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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동인블루세븐 6

jhkmsn 2019. 4. 21. 17:11

사진에 대한 호기심

1.

근래 들어 인문이 자신의 '그림읽기' 글작업에 대해 희의감이 점점 커져가던 중 우연히 그의 고교 동기이자 사진 애호가인 제갈선광의 온라인 사집첩을 들여다보면서 자신이 사진에 대한 폄하의식이 무지 탓이었다는 자책감을 느꼈다. 그 사진첩속의 몇 몇 사진들은 언뜻 보아도 자신에게 인식되어 온 사진들과는 달랐다. 눈앞의 대상을 그대로 렌즈 안에 포착해 놓은 것이 아니었다. 어떤 것은 대상의 내면을 꿰뚫는 깊은 통찰의 흔적이 역력했다. 춤추는 댄서를 잡은 '플라멩코 댄서'가 그 중의 하나인데, 그녀는 통상적인 미모의 젊은 여인이 아니라 많은 풍파를 겪고 살아 온 늙은 여인의 얼굴이었기에 그러했고, 렘브란트의 초상화를 연상케하는 인물사진 한장이 또 그러했다. 한 노인남자를 대상으로 한 그 사진은 인간의 삶의 빛과 그림자를 주제로 삼은 것이었지 그 인물의 생김새는 관심사항이 아니었다. 그리고 멀리서 카메라에 포착된, 안개속의 숲길을 하산하는 한무리의 뒷모습에서 그런 느낌을 받았다. 어디서 무슨 장면을 찍은 사진인가는 중요하지않았다. 인문의 눈에는 그 한장의 사진은 포연과 고요가 깊게 깔린 어느 전장에서 살아남은 소대원들의 뒷모습을 연상케 하였고,티 에스 엘리오트의 한 구절을 떠올리기도 하였다.

"공허의 도시,

겨울날 새벽 갈색 안개속으로,

군중이 런던교위로 흘러간다.

저렇게 많이,

나는 죽음이 저렇게 많은 사람들을 멸망기켰다고는 생가기못했다."

제갈의 온라인 사진첩에서 특히 눈여겨 본 인물사진 한 점을 두고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었다.

인문: 그 얼굴, 참 선한 표정이다. 그 인물과는 어딴 사이인가?

제갈: 우리 동기 박장규 잖아. 대전에서 의대교수로 지내다 은퇴한 후 여전히 대전에서 살고있어.

인문: 그래? 그 얼굴이 장규야! 첫 눈엔 그저 처음보는 사람이야.

그런데, 그 얼굴 문득 까뮈의 구절을 떠올려: '진실은 선한 자의 얼굴을 하고있다' 참 선한 표정이야

제갈: 그 친구 예나 지금이나 진실한 카톨릭 신자니까. 그의 아들은 신부가 되어 있고. 내가 사진을 접하게된 것은 그를 통해서 였지, 의사로 살면서 대전에서 자신의 사진 전시회를 몇 차례나 가졌지

인문: 그래?

제갈선광의 온라인 사진들은 인문에게는 마음의 물결을 일으킨 파문이었다. 그 전까지는 그는 막연하나마 속으로 '사진이 예술일 수 있는가?'라는 회의적 물음을 갖고 있었다. 이제는 더 이상 그런 물음을 하지않으리라고 스스로에게 다짐하게 되었다. 더욱이, 제갈선광의 그런 표현주의적 이미지들을 접하고부터는 그를 세상에 알려지지않은 아웃사이더 포토그래퍼로 존중하게되었을 뿐 아니라 그로 인해 사진에 관한 책들을 가까이 하며 읽게도 되었다.

