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산문

두 노인

jhkmsn 2016. 9. 3. 17:31

The Old Guitarist

Pablo Picasso
Spanish, 1881–1973
The Old Guitarist
Late 1903–early 1904

Oil on panel
48 3/8 x 32 1/2 in. (122.9 x 82.6 cm)
Signed, l.r.: "Picasso"
피카소의 유화 '늙은 기타리스트'-나뭇가지처럼 늘어진 길고도  

앙상한 손가락, 누더기 옷 사이로 드러난 뼈만 남은 어깨, 더 낮아지기 힘들 정도로  

숙인 고개, 고달픈 삶의 상징 같은 힘줄이 새겨진 목 그리고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듯한 표정.... 그 그림을 보는 이라면 , 누구라도 그 차가운 화면 색조와 그림  

속 인물인 늙은 악사의 체념적 모습에서 어떤 시적 우수를 느끼게 되리라.

'기타치는 노인' (The Old Guitarist)는 피카소가 젊은 시절인 1903년 에서 1904년  

사이에 그린, 이른바 , 청색시대(blue Period)의 회화작품이다.  

1901년부터 1904년 사이의 이 '청색시대'에 피카소는 주로 검푸른 색이나 짙은  

청록색의 색조를 띤 그림을 그렸다. 그 당시의 친구 카를로스 카사게마스

(Carlos Casagemas)의 자살에 받아 엄숙한 색깔을 선택하며 사회적 소외자인 매춘부,  

거지, 유랑 극단 가족, 알코올 중독자와 같이 음울한 소재를 대상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는 훗날 "나는 카사게마스의 죽음을 알고부터 푸른색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라고 회상했다.  

당시의 모더니즘(Modernism) 안상주의(Impressionism), 후기 인상주의

(Post-Impressionism) 그리고 상징주의 운동이 통합된 소위 표현주의  

(expressionism) 추세가, 그리고 이에 더하여, 17세기 말기의 그리스 태생의  

스페인 화가, 엘 그리코( El Greco)의 매너리즘적 요소가 그의 작품 스타일에  

크게 영향을 입혔다.  

엘 그레코라면, 강하고 대조적인 색채로 길쭉하고 뒤틀린 비벙상적인 인물의

종교화와 초상화를 주로 그렸었다.그레코는 후기로 갈수록 육체를  

극단적으로 일그러뜨린 그림을 그렸고 환상적인 배경처리를 사용하면서도  

인물들의 뛰어난 성격묘사를 통하여 자신의 독특한 개성을 발휘하였다.

                        



                   1.


2016년 7월

마산



지난내 2월 어느 날이이었다. 오후 3시쯤 군용작업모에 노동자 차림을 한 초로의 남자가 창동의 방송 작업실에 불쑥 들어왔다. 그는 어깨에 멘 큰 가방을 내려놓으면서  인문 일행에게 '기타소리가 들리기에.....'라고 말하였다. 한낮인데도 그에게서 술냄새가 풍겼다. 그날 그들은 기타반주에 맞추어 '희망의 속삭임' 곡을 2중창으로 연습하던 중이었다. 창동의 노천공연장인 아고라 광장에서 며칠 후 펼쳐질 <살풀이와 플라멩코 공연>에 게스트 출연자로나서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인문이 방문객의 큰 악기 가방에 눈길을 던지며 '기타 치는 분인가 보네'하며 그에게  말을 건네자, 그는 ' 몇 곡은 합니다요.'

라고 말하고는 이어 가방에서 기타를 꺼내 잠시 줄을 맞추고는

익 숙한 솜씨로 '알람브라의 궁전'을 한 곡 뜯는 것이었다. 그 곡이 끝날 즈음 인문은 그에게 " 내친 김에 '로망스'도 한번 켜 보시지요",라고 하자 그는 몸에 밴 악사의 자세로 그들을 향해 고개를 끄떡이고는 내려놓았던 기타를 다시 가슴에 안았다. 인문은 그가 뜯어내는 , 쓸쓸함과 기타곡 특유의  매력적인 음색에 내심 감탄하였다. 두 곡을 가만히 다 들은 인문은 대뜸  "그 두 곡으로 무대에 우리들 무대에 오를 수 있겠는가,라고 그에게 제안함으로써  그는 그의 제안으로 듯밖에 인문의 <살풀이와 플라멩코 공연> 무대에  프로그램에 없었던  그 두 곡을 들고 독주자로 나서게 되었다. 거리의 악사인 노인과 창동의 인문의 행복한 교우는 그게 첫 계기였다.


