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산문

미화교김 2

jhkmsn 2013. 12. 4. 17:21

                                          서문  

 

 

 

미인도와 포대화상도의 화가로 잘 알려진 교당 김대환은 맑고 밝은

심성을 가졌다. 팔순의 중반을 넘긴 예인으로, 노인티 나지않은

외모에 발걸음이 빨라 나이를  초월한 듯하다. 소년같은 천진스런

미소가 하얀 이 사이로 쉼없이 번져나오는온다. 그림전전시회에서

만나는 화우들과  꾸밈없는 친화력으로 기분좋은 어울림을 나눈다.

 

필자는 그의 손에 특히 호기심이 동한다. 한번은 그의 서재에서

세필를 든 그의 손이 화선지위에서 탐미의 유희에 집중하는 사이

전통적인 치마 저고리 옷의 여인의 곱고 단정한 얼굴이 그 위에

피어나는 것을 지켜 보면서, 불현듯 세살 아이 때의 교당의 손을 

머리에 떠올렸다. 화선지위의 그 손은 그가 서너살의 어린아이일 때,

누나들 곁에서 큰 누나의 그림그리기 흉내 내느라 크레옹과 연필로 

벽과 방바닥에 어지럽게 그림낙서를 하였다던 바로 그 손이었다. 

 

그 손은 나중  그가 나이 20살 무렵  6.25 전쟁시절 미군들의 초상화를

그려 돈 버는 손이 되었고, 그 후에는  극장건물의 간판에 창극 광고로

그려진 '햇님 달님'의 여주인공의 미모를 선녀같이 곱게 그려 지나가는

남성고객의 발길을 멈추게 하였던 손이다. 그리고 특별히 필자와 미국의

어느 플라멩코 무희가 10여년 동안 미국과 한국에서 몇차례나  함께 

플라멩코 공연을 기획하고 펼치게 한 희안한 인연의 끈이 되었던 그의

그림선물- 채색 미인도- 한점을 그린 특별한 손이기도하다. 

 

 손은 지금도  끊임없이 뭔가를 그려나간다.  머리와는 상관없이 

스스로 판단하고 부단히 창조적으로 그림그리기에 몰입한다. 더구나

그의  손은 그리는 재능만을 가진 것이 아니다.  그림애호가들의 마음을

감지하는 재주또한 남다르다. 험한 세상을 살아나오는 동안 생존의

비법도 잘 터득한 듯 하다. 이를테면, 자신의 어떤 그림을,

누가 좋아하는지를 그 손은 간파하는 재주가 있다. 지역의

시내 중심가의 식당, 기업체의 사무실에서 의 미인도, 달마도,

영모화등이 어렵지 않게 눈에 띈다는 게 이를 잘 말해준다. 

 

필자가 교당에게 쏠리는 또 다른 관심은 그가 화가의 길로 들어서게

두 번의 삶의 전환점에 있다. 20살의 청년기에 한쪽 눈이 실명에

이르게 된 시점에 일본에서 동양화가 목교당을 만난 게 그 하나이고, 

나이 41세에 생애 첫 개인전을 연 것이 그 두번째의 것이다. 그가

마산 미술협회에 참가하면서 가진 그 첫 전시회를 전후하여 비로소

전업화가의 길로 들어선 것이 그것이다. 처음의 그 계기가 내면의

결심과 관련된 것이었다면 그 두번째의 것은 그 첫번째 전환점이후

 20여년이 지날 즈음 그 마음의 결정이 구체적인 행위로 나타나게

싯점이었다.

 

그 첫 전환점을 전후하여 처음으로 그는  화가의 길을 삶의 목표로

삼게 되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한쪽 눈을 잃어 깊은 좌절감에 빠져

헤어나지못하고있던 상황에서 그 일본인 스승과의 만남을 통해 

절망의 늪을 빠져나올 수 잇는 희망의 통로를 발견하였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와의 만남은 청년 김대환에게는 희기한 행운이었다.

김대환 청년의 그런 꿈을 갖게 해준 다른 특별한 요소들도 있었겟지만

그것들은 그 만남에 비해 잔물결에 불과한 것으로서 그에게서 곧

잊혀지는 일들이었을 것이다. 그의 내면에는 오직 그 목교당과의

만남 만이 평생토록 살아 출렁이었던 것이다.

 

이 첫 만남은 프랑스의 작가 까뮈가 20살 무렵 그 작가의 스승,

장그리니에의 책 '섬'을 처음으로 읽었을때 받았다는 까뮈의 감동을

떠올리게 한다. 까뮈는 그 책과의 만남이 그로 하여금 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한 특별한 요인중의 하나라고 회상한 바 있었다. 그는

책과의 첫 만남을 이렇게 말하고있다:

 

 그 어느 누구보다도 적절한 시기에 스스로의 마음을 경도하고 스승을 얻고,

그리하여 여러 작품들을 통하여 그 스승을 끊임없이 존경할  필요를 느꼇던

나 자신에게는  더 없이 좋은 행운이었다.

 

그에게 두번째의 전환점이었던 첫 전시회 개최는 앞선 경우보다

 높은 분수령이었다. 그 분수령의 앞쪽은 극장간판그리기가

일상의 일었다면 그 다음쪽의 삶은 그 이래 40 여년간 이어온

오직 화가로서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는 저마다의

일생에 모든 것을 결정짓는 한 순간이 있는 것 같다. 그 순간을

다시 찾아내는 것은 어렵다. 그것은 다른 수많은 순간들의 퇴적

속에 깊이 묻혀있다. 다른 순간들은 그 위로 헤아릴 수 없이

지나갔지만 스르르 자취를 감추었다. 결정적인 순간이 반드시

섬광처럼 지나가는 것은 아니다.한 인간의 존재가 그 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눈에 띄지않고 점진적일 수도 있는 것 같다. 

 

 

 이 글은 교당 김대환의  화가로서의 삶에 촛점을 맞추어 피력한

것일뿐 그에 대한 전기적 자료의서의 기록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의 가족관계의 세부사항이나 특별한 경력 사항 등은 구체적으로

피력하지 않았다.

 

이 글의 흐름은 그와 나눈 교유의 편지를 필두로 그의 인간됨과

작품을 이어가는 순서로 되어있다.즉,예인으로서의 그의 손에 대한

필자의 사색과,그의 작품 해설에 이어 그의 삶의 궤적이-유소년기,

청년기 그리고 간판직업인으로서의 삶-이 그의 추억의 개울을

따라 펼쳐질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림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의

마음에 드는 그림을 그리며 살아 온 화가로서의 삶을 오늘에까지

이어가고 있다. 

 

2014년 0월 0일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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