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블 5-화 3-6
6.
김종영의 예술세계
종영의 「작품 71-5 자각상」(사진 ③)에선 그가 실천해 온 ̒불각̓의 정신이 오롯이
드러난다. 그는 최소한의 개입만으로 작품의 의미를 살려내고자 한다. 불필요한 조각을 더하는 대신 나무의 결을 살려 연륜 있는
얼굴을 표현해내고 간략한 눈과 입만으로 관조적인 시선과 고민에 찬 얼굴을 그려낸다.
김종영
*근대와 만난 미술과 도시 페이지 96
김종영(1915- 1982)은 미술작품에 품격이 있어야하고
그 품격은 미술가의 인격에서 나온다는 의식을 가진 작가였다.
그는 고희동과 마찬가지로 작품 자체를생업으로 삼기보다 정신을 수양하는 방편으로 삼았다.
그가 '무엇을 만드느냐는 것보다 어떻게 만드는야에
열중'하였던 것은 작품의 결과보다 창작의 과정과 태도를
중시하였음을 의미한다. 이는 전통시대 선비화가의 태도와
같은 맥락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김종영은 '누구를 위해서 작품을 제작하느냐고 물었을 때,
진실한 예술가라면 자기 자신을 위해서라고 말할 것이다',
혹은 '겸양과 용기와 미덕을 길러주는 것은 오직 제작의 길뿐'
이라는 언급은 그의 미술가로서의 의식세계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짐작컨대, 그는 추사의 글이나 그림에 매료되었겠지만,
오원 장승업의 그림을 보았을 때 큰 감동을 받았을 것 같지않다.
그는 손으로 작품을 창작하는 예술가로서보다
손재주를 그렇게 탐탁하게 여기지않는 미의 사색가로
여겼을 것 같다.
...자신의 의식세계를 조각작품으로 드러내기에 번거러울 때
간편하게 드로잉으로 남겼던 것ㅇ로 여겨지며,
담채화인 드로잉은 수묵담채화의 분위기를 띤다.
....
김종영이 주로 돌이나 나무같은 단단한 재료를 주로 다루 ㄴ것에서도
ㄱ의 자아인식을 드러낸다. 보른즈 같이 다른 사람(기술자)의
작품을 제작하기보다 돌이나 나무를 직접 깎거나 쪼아 가면서
완성하는 작품을 선호하였는데 , 이는 작품 제작 과정 자체를
중요시 하였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돌이나 나무를 다듬어 가는 것은
자아수련의 방편ㅇ로 , 작품 제작의 목적이 '완성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과정'에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선비가 붓글씨를
쓰거나 사군자를 치면서 자신의 인격을 수양하엿듯이
그는 돌이나 나무를 쪼거니ㅏ 다듬는 과정을 통해서
인격을 수양한 것이다.
흔히 '不刻의 미'라는 표현으로 김종영의 미의식을 언급하는데,
이는 완성에 대한 작가의 무관심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김정희에 이어 김용준이 손재주와 기교에 대해 거부하였듯이,
지나치게 다듬어 완성된 표현은 인위적이고 장인적인 것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그가 추구한 조형세계는
순수예술세계이다. 목적론적인 것을 거부하고 순수한 미술셰계를
지향하였는데, 이 것의 궁극적인 목적은 참선처럼 자신을
다듬는 작업이었다.
그가 추상조각을 제작하엿기 때문에 그를 최초의 '모더니스트'
라고 평하기도 하지만, ...'불가의 미'나 '기교가 치졸하면
할수록 맛이 진진한 것'이라ㅏ는 주장은 기술적으로 다듬는 일에
관한 거부이며, 이는 '단순하고 소박할수록,그리고 내용과 정신은
풍부할수록 좋은 것이라는'문인화가의 주장과 상통한다.
不刻의 미, 손재주의 기교에 대한 거부의식.
지나치게 다듬어 완성된 표현은 인위적이고 장인적인 것이라는 뜻.
자연대상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기보다 간결하게 표현하는 추상양식이
그의 기질에 잘 맞아.
'단순하고 소박할수록, 내용과 정신은 풍부할수록'이라는 문인화가의
기풍.
경상남도 창원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서울의 휘문중학교를 거쳐 동경미술학교에 유학,
조각을 전공하여 1941년에 졸업하고 이어서 연구과도 수료하였다.
1946년에 서울대학교 예술대학에 미술학부가 창설될 때 조소과 교수가 되어
1980년에 정년퇴임할 때까지 근속하였다.
1950년대의 작품들은 여인상·모자상 등을 소재삼은 구상(具象)이면서
표현적인 형상성에 치중된 것이었다. 그러나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는
추상적인 순수조형작업으로 기울다가 그 경향으로 완전히 전신하여,
나무·금속·대리석을 재료로 한 단순하고 명쾌한 형태의 작품조각으로
독자적 내면을 실현시켰다. 그 조형적 특질은 구성적이며 공간적이고,
혹은 유기적인 생명감을 가지는 다양성을 이루었다.
그는 작품 제작에 기교에 대한 지나친 의존을 경계하엿다는 지적에 대해
일각에서는 그림이나 조각에 기교가 필수적임 주장한다.
김종영은 이렇게 말하였다.
"수련기간은 길고 어려우며, 결코 끝나지않고....기교는 여전히 충분하지
못합니다. 영감의 내부에 있는 무엇인지 모를 것에 대한 명상과 감수성과
지적인 전환이 필요합니다.
작품에서 작품으로 이어지는 기교와 삶을 통해서 예술가의 성격과
개성이 천천히 나타납니다.
화가, 또는 예술가가 자신이 좋아하는 다른 예술가의 영향에 힘입어
스스로를 발견하는 장소는 다름아닌 작품 속입니다.
예술에서 자연발생적인 세대란 없읍니다.
마티스가 말했던가요? 모든 영향을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하며
중요한 것은 잘 소화시키는 일이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