그 공연 며칠후 기타맨은 인문과 만난 자리에거 그가 늘 메고 다니는 기타를

인문에게 건네주며 자신이 조금 가르쳐 줄테니 집에서 연습해보라고 하였다.

자신은 항상 갖고싶었던 세고비아 기타를 하나 주문했다는 것이었다. 

"아니야, 나는 기타를 배우기에 너무 늙었어. 한 60대쯤이라면 용기를 한번 내볼텐데",

하며 인문은 사양하였으나 그는 기타를 인문에게 떠맡기다시시피  안겨주었다.

 인문은 그 노인이  교본까지 챙겨준 터라 기타와 한동안 씨름할 수 밖에 없었다.

다음은 그가 기타를 갖게 된 며칠 간의 메모이다.


 다음
 0월 0일                    

그 기타맨이 작년 초겨울 쯤 저녁나즐  집에 불쑥

나타났었다. 나는 그를 위해 김치찌게로 저녁을 준비하다.

손님으로 온 그에게 나는 집 서재에 걸어 둔 판화 한점을 선물하였다.

70년대에 여류화가 강국진의 추상화 소품이다.

식사 후 나는은 기타 연습본을 꺼내 전날 혼자 집에서 

읽다 잘 이해되지않는 곳의 페이지를 펼쳐 그에게 물어

본 다음, 왼손, 오른손으로 기타 잡는 법을 처음 배우다.

 

왼손으로는

집게 i를 1플렛에,

가운데 m을 2플렛에,

약손 a를 3플에,

새끼손 ch를 4플에,

 

그리고 오른손으로는,

도- 5번 줄 3 플렛,

레- 4번 줄 개방,

미- 4번 2플,

파- 4번 3 플,

솔- 3번 개방,

라- 3번  2플

시- 2번 개방

도- 2번 1플


도레미파솔라시도

30230201

도레미파솔라시도

30230201

도시라솔파미레도

10203203

도미솔

320

 .............

0월 0일

그 기타맨의 권유로 통해 기타를 만지기 시작한지 며칠이 지나면서

음계소리가 만들어진다. 연습을 계속하면, 현재 머리로 암기한 음계의

순서가  자동적으로 손에 익을 수 있겠구나 싶다. 신기하다.

그를 통해 10여년전 포틀란드에서 만난 플라멩코 기타리스트 마크 퍼거슨을

잠시 회상한다. 마크는 내가 소개한 김민기의 <아침이슬>을

좋아했었고,그 곡을 플라멩코 곡으로 편곡하여 연주했었다. 

얼마 후 그는 플라멩코 댄서 로레나 마론너와 함께 이곳

마산에 초대되어 <플라멩코와 살풀이> 공연무대에서 

아침이슬을 플라멩코 춤과 기타곡으로 표현했었다. 

 


0월 0일

기타를 손으로 더듬거리며  

시인 가르시아 로르카의 시 한구절을 떠올리다.

...........

가르시아 로르카의 시집

poema de cante jondo(1931)에서;

기타의 울음을 멈추게 할 수는

없으리라.

먼 곳을 그리워하며

기타는 눈물을 흘린다.

무더운 남국의 모래는

힌 동백을 찾고,

과녁을 잃은 채 허공을 떠도는 화살,

아림을 잃어버린 오후,

그리고 나뭇가지 위에서

제일 먼저 죽은 새를 슬퍼하며

기타는 눈물을 흘린다..

아, 기타여!

다섯개의 칼에 의해

성처입은 심장이여!

(<기타>부분)


??


                        2.

인문은 창동지역에서 화가들의 전시 작품에 대해 그림평을 해줄 때에는

전시회 개회식에 그 노인과 함께 참여하여 그로 하여금 그 자리에서

기타 독주를 하도록 주선하였다. 전시회에 그림을 보러 오는 관객이나

화가들이 그의 기타연주 솜씨에 박수를 보내기 때문이다. 그 노인은

관객 앞에서 연주하는 것만으로 행복해한다. 그리고 전시화가의 입장에서도

그 기타맨이 자원봉사자로 기타연주해주니 그저 고맙기만할 뿐이다.