제갈선광에 대해 조금 더 설명하자면, 그는 대부분의 그의 동기생들의 눈에는 젊은 날 대학에서 회화를 공부하였지만 스케치북 대신 카메라를 즐겨 들고 다니는 친구로만 여겨졌었다. 그가 남의 눈에 드러나지 않게 혼자서 사진작업에 몰두해오고 있었음을 아는 사람들은 전무하다시피하였다. 동기생들은 그저 그가, 동기회 월간 회보의 발간일을 맡고있는 그가 회보지에 올린 가십거리의 이런 저런 이미지들 이외에 그의 다른 사진들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제갈은 지금에 이르도록 자신의 사진을 바깥 세상의 전시장에 내놓은 적이 한번도 없었던 것이다. 전부터 인문이 사려깊은 제갈이 지닌 남다른 미적 감각에 속으로 그가 화가의 길로 들어섰으면 참 좋았을 걸 하였던 차에, 앞에서 말한 것처럼, 우연히 온라인을 통해 그의 블로그에 모은 사진을 보게 되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인문은 그의 예술적 통찰력에 끌려 그를 자주 만나게 되었다. 그와 개인적으로 친숙해지면서겉보기에 태평스런 그가 실제로는 스스로를 무능력자로 여기며 불행감과 깊은 고통에 시달리고 있음에 의아한 느낌까지 받기도 했다.

그런 제갈선광이 우여곡절끝에 자신의 친구 노인네들의 다양한 표정을 포착한 인물사진들을 중심으로 '창동24갤러리'에서 평생 처음으로 <제갈선광의 제 1회 개인사진전>을 열었다. 이날 개회식장에서 인문은 인사말을 통해 그에게 아래의 짦은 한마디를 건네기도 하였다

: 통찰의 눈을 가진 자에게

오늘 슈베르트의 가곡 '보리수' 중 한 구절을 선사하네.

"......가지에 희망의 말 새기에 넣고서

기뻐니 슬플 때나

찾아 온 나뭇잎"을.

누군가 이렇게 말하였다네.

"영감의 빛이 찾아드는 이에게 삶의 어떤 물리적인 구속은,

사막에서의 헐벗음이 천국을 동경하는 사도들에게 그러하듯,

일종의 은총"이 되기도 한다고.

사진 전시회 오프닝 다음날 그를 축하해주기 위해 대전에서 찾아 온 그의 옛 친구 박장규 ,인문 그리고 키다리 마술사가 근처 '의자가 있는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의사이자 포토그래퍼인 박장규는 제갈에게 처음 포토그래퍼의 길에 들어서게 이끈 친구일뿐 아니라, 카톨릭 대부이다.

자리에 앉으면서 인문이 먼저 입을 열어 두 지인에게 키다리 마술사를 소개한다.

인문: 두 분에게 아마추어 마술사 조인규를 소개합니다. 이 젊은

​마술사는 실은 마술보다 미술을 더 깊게 탐구하는 창동인입니다. 창동에서 화가들의 그림 전시회가 있는 곳에는 언제나 이 마술사가 있다네.

제갈: 인문이 세 동기인 늙은이들의 자리에 특별히 초대한 걸 보니 인문에게 특별한 분인가 보오.

키다리 마술사: 인문님에게서 미술에 대해 많은 것을 물으며 배웁니다.

인문: 이 젊은 이는 특히 모던 아트에 대한 비평가일세.

박장규: 그럼 사진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겠네요.

카다리 마술사: 예술사적으로 사실주의 회화와 사진을 비교해보기도 합니다

제갈: 조선생과 인문이 나란히 창동거리에 나타나면 시선을 모으겠네요. 젊은 장다리와 늙은 꺼꾸리, 둘이 나란히 걸으며 발걸음 맟추느라 애쓰는 모습이 눈에 잘 띄겠어.

인문: 나를 그렇게 꼭 기 죽여야겠어!

마술사:불종로에서 창동 입구로 들어서는 두 인물을 한번 켑쳐해보시면 어떤 사진이 나올까 궁금하네요.

방문자 박장규: 이 젊은 분, 키도 크고 참 잘생겼네요, 콧수염도 근사하고. 좀 있다 사진 한 컷 찍게해줘요.

제갈: 그런데 마술사 젊은 이, 내 사진전 본 느낌 좀 이야기해줘요.

키다리 마술사: 인물들 표정마다 회화적이었어요. 어떻게 그런 표정들을 포착했는지가 궁금했습니다. 그런 표정들 찍히는 걸 당사자들은 좋아하지 않았을 텐데.

