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표지의 이미지인 피카소의 유화 '늙은 기타리스트'-나뭇가지처럼 늘어진 길고도
앙상한 손가락, 누더기 옷 사이로 드러난 뼈만 남은 어깨, 더 낮아지기 힘들 정도로
숙인 고개, 고달픈 삶의 상징 같은 힘줄이 새겨진 목 그리고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듯한 표정....- 그 그림을 보는 이라면 , 누구라도 그 차가운 화면 색조와 그림
속 인물인 늙은 악사의 체념적 모습에서 어떤 시적 우수를 느끼게 되리라.
'기타치는 노인' (The Old Guitarist)는 피카소가 젊은 시절인 1903년 에서 1904년
사이에 그린, 이른바 , 청색시대(blue Period)의 회화작품이다.
1901년부터 1904년 사이의 이 '청색시대'에 피카소는 주로 검푸른 색이나 짙은
청록색의 색조를 띤 그림을 그렸다. 그 당시의 친구 카를로스 카사게마스
(Carlos
Casagemas)의 자살에 받아 엄숙한 색깔을 선택하며 사회적 소외자인 매춘부,
거지, 유랑 극단 가족, 알코올 중독자와 같이 음울한 소재를 대상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는 훗날 "나는 카사게마스의 죽음을 알고부터 푸른색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라고 회상했다.
당시의 모더니즘(Modernism) 안상주의(Impressionism), 후기 인상주의
(Post-Impressionism) 그리고 상징주의 운동이 통합된 소위 표현주의
(expressionism) 추세가,
그리고 이에 더하여, 17세기 말기의 그리스 태생의
스페인 화가, 엘 그리코( El Greco)의 매너리즘적 요소가 그의 작품 스타일에
크게 영향을 입혔다.
엘 그레코라면, 강하고 대조적인 색채로 길쭉하고 뒤틀린 비벙상적인 인물의
종교화와 초상화를 주로 그렸었다.그레코는 후기로 갈수록 육체를
극단적으로 일그러뜨린 그림을 그렸고 환상적인 배경처리를
사용하면서도
인물들의 뛰어난 성격묘사를 통하여 자신의 독특한 개성을 발휘하였다.
1.
어
서 오세요. 어제 인문에게 전화한건, 한 동안 발걸음이 뜸해 궁금하기도 하고, 이 골목의 악사 늙은이 소식도 전할
겸해서였다오.어제 저녁 그 영감 또 왔었어요. 아니나 다를까, 큰소리를 지르고 급기야 옆자리 손님에게 시비까지 걸기에 참다못해
쫒아냈었지. 뭐 술이 좀 과하면서부터였지만 큰 소란은 아니었어요. 그래도 처음엔 기타 몇 곡으로 여러 손님들의 귀를
매료시켰었다오.
단골 한분이 시킨 페티김 노래- 그 곡 이름이 뭐더라-를 애뜻하게 들려줘 박수와 앵콜을 받기도 했었어요. 그 영감 모르긴 해도, 세월이 흐르면 이 골목에서 전설이 될걸요 아마.
그 노인 또 그러했었군요. 그렇찮아도 오늘 쯤 들릴 참이었어요.
윤화백과 여기서 만나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음악을 좋아하는 Y 화가도 이 곳에 가면 그녀가 좋아하는 오페라 아리아 곡들을 들을 수 있다고 말했던 적이 있었던 터라 이렇게 느긋한 마음으로
나타났습니다.
인 문! 그 노인은 어디 일정한 거처도 없고, 가족도 없는 것 갗지만 그의 기타소리 하나는 듣고 있으면 코끝이 찡해져요든. 무기교의 음색에다 음색은 가을하늘 같이 투명하고 티가 없어요. 솔직히 음악을 자주 듣는 나도 그의 기타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홀려요. 그 영감 하면, 자연히 저 벽위에 걸린 피카소의 복사본 그림속의 늙은 기타리스트 쪽으로 눈길이 가요. 영락없이 그를 닮았다니까요. 긴 다리에 수척한 저런 몰골에 어찌 그런 티없는 소리를 만들어 내는지.스페인의 기타연주자 세고비아가 독학으로 기타맨이 되엇다며, 자신도 세고비아처럼 되고싶어 젊은 날 그저 기타만 쳤다나. 하여간 그는 우리 가게에 오면 꼭 저 그림 사진 앞 자리에 혼자 앉아 찬 맥주를 시켜요. 한 때 용접공으로 일한 적이 있어. 지금도 그 영감을 용접일로 이따금 불러주는 데가 있는 모양이입니다.성품은 맑아요. 우리집에서 여지껏 외상 술 마신 적이 없는 걸요.. 문제는 올 때마다 늘 취해서 나타난다는 것이지요. 자리에 앉아 한동안 혼자 기타를 만지며 한 두곡 켠 후에는 주변 누군가의 곁에 들어붙어 지치도록 중얼거린다는 점이지. 그러다가 혼자 고함을 치고 ,
초
저녁 창동의 만초집에 인문의 일행 세 사람이 예고없이 들어서자 주인 조선생은 반가움에 인문에게 그 기타치는 노인 이야기를 그렇게
장황하게 늘어놓으며 일행을 맞는다. 창동의 오랜 주막인 만초집 주인은 인문이 들어설 때는 실내 손님을의 눈치를 보아가며 인문이
즐기는 박세원의 가곡이나 스페인의 호세 카레라스의 아리아를 털어준다. 옛 전축에다 클래식 레코드를 털어주는 주인을 인문은 꼭
선생이라 보른다.
