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블5-화1-5
5.
인문은 스페인 여행길에서 지켜보았던 산티아고 구역의
그 기타리스트와 창동의 몽씨,두 사람을 때때로 몽상적으로
비교하였다.두 사람 다 닮은 듯 서로 대비되었고, 다른 듯
닮아 보였다.두 사람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꿈이나 포부가
없어 보였다.희망이니 꿈이니 하는 말들이 어울리기에는
늕은 50대전후인 점을 감안하더리라 그러하였다.
몽씨의 경우. 특히, 일정한 거쳐가 명확하지 않아 불안정하게 보였지만
그는 언제나 술냄새를 풍기며 태평스러웠고, 자신의 기타소리에
감탄하면 그저 행복해하였다.
인문의 눈에는 둘 다 생활과 관련된 걱정거리는 의식에 없었고,
은행구좌, 개인소득,의료보험 등등 현대인의 일상적인 삶의 어휘들이
그들의 의식속에는 필요 요소가 아니었다.
둘 다 한 곳에 머물지 못하고 여러 곳을 특별한 목적없이, 아니,
유목민처럼 일정한 곳에 한동안 머물다 다른 곳으로 이동하였던
것ㅇ로 보였다.한 마디로 그냥 이곳 저 마을로 옮겨 돌아다닌
사람들이었다.몽씨는 이땅의 한강 이남의 도시나 해안가를
밟아보지 않은 곳이 없는 듯하였고, 다른 한 사람은, 이제는
아니지만, 지난 젊은 날 자신의 고향 헤레스를 떠나, 국경을 벗어나,
유럽 이곳 저곳으로 무엇인가에 홀린 듯 돌아다녔던 것같다.런던의
하이드 파크 지역에서는 근 반년이나 머물렀다고 그는 말했었다.
공원을 산책하는 많은 런던인들이 그의 기타소리를 좋아하며,
발길을 오래 멈추었기 때문이었다고 하였다. 그 말에는
물론 모자안에 동전이 제법 들어오기도 하여 그 곳이 유랑중 제일
편한한 곳이엇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둘은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해주는 수단이 있었다.
한 사람은 용접공으로서, 다른 이는 거리의 악사로서 유랑의
삶을 영위할 수 있었다.다만, 한 사람은 여전히 어느 곳에서나
이방인으로서의 삶을 지속하고 있는반면,다른 한 사람은 나이들어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와 거리의 악사의 삶에 만족하며
초연히 그 곳에 안주하는 듯 보였었다.
한편,둘 사이의 한가지 차이점이라면, 한사람은 술기운으로
살아가는, 이른바 보헤미안 기질의 불안정한 악사인데 반해,
헤레스의 그 기타리스트는, 스페인의 집시족이 그런 것처럼,
세속적인 굴레로부터 자유로운 초연한 자유인처럼 느껴졌었다.
그리고 그는 이웃을 편안하게 해주는너그러운 사람이었다.
그가 거주한 헤레스의 산티아고 구역에는 대체로 플라멩코 집시들이
많아 있었고, 그 역시 태생으로는 집시인이었을런지는 모르겠으나,
그의 기타소리는, 인문을 긴 시간 동안 매혹시킨 플라멩코 특유의
음색이나 리듬을 지닌 것이 아니라, 고전주의적 성향이 강한
세고비아 풍이엇다.
지난 날 인문이 스페인 여행중에 전해들은 바에 의하면,
스페인의 안달루시아 집시인들에겐 그들의 전통적인 플라멩코
리듬이 몸과 마음에 익어있다는 것이었다. 그 집시들은 삶의
기본적인
요소만으로 만족할 줄 알며. 진보라거나 발전이라는 개념이 그들에게는
없다는 것이었다. 그들 집시들은 치열한 경쟁이나 경쟁자들을 경멸하며,
교통이 번잡한 거리나 현대식 건물의 번쩍이는 번성한 카페, 부산한 도회적
문화 등 현대적 분위기를 싫어한다. 그들에게 돈보다 중요한 것은
자유로움이다. 앞에서 말한 것 처럼 그들은 필요에 따라, 기분에 따라 ,
일할 것인지 아닌지를 스스로 선택하는 자유를 소중히 여긴다고도
하였다. 그들은 독특한 개성의 소유자임을 드러내기를좋아한다.
