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산문

과4

jhkmsn 2016. 2. 25. 10:43

                       인상주의 너머

 

인상주의 그림들과 관련하여 스스로에게 던지던 의문들이 있었다. 이를 테면, 쉬슬리 Sisley의 그림 ‘봄철의 초원’은 막연하나마 인상주의적임을 느낄 수 있었지만, 카이에보트 Caillebotte의 풍경화 ‘유럽의 다리’가 왜 인상주의적인지는 언뜻 감이 잡히지 않았던 것도 궁금했었다. 게다가, 부르게로 Bourgerreau의 그림 ‘님프와 사티로’는 왜 인상주의적이지 않는지, 그리고 반 고호가 만약 인상주의 시대 이전에 존재했었다면, 그의 ‘밀집모자를 쓴 자화상’은 그려질 수 없었을 것이라는 그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등이 그런 의문들이다.

 

내게 인상주의적이라면, 우선적으로 모네의 풍경이 연상된다. 멀리서 포착된 대상들이 아련하여 구체성은 띄지 않지만 시적이다. 무엇보다 그의 베니스 풍경이 떠오른다. 그 풍경에서는 지리적 대상은 아무런 중요성을 지니지 않는다. 도심의 건물도 배경도 하늘도 어느 것 하나 구체적으로 묘사되어있지 않다. 대상들은 연한 물안개에 쌓여 그저 윤곽만 아른거릴 뿐이다. 그 대상을 향한 화가의 시선은 눈이 아니라 마음이다. 다시 말하거니와 베니스의 풍경에 담긴 것은 오로지 화가의 회상, 정서 그리고 시각적 상상이 전부인 것이다. 나의 글은 그 화가의 그런 풍경을 닮아가고 있다.

 

20세기가 시작되던 무렵의 파리 화단에서 소위 인상주의적 분위기의 그림들, 이를테면 모네의 지중해 풍경, 드가의 발레연습, 르노와르의 세느강 뱃놀이, 또 고호의 자화상 등-이 세인의 시선 밖의 그림들이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 그림들은 당시 사람들에게는 보기에 의미있는 것들도 아니고, 서툴기까지 한 자격 미달의 그림들이었던 것이다. 그 그림들에 대한 그들의 곱지 않는 시선은 이런 뜻이었던 것이다:

 

그림을 저렇게 그려도 되는가?

좋은 그림이라면 ,

적어도 그 주제가 역사적으로 중요한 상상물이나 신화적 요소이어야 하지 않는가?

그림의 주제나 대상이 저렇게 세속적이라니.

더욱이 붓질은 제멋대로잖아.

 

그 그림들 앞에서 짓는 관객들의 그 뜨악한 표정에는 아마도 위의 그런 뜻이 담겨 있었을 것이다. 이 새로운 그림들은 기존의 전통적인 그림들과는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기존의 그림들은 그 구성이 극적이거나 기념비적인 인물에 촛점이 맞춰져 있고 그림의 주제로는 주로 서양의 고대사, 신화 또는 종교적 분위기를 띄는 게 특징이다 .

 

이와 대조적으로 인상주의 화가들은 중요하지도 않는 평범한 대상들을 주제로 담고 있었다. 강, 들판의 자연풍경이나 일상인의 모습들이 그것이었다. 인상주주의 그림 속에는 극적 요소도 느껴지지 않을 뿐더러, 전통적인 시선들 앞에서는 그 붓놀림이 엉성하여 그리다만 미완성품으로 여겨지기까지 하였다. 게다가 이 그림들은 논리적으로 동일한 발전과정을 거쳐 온 그 이전의 자연주의 그림들에 비해, 그 속에 묘사된 대상들이 형체를 잃은 채 모호하여 상대적으로 더더욱 호감도가 낮은 것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따라서 그런 그림들이 당시 화가들의 유일한 등용문이었던 공식적 전시회인 살롱 전에서 낙방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대상으로서의 자연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로운 마음으로 붓질하고자했던 이 인상주의자들은 그들이 자주 드나드는 카페를 그림 전시장으로 삼아 제도권 밖에서 새로운 화가의 길을 열어나갔다. 모네, 르노와르, 세잔느, 드가, 모리소 등이 바로 그들이었다. 그 화가들은 인상주의에 대한 신념이나 배경, 그림 스타일 면에서 제각기 서로 다르게 인식하고는 있었지만 그들 모두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눈을 가져야한다는 점에서는 서로 일치하였다.

