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묵향의 교유
..... 나이를 벗어난 그의 미소 머금은 동안과 좋은 건강을 놓고,
혹자는 그가 자신의 손으로 그려낸 화선지 위의 미인들과 더불어
춤추고 노래 불러 그렇다고 하고, 혹자는 그가 매일 오전 홀로
세필을 든 손으로 맞이하는 그 집중의 순간들이 그의 건강을 지켜
주었을 것이라고 하였다.
- 2010년 출간 필자의 산문집 <창동인블루2>에서-
우리들이 화가에 관해 이야기할 때에는,대부분의 경우,
작품이 먼저이고 인성은 그 다음이다.인성이 고약한 예인은
흔하다. 그런 경우 대개 그의 작품을 통해 그 고약함이 비범한
개성으로 미화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교당을 생각할 때는,
그의 인성이 먼저이고 작품세계는 그 다음이다.남을 배려하는
따스한 인간미로 이웃을 편하게 대하는 소탈한 심성을 가진
화가이다.
한 20년쯤 전이었을 것이다. 고 남정현 선생의 화실에서의 일이다.
남선생이 필자에게 ' 좀 있다 '교당' 오시면 점심이나 같이 합시다.'
하길래 그 말이 네 귀에는 '교장'이라는 말로 들려, 속으로 '어디
초등학교 교장인가'보다 하였다. 마산합포구청아래 위치한 한 식당에
셋이 함께 들어가 메기탕을 나눈 게 교당과의 첫 만남이었다.
식사를 참 맛있게 한다는 것이 그의 첫 인상이었다. 그 때 이래 지금에
이르기까지 교당과는 서로 틈틈이 만난다. 필자보다 나이가 열너댓 위인
데도 교당이 술이 더 세, 술자리에 함게 앉으면 필자는 식탁아래 퇴잔
그릇을 하나 준비해두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내 앞에 손이 채워지면
남들 눈에 띄지않게 술을 마시는 척하고 거기 옮겨붓기 위해서였다.
이를 눈치 챈 그는 나를 술이 약한 사람이라고 자주 잔을 권하지는
않았다.
특별히 기분좋은 술자리는 아마도 고 정자봉교수와 함께 할 때일
것이다. 교당은 정자봉 교수를 같은 연배임에도 매우 존경하는
마음으로 그를 대하였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가르치는 분이 일본
노래를 우리말만큼 잘 부른다며 겸탄하는 눈빛을 발하였다.교당은
지금도 정교수가 메모해준 명언들을 인용하면서 그를 생각한다.
교당의 성품에는 문화적 꾸밈이 업다. 자연스런 모습과 표정이다.
그에게서는 의자가 없는 공간에서의 앉음 자세에서나 일본말 섞인
어투에 일본 문화와 생활습관의 흔적이 그에게 남아있다. 해방후
부모따라 귀국한 그가 한국에서 정규적인 교육을 받은 일이 없었던
그는 한국에 만연한 서양문화의 지적분위기에 대해 낯설음과 동경의
마음이 있다.15여년전에 마산 시인 이선관이 쓴 그에 대한 인상은
이러하다:
전통적인 미인도 외에도 영모화, 산수화 등에도 일가견을
가지고있는 선생은 항상 소탈하고 낙천적인 인품과 꾸밈이
느껴지지않는 토박이 사투리의 언행으로 상상 친근감을
갖게하고....서민적인 생활을 하고있는 선생에게는 전혀
궁색한 티가 나지않는것.막걸리 한 잔에도 자족할 줄 아는
인정이 넘치는 성품 탓이리라
그의 성품은 예인의 풍치가 나는 자연인 그대로이다.
문화적으로 세련되거나 제도권 속에서 교육된 분이 아니다.
그의 인품이 그러하듯 작품 또한 아카데미즘과는 거리가 있다.
누구의, 어떤 화파니, 어디 출신이니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오로지 일본에 교당의 문하에서 배운 것 이외오는
오로지 스스로 읽고 터득하여 그린 것이 곧 그의 작품이다.
그가 여인의 자태를 평생의 그림의 대상으로 삼았지만
누드의 인물화를 시도한 적은 거의 없다
누드화는 그분의 품성 자체에 맞지않는다.
고 변상봉 경남대 교수의 사실성 짙은 누드 같은 작품을
화가로서 시도해 본 적이 거의 없다.
심상의 대상이건 실물로서의 대상이든 그는
그 모델과 마주하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여인의 벗은 몸 앞에서는 붓을 들 수가 없다.
그저 옷 벗은 여체로 여긴다는 뜻이다.
서양화에서 nude는 미술작품에 관련된 몸과
성적 연관성을 가진 옷이 벗겨진 naked 몸과는 다르게
인식되어왔다.
그는 아내외에 다른 여자와의 관계는 머리로만 그릴 뿐 현실적인
상황으로 이어가지 않았다. 극장의 간판그림 그리기 일을 하던 시절
마산 오동동의 요정에도 자주 드나들었었으나 기녀들과의 염문은
없었다. 그는 분위기 맞추기에 탁월하여 여인들이 그의 노래나 예기에
마음이 동하여 가까이 다가서는 이들이 있지만 그는 인해 연애에
빠져들지 않았다고 하였다. 자기 아내를 두고 몰래 다른 여인과
육체적으로 가까이 하는 것은 윤리적으로 해서는 안될 짓이라 여겨는
분이었다. 다른 남자들의 바람의 경우에 모르는 척 씩 웃는 이가
스스로에게는 허용되지않는 않았던 그런 성품이 그림에서도 잘
나타나있다. 그의 미인들은 한결 같이 정숙하고 단아하다. 혜원의
그림속 여인들의 춘정어린 분위기와는 다르다.
무대위의 예인의 체취가 물씬 나는 교당은 전통적인 춤꾼 고 이필이
선생과는 생전에 서로 아끼는 남매처럼 지냈으며 그녀에게 춤을 가르친
무용가 김해랑과의 우정을 그는 잊지못한다. 김해랑은 무용가 최승희의
제자였다. 최승희가 일본순회공연중에 그가 사는 大分에서 공연할 때
그는 초등학생의 어린 나이에 그녀의 미모와 춤에 반하였다고 하였다.
그가 만약 화가가 되지않았다면, 아마도 판소리의 고수나 마당놀이패의
광대가 되었을 법한 인물이다. 술이 거내해지면 어깨춤을 주체하지
못한다. 리듬에 맞춘 그의 즉흥무와 가락을 들어보면 그는 영락없는
조선시대의 마당놀이패이다.손님으로 앉은 그가 기생들로부터
팁을 받는다라면 누가 믿겠는가!
술자리에 앉으면 지인 정자봉 교수는 곁에 앉은 여인들의 손을
훔치는 반면, 교당의 경우엔 여인쪽에서 교당의 마음을 훔치려
든다. 그의 예기넘치는 즉흥적인 노래솜씨 탓이다.그런 천진스런
소년티는 부친 김동준과 모친 박상금 사이에서 5남매의 막내이자
외동아들로 태어나 유소년기를 그를 돌보는 세누이들 틈에서
보호받으며 귀하게 자란 환경적 요인탓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