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산문

r창인블5-1-1

jhkmsn 2017. 1. 24. 10:50

          창동의 기타리스트



이 흐느끼는 여섯줄의 기타.

길잃은 영혼의 흐느낌이

그 둥근 입을 통해 흘러나오고

타란툴라 거미처럼

그 검은 나무물통 안에 떠도는

한숨을 가두어 둘 큰 별 하나

지어낸다

-가르시아 로르카-

 

* (주-영문 참조)

'The six strings'

The guitar makes dreams weep.

The sobbing of lost souls

escapes through its round mouth.

And like the tarantula

it spins a large star to trap the sighs

floating in its black wooden water tank.

- Garcia Lorca-



                1.


창동 골목, 피카소의 청색시대, 엘 그레코,박세원, 호세 카레라스, 기타리스트 세고비아,

현대서양미술사, 창동갤러리, 가르시아 로르카,

      


마산의 도심 창동의 한 골목길가에 지난 세대의 지역화가들이 드나들었던

주점이 지금도 문을 열고 있다. 입구가 양지쪽으로 나있어 낮에는 햇살이,

그리고 밤에는 달빛이 그 좁은 가게 안으로까지 들어오고, 실내 한쪽 벽에는

그 곳을 제집처럼 드나들었던 술꾼 화가들의 얼굴들이 담긴 바랜 사진들이

다닥 다닥 붙어있다. '만초'가 곧 그 카페겸 주점이다. 초가을의 어느 날 저녁

이 곳으로 인문 일행이 들어섰다. 주인 조남융은 반갑게 인문의 일행을

맞이하며 먼저 인문에게 말을 건넸다.

"어서 오세요. 어제 인문에게 전화한 건, 발걸음이 뜸해 궁금하기도 하고,
이 골목의 악사 늙은이 소식도 전할 겸해서였다오.어제 저녁 그 기타맨

또 왔었다오. 아니나 다를까, 큰소리를 지르고 급기야 옆자리 손님에게

시비까지 걸기에  참다못해 쫒아냈었지. 뭐, 술이 좀 과하면서부터 였지만

큰 소란은 아니었어요. 처음엔 기타 몇 곡으로 여러 손님들의 귀를 붙들었지.
단골 한분이 호기심으로 보이며 시킨 페티김 노래- 그 곡 이름이 뭐더라-를
애뜻하게 들려줘 박수와 앵콜을 받기도 했었습니다. 그 친구, 모르긴 해도

세월이 흐르면 이 골목에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전설이 될걸요 아마. "
인문이 이에 맞장구를 쳤다.

"그 기타맨이 또 그러했었군요. 그렇찮아도 오늘 쯤 들릴 참이었어요.

윤용화백과 여기서 만나자고 했고, 음악을 좋아하는 정인선화가도 이 곳에

대해 궁금해 하던 터라 이렇게 느긋한 마음으로 나타났습니다."

만초집 주인이 다시 말을 이었다.

"인문! 그 친구는 어디 일정한 거처도 없고, 가족도 없는 것 같지만

그의 기타소리 하나는 듣고 있으면 코끝이 찡해져요든. 무기교의 음색에다

음색은 가을하늘 같이 투명하고 티가 없어요. 솔직히 음악을 자주 듣는

나도 그의 기타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홀려요. 그 기타맨을 들먹이니,

저 벽위에 걸린 아래의 피카소의 그림 ' 늙은 기타리스트'의 복사품 쪽으로

눈길이 가요. 저 기타리스트를 보면 어김없이 그가 떠올라요. 저런 몰골에서

어찌 그리 티없는 소리가 피어나는지."


The Old Guitarist

Pablo Picasso
Spanish, 1881–1973
The Old Guitarist
Late 1903–early 1904

'늙은 기타리스트'-나뭇가지처럼 늘어진 길고도  앙상한 손가락, 누더기 옷 사이로

드러난 뼈만 남은 어깨, 더 낮아지기 힘들 정도로  숙인 고개, 고달픈 삶의 상징같은,

힘줄이 새겨진 목 그리고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듯한 표정....

그 그림을 보는 이라면 , 누구라도 그 차가운 화면 색조와 그림속의  늙은 악사의

체념적 모습에서 어떤 시적 우수를 느끼게 되리라.

'기타치는 노인' (The Old Guitarist)는 피카소가 젊은 시절인 1903년 에서 1904년  

사이에 그린, 이른바 , 청색시대(blue Period)의 회화작품이다.  

