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림과 글 2-3
오 늘 인문이 창동의 s화가의 아틀리에서 만난 s작가는 드로잉 솜씨가 드물게 뛰어난 화가이다. 인문은 그를 만날 때 늘상 고 변상봉과 비교된다. 변상봉은 소묘솜씨가 사실주의적으로 탁월한 반면, s작가는 ?신표현주의적이다. 소모라면 일반적으로 색보다 선으로 대상의 형태를 표현한 것으로 드로잉이라고도 볼린다. s 작가는 이러한 사전적 의미에서 벗어나는 소묘를 추구한다는 의미이다. 일기의 수단으로 그는 드로잉을 사용한다. 그에게는 드로잉ㅇ 자기성찰의 도구이기도 한 것이다.
내친 김에 인문에 관해서 짧게 말하자면 이렇다. 즉, 그는 속으로 그
림이란, 비평적 분석의 대상이 아니라,
화가의 자유로운 몽상이 구현된 물질적 존재라고 여기는 편이다.
그는 음악을 즐기듯, 시를 즐기듯 그렇게 그림을 즐긴다.
그에게 그림이나 조각은 물질이면서 정신이고,
형식이면서 동시에 내용임을 맛본다.
그것들은 개별적이고 국지적이고 독특하지만
동시에 보편적인 증인이기도 하다.
산문작가로서의 인문은 시인의 시선으로 지역작가들의 의 미술을 읽는다.
보들레르처럼가 채색주의자 들라크로아에 대한 감동을 글로 표현했듯이,
시인 릴케가 세잔느에 대한 경외감을 일상의 편지의 글에 나타냈듯이,
시인의 시선으로 지역화가들의 그림 앞에 선다.
시인 릴케는 세잔느의 그림 앞에서
'화가의 푸른 영혼의 불꽃'을 보았습니다.
그의 작품을 통해 캔버스 앞에 앉은 화가의
대상의 본질을 추구하는 순수한 탐미행위의 구현을
느꼈습니다.
시인 보들레르는 드라클로아의 색채화 앞에서
삶의 비극적 요소가 주는 처연한 아름다움에 전율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 전율감을 자신의 고유한 단어로
시적 산문의 글을 였었습니다.
보들레르는 1946년의 들라클로아의 그림전을 두고
단순히 그의 그림을 해석하고있는 것이 아니라,
현대미술에 관한 보들레르 자신의 낭만주의적 정의를 내리고있다.
즉, 주제의 선택이나 그것의 전확한 진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느끼느냐 하는 그 방법에 있었다.
인문은 보들레르의 그런 낭만주의적 상상에 공감한다.
이를 테면, 그에게
그림이나 조각은 물질이면서 정신이고,
형식이면서 동시에 내용임을 맛본다.
그것들은 개별적이고 국지적이고 독특하지만
동시에 보편적인 증인이기도 하다.
램브란트의 성화는 성서이야기를 먼저 생각하게되니
성화의 화면상의 이미지와 그 밑에 깔린 내용을
읽으려는 도상학적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오늘 우리들 지역작가5인의 경우,
작가의 심리적 요소를 감안하여 그림 앞에서
선 관찰자는 화가의 심리를 탐색하기보다 그림을 매개로
자신의 자유로운 상상력 상상력을 펼치게 되는 것이다.
이 발표자의 자세도 그런 것이다.
즉, 그림과 관련하여, 먼저 시를 생각합니다.
한편의 시가 흰색의 종이위에 배열된 단어의 묶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라면, 모리스 드니가 주장한 대로,
그림도 역시 우선에는 평범한 표혐에 질서있게
배치된 색면으로 보여지게 된 것이다. 그림이 가지는
일차적인 임무는 설명이 아니라 그 표현력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색채를 통해 사고의 자유로움을
충분히 표현해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