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지그문트 바우만 저 p 35참조
중요한 것은 지배자의 '외견상 편재'에 있다.
지배자의 감시의 눈이 언제나 지배받는자들에게 가 있다는 확 신을 갖고나면 ,
지배당하는 계층은 결코 재멋대로 내버려둔것처럼 행동하지 않을 것이다.
지배당하는 쪽은 자신의 의지를 실행할 기회를 갖지 못할 것이며 ,
그래서 그들의 독립적 의지는 써보지 못한 까닭에 점점 시들어갈 것이다.
지배자의 통제의 영속성과 편재성은 피지배계층에게서 자뮤만 빼앗는 것이 아니다.
효과적일 경우, 그런 통제가 피배자가 자유로울 수 있는 능력,
자기 자신의 행위를 선택하고 이끌 수 있는 능력,
자기 자신의 삶을 자리잡고 경영할 수 있는 능력을
앗아가 버린다.
한걸음 더 나아가 피지배자들은 자신들을 위해 자기 삶을 조직해주는
지배자의 감시감독를 필요로 한다.
이제 피지배자는 특수한 종류의 행복과, 그리고 '평화와 고요함'을 획득하기 위해
부자유의 타율을 요구하기에 이른다. 더욱이 이와같은 모든 기적적인 대변화는,
설교조의 도덕적 장광설이 없어도, 또는 지배당하는 자들의 영혼과 마음을
다른 어떤 길로 끌어넣지않고도 ,성취될 것이다.
필요한 것은 다만 행동고 관련된 통제다. 그리고 이것은 오로지,
정보에 대한 접근의 비대칭성을 그 최고의 원리로 삼는 , 외적 의존상태의
네트워크를 적절하게 조직하는 일에 달려있다.
'보이지않으면서 보는' 덕택에, 즉, 무한대의 감시체제 덕에,
지배자는 지배당하는 계층에게
삶의 소박한 '평화의 고요'를 쥐어주면서
그 대신 그들에게서 자유의 영혼을 마비시켜
기꺼이 지배당하는 일에 중독되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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