근자에 이르러 기타맨은 인문을 따라 그림 전시회 개회식에서 두번이나

기타를 쳤다. 두번 다 대우 백화점의  갤러리 공간에서였다. 한번은

최성수 화가의 그림 전시회 개회식에서, 그리고  뒤어 같은 공간에서 열린

현재호 추모전에서 였다. 그 자리에는  인문도  그림평을 위해 참여하였다. 

참고로, 전시회를 위해 위해 인문이  한편씩 써준 산문체을 글을 여기에

소개한다.

 

 '아래'

3월 2일, 2015.
 윤화백님!
 제번하옵고,
모처럼 제게 소중한 회상의 순간을 떠올리게 해준 최성수 화가의 그림

한점,'바이칼의 풍경'과 관련한 정담을 나누고 싶어 필을 들었습니다.
 
지난 날 제가 혼자 나선 시베리아 여행길에  맛본 어떤 드문 경이감이
한 분의 화가로 인해 , 그리고 그 분의 유화 한 점으로 인해
다시 되살아나는 가슴 벅찬 회상의 순간을 누렸습니다. 
시베리아의 설원의 고요한 신비의 자작나무 숲의 여명,
바이칼 호수가 있는 쪽으로 뻗은 그 끝을 알 수 없는 가로수길,
멀리 보이는 하늘 아래에 있다는 그 호수의 바람소리에 대한
억누를 수 없는 궁금증 ,....등등!
 
그 분은 4월 초에 대우갤러리에서 작품 전시회를 가진다는
월초 최성수 화가입니다. 그리고  그 가슴 벅차오름의 순간을
다시 회상하게 된 것은 그 분의 아틀리에에 있는 유화 한 점에
시선이 끌리면서였습니다. 그가  그린 바이칼 호수 풍경이
그것입니다. 최성수 화백을 그의 아틀리에에서 만났을 때,
 '와! 바이칼 호수와 마주할 수 있었다니!
참 운 좋은 분이시구나,' 하며 
속으로 부러워했습니다.
 
아래의 이 울림의 글에 귀를 기울여보시기를!
'바이칼 호수의 바람소리를 들어보라, 그러면 기도의
참 뜻을 알 수 있을 것이다.' - 어느 책에서 읽은 이 암시적
글 한 줄에 , 그리고  그 호수에 대한  안톤 체홉의 한 마디-
'그 아득한 호수의 끝이 어디인지는 하늘을 나는 철새 들 만이
알고 있다.'- 에 홀려,  저는 그 낯 선 시베리아로 향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페테르부르그에서 이르크츠크 까지 내닫는 검은
TSR 기차 속에서 수도사처럼 경허의 마음과 탐색의 눈빛으로
그 호수에 이르고자 닷새의 밤과 낮을 보냈습니다.
불운하게도, 마지막 순간에 시베리아의 그 '성스러운 바다'
곁에 이르지 못하였습니다. 그 후로 내 마음에는  바이칼의
바람소리에 대한 궁금증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최성수 화백은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한 후 건축가의 길을
걸었던 분으로, 오래 전 언젠가부터 홀연히 화필을 들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김환기의 초기 달항아리 심상에, 
루소(H두갸 Rausseau)의 환상적 원시림, 그리고 가까이는
남정현의 반추상적 바다 풍경에 끌리면서, 독학으로
화가의 길에 들어선 듯...
한편, 그 분이 이집트 여행길에 머문 나일강의 인상을
재현적으로 담은 '나일강 풍경'의 경우, 화가가 감성적으로
클로저업시킨 삼각돛단배로 인해 제 시선이 머물더군요. 
 