 

20세기가 시작되는 시점의 유럽은 과학 기술의 발전과 탈 귀족적 시민의식아래 전통의 벽은 무너지고 변화가 소용돌이치던 시기였음을 우리들은 역사를 통해 잘 안다. 당시 유럽에는 산업혁명의 진행아래 현대적 의미의 대도시가 형성되고 있었다. 도시생활의 다양한 변화, 갑작스럽고 예각적인, 그리고 언제나 한 순간 사라지게 마련인 동적인 인상들이 이른바 현대 도시를 대표하는 분위기였다. 그런 동태적인 도시적 환경에서 피어난 인상주의는 이른바, 영속성에 대한 변화의 우위를 그 바탕에 깔고 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시대를 반영하듯 인상주의 그림들은 시선에 포착되는 대상의 한 순간의 불안정한 균형의 상태를 묘사하였던 것이다. 그 인상주의적 화가들의 손끝을 지배한 것은 아마도 '누구도 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는 의식이었을 것이다.

 

인상주의 회화의 큰 특징 중의 하나는 그 그림들은 일정한 거리를 두고 감상되어야 하고 사물이나 대상이 얼마간의 생략이 불가피한 원경으로서(아놀드 하우저의 표현) 그려져 있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그림의 주제를 그 주제 자체보다 전체적인 색조를 위해서 다룬다는 것이다. 이것이 또 다른 특징이다. 이와 관련하여 인상주의는 볼륨이나 촉각성의 3차원적 현실을 버리고, 조소성이나 사물의 윤곽을 버리고, 대상의 공간성은 말할 것도 없고 대상의 선마저 포기한다. 명백성과 명징을 잃어버리는 대신에 움직임과 감각적 매력을 추구하였던 것이다.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에는 움직임의 한 순간을 포착하려는 인간들의 집착이 들어있다. 드가의 그림들이 보여주는 무용수나 기수들의 찰나적인 몸동작의 묘사에서 이런 점이 잘 드러난다. 헤라클레이토스의 영원한 변화의 세계관이 그 그림 속에 담겨있다. 인상주의 화가들의 그림은 존재의 지속적인 운동에서 한 순간을 포착하여 서로 갈등하는 힘들의 움직임을 나타내고 싶어 하였다. 이들에게는 변화무쌍한 주변 현실과의 관계가 그 어떤 철학적 명제보다 삶에서 더 지배적인 의의를 갖는다는 것을 뜻하였다. 그것들은 고대 이집트인의 그림에서 두드러지게 표현된 사물의 불변의 형상-시작도, 끝없는 영원성의 피라미드나 스핑크스의 비인간적인 거대함과 황량함-과 거리가 멀다.

 

