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2015년 12월 전후
이메일교류?????
지난 해 크리스마스때 서로 안부메일을 나눈 이래 반년이 훌쩍 넘은 8월에
모처럼 엘레나로부터 소식이 왔으며, 인우는 그녀에게 회신으로 안부의 글을 보냈다..
두 사람 사이의 이메일은 이제 옛날과는 달리 범상한 안부의 주고받음으로 그칠 뿐 그 속에는 어떤 호기심이나 기대와 같은 것은 담기지 않았다.
8월 11일, 2016
Dear 인우,
How are you doing?
I have been thinking of you and hope you are well. I wanted to let you know that I just shared your book with my new boss, who is from Korea. Her name is Sohee and she's really wonderful to work with.
Also, I have been staying at a friend's house while she travels and it looks upon the hostel in NW Portland where you stayed. They are in the process of expanding the hostel- it's amazing!
Sending much love always,
엘레나
8월 12일, 2016
엘레나!
Bob Dylan의 기타 곡 blowing in the wind의 가사를 보냅니다.
love
인우
12월 20일, 2016
엘레나!
Merrry X-mas!!
Thinking of you,
인우
1월 3일, 2017
Dear 인우,
A very happy new year to you. I wish you health, peace and happiness.
Love always,
엘레나
이렇게 미국의 엘레나의 이메일 교류가 뜸해진 시점을 전후하여 인우는 사회활동에서 멀어졌고 바깥 나들이도 점점 드물어 졌다. 그는 언제나 헬레나가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플라멩코 댄서로 성장해가리라 여겼었는데, 그의 믿음과는 달리 엘레나는 플라멩코 사회에서도 입지가 약해졌고 댄서로서도 좌절을 겪으며 심리적 불행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댄서서의 명예로운 성공은 커녕 그 길에서마저도 멀리지는 그녀의 삶을 멀리서 느끼며 인우는 우울해졌다. 이래 저래 그는 칩거하는 생활에 점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노년기 마져 깊어졌으니 그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였다.
얼마전만 해도 그와는 창동에서 사흘이 멀다하고 만나는 화가 지망생 조군과도 거의 만남을 끊고 지냈다. 그 사이 조군이 어떻게 지내시느냐며 궁금하다는 문자를 보냈고 그는 이 젊은 이에게 메일로 답신하였다. 답신은 이러하다:
요즘 내게 어디 불편한 데는 없느냐고?
그냥 집에 머물거나 도서관의 서가들을 기웃거리며 시간을 보낸다네. 창동으로 나서던 중 자신도 모르게 발길이 그 쪽으로 향하게 되더군.
안부 문자 고맙게 읽었네,
지금은 기타곡 「Caprachio Arabe」를 듣고 있던 중이었네.
요즘은 멜빌의 ‘Moby Dick’을 상상한다네. 이스마엘처럼 바다에 나가고 싶어 나 자신이 고래잡이 배의 선원이 되기도 하고, 시베리아 횡단 기차로 눈 내리는 자작나무 숲길을 지나는 몽상에 사로잡히기도 한다네. 아니면, 도서관의 책 창고 한 구석에 묻혀 안톤 슈낙의 감성적인 귀절들에 마음이 빼앗기기도 한다네. ‘자스민 향기! 이 구 절 어때? 나는 이 자스민 대신 라일락을 떠 올렸다네. 옛 날 집에 이 나무가 한그루 있었는데 온 골목에 이 향기가 퍼져 나갔었지.
아, 지금 이 기타곡 「Caprachio Arabe」를 조 군도 한번 들어보게나.
문.
그리고 친구 J에게도 이렇게 이메일을 보내기도 하고:
J!
자네나 나나 둘다 나이가 벌써 나뭇가지에 매달린 낡은 잎의 처지로 되었으니
이제는 가을 바람이 점점 드세게 불어올 날에 대비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작년 가을 어느 달인가의 회보지에 올린 나의 단상 「그라나다의 새벽」의 삽화로 친구가 찍은 사진 한 장, 「플라멩코 춤」을 올린 적이 있었잖는가. 플라멩코를 춤추는 집시 할머니 한 분의 표정을 캡쳐한 친구의 그 사진 말일세. 내가 그 사진을 보고 집시춤에 십수 년간 매혹되었던 사람으로서 적잖이 놀랐었네. 플라멩코라 하면 거의 춤을 연상하고 플라멩코춤이라 하면 고혹적인 젊은 댄서를 연상하는 게 일반적인 통념인데, 자네는 예상 밖으로 춤추는 할머니 댄서에 초점을 맞추었으니!
범상하게 보이는 그 사진 한 장이 플라멩코의 본질을 꿰뚫고 있었거든. 주름살 투성이의 그 늙은 댄서의 얼굴과 눈빛에 형언할 수 없는 슬픔과 일종의 체념이 담겨 있었네. 그 표정은 외아들이나 남편을 잃은 여인의 절망 같은 것일세. 원래 그 춤은 그런 여인의 절규의 몸짓이거든. 하기야 나도 말은 그렇게 하지만, 그 춤을 추는 한 이국의 젊은 여인을 처음 본 순간 아닌게 아니라 그 댄서에 홀려 긴 시간 그녀의 환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였던 내가 그런 말을 하다니! 돌이켜 보면, 내가 만약 젊은 나이에 그 춤에, 젊은 댄서에 빠져들었다면, 내 삶이 어떻게 변해 갔을지, 솔직히 상상하기 힘드네.
다시 그 글 「그라나다의 새벽」으로 돌아가, 그 글 속의 나의 어머니는 지금은 천주산의 그 떡갈나무 아래에서 아버지와 함께 계시면서 해마다 피어나는 풀잎이 되었어요. 이제는 천주산의 그 떡갈나무 언덕으로 더 이상 오르지는 못하지만, 그곳에 이르는 중간 통로인 달천계곡은 혼자 가끔은 찾아간다네. 그곳은 창동에서 버스로 한 시간 이내의 거리야. 특히 노모가 꿈에 나타나는 그 다음 날은 자신도 모르게 그 계곡을 찾게 되고......
건강히 지내게.
다음에 또 연락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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