그가 주로 집중한 작업은 주로 목판화였습니다. 나무판에
조각칼로 새겨진 산수의 형상을 붓으로 채색한 그림들입니다.
바다, 산, 하늘이 청, 홍, 백 등의 자연 색상을 띈
유화들이었습니다. 산수에 대한 화가의 내면적 서정과 사색이
조각칼 끝으로 표현된 반추상의 심상들이었습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으로, 목판위에 새겨진 요철의 형상들이
색채와의 부조화로 인해 명징한 색상을 띠지 못하더군요.
그의 목판채색화 앞에서 문득 이렇게 인그래브된 (engraved)
형상들에 순수한 먹빛을 입혀 판화로 태어나게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퍼뜩 들기도 했습니다.
 
윤화백님!
이 3월이 다 가기 전, 뒷산 솔향을 안주 삼아 술 한잔 나누고
싶습니다. 소식 한번 주시기를! 
 
석전동의 우거에서
jh



6월 2015


보편적으로 그림이나 조각 등에 대한 감상이나 비평의 글은,

작품을 보는 것이 먼저이고, 글쓰기는 그 다음이다.

전시를 위한 작품을 본 평자의 사색과 감흥이 손끝을 통해  

어휘와 단어의 조화로 이루어지는 글로 표현되는  순리적인

과정을 거친다. 책에 대한 서평의 글도 그러하다. 누군가의 책을

읽은 게 먼저이고, 글쓰기는 그 다음의 것이다. 보지않은 그림이나 

읽지않은 책에 대해  어떻게 비평의 글을 쓸 수 있겠는가. 만약 

그림 소장가가  그림비평가에게, 전시회될 그림을 먼저 보여줄 생각도

않은 채, 그 그림전에 대한 비평의 글을  부탁한다면, 그리고
그런 부탁을 아무렇지도 않게 승낙하는 글꾼이 있다면,

이런 비정상적인 대화를 두고 사람들은 우스개로 여길 것이다.

그런데  고 현재호 화백의 그림을 두고 이런 희한한 일이 있었다. 

그림 소장가인 강오복씨와 그림산문집 '창동인 블루'의 저자인 필자

사이에 그런 대화가 실제 있었다. 둘이 만초집에서 만난 술자리에서

그가 전시작품을, 그림이나 사진으로, 보여주는 과정을 생략한 채,

그냥 며칠까지 비평의 글을 한 편 써달라고 부탁하였고,  이 부탁을

필자는 , 전시될 그림을 미리 볼 생각도 않은 채, 태평스럽게 

승락한 비현실적인 풍경이 바로 그것이다.

 

 둘이 서로, '믿고갑니다', 그리고 '그럽시다'라는 말들을 주고받으며

헤어지면서 문득 필자는 참 엉뚱한 일도 다 있구나 싶었다. 어떤 그림들이

전시될 것인지도 모른 채 그림평을 써주겠다고 약속하다니! 참 엉뚱한

노릇이다. 그림소장자도 그렇지, 그림을 보여줄 생각도 않고 어떻게

그렇게  태연히 글 부탁할 수 있는가, 원 참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호의 그림에 관해서라면 '그럴 수 있겠구나'

하는 희한한 생각이 필자에게 들게 된 것은 지난 날 현재호의 화실이

있었던 어시장 쪽으로 발길을 옮기면서 였다. 현재호의 그림이라면,

있음직한 부탁이구나 하였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림소장가나 글꾼

둘다 개인적으로 그 화가에게 긴 시간 홀렸던 적이 있엇던 인물들이라,

그 화가의 초현실주의적 몽상의 세계에 알게 모르게 물들었을 터이니

그런 허구성의 약속이 태평스레 이루어졌으리라. 

현재호의 그림이라면, 그의 몇십점의 회화들이 당장이라도 눈 앞에

아른거리는 필자이니 그럴 수도 있었던 것이고, 그림소장자 역시

현재호의 그림세계의 그 싯적 비실재성에 젖어 지냈을 터이니 또한

그럴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그리나 저러나, 필자는 솔직히 이번 현재호 추모전이 누구보다도

더 궁금하다! 내가 모르는 그림들도 더러 있을 것이라니,  혹시

전에 대우갤러리에서 보았던 티없이 맑은 초록빛 해안 풍경의

작품들도 있으려나? 시인 이선관 초상화 처럼 표현주의적 요소가

물씬 풍기는 그런 인물화도 있을 것인가, 아니면 루오 분위기의 진한

어두움의 싯적  리듬의 작품들이라도?  필자는 스스로에게 던지는

그런 물음들이 이어져 남들보다 더 궁금하다.