한 때, 잘 그려진 그림이라면 인상주의적 그림 스타일, 특히 빠른 붓질의 모네나 드가풍의 그림들이었다. 그림 그리기란, 바라보이는 객관적 실체의 묘사가 아니라 대상을 한 개인의 눈으로 바라본다는 심리적 행위라는 의식이 강하게 작용한 탓이었을 것이다. 빛과 공기와 분위기의 중요성, 평평하게 칠해진 색면을 크고 작은 색채의 점들로 해체하는 일, 반사된 빛과 조명된 그림자의 움직임, 당돌한 붓질, 빠르고 거친 스케치의 즉흥적 기교 등 모든 것이 감각적으로 자유롭게 잘 나타나 있는 탈 형체들의 그림들이 내 눈에는 좋은 그림이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나의 그런 도회적 시각은 찰스 웬틴크의 ‘원시미술과 현대미술’을 번역하면서부터 달라지기 시작하였다. 겉멋 부리는 도시인의 섬세한 미적 시선을 포착하는 감각적인 인상주의 그림에 대해 서서히 거리감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 책속의 부랑쿠지의 조각품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그러 했었다. 필요한 본질적 요소를 제외하고는 변하기 쉬운 대상의 모든 세부적 부분을 버리는 그 조각가의 철저한 본질성의 추구에 마음이 사로잡혔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더 나아가 추상표현주의와 의식과 무의식의 어울림의 그림 세계들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올 5월 창녕을 방문한 뉴욕의 한국인 화가 pokim과의 만남을 통해서였다. 김화가가 1960년대에 거침없는 붓질과 손길의 저항적 자유분방함으로, 억센 반 논리적 흑백의 몸싸움으로 대형의 캔버스위에 그려 낸 추상표현주의 그림들이 그 전자의 세계이고 1990년대를 전후한 무의식과 의식과 자유로운 색채의 유희 그림들이 그 후자이다. 전자의 경우, 막연히 글이나 화첩을 통해 감지할 수 그 거친 회화의 바다를 실물그림 그대로 물감냄새를 맡듯 마주했을 때 좋은 그림이란 모네풍의 인상주의적 그림과 같은 것이라고 여겨오던 그때까지의 의식을 뒤흔들어 놓았었다. 그의 반이성적인 행위만의 화폭은 유럽주의적 질서의 아름다움과는 얼마나 대조적인가!

2차세계대전을 전후하여 미국의 뉴욕을 중심으로 이른바 추상표현주의 움직임이 일고 있었다. 손길의 완전한 자유, 물감 드립핑, 화포위에서의 반 이성적 도발행위가 거의 전부인 그림세계- 이른 바 탈 유럽주의적 그림세계가 곧 미국의 추상표현주의였었다. 나는 그런 표현주의세계를 김보현의 그림 앞에서 몸으로 느낄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내게는 막연하나마 논리성이나 군형, 절제성의 우아함이 담긴 파리 풍의 인상주의적 그림이 좋은 그림이었던 것이다. 김보현의 그런 부정형의 자유로운 선과 색책로 된 김보현의 화폭 앞에서 아닌게 아니라 가슴이 서늘해졌었다. 그림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라는 물음이 들면서.

 

김보현은 그 후 1990년대를 전후하여 또 한 차례 새로운 세계를 열어갔었다. 문학적 내용성- '현대미술이 버린 것을 나는 되살리고 싶었다며 그림에 어떤 이야기를 담고있어하였고.'사전에 어떤 주제나 내용전개의 구상이 없이 , 따라서 무엇을 그리겠다는 생각 없이 그림을 그려나갔으나 무의식으로나마 그는 그림에 어떤 이야기를 담고 싶어 하였던 것 같다. 앞선 대부분의 무제 타이틀의 그림들과는 대조적으로 후자의 그림들에서는, 이른바 고독, 자화상, 향수 등 제목들이 그림에 붙어있음이 이를 말해준다. 이를 테면, 그의 즉흥적으로 교차되는 의식과 무의식, 상상과 잠재의식을 따라 어떤 논리에도 구애됨이 없이 캔버스위에서 유영하였다는 말이기도 하다.

 

캔버스를 가득 매우는 색채들의 축제와 그림은 손이 스스로 나아가고자하는 어떤 완성에로의 한없는 과정일 뿐이라는 pokim의 겸허함과 지적 따스함이 서린 눈빛이 그를 만나는 가슴 설렘을 더욱 부추기는 것이었다. '작품 요? 그건 내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건 이미 나와는 무관합니다. 아니 내게 완성된 작품이란 없습니다.' 그림은 완성된 것보다 캔버스 위에서 색채와 선의 움직임이 계속되는 그 과정이 그림 그 자체라고 여긴다며, 캔버스와 마주할 때 자신은 떠나고 붓이 그림을 (의식의 흐름?) 빚어내는 희열을 체험하기도 하였다고 했다. 참고로, 김보현 화가와의 개인적인 만남과 그의 그림세계를 아끼고 싶어 이 책의 뒤편에 따로 하나의 장으로 마련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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