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산문

기타 치는 노인

jhkmsn 2016. 8. 30. 19:02

   

The Old Guitarist

Pablo Picasso
Spanish, 1881–1973
The Old Guitarist
Late 1903–early 1904

Oil on panel
48 3/8 x 32 1/2 in. (122.9 x 82.6 cm)
Signed, l.r.: "Picasso"
피카소의 유화 '늙은 기타리스트'-나뭇가지처럼 늘어진 길고도

앙상한 손가락, 누더기 옷 사이로 드러난 뼈만 남은 어깨, 더 낮아지기 힘들 정도로

숙인 고개, 고달픈 삶의 상징 같은 힘줄이 새겨진 목 그리고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듯한 표정.... 그 그림을 보는 이라면 , 누구라도 그 차가운 화면 색조와 그림

속 인물인 늙은 악사의 체념적 모습에서 어떤 시적 우수를 느끼게 되리라.

'기타치는 노인' (The Old Guitarist)는 피카소가 젊은 시절인 1903년 에서 1904년

사이에 그린, 이른바 , 청색시대(blue Period)의 회화작품이다.

1901년부터 1904년 사이의 이 '청색시대'에 피카소는 주로 검푸른 색이나 짙은

청록색의 색조를 띤 그림을 그렸다. 그 당시의 친구 카를로스 카사게마스

(Carlos Casagemas)의 자살에 받아 엄숙한 색깔을 선택하며 사회적 소외자인 매춘부,

거지, 유랑 극단 가족, 알코올 중독자와 같이 음울한 소재를 대상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는 훗날 "나는 카사게마스의 죽음을 알고부터 푸른색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라고 회상했다.

당시의 모더니즘(Modernism) 안상주의(Impressionism), 후기 인상주의

(Post-Impressionism) 그리고 상징주의 운동이 통합된 소위 표현주의

(expressionism) 추세가, 그리고 이에 더하여, 17세기 말기의 그리스 태생의

스페인 화가, 엘 그리코( El Greco)의 매너리즘적 요소가 그의 작품 스타일에

크게 영향을 입혔다.

엘 그레코라면, 강하고 대조적인 색채로 길쭉하고 뒤틀린 비벙상적인 인물의

종교화와 초상화를 주로 그렸었다.그레코는 후기로 갈수록 육체를

극단적으로 일그러뜨린 그림을 그렸고 환상적인 배경처리를 사용하면서도

인물들의 뛰어난 성격묘사를 통하여 자신의 독특한 개성을 발휘하였다.

                        



1.


2016년 7월

마산

어서 오세요. 인문,오늘은 그림쟁이 두분하고 함께 나타나시는군. 

내가 오늘 모처럼 전화 한건, 한 동안 인문의 발걸음이 뜸해 궁금하기도 하고,

이 골목의 악사 늙은이 소식도 전할 겸해서 였다오.

어제 그 영감 또 왔었어요. 아니나 다를까 손님에게 큰소리를 지르고

급기야 시비까지 걸기에 참다못해 쫒아냈었지. 뭐 큰 소란은 아니었어요.

처음엔 잘 나갔었지.기타 몇 곡으로 그를 모르는 손님들의 귀를 매료시켰지.

어제는 단골 한분이 시킨 페티김 노래- 그 곡 이름이 뭐더라-를 애뜻하게

들려줘 박수와 앵콜을 받기도 했었지.

그 영감 모르긴 해도, 이 골목에서  전설의 악사가 될거야 아마.

어디 일정한 거처도 없고, 가족도 없는 것 갗지만 그의 기타소리 하나는

끝내주거든. 어찌나 투명하고 맑은지!

속직히, 누가 뭐래도 그를 함부로 대할 수가 없어요. 그의 기타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홀려요. 그를 생각하면, 자연히 피카소의 저 벽위 그림사진

속의 늙은 기타리스트 쪽으로 눈길이 가요. 영락없이 그를 닮았다니까요.