 

 

​ 현재호의  무중력의 그림세계속에는 눈을 감은 초현실주의적  인물들의 무언의 신뢰와 적은 소유가 주는 무한히 큰 넉넉함이 스며있다. 인물들의 침묵은 물안개빛 몽상의 화면위에서 부드러운 검은 선을 타고 애잔하게 흐른다. 그래서인지 이 화가의 그림들과 마주하는 이들은 저마다  달콤한 맛의 서러운 취기를 맛본다. 그의 그림은 특유의 암시적 색채로 인해 회화적이기 보다 오히려 비감의 싯적 산문이다. 무형식의 자유시이다.

 

화가의 내면의 시선에 포착된 지친 이웃들의 고단한 삶이 화롯불 온기를 띤 화가의 마술적 손에 의해  오히려 아름다운 빛깔을 띤다. 창동의 한 화가가 필자에게 현재호는 현실의 절망감을 면제받은 운좋은 보헤미언이라고 귀속말로 들려주었을 때 , 맞는 말이구나, 싶어 고개를 끄덕였던 적이 있었다.

현재호의 언어적 표현은 그의 그림에서 만큼이나 이성적 논리의

굴레를 벗어나 있었다. 그에게는 의사전달에 필요한 적절한 어휘들이

많이 필요하지 않았던 화가였다. 그렇지만 신기하게도 이 점은 그의 그림에

대해 간혹 대화를 나눌 때 그렇게 불편을 주지않았다. 오히려 그런 점이

그와 마주하는 이들의 시적 몽상을 자극하는 묘한 요소이기도 하였다. ​

현재호와 그의 그림이 지닌 묘한 흡인력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이 것은 필자가 그와의 만남이래 스스로에게 던지던 물음이었다.

그의 그림속에 담긴 허구적 대상과 그 모티브는 대부분 사회적 저층의

인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그의 초현실주의적 그림들은 그 속에

수줍음이 가득한 얼굴의 감은 눈, 나무뿌리처럼 투박하고 굵은 손,

드러내놓은 유난히 풍성한 젖가슴 등에 스며있는 무한히 적은 소유의

온기로 인해, 우리네 관객들의가슴을 찌른다.​ 

그렇지만 필자는, 그림보다 글에 더 잘 매혹되는 필자는, 그 어떤

무엇보다도 단어, 단어들의 글 향기에 더 잘 취한다. 싯적 반짝임의

구절들, 이를 테면, 아래의 이런 표현들이 그런 것이다:

' 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탈지어이의 손수건' (유치환).

 ' 출세한 부녀자의 좁은 어깨, 가난한 노파의 눈물. 철책속에 갇힌 사자의 

앞발에 담긴 한없는 절망'(안톤슈낙).

 그리고 '내게 그림은 아득히 먼 곳으로부터 온다'(피카소).

 이에 더하여, 한 주붕이 '현화백은 무엇을 제일 좋아합니까 '라고 던진

물음에 ,소주잔 가만히 내려 놓으며 아래와 같이 답한 현재호의

 소곤거림의 그 한마디와 그 푸른 빛 풍경도 필자의 마음에

남아 있다.

 

-소낙비 그친 오후 불종거리의 희다방 옥상에 걸린

무지개를 좋아하였다.-

 

       

인문
                           



        3.


음악과는 별개로, 전통적인 집시인들은 천성적으로 배우들이다.

그들의 삶은 그들이 거리에서나 자주 드나들며

칭찬하고 남으로부터 칭찬받는 카페에서 잘 들어난다.

그들은 깔끔한 옷차림에다 독특한 개성의 소유자임을 드러내기를

좋아한다. 이런 태도로  스페인 산의 값싼 화주 잔을 들고

수탉처럼 우쭐대며, 한편으로는 관대하며,권위적이기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겸손하며 친절하기도 하면서

공식적인 태도에다 무엇보다도 개인적인 특성으로,

말하자면 튀는 옷맵시를 좋아하는 품성의 소유자들이다.