Y
작가! 이 분이가 제가 이따금 말하던 만초집 조선생입니다. 창동의 뒷골목이야기를 가장 풍성하게 알고 계시는 분으로 우리들은 그저
조선생님이라 부릅니다.입니다. 조금 전 이야기해주던 그 기타치는 노인의 기타소리를 제가 특별히 좋아한다는 것을 조선생님은 잘
알거든요.Y 작가는 아마 이곳이 이 처음이죠? 오래전부터 클래식 듣고싶은 이들이 찾는 집입니다.. 저도 가끔 창동나들이 길에
박세원의 가곡 듣고 싶을 땐 이곳에 옵니다. 지난 번엔 경남대학교의 김교수와 창동 소개꾼 김여사 등과 함께 들렸었어요. 그렇지만
이 곳은 주로 나이든 화가들이 술마시며 떠드는공간입니다. 오늘 함께 오신 윤화백처럼 말입니다. 윤화백 아니 그렇습니까? 지금은
세상 떠난 남정현과 현재호, 변상봉 그리고 허청륭 등 창동 화가들은 생전에 여기를 제집 드나들듯 했답니다. 이래 저래 윤화백도 볼
겸 y 작가와도 만날 겸 만나자고 있습니다. 윤화백도 Y 작가와 만나면 즐거워함을 제가 잘 알거든요. 청색 바탕의 추아모노크롬
분위기의 추상화를 특별히 칭찬하더군요. 어쨋거나 서양 현대미술사를 꿰뚫고 있는 윤화백이잖아요 윤화백은 맥주, 그리고 저와 윤작가는
소주 입니다. 오늘술값은 제게 낼께요.
참, 윤화백,다음 주 창동겔러리에 원로 작가전 오픈 한다지요? 여기오다 미협사무실에서 들었습니다.몇분이나 참여하십니까? 윤화백,박춘성 회장, 교당 , 또 누굽니까? 문여사는 교당하고 같이 나타날게고.
조 선생은 일행이 자리에 앉자 술과 안주를 꺼내놓고는 전축을 켜고 레코드판을 이것 저것 뒤진다. 인문은 먼저 윤화백에게 술잔을 건네고는 말을 이어간다: 윤화백은 무슨 작품을 준비하셨는지요? 암시적인추상의 인물이 담긴 그런 화화로? 늘 함께 다니는 박춘성 선배는 여전히 토속적 황토색 들판과 옥수수밭 아낙들이 등장하는 그림일테고.교당은 전에 보았던 조선시대의 미인도 한점? 교당 하면,생각이 납니다. 동서양을 불문하고 회화적 주제나 기법이 그림의 보편적인 예술성을 무너뜨리는 수준으로까지 치달으며 변화는 이 시대적 변화속에 살고있지만, 그 분은 그런 변화와는 무관하게 한결같이 자연미 추구를 고수하는 전통적인 동양화 기법을 고수하고 있지요. 대상에 대한 모사력이 출중한 그는 얼핏 조선 중기의 직업적인 화원을 연상케 하더군요. 그는 한번 그의 서재에서 새필을 든 그의 손이 화선지 위에서 탐미의 유희에 집중하는 사이 전통적인 치마저고리 차림의 곱고 단정한 여인의 얼굴이 그 위에 피어나는 나는 것을 지켜본 적이 있었습니다.
윤화백이 말할 차례를 기다리기라도 한 듯 뒤를 잇는다:
그 럽시다 우선 이 맥주잔 부터 먼저 비우고요. 인문이 오늘은 말이 많은 걸 보니 술값은 걱정없나보군요. 하여간 저 피카소 의 늙은 기타맨 그림 앞이니, 피카소의 이른바, 청색시대의 그림들은 머리에 떠오르는군요. 그 때의 그림들은 대부분 저 그림처럼 거지, 부랑자 등 사회적 약자나 소외자들에 관한 그림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들 부랑자에 대한 피카소의그의 연민의 정은 아마도 예술가 자신의 소외감을 피력한 것이겠지요. 피키소의 청색시대의 그림들을 보면 이 기타치는 노인처럼, 그가 즐겨 그려낸인물들 마다 절망감을 넘어선 우울함을 보여요. 저 기타맨을 한 번 뵈요, 자신의 운명을 체념적으로 그대로 받아드리고 있는게 성자의 풍모 아닌가요. 그리고 저 탈속적인 길고 가는 다리는
화가 그레꼬의 그림들을 연상케 해요. 특히 저 기타치는 노인에게서는,아시겠지만, 그 유연한 곡선의 윤곽이 그레꼬의 매너리즘과 고갱 분위기를 떠올리지 않습니까. 20대의 젊은 청년 피카소의
개인적인 비애감이 저 그림속에 그대로 배어있는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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