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압상트의 유혹을 영국의 시인 오스카 와일드의 표현을 빌려보면
이러하다:압상트 첫잔을 마셨을 때 눈앞의 사물은 있는 그대로 보인다.
두번째 잔을 비웠을 때 사물들은 있는 그대로가 아니다.
마침내 당신의 눈앞에 사물의 실제가 나타난다. 그리거 그것은
이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일이다. 내가 의미하는 바는 곧 '관계의
끊어짐'이다.예컨대, 식크헤드를 들어보자. 당신은 그 모자를 실제
있는 그대로 본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렇지않다, 왜냐하면,
당신은 그 모자를 다른 사물이나 생각과 연관시키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전에 모자에 대해 들어보지 못했다거나, 그리고
모자를 어느 순간에 보게되엇다면, 당신은 놀라거나 웃을 것이다.
이
점 곧 압상트가 가진 효과이다, 그리고 이 점이 곧 압상가 사람의
머리를 돌게하는 이유인 것이다. 내가 압샅트를 3일간 앉아
마시면서
내 딴에는 머리도 정상적이고 정신이 평소처럼 멀쩡하다고 여겼다.
그 때 워이터가 와서는 톱밥에 물을 부우니. 그 자리에거 가장 아름다운
꽃들-츄립, 라이락, 그리고 장미 등-이 피어나고, 한순간 카페에 정원이
가꾸어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브레드 쇼의 <카페 소사이어티>에는 또 이런 글귀가 있다:
"오팔색의 미광을 발하는 압상트는 마치 악마의 유혹자같다. 그 술은
어떤 독주보다 강하다. 그 술은 사람의 내면의 자아를 몰아내버린다".
압상트, 페르노 등 독주가 19세기 유럽의 보헤미언 예술가들, 특히 화가들에게
특별한
영향을 주었거나 회화적 주제가 되었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1887년 툴르즈 로테렉은 압상트 술잔을 들고있는 봔 고흐의 초상화를 그렸고,
같은 해에 고흐는 압상트 술잔과 물병이 놓인 정물화를 그렸다.
로트렉의 그림을 보면, 탁자 위에 두 팔을 걸쳐놓은 한 노인이 몸을 앞으로
기울인채 망연히 한잔의 압상트를 바라보고 있다. 드가는, 앞의
'압상트' 그림에서 보여준 것처럼, 술기운에 빠진 두 인물이 허술한 술집
탁자에 넋을 잃고 앉아 있으며 삶에서 더 이상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것처럼 그려지 있다. 피카소는 회화 <압상트를 마시는 여자>뿐 아니라,
<압상트 잔>조각품도 남긴 바 있다.
폴고갱은 실제 다량의 압상트를 마셨으며, 전통적인 원근법을 무시한
대담한 평면적 색채화는 그 술의 영향아래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모딜리아니, 유틀릴로 그리고 반고흐도 도취상태에서 맛보는 무의식의 세계를
탐닌했던 보헤미언 화가로 우리들에겐 잘 알려져 있다. 반고흐의 경우,
그는 동생 테오에게 보낸 한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있다:
"너도 알겠지만, 가끔 나를 광기로 몰고가는 주원인의 하나는 술이란다.
광기는 아주 서서히 나를 엄습했다가 아주 서서히 사라진다. 그 상태가
사라진다고 말은 했지만 이 경우에도 내가 완전히 그 상태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이 점과 관련하여, 저술가 알렉산드 쿠퍼는
저서 <신의 독약>에서 이렇게 피력하고 있다."반고호의 어떤 그림들은
그가 도취상태에서 본 환상을 포착한 것으로 여겨진다....그의
<별이 빛나는 밤>이나 <저녁의 카페테라스>은 술에 취한 사람의 흐릿한 지각을
연상케 한다."
아닌게 아니라 그런 시선으로 보면 고흐의 <까마귀 나는 옥수수 밭>이나
<밤의 카페>를 보게 된다면 누구라도 이 그림들은 맨 정신을 벗어난
어떤 도취상태에서 영감아래 그린 것으로 여겨질 것이다. 오팔색을 띠기고
한다는 이 신비의 독주가 고호의 목구멍을 넘어 목줄기를 따라 내장으로
타고 내려갈때 그 알코올은 육신의 눈을 감기게 하고, 대신 그가 이젤앞에
앉은 순간 그의 내면에서 사물 너머에 아른거리는 어떤 환상을 보게한
것으로 상상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창동골목에서도 술에 젖은 눈으로 그림을 그린 화가들이
드물지 않았다.그 이름이 지역 도회인들에게 친숙한 고현재호나 고허청륭도
술기운에 늘상 몸에 배어있엇던 화가들이었다. 현재호의 그림에는 표현성이 강한
분명한 선, 독특한 비실재성의 어시장 아낙들, 소, 닭 그리고 머리위에 큰
눈을 달고있는 나비 등이 한 식구로 모여있기도 한다. 감을 눈과 코만 있는
얼굴에 굵은 팔과 풍성한 몸체를 한 누드 또한 그의 그림에는 흔한
형상들이다. 그리고 특별히 현재호의 <얼굴들> 추상화는 그가 만취한
상태에서 그린 그림이다. 그 추상화는 언뜻 보기에 먹물로 함부로 그린
무질서한 추상이다. 바둑에 펼쳐진 넓다란 화선지 위에 제멋대로 그려진 굵고
자유분방한 먹선의 흐름만이 눈에 들어올 뿐 어떤 구체성의 형상은
감지되지않는다. 중단없이 이어지는 곡선들의 유연한 휘어짐과 꾸부러짐이
다양한 형태의 둥근 형상들만 눈에 들어올 뿐이다.
그건 맨 정신으로서가 아니라 취한 눈과 손이 그려낸 그림이다.
그런데 그림을 좀 더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 속엔 어떤 절제의 미와
질서가 담겨있음을 감지하게 된다. 왜냐하면, 자유분방한 검은 선의 흐름이
감은 눈의 다양한 얼굴 형상들을 이루며 서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 순간에 화가는 육신의 눈은 취한 상태였으나
그 영혼의 시선은 맑고 투명했음에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저렇게 균형잡힌 구도속에 자런 형성들이 유기적으로 이어질 수는
없었을 것이다. 현재 창동의 성미 주점 한 쪽에 걸려있는 그
그림을 한 참이나 바라보던 목경수 화가는 자신이 보기엔 이 그림이 현재호의
대표작이라 할만하다고 말하였다.
허청륭의 화가의 경우, '땡초'라는 애칭을 지닌 그 화가를 두고
한 시인은 '달빛 사냥꾼'이라 표현한 적도 있었다. 푸른 색 감도는 그의 달빛
풍경화는 '빈속을 흘러드는 소주 한잔과 새벽 달빛의 조화'라고 그는 생전에
말한 바 있다.그는 '하루에 한 말을 마시면 오장 육부가 춤을 춘다'는 언제가
그렇게 피력한 적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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