볼 품이라곤 없는데다. 저런 몰골에 어찌 그런 영롱한 소리를 만들어

내는지. 하여간 그는, 우리 가게에 오면 꼭 저 그림 사진과 마주하는

자리에 혼자 앉아 찬 맥주를 시켜요. 젊은 시절 용접공으로 지냈다나.

지금도 그 영감을 이따금 용접일로 불러주는 데가 있는 모양이입니다.

우리집에서 외상 술은 마지지 않아요.

문제는 그가 늘 취한 채 나타나고 기타를 켜다가는 이내 주변 누군가 곁에

들어붙어 지치도록 중얼거린다는 점이지. 그러다가 고함을 치고 ,

아주 드문일이긴 하지만,급기야 몸 싸움까지 벌이기도 해요. 글세.


Y작가! 여기 만초집이 처음이죠?  클래식 듣고싶은 이들이 이 곳에

와요. 저도 가끔 바람스나 박세원의 가곡 듣고 싶을 땐 이곳에 옵니다.

지난 번엔 영문학자 김교수와 창동 소개꾼 김여사 등과

함께 들렸었어요. 그렇지만 이 곳은 주로 남자화가들이 술마시며 떠드는

공간입니다. 오늘 함께 오신 윤화백처럼 말입니다. 윤화백 아니 그렇습니까?

지금은 세상 떠난 남정현과 현재호, 변상봉 그리고 허청륭 등 창동 화가들은

생전에 여기를 제집 드나들듯 했답니다.


미술가를 꿰뚫고 있는 윤화백의 그림이야기 듣고 싶어 오늘 이렇게

윤작가와 함께 자리했습니다. 윤화백은 맥주, 그리고 저의 윤작가는

소주 . 오늘술값은 제게 낼께요. 참, 다음 주 창동겔러리에 원로 작가전

오픈 한다지요? 여기오다 미협사무실에서 들었습니다.

몇분이나 참여하십니까? 윤화백,박춘성 회장, 교당 , 또

누굽니까? 문여사는 교당하고 같이 나타날게요.

윤화백은 무슨 작품을 준비하셨는지요? 암시적인

추상의 인물이 담긴 그런 화화로? 늘 함께 다니는 박화백 여전히

1930년대의 토속적 황토색 들판과 옥수수밭 아낙들이 등장하는 그림일테고

.교당은 전에 보았던 조선시대의 미인도 한점?

교당 하면,생각이 납니다.  동서양을 불문하고 회화적 주제나 기법이

그림의 보편적인 예술성을 무너뜨리는 수준으로까지 치달으며 변화는

이 시대적 변화속에 살고있지만, 그 분은 그런 변화와는 무관하게

한결같이 자연미 추구를 고수하는 전통적인 동양화 기법을 고수하고

있지요. 대상에 대한 모사력이 출중한 그는 얼핏 조선 중기의 직업

적인 화원을 연상케 하더군요. 그는 한번 그의 서재에서 새필을

든 그의 손이 화선지 위에서 탐미의 유희에 집중하는 사이

전통적인 치마저고리 차림의 곱고 단정한 여인의 얼굴이

그 위에 피어나는 나는 것을 지켜본 적인 있었습니다.


저 피카소 늙은 기타리스 트 그림 앞이니, 나도 한마디 합시다.

피카소의 이른바, 청색시대는 대부분 저 그림처럼 거지, 부랑자 등

사회적 약자나 소외자들에 관한 그림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들에 대한 그의 연민의 정은  아마도 예술가 자신의 소외감을

피력한 것이겠지요. Yet these figures convey poetic melancholy more than

outright despair. The aged musician accepts his fate with a resignation that

seems almost saintly , and the attenuated grace of his limbs reminds of

El Greco. The Old Guitarist is a strange amalgam of Mannerism and

of the art of Gauguin and Toulouse Lautrec( note the smoothly curved

contours), imbued with the personal gloom of a twenty-two-year-old genius.


