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블 5-화 1-6
다다에서 강상구를 만난 윤화백과 인문은 그를 따라 창동의 아고라 광장
쪽으로 걸어 나와 그의 화실이 있는 한 목조건물 이층으로 함께 올라왔다.
회실 문을 따 안으로 들어선 주인은 싱크대쪽으로 직진하고,
윤용화백은 화실 중앙의 소파에 앉더니 탁자 위에 놓인 신문을 펼쳐들었고,
인문은 한쪽 벽 앞에 서서 서가에 꽃힌 미술세계 잡지와 화첩, 그리고 해묵은
죽 흝어본다 .조금 후 물 끓는 소리가 나자 주인이 두 사람에게로
돌아서더니 먼저 인문에게 던진다.
"선채로 계시지만 말고 이리 오세요. 인문님도 커피로 할까요?"
"그럼 좋고"
"윤용화백님은 녹차로?"
"아니, 이 화실엔 매실 액기스가 있다던데?"
"그걸 어떨게 아셨어요? "
"내가 창동바닥에서 논지가 얼만데. 그 정도도 모를까봐"
"그럼 나도 커피대신 매실로"
"그런데 인문!, 들리는 말에 의하면, 요즘 무슨 영정인가를 위한 사진을
찍고 싶어한다면서요, 더 늙고 초라해지기 전에?"
"예, 집에서 미리 준비해 두리고 성화입니다"
"강 화가! 요즘 인문이 얼굴 사진인가가 필요한가보오.
오늘 만난 김에 웬만하면 인문의 초상화나 한번 그려주지 그래요"
그 순간 인문의 눈이 반짝이었다. 아닌게 아니라 그가 다다에서
강화가가 오기를 기다린 데는 그런 청을 한번 해보고 깊은 마음도 있어서이기도
하였다. 그는 얼굴 사진대신 은근히 자신의 초상화로 영정을 삼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어서 였다. 그래서 이 겸 저겸 윤화백과 만난 김에 함께 다다로 발길을
옮겨 윤화백으로 하여금 강화가에게 전화하도록 권했던 것이다.
"그렇긴 하지만요, 인문의 경우, 내 손으로 잘 그려내기엔 좀 어려운
얼굴인걸요."하며 강화가가 의외의 대답을 하자,
윤화백이 ,"어째서요?, 반문하고는
"당신의 소묘솜씨는 다 잘 아는 일인데."라고 말을 이었다.
강화가는 이에 긴 설명으로 대답하였다.
"인물의 얼굴이 회화적으로 표현하기엔 너무 평범해서요.
돌아가신 이선관 정도는 돼야 근사한 초상화가 만들어질수있지요.
현재호가 그린 이선관 초상화는 모두들 감탄하는 그림인데, 그건 화가가
잘
그려서 그렇기보다 인물이 원래 회화의 대상으로 제격이었거든요.
표현하기에 적합한 특징들이 선명한 얼굴이었으니까.
그런데, 인문님은 유연한 입놀림 하나만 빼고는, 어디 눈에 드는
특징이 있어야 말이죠죠, 혹,콧수염이라도 기른다면 모를까.
윤화백님도 화가의 눈으로 인문님 한번 잘 보세요.
어디
뾰죽뽀죽한 곳이라도 어디 있는지", 강화가는 ㄱ러게 인문을
실망케하는 설명을 길게 늘어놓았다. 인문은 머석해서 입을 다물었고,
윤화백이 두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강화가도 이선관만큼이나 인문의 인물 평에 꽤나 인색하구먼. 이선관이 전에
인문들어 인문의 글은 깊이가 얕고 그저 감미로운 것이 산들바람 같아,하고
한 적이 있었거든. 인문은 ㄱ래도 그 산들바람 듣기 좋은 데 하였고,
하여간 인문이 평소에 강화가에게 술도 좀 잘 사고 하지않았던 모양이야."
강상구는 드로잉 솜씨가 드물게 뛰어난 화가이다. 인문은
그를 만날 때
늘상 고
변상봉 교수와 비교된다. 변상봉은 소묘솜씨가 사실성이 탁월한 반면,
s작가는 신표현주의적이다. 드로잉 즉, 대상의 구상적
소묘를 그는 그림일기나
자기성찰의 도구로 사용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의 그림은 표현주의와 맥을
같이하나 탈고전적이고
구상적이다. 그는 인문이 좋아하는 모네풍의 인상주의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몽롱한 자연 풍경에 식상해 한다. 대신 그는 판화에
담긴
민중운동을 연상케하는 그림을 즐겨 그렸다. 인문은 속으로 강화가
일기를 신문의 만평 스타일의 그림으로 대신하는 그의 재치와 솜씨에
감탄했었다. 순수미술이어야 제대로 된 예술로 여겨온 인문에게는 한동안은
대중적 사회운동이나 이데올로기적 요소와 맥을 같이하는 강화가의
신표현주의적 화풍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적도 잇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