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산문

포틀란 플 댄서-마음의 동굴, 제2부 불행과 2

jhkmsn 2019. 10. 31. 20:08

2.

인우에게는 상당한 기간 동안 그녀의 춤이 플라멩코의 전부였다.그녀의 긴 팔이 그려내는 아치형의 동작, 우아한 허리의 동선, 강한 탄력성의 자파테아토(발동작), 당당한 시선 등, 그녀의 이 모든 몸짓이 곧 플라멩코 춤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믿게되었을 정도였였다. 그녀의 춤을 통해 플라멩코를 눈으로 목격하게 되었고, 그녀와의 대화를 통해 '플라멩코는 , 바다보다 넓고 우물보다 깊은, 플라멩코는 첫 흐느낌과 첫 키스로부터 나온다'는 매력적인 구절을 알게되었던 인우였다.

이제는 더 이상 지난 날 처럼 그렇지 않다. 어느 시점에선가부터 그녀가 춤의 길에서 벗어나고있음을 알고부터였다. 춤추는 그녀의 흔적은 이제 그의 머리속에서 아련할 뿐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는 플라멩코를 더 깊게 사랑하게되었다. 처음에는 플라멩코의 전부로 여겨졌을 정도로 춤과 기타소리에 몰입했었지만 점차 노래(소리)가 더 매혹적인 요소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여기에 플라멩코 노래를 좀 더 구체적으로 소개한다.

플라멩코의 칸테(노래)는 크게 세가지로 분류되는데, 그 중에서 칸테 혼도(jondo)혹은 칸테 그란데(grande)는 스페인어로 깊은 노래(deep song)노래라는 의미로 셋 중에서 가장 원형적이고 순수한 노래형식이다. 나머지 둘은, 노래의 깊이감에서 중간단계인 칸테 인테르메디오(intermedio)와 가벼운 노래라는 뜻의 칸테 치코(chico) 이다.

칸테 혼도는 가장 최초이고 순수한 플라멩코 칸테로 원래 고대의 종교적인 찬송 즉, 여러 종교적 성가에서​ 유래된 것으로서, 나중에 점점 비탄의 표현형태로 보편화되었다고 한다.이 칸테 혼도 범주에 속하는 노래들은 기본적으로는 ​집시들의 독창적인 노래​로 이루어졌었지만, 지금에 이르러 해석하기가 매우 까다로운 노래들까지도 이 칸테 혼도의 범주에 넣고 있다. 소리꾼이 목과 폐의 힘으로 토해내는 이 노래는 반음악적이다. 멜로디와 화음이 바탕을 이루는 보편적인 음악의 요소를 무시한다. 얼마전까지만해도 그런 소리는 안달루시아의 집시나 혹은 동양계의 피를 받은 종족의 거칠고쉰 듯한​ 아필라(afila) 목소리에 담긴 야성적이고 원시적인 절망의 외침을 유전적으로 물려받는다고 믿어왔었다.

이 범주에 속하는 소리로는​ Buleria por Solea, Saeta, Solea, Martinete, Siguiriya 등이 있는데, 인우는 Solea와 Siguiriya를 즐겨 들어왔으며 그 노래의 소리꾼으로서는 카마론의 목소리를 먼저 연상한다. 절망과 절규의 외침같은 카마론(Camaron) 류의 탁한 소리 듣기를 가까이 했었던 것이다.

그는 플라멩코 소리를 두고 이른바 '검은 고통'이라는 말을 이제는 느낌으로 이해한다. 프랑스의 산문작가 장 그러니에의 한마디 글- 그 어떤 것도 우리의 마음을 표현하지 못한다. 말도 행동도 이미지도 꿈도......-라는 귀절을 읽고부터였다. 이 표현이 그 '검은 표현'의 의미를 잘 대변해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는 것이다.

칸테 혼도! 그 깊은 노래를 듣다보면 그는 자연스럽게 우리의 남도 해안의 판소리가 연상된다고 하였다. 이 둘은 그 생성에 있어서나 , 소리꾼의 주름진 이마에 새겨진 깊은 고뇌의 표정과 수리성의 거친 목소리에서나​, 서로 동질의 것으로 느껴진다고 그는 말한 적이 있었다.