           2.


지난내 2월 어느 날이이었다. 오후 3시쯤 군용작업모에 노동자 차림을 한

초로의 남자가 창동의 방송 작업실에 불쑥 들어왔다. 그는 어깨에 멘 큰 가방을 

내려놓으면서  인문 일행에게 '기타소리가 들리기에.....'라고 말하였다.

한낮인데도 그에게서 술냄새가 풍겼다. 그날 그들은 기타반주에 맞추어

'희망의 속삭임' 곡을 2중창으로 연습하던 중이었다. 창동의 노천공연장인

아고라 광장에서 며칠 후 펼쳐질 <살풀이와 플라멩코 공연>에 게스트 출연자로

나서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인문은 방문객의 큰 악기 가방에 눈길을 던지며

'기타 치는 분인가 보네'하며 그에게  말을 건네자, 그는 ' 몇 곡은 합니다요.'

라고 말하고는 이어 가방에서 기타를 꺼내 잠시 줄을 맞추고는

익숙한 솜씨로 '알람브라의 궁전'을 한 곡 뜯는 것이었다. 그 곡이 끝날 즈음

인문은 그에게 " 내친 김에 '로망스'도 한번 켜 보시지요",라고 하자

그는 당당한 연주자의 자세로 그들을 향해 고개를 끄떡이고는

내려놓았던 기타를 다시 가슴에 안았다. 인문은 그가 뜯어내는 ,

기타 특유의 쓸쓸함이 담긴 매력적인 음색에 내심 감탄하였다.

두 곡을 다 들은 인문은 대뜸  "그 두 곡으로 무대에 우리들 무대에

오를 수 있겠는가,라고 그에게 제안함으로써  그는 <살풀이와 플라멩코 공연>

무대에서  프로그램에 없었던  그 두 곡을 독주로 들려주게 되엇던 것이다.


?기타맨의 기질적 특징:

Jypsy work philosophy

 

Apart frm their music, the traditional flamencos are natural actors.

Their preferred life is in the streets and cafe, where they can

see and be seen , admire and feel admired. They enjoy being

nattily dressed​ and they  have an indestructible attitude of being

somebody unique , Armed with these assets, and a glass of

two of aguardiente, they strut like cocks, being at once

expansive , authoritative, friendly, condescending , formal,

dignified, and ,above all, individualistic.

They are not ambitious ,and are capable of being happily 

with only the basic necessitities . The concepts and

developments of progress are incomprehensible to them.

They scorn the rat race and its participants , together with

such obnoxious modern phenomena as demanding traffic

lights, motor-clutterd streets, shining stainless​-steel

cafeteriaa ,and grim, unseeing civilization bustling

to no destination. Inevitably traditional flamenco philosophy

will give ground to progress. Materialism , life insurance

grave sites on installments and pressing demands will take

their toll, and self-confident flamenco faces will cloud

with doubt and insecurity. This is progress as it

affects flamenco.​

are  

Gypsy non-work ethic

It is unthinkable that a gypsy should to take a job that condemned

him to daylong labor in the dark.....More important than money

is the freedom that gives you the choice to work or not, according

to mood or need. yo mando en mi hambre, said El Chocolate:

" I am the master of my own hinger".

This emerges less clearly in a town of long settlement and intergration

such as Jerez, where I count a lawyer, a television producer, and

a business manager among the gypsies I have met. But then it is

also a town where only two of the beggars are gypsy.-and they

are both simple. With this non-work ethic​ goes a tendency not to

plan for the future.(Take no heed for the morrow- they have a

respectable precedent.) one friend told me that she had been determined

not to marry a fellow gypsy because she wanted a man who would

give their children a better life.​

Perhaps the most marked of the gypsy cultural traits concerns

the importance of the flamily and, by extension, of the community.