이런 태도로 와인 잔을 높이 들고 수탉처럼 우쭐대며, 튀는 옷맵시를
뽑낸다고도 하였다.
그런데,그들은 인종적으로 비극적 운명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고 하였다. 이를테면 그들의 내면에는 디아스포라의 트라우마가
식속에 잠재되어 있어 그들이 속한 기존의 사회적 규범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이로 인해 사회적으로 박해의 대상인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안달루시아 땅에서 정착의 삶을 누리고는 있지만
정착지의 지역인들과 어울려 지내기를 싫어하고 대신 마음 깊은 곳에
먼 유랑을 동경한다고 하였다.
한편, 창동의 기타리스트 몽씨의 경우, 인문이 그에게 특별한 관심을
지녔던 것은 인문의 귀에 그의 기타소리가 매혹적이기 때문이었다.
그가 기타를 치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그저 거리의 술주정뱅이로
치부되어 관심밖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인문은 그의 기타소리로
인해 그가 보고싶기도 하였고 그를 생각할 때는, 그에게는 좋은 느낌의 어휘인
'보헤미언'이 연상되었던 것이다. 이를테면, '그대의 찬손' 이나,
'내 이름은 미미' 등의 아리아로 대중의 사랑을 받는 오레파 '라보엠'을
떠올리기도 하였다. 푸치니의 그 오페라에 나오는 서넛명의 가난한 예술가-
이를테면, 시인 루돌프, 음악가 쇼나르 화가 마르첼로 등-은 인문에게는
청년기부터 친숙한 이름들이었다. 물론 알콜 중독 증세로 인한
제멋대로 행동하는 몽씨가 그 오레라의 등장인물들의 격조높은 품격과는
거리가 멀지만, 하여간 인문은 기타소리로 인해 그렇게 몽씨를
특별히 아끼는 사람으로 여겼다.
일반적으로 보헤미안이라고 하면, 20세기 초를 전후하여 유럽 특히,
빠리를 중심으로 한 도심의 카페에서 대개 술에 중독되거나 마약에 취한
채 탈사회적 행태를 일삼는 예술가들을 일컬었다. 시인 랭보와 베를레느
그리고 모딜리아니 ,반 고흐, 로트렉 화가들이 곧 그들이었다.
오늘날에는 거의 신화적인 인물이 된 그들은 당시에는 스스로 자초한
가난속에서 기성사회의 제도나 관습에 역행하는 행동을 서슴치않았다.
원래 '보헤미언'이란 어휘는 프랑스어로 일정한 근거지가 없이
사회적 밑바닥에서 종종 타락한 생활을 일삼는 집시또는 로마니 족을
뜻하였는데, 점차적으로, 비극적인 삶을 살다 전설이 된 순수한 예술가들
을 뜻하게 되었던 것이다.
1950년대의 미국 시회의 카페지역,이를 테면 뉴욕의 그리니치 빌리지
,세레토가 또는 하버드 대학촌의 카페 구역을 안식처로 삼아 모여 지냈던 젊은 비트
음악가들도 술과 마리화나 등을 즐기며 예술활동을 한 보헤미언 (히피)이었다.
더 나아가 미국의 보헤머언들은 ,원래의 의미대로 정처없이 떠돌며 방랑하는
그런 유랑인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카페나 다락방이 있는 예술적
분위기의 일정한 지역에 은거하면서 밤 늦도록 술이나 마리화나에 젖은 채
철학과 예술을 논하던 꿈 많은 10대 젊은 홈리스나, 늙고 힘없는 부랑인들,
그리고 이름없는 예술가들을 의미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