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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플 2 불행과 1a

jhkmsn 2019. 10. 20. 06:31


        제 2 부

불행과 아름다움

​1.

인우의 머리속에 요즘 파이오니어 스퀘어 광장을 중심으로 한 포트란드의 도심이 그려진다. 20년 전 그가 이 도시에서 처음 머물렀던 센트랄 프라자 호텔이 이 광장에서 아래쪽으로 30미터 정도 밖에 되지않는 데에 위치하고있었고, 대리석 계단이 인상적인 4층 건축물의 중앙도서관이, 그리고 근처에 이르면 커피향이 먼저 발길을 끌어당기는 대형서점인 '파월 북 스토어'가 각각 그 광장으로부터 4 내지 5분 거리에 있었다. 그리고 브로드웨이 건너쪽으로 미술품 갤러리들이 모여있는 펄 구역이, 또 다운 타운의 빌딩에 올라가면 눈에 들어오는, 가로로 흐르는 넒고 깊은 윌라미트 강이 걸어서 5,6분 거리에 있었다.

한낮의 파이오니어 광장엔 젊은이들의 웃음소리와 햇살로 가득하였고, 커피 내음이 번져내오는 서늘한 늦은 저녁의 그 광장엔 아프리카 음악의 출렁이는 흐름을 탄 흑인 댄서의 불꽃 몸놀림과 야성적인 드러머의 격렬한 드럼 두드림이 관객의 얼을 뺏는다.

파이오니어 광장의 외곽 한편에 위치한 펄 구역은 예술공예품 갤러리 들이 줄지어 자리잡고 있는 ,이른 바 포틀란드 예술촌이다. 이 곳 갤러리에 전시 판매되는 상품들은 거의 중국 일본 그리고 아프리카 지역의 고 미술품이나 공예품들이었다.

인우가 낯선 플라멩코 춤과 소리를 처음으로 보고 들은 곳이 바로 이 펄 공원이었다. 그는 이 지역 공원에서 펼쳐진 8월 예술축제에 우연히 나와 야외 무대에서 펼쳐지는 플라멩코 공연을 보게되었고, 그 공연단에 대한 첫 인상이 지워지지 않아 플라멩코를 다시 만나고 싶어 일부러 이 도시로 다시 찾아 와 우연히 엘레나를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지난 날 엘레나의 '아이레'플라멩코 공연을 이틀을 앞둔 날의 저녁 혼자 파이오니어 광장에 나와 돌계단에 기대어 않았다. 초가을의 한낮 진한 햇빛아래 벌거숭이 윗몸을 뽐내던 젊은이들도, 감자칩을 손에 든 어린이들 뒤를 따라 다니던 비둘기도 모두 떠나버린 텅빈 원형의 광장에 이른 고요가 찾아와 넓게 깔려 들었다. 해의 끝자락이 사라진 뒤의 그 고요가 , 붉은 벽돌 바닥의 광장의 그 텅빔이 지난 한달 여 동안 마음 들떠 있었던 인우에게 유난히 가슴찌르는 것이었다.이틀만 지나면 그가 그렇게나 가슴 조이며 기다려온 엘레나 공연단의 '플라멩코의 밤' 무대에서 그녀가 '아침이슬'을 춤 출 것이고 그 역시 그 무대에 올라 그 노래를 우리말로 노래부르며 관객들에게 그 의미를 소개해 줄 것이다. 그 무대를 상상하며 그 날을 기다리는 인우에게 잿빛 하늘을 이고있는 광장의 그 텅빔은 그러하였다.

그것은 모르긴 해도, 공연이 끝나면 이 곳의 현실은 한 여행자에 불과한 인우의 삶과는 무관한 일이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공연이 끝나는 다음 날 인우는 그 도시를 , 그리고 엘레나 곁을 떠나기로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한달 이상이나 그의 삶의 한 가운데에 들어와 있는 엘레나와의 만남도 그녀의 목소리도 과거의 일로 아득해 질 것이다. 그 텅빔의 고요가 이를 그에게 상기시켜주었던 것이다. 그는 그 광장의 돌계단에 비스듬이 앉아 내일 모레 공연의 막이 내리면 물안개처럼 덧없이 사라질 어떤 환상에 젖어 있었던 것이다 .이 도시에서 여름 한달 동안 마음의 호주머니속에서 소중하게 가꾸어져 왔었던 어떤 환상의 조약돌들이 손끝에 애틋하게 감지되면서 더욱 그러했던 것이다.

이 광장 근처의 호스텔인 조이스에 머무는 동안 인우보다 먼저 들어와 지내던 '리'라고 불리는 한 미국인과 자주 어울렸다. 그는 이 사회의 소외자였고 '나의 가족'이란 말은 머리속에서 지워진지 오래된 외톨이였다. 그는 인우와 한 방에 머무는 동안 그에게 훌륭한 영어교사 역할을 했다. 인우가 책을 읽다 만나는 어려운 문장이나 어휘는 곁에 있는 리를 통해 즉시 이해되었을 뿐 아니라, 대화중 인우의 잘못된 표현을 고쳐주고 듣기 어려운 말은 일부러 천천히 발음해주기조차 하였던 것이다.