제갈: 몰래 슬쩍 잡아냈지.

인문: 두 분 포토그래퍼님! 혹시 사진을 그림과 비교해가며 좀 이야기해줄 수 있나요?

제갈: 글쎄....., 한 마디로 말하자면, 사진은 원칙적으로 말해서 현실을 대상으로 하여ㅡfinder라는 카메라의 프레임(frame)에 의해 성립됩니다. 그리고 사진의 영상이 현실을 대상으로 하여 그 현실의 시공간의 일부를 카메라 프레임으로 떼어냄으로써 성립되는 이상, 이 떼내는 방법에 따라 그 영상이 표현되는 의미가 달라지게됩니다.

방문자 박장규: 제갈 친구 모처럼 근사한 말 하시네. 그의 같은 맥락에서 사진을 회화에 비교해 본다면, 회화는 비어있는 공간에 ( 어떤 피규러티브 이미지를 그려넣거나 혹은) 어떤 대상물로부터 느낀 사상과 감정을 형상화하여 채웠습니다. 그러면 그 속에서 독립된 또 하나의 세계가 형성됩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사진은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현실 자체를 대상으로 그 시공간의 일부를 잘라냄으로써 그 영상이 존재하게되는 것이지요. 따라서 한장의 사진은 화면 외의 세계와 연속되어있는 현실의 한 부분이라는 중요한 의미를 갖게됩니다.

제갈: 다른 시각적 이미지와는 달리, 사진은 어떤 주제에 대한 연출, 해석 또는 모방이 아니라, 실재의 주제의 추적인 것일세. 페인팅이나 드로잉은, 아무리 사실주의적이라도, 주제를 그려내는 방식이 사진이 포착하는 것과는 다르잖아. 두 경우의 차이점은 간단하네. 회화의 구도는 조형적 구성, 또는 표현적 각 요소( 점, 선, 면, 색채 등)을 조화롭게 다루는 화면구성법인데 반해, 사진의 구도는 선이나 형태 색채에 의미를 두지않고 현실을 파악하는 방법으로서 ,현실의 일부를 잘라내는 시공간적 구성법이라 할 수 있네.

키다리 미술사: 선생님은 사진과 회화를 예술이라는 하나의 틀안에서 쉽게 비교해주시는 군요. 선생님으로부터 점 ,선, 면이라는 화화의 구성 요소에 관한 말씀 들으니 언뜻 추상화가 칸딘스키가 연상됩니다. 화화에도 깊은 조예가 있으시군요.

인문: 이 사람, 대학에서 회화 공부를 전공한 사람이었거든. 그런데 어쩌다보니, 붓은 손에서 놓고, 대신 사진을 어깨에 메고다니게 된 걸세.

 

 

2.

창동거리에서는 낯선 사진자의 표현주의적 사진 몇 점이 인문으로 하여금 전과는 달리 사진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하였다고 앞에서 말한 바 있었다. 즉, 그림에서처럼 사진도 대상의 재현 이상의 의미, 이를테면 그림에서처럼 어떤 예술적 향기를 띠고있다는 점을 그가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는 말이다. 하여간 그 이래 그는 사진을 전과는 달리 회화처럼 소중히 여기며 때로는 그림과 대비하며 바라보거나 문학적 상상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영국의 사진사 빌 브란트의 사진 '런던의 밤' 과 화가 데 키르코의 그림 '굴렁쇠' ( 그 제목이 떠올리지 않아 편의상 그렇게 부른다)를 예술적 차원에서 함께 견주며 바라보기도 하고, 어느 사진첩에서 만난 에드워드 웨스턴의 사진 '누드'가 순간적으로 마티스의 그림 '누드'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기도 하였다.

키르코의 그 풍경은 현실 속에서 초현실의 정황을 비추고 있는 그림이었다. 텅빈 거리, 깊은 어둠, 반짝이는 빛, 긴 그림자 속으로 아이 하나가 굴렁쇠를 굴리며 모퉁이를 도는 모습을 통해 "깊은 적막과 우수, 이른 바, '부재의 멜랑콜리'를 자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 풍경은 ' 마치 현실의 심층부에서 건져올린 듯한 '초현실적 분위기로 채워져 있었다.

