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산문

포틀란드의 무희 2-3

jhkmsn 2019. 6. 17. 17:47

3.


인우는 그 추모공연이 해마다 열리기로 되어 있어 그는 그 3년의  공연기간 내내 공연 준비와 행사진행에만 몰입하며 한해 한해를 숨가쁘게 바쁘게 보내고 있었기에 심리적으로 그녀에를 거의 잊고지내다 시피하였다. 엘레나의 느닷없는 공연 추소로 급히 엘레나의 대안으로 선정한 한 한국인 댄서를 중심으로 구성된 새로운 출연팀으로 진행된 315 추모공연이 3년이나 계속이어졌다.

인우의 마음에 엘레나가 다시 들어서기 시작한 것은 그 기간이 끝난 다음부터였다. 그리고 엘레나의 그런 돌련한 출연 취소가 그 어떤 무엇보다도 자신에게 더 큰 책임이 있었다는 생각이 점차 들기 시작했다. 그 직접 요인이 자신으로 인한 것이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 것이었다. 처음에 그녀의 게런티를 너무 박하게 제시한 점이 자꾸 마음에 걸리는 것이었다. 이에 더하여 그녀의 의견을 들어보지도 않은 채 그녀의 반주자이자 동료였던 기타리스트 마크를 그녀의 마산공연에 동참케하는 것이 당연한 일로 판단하는 태도를 보였다는 것이다.

플라멩코의 공연에는 기본적으로 세 가지의 요소로 이루어지는데 그것은 소리와 춤 그리고 기타반주이다. 춤의 경우, 기타반주는 거의 필수적이다. 반주없이는 춤의 콤파스가 제대로 살아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댄서와 기타반주자는 무엇보다도 서로의 호흡이 일치되어야 한다. 반주자에 대한 믿음없이는 춤에 몰입할 수 없는 것이다.

지난 일이지만,그녀의 메일에 나타난 정황으로 보아 그녀는 지난 날 처름 마크를 자신의 반주자로서 더 이상 믿음을 갖고있지않음을 은근히 나타내었음에도 인우는 이를 감지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녀의 마음을 충분히 읽지못했던 것이다. 그녀가 자신의 춤을 마산에 또 한번 와서 선보이고 싶은 열망을 가지고 있음을 인우는 잘 알고 있었던 터라 그녀에게 지불할 공연비의 많고 적음에 둔감한 비현실적인 판단으로 일방적으로 그런 제안을 했었던 것이다:

지나고 보니 내가 출연료를 너무 박하게 제시했어.

일본인 댄서 미찌꼬의 공연비도 내가 좀더 적극적으로 제시하며 그녀와의 동행을 반갑게 받아들여야했었는데.

내가 너무 둔감했었어, 엘레나는 마크와 함께 공연하고싶지않았어.

그 점을 내가 빨리 눈치 챘어야 하는겐데. 내가 너무 둔감했었어,

엘레나의 시생활에 관한 문제는 공연을 끝내고 귀국한 후에

천천히 결정해도 늦지않았을 것이고,

수용하고싶지않은 공연조건에 개인적으로 악화되고있던 가정사까지 겹쳐

이래 저래 견딜 수 없는 좌절감에 빠져들었던 것이 틀림없어.

그런데 마크와는 어찌하여 사이가 별어졌을까.

마크의 기교나 플라멩코 기다리스으로서의 예술성에 신뢰감에 가던데?

그 동안 둘 사이에 무슨 좋지않은 일이 있었던 것인가?

엘레나의 그런 돌발적인 태도 변화에 자신이 그렇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으리라고 자책하기 시작한 인우는 더 나아가 엘레나의 그런 돌련한 행동에는 그 이전부터 보였던 플라멩코 춤에 대한 그녀의 좌절감이 이를 더욱 부채질했으리라는 생각에 이르기도 하였다.

엘레나는 고전 무용인 발레가 몸에 익었던 뉴욕 출신이었으니

안달루시아 집시의 듀엔데를 체감할 수 없었을 터이니

그녀가 선택한 플라멩코 댄서로서의 삶에는 어떤 한계를 가졌던게 아니었을까?

듀엔데라는 그들 집시 특유의 초이성적 행태를 체감할 수 있기 전에는 그 춤 자체에 몰입할 수 없다는 그런 두려움 같은 게 그녀의 의식에 처음부터 깔려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녀는 플라멩코의 그런 본질을 뒤늦게 이해하기 시작함으로써 오히려 이로 인해 비집시인으로서 저신의 한계를 극복 할 수 없다는 좌절의식으로?

플라멩코춤에 자진을 잊고 몰입하기에는 그녀는 너무나 이성적 현대인이잖은가!

그녀의 절망에는 처음부터 그런 요인이 그녀의 의식 속에 내재해 있었던게 틀임없어. 그년 그 춤을 숙명적으로 받아들이지않았어. 그 춤으로 세상이 알아주는 존재로 성공하고 싶다는 현대적 의식으로 그 춤을 선택했었어. 그러니 뜻과는 달리 자신의 존재가 그저 미미한 수준에 머물고 있었으니.모르긴해도 그런 심리적 흐름이 있었던게 분명해.

엘레나는 그녀가 플라멩코 댄서가 되기전 발레를 공부했었다잖은가!

플라멩코와 발레는 그 미학적 접근이 본질적으로 다르므로,

데카르트적 사고 아래 잡시족의 전통적인 듀엔데의 세계가 낯선 그녀가 

 초이성적 영역인 집시전통의 플라멩코춤의 길에 들어섰다는 것은

처음부터 그녀로서는 어긋한 선택이었던 셈이야.

하여간 인우는 그녀와 그렇게 소통이 끊어진 상태로 무턱대로 그냥 시간만 보낼수는 없었다. 플라멩코 춤을, 더우기 그녀의 춤을 사랑하는 인문 자신과 그녀와 여지껏 나누던 친밀한 관계가 더 이상 이어지지않음에 마음이 적잖이 아팠다. 그래서 이 상태를 그대로 방치할 수는 없다는 초조감도 들었다. 그럴 즈음 순간적으로 첫 추모공연이 내년에도 이어질 것이니 이를 명분 삼아 그녀에게 이메일을 보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인우는 마음 먹은 데로 즉 시 그녀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그렇지만 그녀는 이에 대한 대답이 없었다:

7월15일, 2011

Dear 엘레나.

Hi, I hope you to be better

and to keep up baile.

If you keep alive your dance,

I will keep alive my hope that you come to Masan

next year or the next next year, for everyone who has ever seen you dance here wants to see you dance again.

In love of your baile,

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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