그는 190센티미터 이상이나 되는 큰 키에 여자보다 더 긴 브론디 색갈의 머리를 뒤로 묶는 헤어스타일을 하고 다녔다. 그는 실내에서나 밖에서 늘 검은 색안경을 끼고 생활했으며 예수를 닮고 싶다며 늘 성경을 탐독했었다, 리며 미국땅은 병들어 더 이상 구제할 수 없는 썩은 나라이므로 자신은 늘 인도로 가는 꿈을 꾸고 있다고 했었다. 그리고 ' 나의 꼬마 형님'(인우는 우리말 형님의 의미를 가르쳐주며 앞으로 자신을 형님이라 부르게하였다.)이 왜 이런 나라에 들어와 살고싶어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도 했었다. 한번은 자신이 피우던 마리화나를 인우에게 권하면서 그가 젊은 날 감옥에서 얻어맞아 생긴 가슴 통증을 가라앉히려고 그걸 피우게되엇다고 하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아이레 공연날 낮에 인우가 무대에서 소개할 아침이슬에 대한 영문 문장을 교정해주었으며, 저녁에는 공연시작 전에 잔뜩 긴장한 그에게, 마음 편하게 해주는 비법의 약이라며 펩시콜라병을 하나 건내주었다.

'이건 뭐니?'

'보시는 데로 콜라병이 잖아',

이걸 왜?

'무대 앞으로 나서기 전에 미리 마셔 둬. 조금 지나면 속이 후꾼거리며 마음이 편안해 질거야.'

'이게 ?'

'이건 그냥 콜라가 아니야. 영국의 독한 위스키 럼주에 펩시콜라를 약간 섞은 술이야.'

인우가 그날 무대 뒤에서 그 비법의 술을 마신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엘레나는 인우의 마음에 긴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 그렇게 여전히 살아 남아 있지만, 현실적으로 그녀는 아득히 먼 곳에 머물고 있는,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은, 존재일 뿐이었다. 더우기 두 사람의 이메일 교류는 전같지 않게 시간이 흐를수록 점전 줄어들었고, 그 내용도 그저 의례적인 안부에 그치고 있었다..무엇보다 엘레나의 글 내용들이 이제는 댄서로서의 표현의 글이 아니라 현실적 삶의 일상에 관한 것들이 대두분이었다. 플라멩코 춤이라는 말은 그녀의 의식속에서 지워지고 만 것처럼 느껴졌고 그녀의 이메일은 점점 뜸해졌다. 따라서 그녀의 존재는 자연스럽게 인문의 뇌리에서 희미해지고 있었다. 그는 이를 슬퍼하였다. 그녀가 춤을 포기하는 것은 인문이 간직하고있었던 어떤 기대나 희망이 사라짐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렇게나 소중히 가슴에 담겨있는 것들이 이제는

그 소리도, 움직임도 정지된 과거의 흔적으로 남게되다니!

아침 햇살에 사라지는 물안개처럼.

춤추는 그녀의 존재가 비록 세상에 널리지지는 않더라도

그녀의 춤은 내게는 참된 플라멩코 예술로 간직될텐데.

참 덧없는 일이야.

인우가 회상하는 포틀란드는 구름 한 점 없는 티없는 하늘아래 7월의 교외 동산이 블랙베리의 향기로 가득한 도시였다. 그에게 포틀란드는 아가멤논과 오이디푸스의 영웅들 이야기들이 연극으로 펼쳐진 옛 그리스의 야외극장을, 그리고 '희망의 속삭임'(whispering hope)의 듀엣 화음이 잔디계단쪽에서 울려나오는 연세대학교의 노천강단을 연상케 하는, 반원형 파이오니어 광장이 도심의 한 가운데에 굳건히 자리잡고있는 도시였다. 고전적 기품이 돋보이는 하얀 대리석 건물의 중앙도서관이, 티없이 푸픈 하늘 아래의 넒고 긴 윌라미트 강을 가로지르는 검은 스틸 부릿지 칠교위로 서행하는 도시형 기차가 도심과 교외를 그림처럼 이어주는 도시! 포틀란드는 인우에게는 세월이 많이 흘러도 옛 그래도 마음에 남아 있다.

인우의 심안에는 엘레나도 옛 그대로다. 밤의 공연 무대위에서 숨죽인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 자신감과 열정이 넘처나는 젊은 플라멩코 댄서로 남아 있었다. 플라멩코 춤과 기타선율에 처음 그의 혼을 빼았았던 것은 그녀의 춤 무대였다. 그에게는, 플라에코에 매혹되어있었던 그에게는,그녀의 춤이 곧 플라멩코춤이였다. 후반의 나이에 그녀를 통해 감지된 그 이국적인 플라멩코는 그의 마음에 넓고 깊게 스며들면서 그의 의식세계를 변화시켰다. 언젠가부터 인우를 아는 사람들은 그에 대해 말할 때 플라멩코를 먼저 연상하였다. 화가들 사이에는 그가 마산의 창동을 사랑하고 그림을 사랑하는 '창동인블루'의 작가로 여기지지만, 그를 자주 만나는 지인들에게는 그는 뒤늦은 나이에 엘레나의 춤에 홀린 자로 여겨졌다. 그의 말과 글에는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플라멩코와 미국의 댄서 엘레나가 뒤섞여 있었다.