1901년부터 1904년 사이의 이 '청색시대'에 피카소는 주로 검푸른 색이나 짙은  

청록색의 색조를 띤 그림을 그렸다. 그 당시의 친구 카를로스 카사케마스

(Carlos Casagemas)의 자살에 받아 엄숙한 색깔을 선택하며 사회적 소외자인 매춘부,  

거지, 유랑 극단 가족, 알코올 중독자와 같이 음울한 소재를 대상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는 훗날 "나는 카사게마스의 죽음을 알고부터 푸른색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라고피카소는  회상했다.  

당시의 모더니즘(Modernism) 안상주의(Impressionism), 후기 인상주의

(Post-Impressionism) 그리고 상징주의 운동이 통합된 소위 표현주의  

(expressionism) 추세가, 그리고 이에 더하여, 17세기 말기의 그리스 태생의  

스페인 화가, 엘 그리코( El Greco)의 매너리즘적 요소가 그의 작품 스타일에  

크게 영향을 입혔다. 엘 그레코라면, 강하고 대조적인 색채로 길쭉하고 뒤틀린

비정상적인 인물의 종교화와 초상화를 주로 그린 화가였다. 그레코는 후기로

갈수록 육체를  극단적으로 길게 일그러뜨린 그림을 그렸고 환상적인 배경처리를

사용하면서도  인물들의 뛰어난 성격묘사를 통하여 자신의 독특한 개성을 발휘하였다.

엘 그레코는 렘브란트와 더불어 위대한 화가였다고 피카소가 회고한 적이 있었다.

                        

" 그 기타맨이 그 동안 혼자 여기를 드나 들었었군요. 이곳 만초가

마음에 들었든가보죠. 하기야 그는 창동 이곳 저곳 기웃거리지않는

곳이 있어야지. 스페인의 세고비아가 독학으로 유명한 기타연주자가

되었다며 자신도 그 연주자처럼 되고싶어 지금도 그저 기타만 친대요."

"그 친구에게 그런 면이 있었군요.그는 우리 가게에 오면 꼭 저 그림 사진

앞 자리에 혼자 앉아 찬 맥주를 시켜요. 한 때 용접공으로 일한 적이 있어서

지금도  그 사람을 용접일로 이따금 불러주는 데가 있는 모양입디다.

그의 본심은 소심하고 맑은 것 같아요. 우리집에서 여지껏 외상 술을 마신

적이 없는 걸요. 문제는 올 때마다 늘 취해서 나타난다는 것이지요.

자리에 앉아 한동안 혼자 술에 취한 채 기타를 만지며 한 두곡 켠 후에는

주변 누군가의 곁에 들어붙어 지치도록 중얼거린다는 점이지요. 그러다가

혼자 고함을 치고 ....."


초저녁 창동의 만초집에 인문의 일행 세 사람이 예고없이 들어서자 주인

조남융씨는 반가운 표정으로 일행을 맞으며 그 기타맨에 대해 그렇게

장황하게 널어놓으며 인문과 말을 주고 받는다. 그 기타맨을 인문이

각별히 챙긴다는 점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곳 주인은 인문이

이따금 찾아올 때는 실내 손님들의 분위기를 보아가며 그가 즐기는

박세원의 '황혼의 노래'나 스페인의 호세 카레라스의 아리아를

다른 손님의 눈치를 보아가며 조심스럽게 들려준다. 창동에서

'음악의 집'이라면 그가 오래동안 지켜 온 이 카페를 뜻한다. 인문은

이어 일행인 정인선 화가에게 말을 던졌다.

" 정선생! 여기 처음 발걸음 하시는 거죠?. 이 분이가 제가 이따금

말하던 조남융선생입니다. 창동의 뒷골목이야기를 가장 풍성하게

아시는 분으로, 우리들은 편하게 이 분을 '성님'이라 부릅니다.

조금 전 이야기한 그 기타맨의 연주를 제가 특별히 좋아한다는 것을

이 분은 잘 알거든요. "

"제게 만초라는 이름은 꽤 친숙하답니다. 남편이 술 취해을 귀가한 날은

언제나 이 곳 이야기를 했었어요. 누구와 술을 마셨는지도요. 그래서

낯설지는 않아요", 라고 그녀는 대답하였다.