The damage done to Triana, in Seville, and the Sacromonte,in

Granada, lay in the dispersal of its community, one in which

the elders are always cared for and respected, but above all,

consulted and listened to. In their own language:

Respect for the old

is the law

among the Gypsies.

Reblina ur puro

sina a liri

enre ler carlos.

.......

I dont want to leave the subject without mention of the Gypsies'

strong sense of tragic destiny. Their refusal to conform to the

norms of the countries they passed through is enough to explain

their persecution. But why should the human mind associate

tragic destiny with nomadism in itself? wondering jew, Cain?

Why the concept of being condemned to wander? This is not

the place to expand on the matter. Here it is enough to say

that Gypsy, though long settled now, is more aware of

tragic destiny than the rest of us.

This brief sketch has no pretension to be more than an introduction

but one that I felt necessary because of the Gypsies' key role

in flamenco. It is not exclusive to them. But they are its principal

torchbearers, and always have been. Their own opinions

range from gogged belief that flamenco is theirs alone to the

more widespread opinion reatly summed up by the dancer

Manuela Carrasco. When asked what was the difference between

Gypsy and non-Gypsy flemanco, she said:

None at all" and added ,with a smile​,"but the again we Gypsues do

have a quality all our ow

 


         3.

그 후 하루는 그 기타맨이 작년 초겨울 쯤 저녁나즐 인문의 집에 불쑥

나타났었다. 인문은 그를 위해 김치찌게로 저녁을 준비하다.

손님으로 온 명야몽에게 인문은 집 서재에 걸어 둔 판화 한점을 선물하였다.

70년대에 여류화가 강국진의 추상화 소품이다.

식사 후 인문은 기타 연습본을 꺼내 전날 혼자 집에서 

읽다 잘 이해되지않는 곳의 페이지를 펼쳐 그에게 물어

본 다음, 왼손, 오른손으로 기타 잡는 법을 처음 배우다.

 

왼손으로는

집게 i를 1플렛에,

가운데 m을 2플렛에,

약손 a를 3플에,

새끼손 ch를 4플에,

 

그리고 오른손으로는,

도- 5번 줄 3 플렛,

레- 4번 줄 개방,

미- 4번 2플,

파- 4번 3 플,

솔- 3번 개방,

라- 3번  2플

시- 2번 개방

도- 2번 1플


도레미파솔라시도

30230201

도레미파솔라시도

30230201

도시라솔파미레도

10203203

도미솔

320

 .............


그 기타맨을 통해 기타를 만지기 시작한지 며칠이 지나면서 음계소리가

만들어진다. 연습을 계속하면, 현재 머리로 암기한 음계의

순서가  자동적으로 손에 익을 수 있겠구나 싶다. 신기하다.

인문이 10여년전 포틀란드에서 만난 기타리스트

마크 퍼거슨을 지금도 잊지않고있다.

마크는 내가 그에게 소개한 김민기의 <아침이슬>을

좋아했었고,그 곡을 플라멩코 곡으로 편곡하여 연주했었다. 

얼마 후 그는 플라멩코 댄서 로레나 마론너와 함께 이곳

마산에 초대되어 <플라멩코와 살풀이> 공연무대에서 

아침이슬을 플라멩코 춤과 기타곡으로 표현했었다. 

 

인문은  그 기타맨이 준 기타를 손으로 만지며 10 여년전  

시인 가르시아 로르카의 시 한구절을 떠올렸다.

...........

가르시아 로르카의 시집

poema de cante jondo(1931)에서;

기타의 울음을 멈추게 할 수는

없으리라.

먼 곳을 그리워하며

기타는 눈물을 흘린다.

무더운 남국의 모래는

힌 동백을 찾고,

과녁을 잃은 채 허공을 떠도는 화살,

아림을 잃어버린 오후,

그리고 나뭇가지 위에서

제일 먼저 죽은 새를 슬퍼하며

기타는 눈물을 흘린다..

아, 기타여!