집시들에겐 미래에 대한 큰 포부가 없으며, 그들은 삶의 기본적인 요소만으로

만족할 줄 안다. 그들의 의식속에는 진보라거나 발전의 기념이 없다.

그들은 치열한 경쟁이나 경쟁자들을 경멸하며, 교통이 번잡한 거리나

현대식 건물의 번쩍이는 카페, 목적지없는 부산한 문명 응

현대적 현상을 싫어한다. 한마디로 그들은

진보에 무관심한 철학을 지니고 있다. 물질주의, 할부 제도 생명보험 등....

목표도 없이 부산한 현대적 삶에는 무관심하다



집시들에겐 자신을 힘든 일에 하루종일 옭아매는 일자리

상상할 수 없다 돈보다 중요한 것은 자유로윰이다.

그는 필요에 따라 기분에 따라

일할 것인지 아닌지를 스스로  선택하는 자유를 소중히여긴다.

'내가  내 삶의 주인이다.'



집시 문화에서 가장 특징적인 요소는 가족을, 더 나아가, 공동체를

소중히 여긴다는 점이다. 연장자가 존중받고 대접받는다. 무엇보다

그들은 노인들에게 찾아가 노인들과 의논하고 의견을 구한다.



집시족들은 비극적 운명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그들이 소속된 사회의 규범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태도로

그들은 사회적으로 박해의 대상인 되었던 것이다.

인간의 마음은 유랑생활 자체를 비극적 운명과 연계시키는 이유는

무엇인가? 지금 그들은 정착의 삶을 누리고는 있지만

그들은 우리들보다 유랑에 더해 더 많이 알고있음에 틀림없다.?



4.


:어서 오세요. 어제 인문에게 전화한건, 한 동안 발걸음이 뜸해 궁금하기도 하고, 이 골목의 악사 늙은이 소식도 전할 겸해서 였다오.어제 저녁 그 영감 또 왔었어요. 아니나 다를까, 큰소리를 지르고 급기야 옆자리 손님에게 시비까지 걸기에 참다못해 쫒아냈었지. 뭐 술이 좀 과하면서부터였지만 큰 소란은 아니었어요. 그래도 처음엔 기타 몇 곡으로 여러 손님들의 귀를 매료시켰었다오.

단골 한분이 시킨 페티김 노래- 그 곡 이름이 뭐더라-를 애뜻하게 들려줘 박수와 앵콜을 받기도 했었어요.

그 영감 모르긴 해도, 세월이 흐르면 이 골목에서  전설이 될걸요 아마. 그럴만 한 것이 그 노인은 어디 일정한 거처도 없고, 가족도 없는 것 갗지만 그의 기타소리 하나는 듣고 있으면 코끝이 찡해져요든. 무기교의 음색에다 음색은 가을하늘 같이 투명하고 티가 없어요. 솔직히 음악을 자주 듣는 나도 그의 기타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홀려요. 그 영감 하면, 자연히 저 벽위에 걸린 피카소의 복사본 그림속의 늙은 기타리스트 쪽으로 눈길이 가요. 영락없이 그를 닮았다니까요. 긴 다리에 수척한 저런 몰골에 어찌 그런 티없는 소리를 만들어 내는지.스페인의 기타연주자 세고비아가 독학으로 기타맨이 되엇다며, 자신도 세고비아처럼 되고있어서 젊은 날 그저 기타만 쳤다나. 하여간 그는 우리 가게에 오면 꼭 저 그림 사진 앞 자리에 혼자 앉아 찬 맥주를 시켜요. 한 때 용접공으로 일한 적이 있어. 지금도 그 영감을 용접일로 이따금 불러주는 데가 있는 모양이입니다.

성품은 맑아요. 우리집에서 여지껏 외상 술 마신 적이 없는 걸요.. 문제는 올 때마다 늘 취해서 나타난다는 것이지요. 자리에 앉아

한동안 혼자 기타를 만지며 한 두곡 켠 후에는 주변 누군가의 곁에 들어붙어 지치도록 중얼거린다는 점이지. 그러다가 고함을 치고 ,


:Y 작가! 이 분이가 제가 말하던 만초집 주인입니다. 창동의 뒷골목이야기를 가장 풍성하게 알고 계시는 분으로 우리들은 그저 조선생님이라 부릅니다.입니다. 조금 전 이야기해주던 그 기타치는 노인의 기타소리를 제가 특별히 좋아한다는 것을 조선생님은 잘 알거든요.Y 작가는 아마 이곳이 이 처음이죠? 오래전부터  클래식 듣고싶은 이들이 찾는 집입니다.. 저도 가끔 창동나들이 길에 박세원의 가곡 듣고 싶을 땐 이곳에 옵니다.