"이래 저래 여기는 소문이 난 집이군요 .그럴만도 해요. 이 골목으로 들어서면

브람스나 슈베르트가 발길을 붙들었을 테니. 저는 가끔 창동나들이 길에

박세원의 가곡 듣고 싶을 땐 이곳에 옵니다. 특히 나이든 화가들이 술마시며

떠드는 공간입니다. 오늘 함께 오신 윤화백처럼 말입니다. 아니 그렇습니까? "

인문이 잠깐 그를 향해 얼굴을 돌리며 그렇게 농섞인 말을 한 마디 던지고는

미소를 머금었다.

"그렇긴 하지요. 하지만 나는 떠들지는 않는데," 윤용화백이 이렇게 짧게

맞장구를 쳐주고, 인문은 다시 말을 이었다.

"지금은 세상 떠난 남정현과 현재호, 변상봉 그리고 허청륭 등 창동 화가들은

생전에 여기를 제집 드나들듯 했답니다. 이래 저래 윤화백도 볼 겸 정 작가와도

만날 겸 만나자고 있습니다. 윤화백도  정선생이 자리하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제가 잘 알거든요. 이번 정선생이 선보인 단순한 구도의 '통영항구'를 퍽이나

마음 들어했습니다.어쨋거나 서양 현대미술사를 꿰뚫고 있는 윤화백이잖아요

윤화백와 정선생은 맥주, 그리고 저는 소주입니다.  오늘술은 제가 살께요.

참, 윤화백, 다음 주 창동갤러리에 '원로작가회전' 오픈 한다지요? 여기오다

미협사무실에서 들었습니다. 몇분이나 참여하십니까? 윤화백,박춘성 회장,

교당 , 또 누굽니까? 문여사는 교당하고 같이 나타날게고."


주인은 일행이 자리에 앉자 술과 안주를 꺼내놓고는 전축을 켜고 레코드판을

이것 저것 뒤졌다. 인문은 먼저 윤용화가에게 술잔을 건네고는 말을 이었다:

"윤화백은 무슨 작품을 준비하셨는지요? 암시적인추상의 인물이 담긴

그런 화화로? 늘 함께 다니는 박춘성 선배는 여전히 토속적 황토색 들판과

옥수수밭 아낙들이 등장하는 그림일테고. 교당은 미인도 한점 일테고

교당 하면,생각이 납니다. 동서양을 불문하고 회화적 주제나 기법이

그림의 보편적인 예술성을 무너뜨리는 수준으로까지 치닫는 이 시대적

변화속에 살고있지만, 그 분은 그런 변화와는 무관하게 한결같이

자연미 추구를 고수하는 전통적인 동양화 기법을 고수하고 있지요.

대상에 대한 모사력이 출중한 그는 얼핏 조선 중기의 직업적인 화원을

연상케 하더군요. 한지 위에서 전통적인 치마저고리 차림의 곱고

단정한 여인의 얼굴이 그 위에 피어나는 것을 그의 화실에서 한번

지켜본 적이 있었습니다."

뒤이어 윤화백이 설명조의 말을 장황하게 널어놓았다.

"인문이 말이 많은 걸 보니 오늘 술값은 걱정없나보군요.

하여간 저 피카소의 '늙은 기타맨' 그림을 보니, 피카소의 이른바,

청색시대의 여러 그림들이  머리에 떠오르는군요. 그 때의 그림들은 

대부분 저 그림속 인물처럼 거리의 악사나 부랑자 등 사회적 소외자들에

관한 그림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의지할 곳 없이 떠도는 부랑인들에

대한 피카소의 연민의 정은  아마도 젊은 예술가로서의 자신의 소외감을

피력한 것이겠지요. 피키소의 청색시대의 그림들을 보면 이 유화

'기타치는 노인'처럼  그가 즐겨 그려낸 인물들 마다 절망감을 넘어선

우울함을 보여요. 저 그림속 노인을 한 번 봐요, 자신의 운명을 체념적으로

그대로 받아드리고 있는게 꼭 성자의 풍모같지 않아요? 그런데 ,화가의 눈으로

살펴보면,저 노인의 저 길고 가는 다리는 지난 루네상스 이후의  메너리즘 시대의

화가 '엘 그레꼬'의 그림들을 연상케해요. 혹시 제가, 좀 유식한 표현을 하더라도,

아량을 좀 가져주시기를! 특히, 저 그림속 노인 기타 연주자에게서는, 아시겠지만,

그 긴, 유연한 곡선으로 이루어지진 형태가 '엘 그레꼬'의 매너리즘과

고갱의 작품 분위기를 떠올리지 않습니까? 틀림없이 그렇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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