다섯개의 칼에 의해

성처입은 심장이여!

(<기타>부분)



 

                 4.  

기타는 플라멩코의 영혼이다.(guitar is the soul of flamenco.)

기타연주는 플라멩코 노래에 필수 요소이듯이, 춤에도 마찬가지이다.

판소리의 소리(창)에  고수의 장단이 필수적이듯  플라멩코의 춤이나

노래에 있어서 기타 반주 역시 그러하다. 스페인의 시인

가르시아 로르카의 기타 사랑은 특별하였다. 그 시인의 아래의 두 시가

불러 일으킨 기타의 신비한 힘에 호기심이 동한 문은 70세의 나이에

처음으로 기타를  손으로 만지며 혼자 연주 연습을 해보기 조차

하였다.

         '아래'

 

  ​기타

 

기타의 울음을 멈추게 할 수는

없으리라.

먼 곳을 그리워하며

기타는 눈물을 흘린다.

무더운 남국의 모래는

힌 동백을 찾고,

과녁을 잃은 채 허공을 떠도는 화살,

아림을 잃어버린 오후,

그리고 나뭇가지 위에서

제일 먼저 죽은 새를 슬퍼하며

기타는 눈물을 흘린다..

아, 기타여!

다섯개의 칼에 의해

성처입은 심장이여!

 

<*가르시아 로르카의 시집

poema de cante jondo(1931)에서>

기타의 현 여섯줄

 

이 흐느끼는 여섯줄의 기타.

길잃은 영혼의 흐느낌이

그 둥근 입을 통해 흘러나오고

기타는 타란툴라 거미처럼

큰 별 하나

거미줄로 엮어낸다

그 검은 나무통 속에

한숨을 가두어둘.

 

The six strings

 

The guitar makes dreams weep.

The sobbing of lost souls

escapes through its round mouth.

And like the taranttula

it spins a large star to trap the sighs

floating in its black wooden water tank.

 

이 시인은 플라멩코와 투우를 사랑하였다. 오래전 어느 해 문이

여행지 포틀란드에 머무는 동안 소리내어  읽고  좋아하였던 이 시가

오늘 머리에 떠 오르다. 그 도시의 중앙도서관에서 영문으로

된 위의 시를  우연히 발견한 그날 그는 데킬라 한 병을 사들고

숙소로 돌아와 플라멩코의 기타곡과 독주에 흠뻑 취했었다. 

그리고 아래는 기타를 처음으로 만져 본 문의 어느날의

일기이다:

          '아래'

 0월 0일,2014​

도레미파솔라시도30230201

도시라솔파미레도10203203

도미솔320

 기타를 만지기 시작한지 며칠이 지나면서 그렇게 음계소리가

만들어진다. 연습을 계속하면, 현재 머리로 암기한 음계의

순서가  자동적으로 손에 익을 수 있겠구나 싶다.

신기하다.




??????? 인문의 기타사랑은 특별하군요. 그런데 인문도 아시겠지만,

피카소는 다양한 작품 세계를 보여주었잖아요. 이를 테면,

소년기의 ‘초기시대’, 무명시절의 ‘청색시대’, 몽마르트로 정주 시절의 ‘장및빛 시대’, 아프리카 흑인조각으로 영감을 얻은 ‘전기입체주의 시대’에서 ‘분석적 입체주의’, ‘종합적 입체주의’, ‘50년대 이후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그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획기적인 발상으로 당시 사람들을 놀라게 했음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먼저 제 뒤쪽 벽위에 베토벤의 흉상과 함께 나란히 걸린 피카소의 저 ‘기타치는 노인’( 동판의 복사 본)은 바로 이러한 작품 시대 중 ‘청색시대’(1901-1904)에 그려진 작품입니다. 피카소의 입체주의 미술에만 익숙해져 있었던 이라면 본 작품이 상당히 신선하게 와 닿을 것입니다. 김교수 아니그렇습니까?