시 그가 당시 자신의
치명적인 신체적 상황을 알고있었던게 아닌가, 그리고
그 작품전이 그로서는 마지막일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있었던게
아닌가 ? 그래서 그런 삶에 대한 깊고 투명한 사색이
그런 유려한 색채에 어떤 영향을 미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와는 달리 윤병석은 당시에 자신이 암을 앓고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른 채 그 작품전을 준비해고 있었다니
필자로서는 궁금하였다. 평소 필자의 눈에 비친 것은
색채가 아니라 형태였었다. 얼핏, 유럽의 중세 비잔틴 양식을
연상케하는 그의 조개껍질 모자이크 그림들, 특히
박수근의 전통적인 한국 여인상이 연상되는 모자이크화,
그리고 현대적 추상의 형태 등이 시선을 멈추게하엿지
그의 마지막 전시회에서 처럼 밝고 유려한 색채의
세계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고 박수근의 분위기화열풍분위기의 가
한 마디로 필자의 눈에는 이전의 그의 작품들은 주로 형태와
소재에 대한 사색의
표현들이었던 것이다. (*구체적 사례추가 요).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