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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우는 스페인 여행중에 안달루시아의 헤레스에서 캐시(Kathy)라는 이름의, 한 미국인 플라멩코 아파시오나도스(열렬한 애호가)를 만났었다. 은퇴한 간호사 캐시는 헤레스의 집시 구역인 산티아고에서 장기 투숙하면서 마리사에게 플라멩코 춤을 배우고 있었다. 인우가 헤레스에서 마리사와 더불어 그녀를 만났을 때 그녀는 플라멩코의 이론과 실제를 다룬 저서 '박해받는 자들의 노래'(The song of the outcasts)를 탐독하고 있었다.그녀는 마리사를 통해 인우에 대해 들어 알고있었으므로 그를 구면인 것처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그것도 영어로!
인우가 플라멩코와 엘레나의 춤을 깊히 사랑하게 된 데에는 사실상 영어가 결정적인 매개요소가 있었기 땨문이었다. 만약 그가 영어에 친숙하지 않았다면, 엘레나에게나 플라멩코 쪽으로 그렇게 가깝게 다가서지 못했을 것이다. 캐시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영어가 그 매개요소였었다..
스페인 여행 중에 현지 언어로 의사소통이 어려워 많은 고생을 겪어야했던 인우로서는 이 날 만은 영어로 모처럼 편안한 대화를 즐길 수 있었다.. 게다가 세 사람이 나눈 대화의 주제가 플라멩코에 관한 것이었으니, 인우에게는 더없이 소중하고 즐거운 자리였다.
다음은 그들의 대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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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시: 인우님도 이 책, '버림받은 자들의 노래'를 한번 읽어보세요. 플라멩코에 관한 깊이있는 해설서입니다.
인우: 그래요? 어디 한번 보여주세요.
마리사: 캐시는 이런 분이예요. 춤은 아직 서툴지만 독서를 통한 열렬한 플라멩코 애호가입니다. 가르시아 로르카의 시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그건 그렇고, 캐시, 오늘의 손님을 위한 특별한 메뉴는 뭔가요?
캐시: 스테이크와 치즈 빵입니다. 야채 수프와 상그리아 주스도 있습니다. 특별히 세리주도 준비했습니다. 오늘 손님은 아마도 이 곳 샌디에고에 발을 내디게 되었을 순간 취기를 불러일으키는 어떤 향기를 맡게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만.
인우: 예. 그렇던데요. 포도주 향이 진하게 나던데요.
그라나다에서는 상그리아를 처음 맛 보았습니다.
마리사: 세레주는 이 곳 헤레스의 특산물입니다. 시내의 지하공간이 온통 세리주의 저장소이니까요.
캐시: 인우님. 내년에도 여기 헤레스로 오십시요. 이 동네는 방 하나 얻기가 쉬워요.여기 방 하나를 빌려드릴게요. 미국에서처럼 자유롭게 '룸세어'하면 되잖아요.
그런데 이 곳엔 잘 왔어요. 칸테는 이곳 헤레스에 들어야해요. 플라멩코의 참 맛은 기타반주없는 '깊은 노래' 잖아요
인우: 그렇잖아됴 어제 이곳 중앙광장의 플라멩코 연구소에서 반주없는 칸테를 들었습니다. 재즈 분위기의 성가곡이 연상되었습니다. '칸테 혼도(깊은 춤)은 원래 이런 것이구나' 했습니다.
캐시: 난 요즘, 이 책이 글 중 ' Ballet is up: flamenco is down'을 두고 자주 사색했습니다.
인우: '발레는 위로, 그리고 플라멩코는 아래로'? 방향성을 의미하는 말이겠네요. 이 의미는 춤이 잘 표현하는 게로군요. 특히 자파테아도가 특히 이를 상징적이라 표현해주는 것이겟군요.
마리사: 그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다. 슈라이너의 책 ' Flamenco'에도 그와 비슷한 뜻의 표현이 들어있습니다.Ballet takes to the air: flamenco is tied to the earth.'그가 그것입니다. 발레는 공중을 지향하고, 플라멩코는 땅에 근거를 둔다. 뭐, 이런 의미인데요. 슈라이너의 그 책 역시 플라멩코 이해를 위한 필독서입니다. 땅으로 향한 춤의 그 지향성에 대해 한 마디 추가하자면, 춤은 마치 어떤 강한 자력에 이끌리듯 그 근본을 땅에 둔다는 말이기도 하지요. 중력의 영향아래 놓인다는 말과 같은 거지요. 인우님이 엘레나의 춤에 대해 내게 전에 말한 적이 있었습니다. 포틀란드에서 처음 그녀의 춤을 보았을 때, 몸놀림이 날렵한 그녀의 춤은 우아하였지만, 몇 년 후 마산에 온 엘레나의 춤을 다시 보았을 때 춤의 폭발력에 압도당한 느낌이었다고 피력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녀의 몸집이 과거에 비해 중후해 진 탓이었겠지만, 원래 플라멩코 춤 자체에 아래로 향한 강한 힘이 있습니다. 자파테아토가 그 폭발력을 절정으로 이끌지요.
캐시: 마리사님의 그런 해설은 오늘 인우님 앞이라 그런지 처음 입니다. 내게는 춤 강의 시간에 그저, 고개를 숙이지 말라, 몸은 곧 바로 세우고, 팔놀림은 원을 그리듯 아름답게, 이런 말씀 뿐이랍니다.
마리사: 캐시는 늦은 나이에 춤을 배우고 있는데도 몸놀림이 그래도 유연한 편입니다. 기 죽을 필요없어요.
인우: 캐시! 이 자리에서 춤 한번 보여주시면 안되나요?
캐시: 인우 앞에서? 내 솜씨로는 아직이예요.
마리사: 혹시 인우께서 기타 반주를 하신다면, 그녀가 그 소리에 유도되어 자리에서 서서히 일어날지도 몰라요. 그렇지만 미국인 캐시로서는 이런 자리에서는 좀은 어색한 느낌일 것입니다. 이 곳 헤레스에서는 누구나 춤을 출 수 있답니다. 여러 사람이 모여 세리주라도 한잔씩 나누는 분위기라면 춤은 절로 나와요. 유도해주는 기타반주가 있건없건 상관없이 소리부터 자연스럽게 일어나고 뒤이어 팔마스로 박자가 이를 튓받침하게되고. 그 다음은 남여를 불문하고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춤추는 자세가 생기게 됩니다. 이곳의 집시인들에게는 이게 보편적인 놀이입니다.자연스런 풍경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