지난 번엔 영문학자 김교수와 창동 소개꾼 김여사 등과

함 께 들렸었어요. 그렇지만 이 곳은 주로 나이든 화가들이 술마시며 떠드는공간입니다. 오늘 함께 오신 윤화백처럼 말입니다. 윤화백 아니 그렇습니까?지금은 세상 떠난 남정현과 현재호, 변상봉 그리고 허청륭 등 창동 화가들은 생전에 여기를 제집 드나들듯 했답니다.


: 윤화백도 Y 작가와 만나면 즐거워할 것 알기에 이렇게 함께 오시라고 했습니다. Y 작가의 청색 바탕의 모노크롬 분위기의 추상화를 특별히 칭찬하더군요. 어쨋거나 서양 현대미술사를 꿰뚫고 있는 윤화백이잖아요 윤화백은 맥주, 그리고 저의 윤작가는 소주 . 오늘술값은 제게 낼께요. 참, 다음 주 창동겔러리에 원로 작가전 오픈 한다지요? 여기오다 미협사무실에서 들었습니다.몇분이나 참여하십니까? 윤화백,박춘성 회장, 교당 , 또 누굽니까? 문여사는 교당하고 같이 나타날게요. 윤화백은 무슨 작품을 준비하셨는지요? 암시적인

반추상의 인물이 담긴 그런 화화로? 늘 함께 다니는 박춘성 화백은 여전히 토속적 황토색 들판과 옥수수밭 아낙들이 등장하는 그림일테고.교당은 전에 보았던 조선시대의 미인도 한점? 교당 하면,생각이 납니다. 동서양을 불문하고 회화적 주제나 기법이 그림의 보편적인 예술성을 무너뜨리는 수준으로까지 치달으며 변화는 이 시대적 변화속에 살고있지만, 그 분은 그런 변화와는 무관하게 한결같이 자연미 추구를 고수하는 전통적인 동양화 기법을 고수하고 있지요. 대상에 대한 모사력이 출중한 그는 얼핏 조선 중기의 직업적인 화원을 연상케 하더군요. 그는 한번 그의 서재에서 새필을 든 그의 손이 화선지 위에서 탐미의 유희에 집중하는 사이 전통적인 치마저고리 차림의 곱고 단정한 여인의 얼굴이 그 위에 피어나는 나는 것을 지켜본 적이 있었습니다.

윤화백도 한 마디 하지죠?


:그럽시다 우선 이 맥주잔 부터 먼저 비우고요. 인문이 오늘은 말이 많은 걸 보니 술값은 걱정없나보군요. 하여간 저 피카소 의 늙은 기타맨 그림 앞이니, 피카소의 이른바, 청색시대의 그림들은  머리에 떠오르는군요. 그 때의 그림들은  대부분 저 그림처럼 거지, 부랑자 등 사회적 약자나 소외자들에 관한 그림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들 부랑자에 대한 피카소의그의 연민의 정은  아마도 예술가 자신의 소외감을 피력한 것이겠지요.  피키소의 청색시대의 그림들을 보면 이 기타치는 노인처럼,  그가 즐겨 그려낸인물들 마다 절망감을 넘어선 우울함을 보여요. 저 기타맨을 한 번 뵈요, 자신의 운명을 체념적으로 그대로 받아드리고 있는게 성자의 풍모 아닌가요. 그리고 저 탈속적인 길고 가는 다리는

화가 그레꼬의 그림들을 연상케 해요. 특히 저 기타치는 노인에게서는,아시겠지만, 그 유연한 곡선의 윤곽이 그레꼬의 매너리즘과 고갱 분위기를 떠올리지 않습니까.  20대의 젊은 청년 피카소의 개인적인 비애감이 저 그림속에 그대로 배어있는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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