칸테 혼도가 스페인 남도의 안달루시아 집시족의 입과 입을 통해 전해 내려온 그들의 민속음악이다. 한국의 판소리 역시 전라도 해안을 떠돌며 척박한 삶을 이어 온 유랑소리꾼들의 구전의 소리이다. 두 노래소리 다 사회적 소외자들의 달랠 길 없는 고통과 슬픔의 표현이었고, 춤은 그런 몸짓이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 둘은 한 종족의 전통의식의 표현이지만 민족과 세대를 넘어 보편적인 체험이자 정서를 반영한 것이어서 어떤 특정의 문화권에만 한계지어질 수 없는 소리문화로 자리잡게 되었다고 그는 느꼈다. 즉, 민족적 차원을 넘어 세상 어느 곳에서나 그 노래소리들은 실존주의적 고통을 겪는 보편적인 사람들의 마음 속으로 파고든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플라멩코는( 그 노래소리보다 춤이 훨씬 더 ) 이미 세계인의 마음과 귀에 친숙해지있지만, 우리의 판소리는 아직은 세계화되지는 않았지만 그런 잠재력을 지닌 우리 남도의 소리 문화라고 하였다

인우는 이따금 그들 소리꾼의 삶과 자신의 현재의 삶이 비유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느낌을 갖게있다고 하였다.

인우의 경우, 자신이 이제 생물학적 노쇠현상에 접어든 나이인데다, 내면적인 무기력증으로 인해 존재가치를 상실한 무의미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는 의식에 빠져들고 있어 어떤 의미에서 사회적 소외자들의 절망의 외침에 공감한다는 뜻이다. 개인적으로 그는 지금에 이르러 하루 하루 단조롭고 의미없이 지내는 게 지겨워지기까지 할 때를 자주 겪는다. 그 때마다 이를 극복고자, 앙드레 지드의 글귀,- 그대 눈에 비치는 것이 순간 순간 새롭기를!- 를 되내인다.

그는 전에 어떤 밤이면 눈 앞에 자신의 소년기의 바다가 나타나 아른거렸다. 그 바다의 눈부신 은빛 잔물결은 소년의 눈에, 새벽 ​ 오리떼의 날개짓 소리는 귀에​, 그리고 밀물때마다 해풍에 실려오는 갯내는 코에 익어 있었던 것들이었다.​ 동트기 전 집마당 축담과 부딪치는 파도의 부드러운 소리에 소년은 잠을 깨고, 반쯤 감긴 눈으로 여명의 바다와 마주했었다. 그 바다는 새벽마다 늘 새롭게 소년 곁으로 찾아왔었고, 소년은 그 때마다 가슴 벅차오름을 새롭게 맛보았다.

그 바다는 계절마다 소년에게 선명히 구별되는 빛깔과 소리와 그리고 냄새로 그에게로 왔었다. 소년은 그 중에 햇살을 담뿍 안은 겨울의 늦은 아침에 수면이 마당 높이까지 오른 그 부채꼴 바다의 은빛 잔물결을 제일 좋아했었다.​​한 여름 초저녁 청마루에 누워 뒹구는 소년은 마당 아래에서 들리는 해풍의 속삭임에 마루아래로 내려오지않고는 베겨낼 수가없었다. 방축 아래에 그 잔잔한 수면위로 까만 얼굴과 까까머리를 내면 동네의 또래들이 장난치며 헤엄치는 소리마져 귀를 간지럽히기 때문이었다.​ 갯벌끝 자락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바둑이처럼 소년을 향해 뒤돌아보던 그 바다는 결국 그렇게 수평선 너머로 가물거리며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이에 더하여 새벽 바다위로 비상하던 청둥 오리떼, 물가의 참게를 두 발로 집적되다 혼이 난 바둑이, 쓸물 따라 하늘 위로 솟아오르며 소년의 시선을 빼앗던 방패연들, 겨울 새벽의 크리스마스 송가, 동네 아이들을 뒤에 몰고 다니던 수염이 흰 엿장수의 수레와 엿가락질 소리도 그 바다를 따라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가물거리는 잔영들! 그는 이로 인해 때때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가 그렇게 고립감과 무력증에 빠져들다가도 컴푸터 앞에서 화면속의, 칸테 혼도를 부르는 늙은 소리꾼 카라꼴의 그 거친 호흡과 ​꾸밈없는 얼굴표정, 그리고 소리꾼의 친구관객들이 그 소리에 손벽 장단을 맞추는 그 패쇄된 공간의 하얀 포도주 잔, 피어오르는 담배 연기 등으르 이어지는 플라멩코 의식(jerga) 영상에 빨려들면서 자신도 모르게 그런 무력증이나 고독감을 까맣게 잊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