빌 브란트의 이 사진 '정전속의 런던'은 거친 톤, "강한 콘트라스트와 예사롭지 않은 구도", 여기에 진한 멜랑콜리의 정조까지 더한 초현실주의적 분위기의 것이다. 칠흙같이 어두운 도시의 밤,불 꺼진 가로등 너머로 반달 만이 뚜렷히 하얗다. 음산하기 그지없다. 사진으로 만날 수 있는 세상 밖의 초현실의 세계이다.

이에 더하여, 어느 포토그래퍼의 사진, '베레모를 쓰는 두가지 방법'을 하나 더 보자. 이 사진은 2차세계대전후 프랑스에서 찍은 것이라고 하였다. 전쟁 직후의 황폐한 분위기가 흐르는 어두운 신작로에 두 아이가 각가 다른 스타일의 모자를 쓰고 서 있다. 아이들의 무표정한 얼굴들이 조용히 전쟁의 패이소스를 던진다. 이것만큼 깊은 공명을 주는 전쟁의 아우라를 보여주는 것도 드물 것이다. 이는 아이 둘은 곧 실존과 허무의 모습이다.

그런데 인문이 이렇게 사진에 이끌리게 된 데에는 자신이 처한 심리적 상태가 어쩌면 이를 좀 부채질했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 싯점은 그가 그림세계의 미로속에서 방향감각을 잃고있을 무렵이었던 것이다. 그가 고토록 긴 시간 몰입해 왔었던 그림의 세계에 희의감이 들 무렵 그런 삶의 실존과 허무를 담은 사진들과 만났던 것이다. 세계대전 후의 그런 분위기를 진하게 담고있는 그 사진들은 그가 젊은 날 탐독했던 보들레르나 까뮈, 또는 장 그르니에의 문학적 색채와 동질의 것이기에 그러했을 것이다. 안톤 슈낙의 단상,'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도 쉽지않게 떠오르기도 하였던 것이다. 한 마디로, 이 사진들은 그로 하여금 예술성에 대한 깊은 회의감에 빠뜨리던 팝아트 미술을 대신해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데키리코의 그림 '굴렁쇠'

 

 

에드워드 웨스턴의 사진 '누드 '와 마티스의 회화 '푸른 누드2'의 경우, 어느 한쪽이 다른 것에서 영감을 얻어 이루어진 것으로 여겨지는 데 , 인문은 그 둘 앞에서 회화가 먼저인지, 사진이 먼저인지가 의문스러웠다. 두 작가의 생존 연도를 보면 마티스가 앞선 시대의 사람이니 당연히 포토그래퍼가 화가를 모방한 것일 것이다. 어쨋거나 그 둘 사이에는 깊은 연관성이 있다는 느낌이었다.

****?????

초현실주의 화가답게 그의 작품은 음울한 분위기가 특징적이다

 

빌 브라운의 사진, '런던의 밤'은 거친 톤, "강한 콘트라스트, 예사롭지 않은 구도"에, 특히 진한 멜랑콜리의 정조까지 더하였기에 초현실주의적이다. 칠흙같이 어두운 도시의 밤, 불꺼진 가로등 너머로 반달 만이 뚜렷히 하얗다 음산하기 그지없다. 인문이 사진으로 만날 수 있었던 초현실의 세계이다.

어느 포토그래퍼의 사진, '베레모를 쓰는 두가지 방법'을 하나 더 보자. 이 사진은 2차세계대전후 프랑스에서 찍은 것이라고 하였다. 전쟁 직후의 황폐한 분위기가 흐르는 어두운 신작로에 두 아이가 각가 다른 스타일의 모자를 쓰고 서 있다. 아이들의 무표정한 얼굴들이 조용히 전쟁의 패이소스를 던진다. 이것만큼 깊은 공명을 주는 전쟁의 아우를 보여주는 것도 드물 것다가오는 아이 둘은 곧 실존과 허무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