그는 말이나 글로서 한국의 판소리와 집시민족의 전통적인 소리인 플라멩코 노래를 , 그리고 살풀이춤과 플라멩코 춤을 비교적으로 해설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플라멩코나 판소리는 소외받거나 사회적으로 억압당하는 소수민족이나 집단의 시회적 저항이나 체념의식의 한 방편이라는 것이다. 옛 안달루시아 지방의 집시족의 끊임없는 피해망상과 전라도 지역를 중심으로 한 하층민 낭인들의 사회적 소외의식은 거의 동질의 것이었다. 삶의 고통, 억압, 그리고 가난의 불운에서 벗어날 길이 그들에게는 주어지지않는다는 의식아래 비롯된 체념과 애통이 그 두 전통적 표현양식의 바탕을 이루고 있다. 그 둘 다 특정 집단의 전통의식에서 형성된 것이긴 하지만 속성상 그것은 그 한계성을 넘어 보편적인 사람들의 공통된 체험을 정서를 소리나 몸짓으로 반영하는 것으로 인식되면서 점차 특정의 문화권을 넘어 다양한 관객들을 매혹하는 공연행위로 확대된 것이다.

집시족 소리꾼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것이 플라멩코 칸테(노래)이듯, 판소리 역시 악보에 의하서가 아니라 구두로 전승 되었던 것이다. 둘 다 처음 입으로 전해지고 놀이마당에서 청중들과 자연스레 호흡을 함께 나누며 지속적으로 발전되어온 표현주의적 예술형태인 것이다. 두 사이에 한가지 차이점으로는, 판소리는 독자적으로 형성된 춤의 형식을 갖지않았고, 플라멩코의 경우, 독자적으로 형성된 춤(baile)이 점차적으로 소리보다 그 영향력이 더 커졌다. 어쨋거나, 플라멩코와 판소리 둘 다 새벽의 동터오름처럼 인간적 애통과 체념의식이 그렇게 억누를 수 없는 소리나 춤으로 승화되어 표현된 것이다.

물론 인우에게는 판소리보다 플라멩코가 지배적이다. 그는 어느 자리에서 이렇게 말한 적도 있다:

"플라멩코는 그 소리와 춤이 저 하늘이 아니라 이땅으로 향하고 있어 좋습니다. 그 소리를 틀으면, 그리고 그 춤을 보면 어떤 바다가, 은비늘 반짝임의 작은 바다가 눈 앞에 아른거립니다. 특히 춤과 기타선율에 빠져들면 조지훈의 '승무'가 연상되고, 이그나시아 산체스의 죽음을 애도한 로르카의 싯귀를 낭송하고 싶어집니다. 무엇보다 아침이슬을 춤추던 엘레나에게 지금 당장 편지를 쓰고 싶어집니다. 그녀의 독무가, 그 가물거리는 눈부신 춤이 어떤 때는 내게는, 새벽바다의 검푸른 잔물결이 되고, 어떤 때는 저녁 하늘의 노을빛 사라짐이 됩니다. 혼을 뒤흔드는 그녀의 춤에서 나는 플라렝코 춤의 본질을 느낍니다."

그리고 그는 정적인 살풀이춤과 역동적인 플라멩코의 춤을, 강물의 두 흐름으로 비유하며 대비시키기도 하였다. 이를 테면, 살풀이 춤이 고요한 강물의 굽이치는 흐름이라면 , 풀라멩코 춤은 웅장한 폭포의 형상이나 드세게 범람하는 강물이라는 것이다. 이 비교는 자신의 감성적인 주관을 지나치게 자의적으로 드러낸 해설이라고 할 수 있지만 어쨋거나 그의 말에는, 살풀이춤이나 플라멩코 춤 둘 다 벗어날 길이 없는 인간적 고뇌의 탐미적 표현이라는 의미가 담겨 잇었다. 대비적으로, 하나는 치마폭에 숨겨진 탐미적인 유선형 물결의 육체의 선으로 나타나고, 다른 하나는 그 고뇌가 어떤 정제된 구도아래 영감의 불꽃으로 피어난다는 것이었다. 모르긴 해도 그의 이런 몽롱한 언어에 그 자리에 동석한 이들는 속으로 '이 친구, 혼자 열에 들뜨 떠드는 가보다' 하였으리라.

아뭏튼 플라멩코는 그에게는 그러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어느 새 그는 가가 사는 지역의 이런 저런 모임에서 플라멩코 해설가로 소개되었고 그 때마다 그는 그런 드문 경력의 소유자로 여져지기도 하였다. 요컨대, 플라멩코는 인문에게는 단순히 이국적한 춤과 소리 이상의 것으로 문학적 향기가 배인 표현주의적 예술로 인식되기까지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