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7월 0일, 2019
엘레나에게
가르시아 로르카가 플라멩코 시규리어의 소리를 바흐곡의 흐름으로 비유한 문장을
이 이메일로 보냅니다.
"굽이치는 시규리어의 깊은 울림은 그 시작이 꼭 바흐의 첼로 곡의 흐름과 같다.
의미하는 바는 서로 다르지만,
물결치며 흐르는 바흐의 그 깊은 멜로디는
끝없이 이어지며 둥글게 원을 그린다.
이에 비해 플라멩코의 시규리어 노래의 그 외침의 경우,
그 멜로디는 그네들의 몸과 마음에서 빠져나와
사람의 보편적 희망과 열정을 온통 담아 실은 채
우리의 영혼이 도달할 수 없는
아득히 먼 수평선의 끝 점으로 사라진다,"
그 시인의 예측 불가능의 아름다운 상상력이 담긴 싯적 표현입니다.
오늘은 이 한토막의 글귀가 가슴에 가득 차 다른 무엇을 이에 더 보탤 수 가 없습니다.
.다시 또 연락하겠습니다.
아브라죠스!
인우
.
7월 0일,2019
인우에게!
그 문장은, 소리를 내어 읽어야할 글이내요.
그 문장 자체는 우리들의 상식적인 이해를 거부하고 잇어요.
어쩐지 신비롬기도 하고 허무감이 드네요.
요즘은 인우가 잘 아는 이 곳 파우엘 서점의 카페에서 이따금 책을 읽기도 하고
피이오니어 스퀘어 노천광장의 돌 계단에 앉아 점심시간에
여러 젊은 여행객들 틈에 끼어 앉아
부리토를 먹기도합니다.
오늘은 이곳 이 서점에 앉아 cante lyrics를 모아 이에 대한 해석을 덧붙인 일종의 시집을 읽고있습니다. 그 노래의 가사들은 짧고 싯적이었습니다. 플라멩코를 문학적 시각에서 새롭게 느끼게 되는 기회가 되는 것 같습니다. 내가 무대에서 춤을 출 때에는 지금과는 달리 오로지 춤의 형식, 기교 등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졌었는데.
집시의 음악의 이런 싯귀들을 통해 나의 춤을 사색의 냉철한 자세로 되돌아보기도합니다. 플라멩코 춤은 움직임이 적은 몸짓으로도 많은 표현력이 담길 수 있는 게 플라멩코의 깊은 춤임을 뒤늦게나나 깨닫습니다. 시규리어는 기교를 뛰어넘는 춤이어야 하거든요. 그러다보니 그러나다의 유명한 댄서 에바 예르바 부에나의 시규러 춤이 연상되기도 하는군요. 시집에서 시선을 붙드는 한 구절을 인우에게 보냅니다:
달에는 달무리가 져있고,
사랑하는 사람은 죽었다
There's a halo round the moon
My love has died .
이 두줄의 단어속에 담긴 비통함!.
신비스런 감성적 표현입니다
이 노래의 가사를 두고 로르카는 이렇게 감상하고 있네요:
단순하고 진정한 신비,
,깨끗하고 완전한,
그리고 그늘진 숲 또는 방향타 없는 배들도 없는,
살아 있는, 영원한 죽음의 신비!
Simple, genuine mystery, clean and sound,
without gloomy forests or rudderless ships-
the living, eternal mysyery of death!
7월 0일,2019
다어 엘레나!
오늘은 엘레나에게 고백하고싶은 게 하나 있습니다. 내 혼자만 간직해왔던 이 내밀한 것을 털어내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싯점을, 놓치면 그런 기회가 온다 손치더라도, 틀림없이 헛된 일이 되고 말 것입니다.이 시점에 그 꿈이 사라지지않게 할 마지막 기회이기에 그렇습니다.
지금 털어놓을 이 고백은 나의 삶과 꿈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엘레나가 춤을 포기하면 그것은 엘레나의 개인적인 비극 이상의 것입니다. 엘레나, 한 사람의 좌절과 슬픔으로 끝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그것은 엘레나는 이해할 수 없겠지만, 내게도 불행으로 남게 될 것입니.
지난 날 내게는 두개의 삶의 목표를 차례 차례 잃은 억누를 수 없는 슬픔이 있었습니다. 이제 또 하나의 소중한, 곡 지키고싶은 희망의 대상이 사라지고 있는 것 같아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을 느낍니다. 무엇보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지향할 새로운 목표를 찾을 나이를 넘었습니다.지금 나는 노년기에 깊게 접어들고 있음을 엘레나도 잘 알고 있지않습니까?.
엘레나를 만나기 전 정치학 박사로서 학문에 전념하던 나는 그 길을 포기한 적이 있었습니다. 소련의 대통령 고르바초프의 정치적 이념애 대한 연구가 나의 학위논문의 주제였는데 그 연구가 결실을 맺게될 즈음 국가로서의 소년이 사라지고 그 지도자 고르바초프마저 권좌에서 밀려나고 말았습니다. 그로 인해 나의 연구분야가 사라지고 만 셈이었기에 그 길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소련의 지도자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와 '새로운 사고'는 국제정치학도였던 나에게는 경이로운 것이었다.그런 점에서 고르바초프의 실각과 소련은 붕괴는 나의 꿈 마저 사라지게 하였던 것이었습니다. 연구의 대상이 하루밤 사이에 연기처럼 사라진 나에게 학문의 길은 더 이상 무의미해졌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 길을 표표히 내 던졌다.
그 대안으로 수십년간 연구대상으로 몰입해왔던 회화예술마저 오늘 날의 탈 예술적 포스터모든의 시대에 살아남지못하고 있음을 통감하면서 나는 그 길에서도 더 나아갈 목표를 잃게 되었습니다. 아, 물론 엘레나의 꿈 성취를 통해 자신이 이룩하지못한 것에 대한 일종의 보상으로 대리만족을 얻고자하는 소극적인 자세는 아닙니다. 즉, 엘레나가 댄서로서의 춤을 포기한다는 것은 나로서는 내가추구하는 탐구영역의 소중한 동행자를 잃게됨을 의미합니다. 지금의 나의 탐구 목표를 상실하게 되었다는 점이 곧 나의 마음아픔입니다.
오늘은 엉뚱한 이야기만 널어놓은 것 같아 좀은 쑥스럽습니다.
다음에 또....
인우
7월0일, 2019
Dearest 인우.
오, 오늘 보낼 수 있는 것은 눈물 뿐입니다.
건강히 지내시기를!
아브라죠스!
엘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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